세조대왕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세조대왕 (장편소설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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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세조대왕』, 참회 그리고 합리화를 통한 자기 구원의 가능성
『세조대왕』은 1940년에 박문서관에서 간행된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세조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이 죄라 고백하고 불교를 통해 참회한다. 그러면서도 시역(弑逆)을 일으켰던 것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강조한다. 이광수는 해방 후에 「나의 고백」을 통해 친일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민족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세조의 태도와 묘하게 닮아 있다. 이런 모습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라든가 사상과의 연관 속에서 그가 주장해온 ‘민족’이란 명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구원이 가능한 것은, 역사적인 사명감을 부여받은 존재로 현실의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불교를 통해 현실 논리를 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명감은 태조의 유업을 잇는 주체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결국 『세조대왕』의 서사가 제기하는 의미는 왕의 권능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도 이어진다.
저자

이광수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1892∼1950)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가장 중요한 작가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그는 『무정』, 『재생』, 『흙』, 『유정』,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본격 장편소설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제1형식’을 창출하였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과 『조선문단』, 『동광』 등의 한글 잡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필 활동을 펼침으로써 현대 ‘한국어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그는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세조대왕』, 『원효대사』, 『사랑의 동명왕』 등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화함으로써 민족적 위기의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기억을 소설의 장에 옮겨 민족적 ‘자아’를 보존하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성립을 증명한 『무정』의 작가요, 도산 안창호의 유정 세계의 꿈을 이어받은 사상가요,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한 민족운동가요, 민족적 ‘저항’과 ‘대일협력’의 간극 사이에서 파란만장하고도 처절한 생애를 살아간, 험난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목차

발간사

세조대왕
대원각사(大圓覺寺)
경찬회(慶讚會)
추천재(追薦齋)
매월당(梅月堂)
동순(東巡)
번뇌무진(煩惱無盡)
무상(無常)
생사(生死)의 경(境)

작품 해설: ‘나는 왕이로소이다’-시원의 계승과 탈세속화의 간극_ 김형규

출판사 서평

세조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일들을 스스로 죄라 고백한다. 그리고 불교를 통해 자신의 과업과 행적을 참회하며 구원을 구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역(弑逆)을 일으켰던 자신의 행위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세조의 말년 행적을 그리고 있는 소설 『세조대왕』 속 세조는 이렇게 참회하면서 동시에 합리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광수는 해방 후에 「나의 고백」을 통해 친일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민족과 조선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한 바 있다. 민족을 배반했지만 나라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역설은 자신의 과업을 참회하면서도 대의를 위한 행동으로 합리화하는 세조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조선의 근대화라는 목적의식 아래 일제의 식민 지배가 지닌 부정성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쉽게 이어질 수 있으며, 민족을 개조해서라도 문명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광수의 근대관과 결부되기도 한다. 결국 『세조대왕』은 일제 말기에 작가 이광수가 민족과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참회와 합리화는 대등하게 병립하는 태도라 보기는 어렵다. 참회가 과거의 행동이나 행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여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라면, 합리화는 그러한 행동이나 행적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회의 형식을 통해 결국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병립하기 힘든 참회와 합리화 두 가지 모두를 놓을 수 없어 고뇌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강조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모습으로 보든 세조의 모습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과 그러한 행위가 가능했던 사상과의 연관 속에서 그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민족’이란 명분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세조대왕』을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이나 황민화론에 동조하거나 부역하는 이광수의 작가적 행동의 결과물로 보거나, 아니면 『세조대왕』 속에서 친일과 민족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 이광수의 심연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세조의 입장에서 보면 이 작품은 자기 구원을 시도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만민의 임금이 되기 위해서, 혹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논리는 세조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만 기능한다. 이러한 구원이 가능한 것은 역사적인 사명감을 부여받은 존재로 현실의 권위는 인정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불교를 통해 현실 논리를 무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사명감은 태조라는 건국 대왕의 유업을 이은 시원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은 역사적 사명의 대상인 나라와 백성, 즉 국가와 민족보다는 사명감의 주체인 왕을 우위에 두는 방식이다. 백성을 가르치고 다스리는 것이 임금의 일이요, 그 일을 하는 것은 왕의 권능이다. 나라와 백성은 절대 권력의 실현 대상으로 만들어지며 실체 없이 권력의 존재를 욕구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세조대왕』이 결국 사명감의 주체로 세조를 대왕의 자리에 올리고 그를 구원하는 데 초점이 놓인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