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정치 (반지성주의를 경계하며)

예술과 정치 (반지성주의를 경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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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국내 첫 번역 소개되는 토마스 만 정치 에세이" -국내 최고 토마스 만 전문가 홍성광 번역
상징과 유머, 패러디로 넘쳐나는 비정치적 인간의 통렬한 성찰
독일 현대문학의 상징이 된 대문호,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 토마스 만의 지적 투쟁의 기록!
20세기 문명과 야만의 시대를 가르며 토마스 만은 반세기 역사의 산증인이자 시대의 목격자로서 그 임무를
다하였다. 유럽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의 정치적 발언들은 토마스 만 시대의 대변인을 자처했다. 토
마스 만은 나치즘이라는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반지성주의를 목도하며 그가 집필한 수많은 평론과 문학
에서 나치 체제의 위험성을 공격한다. 그는 전쟁 동안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제안한 히틀러 타도를 외
치는 반나치 라디오 연설시리즈 「독일 청취자 여러분!」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4년 6개월 동안 매월 1회 방송
을 하며 독일 국민들에게 히틀러 정권의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호소하였다(이것은 1940~1945년 미국에서
녹음되고 영국으로 보내져 BBC 라디오 방송에서 토마스 만의 육성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저자

토마스 만

1875년 6월 6일생이다.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였던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네덜란드 영사, 시 의원, 부시장을 지내며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린 인물이었고 어머니 율리아는 독일인 아버지와 포르투갈계 브라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인물이었다. 형 하인리히 만 역시 『충복』, 『오물 선생』 등을 집필한 소설가였다. 훗날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 "잘 보살핌 받아 행복했다"고 기록한 바 있다. 1905년 뮌헨대학교 교수의 딸인 카타리나 프랑스하임과 결혼하여 3남 3녀를 낳았다. 어릴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기에 학업보다 독서 체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고등학교 때는 하이네, 폴 부르제, 헨릭 입센 등을 읽었고 스무 살 이후에는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898년 첫 책으로 단편집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출간하였고 1901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이 장편 소설은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을 시작점으로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 『독일 공화국에 관해서』 등 정치적 주제를 견지한 글을 썼으며,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옹호하는 강연 활동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자 2월부터 망명에 들어갔으며 1936년 독일 국적과 본 대학 명예박사 학위를 박탈당했다. 1938년 미국으로 이주하고 1944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기념 강연 청탁을 받아 16년 만에 독일 땅을 밟게 되었다. 1952년 매카시 위원회가 공산주의자로 지목한 것을 계기로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으며 그곳에서 1955년 사망했다. 『마의 산』과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외에 주요 작품으로는 『트리스탄』, 『대공 전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요셉과 그의 형제들』, 『바이마르의 로테』, 『파우스트 박사』 등이 있다.

목차

옮긴이의 글
20세기 토마스 만의 시대

1 전쟁 중의 생각
2 세계 평화?
3 아이러니와 급진주의
4 문화와 사회주의
5 빈의 노동자들 앞에서 행한 연설
6 형제 히틀러
7 본 대학 철학부와의 서신 교환
8 다가올 민주주의의 승리
9 문화와 정치
10 독일 청취자 여러분!
11 독일과 독일인
12 내가 독일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
13 예술가와 사회

해설: 토마스 만의 생애와 사상 | 홍성광
토마스 만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