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17.50
Description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김영하의 본격 여행 산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가 10여년 전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을 생생히 담아낸 책이다. 2009년 첫 출간 당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새로운 장정과 제목으로 복복서가에서 다시 선보인다. 이번 개정 작업을 통해 작가는 문장과 내용을 가다듬고 여행 당시 찍은 사진들을 풍성하게 수록하였다. 초판에는 실려 있지 않은 꼭지도 새로 추가하여 읽는 재미를 더했다.

2007년 가을, 지금은 장수 여행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EBS 〈세계테마기행〉의 런칭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작가 김영하를 찾아왔다. 그들이 작가에게 어떤 곳을 여행하고 싶냐고 물어보았을 때, 김영하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답한다. 당시 한국예술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작가는 그들과 함께 시칠리아를 다녀온 후, 교수직을 사직하고 서울의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다섯 달 만에 아내와 함께 다시 시칠리아로 떠난다. 그것은 밴쿠버와 뉴욕으로 이어지는 장장 2년 반의 방랑의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도착한 시칠리아에서 그는 왜 그곳이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떠올랐는지 깨닫는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다정하게 다가와 도와주고는 사라지는 따뜻한 사람들, 누구도 허둥대지 않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장엄한 유적과 지중해. 그곳에서 작가는 자신을 작가로 만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고(“어두운 병 속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빛나는 편린들과 마주하는 고고학적 탐사”), 오랫동안 잊고 있던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도 다시 만난다.
10년 만에 재출간을 준비하면서 작가는 “여행은 세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 여행을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한 번, 실제로 여행을 해나가면서 또 한 번, 그리고 그 여행을 기억하고 기록함으로써 완성된다. 나는 10년 전에 이 책을 출간하면서 그 세 번의 여행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교정쇄를 받아 원고를 더하거나 빼고, 사진들을 뒤적이면서 그 여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여행이 끝나고 10년이 흐른 뒤에야 작가는 모든 여행은 ‘오래 준비해온 대답’처럼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후 10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모두 알고 난 후에 다시 읽게 되는 여행기는 작가 개인에게도 물론 각별하겠지만 그의 문체와 통찰력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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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하

1968년강원도화천에서태어나군인인아버지를따라여러지역을옮겨다니며성장했다.잠실의신천중학교와잠실고등학교를졸업하고연세대학교경영학학사와석사를취득했다.한번도자신이작가가될것이라고생각하지않았지만,대학원에재학중이던1990년대초에PC통신하이텔에올린짤막한콩트들이뜨거운반응을얻는것을보고자신의작가적재능을처음으로깨달았다.서울에서아내와함께살며여행,...

목차

Prologue언젠가시칠리아에서길을잃을당신에게
내안의어린예술가는어디로
첫만남
소프레소,에스프레소
리파리
지중해식생존요리법
리파리스쿠터일주
리파리떠나던날
향수
메두사의바다,대부의땅
아퀘돌치해변의사자
천공의성,에리체
빛이작살처럼내리꽂힌다는것은
메멘토모리,카르페디엠
신전
죽은신들의사회

출판사 서평

나는시라쿠사의퇴색한석회암계단에앉아저멀리희붐하게빛나는지중해의수평선을보며열아홉살의봄에경험했던찬란한행복을회상했다.모두같은색의티셔츠를입고손을높이쳐든채<젊었다>를부르던그날을.그럴때여행은낯선곳으로떠나는갈데모를방랑이아니라어두운병속에가라앉아있는과거의빛나는편린들과마주하는,고고학적탐사,내면으로의항해가된다.바다가내려다보이는타오르미나의그리스식극장에앉아나는그때의노래를소심하게웅얼거린다.간단한가사를계속하여반복하던,그래서신입생들도쉽게따라배울수있었던그응원가는이렇게끝난다.그대여,그대여어어,너와나는태양처럼젊었다.

_본문91쪽


스마트폰이없이떠난마지막여행

그들이여행을떠난것은스마트폰이대중화되기직전인2008년이다.구글맵도,트립어드바이저도,호텔스닷컴도없던시절.그들은공중전화로호텔을예약해야했고,종이지도를보며길을찾아야했다.미로같은골목들이즐비한이탈리아의도시들에서길을잃기십상이었고,날씨도정확히알기어려워비를맞고다녀야했다.이탈리아의기차들은“시간표에따라가는것이아니라스스로가고싶을때”떠났을뿐아니라예고도없이툭하면취소되곤했다.이탈리아어를몰라‘Soppresso(취소)’를‘Espresso(특급)’로착각해플랫폼에서취소된기차를한없이기다리기도했다.이탈리아에서시칠리아섬으로넘어가는것조차쉽지않은일이었다.하지만작가는계획대로진행되지않는이고생스러운여정속에서도“시칠리아가바다건너섬이라는것을확실하고도분명하게,그것도몸으로알게되었다”라고말한다.스마트폰이없는대신여행자는자신의감각과직관에의존해낯선곳에서의삶을헤쳐나간다.책의갈피갈피마다작가가충만한감각으로만난시칠리아의맛,풍광,촉감,냄새로가득하다.

아침여덟시반이면동네의빵집으로빵을사러나간다.빵집은일분거리에있고빵집으로가는길에는한집안형제자매들이하는과일가게가있다.늘빵을사러떠나지만올때는과일까지사서돌아오게된다.아내와내가먹는빵은아무리비싸도1유로를넘지않는데유명한시칠리아의밀로만들어서인지대단히맛이있다.햇볕으로단련된과육들이농익은냄새를풍기는과일가게도그냥지나칠수없다.이곳의과일가게들은색의배열에상당히섬세하게신경을쓰는눈치다.붉고노란오렌지,연두색과자주색의포도,붉은딸기같은것들이길바닥에나와달콤한냄새를풍긴다.아침은빵몇개와커피,과일로끝내고다시일을하거나산책을나간다.
중요한모든것은비토리오에마누엘레거리에있다.주로이탈리아어로쓰인책을팔지만간혹영어판도서와외국신문도파는서점,작은슈퍼마켓,우체국과은행지점,과일과야채가게,카페와레스토랑,빵집과옷가게,안경점과교회가이거리에있다.이모든게걸어서오분밖에걸리지않는거리에모여있었다.
_본문75쪽

노토를떠난지한참이지난지금에서야나는묻는다.왜노토사람들은그토록먹는문제에진지해진것일까.혹시그것은그들이삼백년전의대지진에서살아남은이들의후손이기때문은아니었을까?사하라의열풍이불어오는뜨거운광장에서달콤한피스타치오아이스크림을먹는즐거움을왜훗날로미뤄야한단말인가?죽음이내일방문을노크할지도모르는일이아닌가.
_본문247쪽

장엄한유적을따라걷는인문학적사유의여정

책의서두는즉흥적인작가와걱정많은아내가낯선곳에서길을잃으며예기치않은방향을향해가는모험담으로시작하지만뒤로갈수록김영하특유의흡인력있는문체와활달한통찰이더해지면서인간의운명과문명에대한깊은사유로독자들을끌고들어간다.
아르키메데스와플라톤,메두사의땅시칠리아를주유하며작가는섬곳곳에깃든역사와신화,전설의세계로현대의독자들을안내한다.천공의성을닮은에리체에서는오디세우스와외눈박이괴물키클롭스의전설을들려주며,이들의이야기를현대에자행되는테러리즘에관한생각으로확장하는인문학적통찰을보여준다.타오르미나에서는영화<대부>를떠올리며촉발된‘복수의연쇄’라는주제를그리스비극<오레스테이아>부터이스마일카다레,살만루슈디로이어나간다.
10년만에재출간을준비하면서작가는“여행은세번에걸쳐이루어진다.여행을계획하고상상하면서한번,실제로여행을해나가면서또한번,그리고그여행을기억하고기록함으로써완성된다.나는10년전에이책을출간하면서그세번의여행이모두끝났다고생각했다.그러나다시교정쇄를받아원고를더하거나빼고,사진들을뒤적이면서그여행이아직끝나지않았으며,언제든지다시시작될수있다는것을알았다”고말했다.여행이끝나고10년이흐른뒤에야작가는모든여행은‘오래준비해온대답’처럼시작된다는것을알게되었다.여행후10년동안자신에게일어난변화를모두알고난후에다시읽게되는여행기는작가개인에게도물론각별하겠지만그의문체와통찰력을사랑하는많은독자들에게도좋은선물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