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카뮈와 함께 프란츠 파농 읽기

$18.00
Description
카뮈와 파농은 띠동갑이다. 카뮈는 1913년생이고, 파농은 1925년생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생전에 서로 만났다거나 영향을 주고받은 흔적은 없다. 그럼에도 둘은 동시대인으로서 각각 나름의 방식으로 생을 긍정했고, 글을 남겼으며, 부조리와 부당함에 맞섰다. 통념에 반항하고, 부조리를 고발했고, 불의에 저항했다. 무엇보다 알제리를 사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알제리 문제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했다. 물론 카뮈나 파농을 알제리의 독립 문제와만 연관 지어서 살펴볼 수는 없다. 두 사람의 삶과 사상에는 그 외에도 21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되짚어야 할 점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카뮈와 파농은 모든 지배와 권력을 거부하고 배제와 차별을 극복하자고 주장하면서 인류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사회와 인간상을 추구했다. 이 점이야말로 카뮈와 파농을 ‘알제리의 두 남자’로 묶어주는 최고의 지향점이 아닐까?
저자

박홍규

세계에대한폭넓은이해를바탕으로글을쓰는저술가이자노동법을전공한진보적인법학자이며인문·예술의부활을꿈꾸는르네상스맨이다.걷거나자전거를타고,아내와함께작은농사를지으며자유·자연·자치의삶을실천하고있다.영남대백승숙교수와2020년부터〈이단아의책읽기〉라는유튜브를통해'세상의거의모든책'에대한이야기를즐겁고자유롭게나누는중이다.1997년『법은무죄인가』로백상출판문화상을수상했고,2015년『독서독인』으로한국출판평론상을수상했다.『미국을까발린영화감독세르조레오네』『표트르크로포트킨평전』『비주류의이의신청』『저항하는지성,고야』『내친구톨스토이』『불편한인권』『인문학의거짓말』『놈촘스키』『오노레도미에』『내내읽다가늙었습니다』(공저)『수정의야인조지오웰』『카프카,권력과싸우다』『에드워드사이드』『메트로폴리탄게릴라루이스멈퍼드』외다수의책을집필했으며,『오리엔탈리즘』『간디자서전』『예술은무엇인가』『존스튜어트밀자서전』등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머리말
1장왜카뮈와파농인가_이책을쓰는이유
2021년말의알제리/코로나19와『페스트』/알제리의카뮈/〈무법자〉와『이방인』/알제리의두남자,카뮈와파농/카뮈의알제리인식/한나아렌트의파농비판/이책을쓰는이유
2장카뮈와파농의고향_알제리와마르티니크
프랑스제국vs.프랑스식민지
카뮈와파농의조상은어디서왔을까?/프랑스제국/프랑스공화주의-제국주의의기원
카뮈의고향알제리
알제리의프랑스/알제리의역사/알제리와조선
파농의고향마르티니크
마르티니크/마르티니크의역사/크레올
3장카뮈와파농의성장_노동자의아들들
카뮈의성장
카뮈의부모,카뮈의가난/초중등학교의모범학생/프랑스문화/문학,결핵,그르니에/대학시절과결혼/공산당연극활동/부조리
파농의성장
파농의성장/1935년,프랑스귀속3백주년/에메세제르와흑인성운동
4장1940년대의카뮈와파농_부조리와차별
카뮈의부조리
전쟁/권력비판/『이방인』/재판소설?/사이드가본『이방인』/『시지프신화』/〈콩바〉/『페스트』/『페스트』에드러난문제점과카뮈의자세
파농의차별
제2차세계대전과인종차별경험/드골과파농의참전/유학시절의인종차별경험/정신의학공부
5장카뮈와파농의1950년대_반항과반란
카뮈의반항
『반항인』/잘못된반항/정당한반항/『반항인』에대한비판
파농의반란
『검은피부,하얀가면』/차별의경험/흑인의자기이해는어떻게형성되나/흑인의자기긍정/식민지의언어와삶/식민지에서의사랑/파농의여성에대한편견/식민지민중의종속콤플렉스란무엇인가/흑인의정신병리/노예와주인/정신적소외를어떻게해결할것인가
6장알제리전쟁_절망하지않기위해
카뮈의알제리전쟁
알제리전쟁/카뮈가경험한알제리/『전락』/『알제리연대기』_카뮈의식민지해방부정의이론/『적지와왕국』_카뮈의식민지해방부정의문학/「말없는사람들」/『기요틴에관한명상』/노벨상을수상하다/『최초의인간』,최후의카뮈
파농의알제리전쟁
병원근무와사회요법/파농사상의변화/인간에게,즉나자신에게절망하지않기위해/파농의튀니스생활/사회치료를주장하다/『아프리카혁명을향하여』/아프리카통일의꿈/『알제리혁명5년』/FLN강령의작성과죽음/『대지의저주받은사람들』
7장카뮈와파농의비전_새로운인간
카뮈의비전
카뮈를추도하다/카뮈와아나키즘/지금우리에게카뮈는?
파농의비전
파농을추도하다/파농의아나키즘/지금우리에게파농은?
맺음말
알베르카뮈연보/프란츠파농연보/두사람에게영향을준사람들

출판사 서평

알베르카뮈에대한진실혹은오해,프란츠파농에대한낯섦혹은이해
실존주의문학의대표작가이자20세기지성으로사랑받는알베르카뮈
흑인성을연구한탈식민주의자이자철저한휴머니스트였던프란츠파농
알제리와함께기억되는이들의삶과사상엔어떤공통점이있을까,다른점이있다면무엇일까?
「이방인」「페스트」「시지프신화」등으로유명한알베르카뮈는44세의나이로노벨문학상을받았다.한국에도그의열렬한팬이많다.그의작품을제대로읽지않았어도연관검색어로돌아다니는‘이방인’‘부조리’‘알제리’‘페스트’같은단어를보면모두고개를끄덕인다.필독서목록에언제나이름이올라가있는탓에익숙하게느껴진다.프란츠파농은「검은피부,하얀가면」「대지의저주받은사람들」을쓴작가이자의사인데,카뮈와달리한국에서는널리알려지지않았다.대표작인「검은피부,하얀가면」에서그는식민지상황에놓인사람들이겪는정신장애의근본적인원인을제국주의적지배계급에의한자유와인권유린이라보았다.흑인성운동을극복하고휴머니즘으로영역을넓힌파농은평생노예상태가아닌독립적이고주체적인인간으로서의정체성을찾는데헌신했다.
카뮈와파농은띠동갑이다.카뮈는1913년생이고,파농은1925년생이다.하지만이두사람이생전에서로만났다거나영향을주고받은흔적은없다.그럼에도둘은동시대인으로서각각나름의방식으로생을긍정했고,글을남겼으며,부조리와부당함에맞섰다.통념에반항하고,부조리를고발했고,불의에저항했다.무엇보다알제리를사랑했다.그러나두사람은알제리문제에있어서의견을달리했다.물론카뮈나파농을알제리의독립문제와만연관지어서살펴볼수는없다.두사람의삶과사상에는그외에도21세를살아가는우리가되짚어야할점이많기때문이다.특히카뮈와파농은모든지배와권력을거부하고배제와차별을극복하자고주장하면서인류가함께만들어가야할새로운사회와인간상을추구했다.이점이야말로카뮈와파농을‘알제리의두남자’로묶어주는최고의지향점이아닐까?
이러한배경아래이책의저자는“카뮈와함께파농을읽자”고권한다.첫번째이유는카뮈를읽는사람은많지만,파농을읽는사람은적기때문이다.하지만단순히‘적고많음’의문제가아니라인식의지평을넓히고정보의편향성을극복하기위해서다.두번째이유는식민지해방문제를각각연대와독립이라는차원에서본두사람을함께읽고생각함으로써한반도는물론식민지를경험한많은나라(인민)의역사인식을톺아보는데있다.세번째이유는한국에소개된카뮈나파농에대한책가운데당대의알제리나마르티니크의역사를비롯하여두사람을이해하는데필요한최소한의배경지식을정리한자료가거의없기때문이다.이책에서카뮈와파농의성장기로부터죽음을맞이하기까지두사람의인생궤적에그들이경험한지역이야기가빠지지않는이유다.한편이책에는카뮈와파농의저작에대한해설은물론이둘에게영향을미친주변사람에대한이야기도여럿등장한다.이들에대해좀더알아보고읽기영역을확장하고싶은독자들을위해책뒤에간단하게나마인물소개를덧붙였다.

프리랜스지식인카뮈
알베르카뮈에대해서는긴말이필요없다.누구나‘잘안다’고생각한다.‘「이방인」「페스트」등의작품을쓴작가이자1957년에44세의나이로노벨문학상을받은사람’처럼말이다.그러나“그가죽을때까지알제리에살았어도노벨문학상을받았을까”혹은“그가알제리독립에찬성했어도노벨문학상을받았을까?”하고의문을던지는사람을별로없다.그외에도의문점은또있다.「페스트」는알제리에서두번째로큰도시인오랑에퍼진전염병페스트를극복하는사람들의이야기인데,코로나19가전세계를휩쓸면서다시유명해졌다.그런데소설에나오는등장인물들이프랑스인뿐이라는점에의문을제기하는사람도거의없다.식민지이주민인프랑스인들보다많았던선주민베르베르족은관심을끌지못한채그냥죽어간것일까?흔히부조리의작가이자철학자로상징되는카뮈는자신의작품「이방인」에서‘태양때문에살해당한이름없는아랍인’의경우가가장부조리한경우였음을알고있었을까?누구나긍정하는작가적명민함과한시대를통찰하며반항정신을키웠던카뮈.곧다가올68혁명으로전유럽이들썩이기전유명을달리한카뮈에게서통념처럼박힌‘작가적멋짐’과‘사상적반항아’라는이미지를벗겨내면어떤모습이나올까?모든정치세력과관료조직을경멸한사람,가난하고억압받는사람들의타고난정직에기대를걸었던사람,권력과명성에대한맹목적인탐욕을비판한사람,자유의본질을외면하는전체주의적인지식인들이너무많다고분노한사람,애국심과민족주의를구분하고마르크스도성경도신봉하지않았던,진정한자유인카뮈가온전히드러난다.

파농,인간으로서인간을노예화하는모든것과싸우다
파농은알제리와무관하게살다가36세에죽기전8년정도알제리에살았다.그러나‘위키백과’등의문헌은그를일컬어“알제리의의사이자작가”라고한다.아마도그가알제리에간이듬해1954년에알제리전쟁이터졌고,그가죽고1년뒤인1962년알제리전쟁이끝날때까지알제리의독립을위해싸운점,특히알제리독립의정당성을‘이론적으로주장’한것으로유명한탓일것이다.파농은“식민지는인간성을파괴하므로없어져야한다”고주장하면서알제리만이아니라모든식민지의독립,나아가식민지만이아니라배제나차별을당한모든사람이함께만들어가야할새로운사회와인간상을추구했다.프랑스유학시절파농은‘인종’이라는유일한표지로판단되는부조리에큰충격을받았다.그리고그때부터어떤인간도노예화하지않는세상을만들기위해싸웠다.파농은또한근대화과정에서간과되기쉬운‘심리적요인’을강조하면서정신질환을다루는의사로서프로이트의정신적외상론을반박했는가하면칼융이집단무의식의선천적인성격을강조한것과달리강제된문화산물로서의무의식으로보았다.그러면서문화의르네상스란곧의식의변혁이며,이로부터자아가해방되고,이어서사회해방의전환점으로기능한다고역설했다.그가모든피식민지사람들이식민주의와제국주의의과정이자결과로서영속적인저개발을조장하는사회·문화적,정치·경제적국제체제(유럽체제)로부터탈출해야한다고강력하게주장한배경이다.이러한주장은1970년대종속이론을비롯한제3세계사상에영향을미쳤지만,안타깝게도이후범람한신자유주의의물결속에서잊히고말았다.파농사후그에대한추모의열기는식어갔지만,그는1960년대이후미국의흑인들에게환영을받았고,그뒤포스트콜로니얼리즘연구의일부로여전히다뤄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