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의 정치와 사상 (문명교류와 국가혁신의 정치사상사)

세종대의 정치와 사상 (문명교류와 국가혁신의 정치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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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국 역사에서 세종대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한국다운 문명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종대의 정치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세종대의 경이적인 업적을 특히 문명교류와 국가혁신의 관점에서 검토했다. 그것은 13-14세기 팍스 몽골리카 하의 ‘제1차 세계화’(the first globalization)에 의존하고 있다.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결과 여러 문명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며 융합되었고, 수많은 고려인이 세계체험을 겪었다. 그 결과 국가혁신의 사상과 운동이 배태되어, 조선건국으로 귀결되었다. 세종은 그 자양분을 소화하여, 전면적인 국가혁신에 착수했다. 그 결과 국가의 표준이 완성되고, 조선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이 책은 세종대의 정치와 사상을 다루고 있다. 세종대의 경이적인 업적을 특히 문명교류와 국가혁신의 관점에서 검토했다. 세종대의 연구에는 세 가지 편향이 존재한다. 첫째는 일국적 관점이다. 한국의 시야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이다. 둘째, 민족적 관점이다. 과도하게 미화하려는 것이다. 셋째, 문화적 관점이다. 정치보다 문화적 이해에 치우친 것이다. 이에 반해 이 책은 세계사, 비교사, 정치사의 관점을 취했다. 세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세종대의 업적은 13-14세기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하의 ‘제1차 세계화’(the first globalization)에 의존하고 있다.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대륙을 통일한 결과 유럽과 아랍, 중앙아시아, 중국문명이 활발하게 교류하며 융합되었다. 13세기 중엽 몽골제국에 통합된 고려왕조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현, 이색 등 수많은 고려인이 세계체험을 겪었다. 그 결과 국가혁신의 사상과 운동이 배태되어, 조선건국으로 귀결되었다. 조선은 한국역사 최초로 건국이념과 설계도를 가지고 세워진 ‘작위적 국가’(artificial state)였다. 건국기의 정치적 혼란은 태종대에 마무리되었다. 그 바탕 위에서 세종은 고려에 유입된 정치적·문화적 자양분을 소화하여, 전면적이고 종합적인 국가혁신에 착수했다. 그 결과 국가의 표준이 완성되고, 조선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이것이 한국전통의 오리진이다.
저자

김영수

현영남대학교정치외교학과교수이다.1997년서울대학교에서「고려말과조선조건국기의정치적위기와극복과정에관한연구」로정치학박사학위를받았다.대통령실연설기록비서관,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회장을역임하고,현재영남대학교정치행정대학학장으로재직중이다.저서『건국의정치:여말선초,혁명과문명전환』(이학사,2006)은한국정치학회학술상(2006),제32회월봉저작상(2007)을수상했다.공저로는『정치학의대상과방법』(박영사,2005),『한국정치사상』(박영사,2010),『세종리더십이야기』(한국학중앙연구원,2010)가있고,논문은「조선공론정치의이상과현실:당쟁발생기율곡이이의공론정치론을중심으로」(2005,2019),「한일회담과독도영유권」(2008,2010),「일본주자학도입기유학자의문제의식:후지와라세이카(藤原惺窩)의사상을중심으로」(2014),「효행록에나타난효의윤리관과보응론」(2015),「세종대의문화정체성논쟁:훈민정음창제를둘러싼논쟁을중심으로」(2016),「조선조김시습론과절의론」(2020)등이있다.KBS드라마〈정도전〉(2014방영),〈태종이방원〉(2021-2022방영)의자문교수이다.

목차

서론
I.세계사속의세종시대
1.팍스몽골리카PaxMongolica하의제1차세계화와문명표준의확산
2.13-14세기한국인의세계체험
1)13세기이전한국인의세계체험
2)팍스몽골리카하한국인의세계체험
3.성리학의동전(東傳)과국가변혁
1)성리학의전달자들
2)성리학의개혁구상

II.세종시대의개막
1.조선건국기의정치와태종
1)고려말-태조대이방원의정치적활동
2)태종대의왕권강화(1):육조직계제의시행
3)태종대의왕권강화(2):사병의해체
4)태종대의왕권강화(3):종친,공신,외척의제거
5)태종대의정치에대한평가
2.세종시대의개막
1)태종의권력이양-승계정책
2)충녕대군의정치적부상과친세자파의견제
3)양녕대군의폐세자와충녕대군에의전위
4)폐세자과정에대한의문:태종과양녕대군의진정한의도

III.국제정치:사대와자주의사이ㆍ
1.세종대의대명관계와사대정치
1)한국사에서대중국사대정책의의미
2)세종시대사대정책개요
3)세종대의조선-명관계:지성사대와신뢰의구축
4)중국에대한분노:‘구민보국(救民保國)’을위한인내
5)조선의정치현실주의와기만:‘구민보국’을위한권도(權道)
6)지성사대의효과(1):조선에대한중국의신뢰와존경
7)지성사대의효과(2):영토분쟁의평화적조율
2.세종대의정복전쟁(1):대일관계와대마도정벌
1)1389년제1차대마도정벌
2)1396년제2차대마도정벌
3)1419년제3차대마도정벌
3.세종대의정복전쟁(2):북방영토의확장
1)세종대의국방정책과영토확장
2)세종의여진정벌과4군6진개척

IV.세종대의위민정치:정치적휴머니즘
1.세종대의법률과형사정책
1)동아시아전근대국가의법과정치:법치는존재했는가
2)세종대의법과정치:열악한사법현실
3)법에대한세종의태도:흠휼주의
4)세종대사법현실개선의한계:무주권과신분제의굴레
2.세종대의‘기민-구휼’정책과조세정책

V.세종대의말과정치
1.세종대의공론정치:말의‘개방’과‘장애’
2.의정부서사제논쟁:권력구조와정부형태논쟁
1)전통중국의정치체제논쟁:법가와유가의대립
2)「조선경국전」의정부형태구상
3)태조-태종대의정부형태논쟁:의정부서사제대육조직계제
4)세종대의정부형태논쟁:의정부서사제의부활
5)왕과신하의협치는어떻게가능한가
3.풍수지리논쟁:‘경학(經學)-잡술(雜術)’의통치학ㆍ


VI.문명교류와문화적정체성의정치…
1.언어와정치:훈민정음창제를둘러싼문화정체성논쟁
1)제자(製字)원리에관한논쟁:표음문자와표의문자의대립
2)훈민정음의실용성에관한논쟁:‘편민’(便民)과‘중화’(中華)의대립
3)훈민정음의문명적성격논쟁:‘이적화’(同於夷狄)와‘개물성무’(開物成務)의대립
2.음악과정치:중국음악(雅樂)과조선음악(鄕樂)의대립…
1)음악의표준논쟁
2)문화의보편성과특수성의조화
3.과학과정치:풍토,보편성,그리고민생…ㆍ
1)세종의학문관:국정운용을위한실용주의
2)집현전의설치:지식강국의산실
3)하늘의탐구:천문학과수학
4)땅의탐구:지리학
5)몸의탐구:의학과법의학
6)지식의종합과체계화:인쇄술

결론:사람사는즐거움(生生之樂)이있는나라
참고문헌
색인

출판사 서평

이책은세종대의정치와사상을다루고있다.세종대의경이적인업적을특히문명교류와국가혁신의관점에서검토했다.세종대의연구에는세가지편향이존재한다.첫째,일국적관점이다.한국의시야에서만이해하려는것이다.둘째,민족적관점이다.과도하게미화하려는것이다.셋째,문화적관점이다.정치보다문화적이해에치우친것이다.이에반해이책은세계사,비교사,정치사의관점을취했다.세계사의관점에서볼때,세종대의업적은13-14세기팍스몽골리카(PaxMongolica)하의‘제1차세계화’(thefirstglobalization)에의존하고있다.몽골제국이유라시아대륙을통일한결과유럽과아랍,중앙아시아,중국문명이활발하게교류하며융합되었다.13세기중엽수많은고려인이세계체험을겪었다.그결과국가혁신의사상과운동이배태되어,조선건국으로귀결되었다.세종은고려에유입된자양분을소화하여,전면적이고종합적인국가혁신에착수했다.
한국역사에서세종대가지닌가장큰특징은한국다운문명을창조했다는것이다.삼국시대이래한반도의국가는중국문명에압도당해문명적자신감을상실했다.세종대의최만리역시한글창제가중화를버리고이적으로들어가는것이라고비판했다.박연은조선의향악을중국의아악으로서교정하려고했다.그러나세종은향악을“반드시중국에부끄러워할것은없다.중국의음악인들어찌바르게되었다할수있겠는가.”라고말했다.중국음악이론을집성한「율려신서(律呂新書)」를깊이이해한뒤의결론이었다.
세종은음악뿐아니라모든분야를원리적으로이해했다.이때문에맹목적으로추수하거나배척하지않고,융합할수있었다.고유문명과세계문명을융합해새로운문명을창조하는데성공한것은한국역사상세종대가처음이었다.그결과국가의표준이완성되고,조선의전통이확립되었다.이것이한국전통의오리진이다.

세종시대의문명교류와국가혁신은한국역사에서가장경이적인것이었다.그런데그것은12-14세기송ㆍ원(宋元)에서꽃핀제1차세계화의아름다운열매였다.그리고그지적토대는송의성리학이었다.팍스몽골리카하에서고려인들은몽골제국이성취한유례없이풍부하고심오한문명적성취를흡수할수있었다.그를토대로14세기말유교국가를새롭게수립했다.또한세종대에는고유문명과세계문명을종합하는데성공했다.그것이오늘날한국의전통을창조했다.그시대에만들어진한글은500여년이지나서야가치가인식될정도로현대적이었다.
32년간이루어진세종의업적은상상을초월한것이지만,그의모든정치는사실애민의목적을달성하기위한것이었다.세종의초인적인업적은단하나,백성을하늘이낳은사람(天民)으로섬기고보살펴,그들이사람사는즐거움을갖도록하기위한것이었다.세종은“정치가얼마나인간의눈물을닦아주고위로할수있는가?”를생각한정치가였다.세종은조선다움을창조했을뿐만아니라한국다움을창조한인물이었다.이것이가능했던것은세종만의독특한특징이존재한다.
첫째,세종의학문이철저하게치용(致用)과세용(世用),즉실용주의의관점에서있다.성리학자들은이문제를심학적으로생각했다.예컨대조광조는“치란은나의도(道)와심(心)이진실한가,진실하지못한가에달려있다.”고말했다.세종의학문관은이런심학적(心學的)인유교와긴장이존재했다.
둘째,세종은듣기와포용에뛰어났다.국정운영에필요한것이라면기존의틀을벗어나과감히수용했다.세종은천민이라도정치에도움이되면썼고,낮은견해라도쓸모가있으면들었다.세종의정치적창조성은개인의천재성에도기인하지만무엇보다도모든사람의재능을잘활용하는데있었다.세종은“임금으로서는포용하는것으로아량을삼는것이어서,비록꼴베는사람의말이라도또한반드시들어보아서말한바가옳으면채택하여받아들이고,비록맞지아니하더라도또한죄주지않는것이아래의사정을얻어알고자신의총명을넓히게되는것”이라고말했다.
셋째,세종은특정한문화에우열을나누지않았고,단지조선에실정에맞는문화를창조하고자했다.한글창제는대표적인사례이다.삼국시대이래중국문명의영향력은너무압도적이어서한국인들은자기풍토에맞는문명의가능성을생각하지못했다.한국문명의최고목적은중국문명을가능한한똑같이모방하는것이었다.그러나「농사직설」을편찬하며세종이말한바처럼,중국과한국은‘풍토’가달랐다.(風土不同)이런‘풍토’의문제는단지농법에그친것이아니다.첫째말이다르고,둘째,소리가다르고,셋째,산천이다르고,넷째,하늘이다르고,다섯째,수목이다르고,다섯째,관습이다르고수많은것이달랐다.이때문에새로운문자,음악,회화,천문학,의학,법률등이필요했다.
세종대의정치에서우리는정치의세계에서거의발견할수없는‘행복’을목격할수있다.물론세종시대의사람이모두행복했던것은아니었다.굶어죽는사람도많았고,옥에갇혀원통하게죽는사람도있었다.그러나세종은정치가모든인간을행복하게해줄수는없지만,인간을위해최선을다할수는있다고생각했다.세종은“나의생각으로는무슨일이든지전력을다해다스린다면이루어지지않는것이없을것으로안다.”고말했다.또한“천재지변은인력으로할수없는것이지만,배포와조치를잘하고못하는것은사람의힘으로다할수있는것”이라고말했다.
세종의정치는단순한정치적의무를넘어인간의고통에대한깊은연민에서비롯된것이었다.이것이베버가말한“하늘의부름에답하는정치”(politicsasvocation)라고생각한다.

이책은세종대의정치와사상을다루고있다.세종대의경이적인업적을특히문명교류와국가혁신의관점에서검토했다.세종대의연구에는세가지편향이존재한다.첫째,일국적관점이다.한국의시야에서만이해하려는것이다.둘째,민족적관점이다.과도하게미화하려는것이다.셋째,문화적관점이다.정치보다문화적이해에치우친것이다.이에반해이책은세계사,비교사,정치사의관점을취했다.세계사의관점에서볼때,세종대의업적은13-14세기팍스몽골리카(PaxMongolica)하의‘제1차세계화’(thefirstglobalization)에의존하고있다.몽골제국이유라시아대륙을통일한결과유럽과아랍,중앙아시아,중국문명이활발하게교류하며융합되었다.13세기중엽수많은고려인이세계체험을겪었다.그결과국가혁신의사상과운동이배태되어,조선건국으로귀결되었다.세종은고려에유입된자양분을소화하여,전면적이고종합적인국가혁신에착수했다.
한국역사에서세종대가지닌가장큰특징은한국다운문명을창조했다는것이다.삼국시대이래한반도의국가는중국문명에압도당해문명적자신감을상실했다.세종대의최만리역시한글창제가중화를버리고이적으로들어가는것이라고비판했다.박연은조선의향악을중국의아악으로서교정하려고했다.그러나세종은향악을“반드시중국에부끄러워할것은없다.중국의음악인들어찌바르게되었다할수있겠는가.”라고말했다.중국음악이론을집성한「율려신서(律呂新書)」를깊이이해한뒤의결론이었다.
세종은음악뿐아니라모든분야를원리적으로이해했다.이때문에맹목적으로추수하거나배척하지않고,융합할수있었다.고유문명과세계문명을융합해새로운문명을창조하는데성공한것은한국역사상세종대가처음이었다.그결과국가의표준이완성되고,조선의전통이확립되었다.이것이한국전통의오리진이다.
32년간에걸친세종의정치는하나의목적,즉백성을하늘이낳은사람(天民)으로섬기고보살는것이었다.세종은정치의도리(王道)를이렇게말했다:“백성은나라의근본이니,근본이튼튼해야만나라가평안하게된다.내가박덕(薄德)한사람으로서외람되이백성의임금이되었으니,오직이백성을기르고어루만질방법만이마음속에간절하였다.”(「세종실록」세종5년7월3일)
세종만의정치적특징이존재한다.첫째,철저하게실용주의의관점에서있다는것이다.그의학문관과심학적(心學的)인유교사이에는긴장이존재했다.조광조는“도야말로정치의출발점”(道乃出治之由)이라고말했다.세종이집현전학자들에게「사기」를읽히고자하자윤회는“경학(經學)이우선이고,사학(史學)은그다음이되는것”이라고반대했다.그러자세종은학자들이“말로는경학을한다고하나,이치를궁극히밝히고마음을바르게(窮理正心)한인사가있다는것을아직듣지못하였다.”고비판하였다.(「세종실록」세종7년11월29일)세종은산학(算學,수학)에도조예가깊었다.토지측량처럼수학이국가의긴요한사무라고보았기때문이다.
둘째,세종은듣기와포용에뛰어났다.국정운영에필요한것이라면기존의틀을벗어나과감히수용했다.천민이라도정치에도움이되면썼고,낮은견해라도쓸모가있으면들었다.세종12년과15년,헌릉(獻陵,태종의능)의이장문제로세종은지관(地官)최양선의견해를듣고자하였다.그러자예조좌참판권도는국가의안정은이런잡술이아니라,“육경을높이시고백가를물리쳐서,마음과학술을바르게하고간사함과정대함을분변”해야한다고주장했다.(「세종실록」세종15년7월15일)이에세종은“임금으로서는포용하는것으로아량을삼는것이어서,비록꼴베는사람의말이라도또한반드시들어보아서말한바가옳으면채택하여받아들이고,비록맞지아니하더라도또한죄주지않는것이아래의사정을얻어알고자신의총명을넓히게되는것이다.”(「세종실록」세종15년7월27일)라고말했다.
셋째,세종은특정한문화에우열을나누지않았고,단지조선에실정에맞는문화를창조하고자했다.한글창제는대표적사례이다.「농사직설」을편찬하며세종이말한바처럼,중국과한국은‘풍토’가달랐다.(風土不同)조선식농법이필요했던이유는농법의기본텍스트였던원대의「농상집요(農桑輯要)」가중국황하이북의풍토에적합한농법이었기때문이다.중국농법의원리는채용할수있으나,그실제를그대로적용할수는없었다.이런‘풍토’의문제는단지농법에그친것이아니다.첫째말이다르고,둘째,소리가다르고,셋째,산천이다르고,넷째,하늘이다르고,다섯째,수목이다르고,다섯째,관습이다르고수많은것이달랐다.이때문에새로운문자,음악,회화,천문학,의학,법률등이필요했다.
물론세종시대에도굶어죽고,옥에갇혀원통하게죽는백성이있었다.그러나세종은“천재지변은인력으로할수없는것이지만,배포와조치를잘하고못하는것은사람의힘으로다할수있는것”(「세종실록」세종12년9월11일)이라고말했다.인간의고통에완전히대처할수없지만,덜고통스럽고위로할수있다는것이다.
이것이'힘의정치'(powerpolitics)에대비되는‘정치의힘’(powerofpolitics)이다.세종의정치는베버가말한“하늘의부름에답하는정치”(politicsasvocation)였다.“자신이제공하려는것에비해세상이너무나어리석고비열하게보일지라도이에좌절하지않을자신이있는사람,그리고그어떤상황에대해서도‘그럼에도불구하고!’라고말할능력이있는사람,이런사람만이정치에대한〈소명〉을가지고있다.”(「직업으로서의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