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유학자, 조식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문)

조선의 유학자, 조식 (남명 조식의 생애와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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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 유학자 조식의 기개와 절조(節操)를 읽는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조식(曺植 ; 1501-1572)의 생애와 학문을 조명한다. 조식은 1500년대 경상도 일대의 산림에 머물며 학문에 몰두했던 은자이자 학자이다. 성리학 이론보다는 실천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황(李滉 ; 1501-1570)과 같은 시대를 살았는데, 당대의 학문적 위상이나 이후의 역사에 미친 영향은 이황 이상이었다.

조식은 여남은 번 이상 벼슬을 제수 받았지만 단 한번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얼토당토않은 정치를 펼치는 때에 벼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의 고통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에 상소를 올려 조정의 정치를 정면으로 추궁했다. 1555년 을묘년에 명종에게 올린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에서는 “전하의 나랏일은 이미 잘못되었다”고 썼고 수렴청정을 펼치는 문정왕후는 “깊은 궁중에서 살아온 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가을 서릿발이 칼날처럼 쏟아졌다. 이로써 유학자의 마땅함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올바른 유학자의 전형을 세웠다. 조선 대장부의 기개와 절조를 보여주었다.

흔히 조식의 학문을 ‘경의지학(敬義之學)’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경(敬)은 유학자가 자신을 수양하는 방법론이고 의(義)는 사회적 실천의 기준을 말한다. 과연 조식은 스스로를 수양할 때는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듯 삼갔고, 불의와 맞설 때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았다.

이 책 〈조선의 유학자, 조식〉은 조식의 생애와 학문을 ‘찬찬히’ 따라간다. 저자인 한문학자 허권수는 조식에 대한 전기 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방대한 분량의 원전 자료를 섭렵했다. 조식이 살았던 경상도 삼가현(현재의 합천군 삼가면 일대), 김해부, 진주목 등지의 지리적 공간도 빠짐없이 살폈다.

이 책은 또한 조식이 직접 쓴 필적을 비롯해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다채로운 도해(圖解)를 소개한다. 조식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서 촬영한, 실감나는 사진도 함께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조선 유학자 조식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저자

허권수

남명학연구의1인자

허권수는우리나라최고의한문학자이다.“지금대한민국에살아있는사람가운데한문을가장잘하는사람”이라는말을듣는다.또한우리나라남명학(南冥學)연구의1인자로손꼽힌다.30여년동안경상대학교교수로서제자들을가르쳤고2017년정년퇴임했다.남명학연구소소장을지내면서남명학연구공간인‘남명학관’건립을주도하기도했다.저서와번역서100여권이있다.현재는동방한학연구소를열어후학을기르고있다.

목차

서문 우리시대의남명조식읽기

1장 1501년,삼가현토동에서태어나다
01 산처럼큰인물의출현
02 성리대전(性理大全)을읽다가문득
03 아버지조언형의억울한죽음

2장 1530년,김해부탄동에산해정을짓다
04 산악처럼우뚝하고연못처럼깊게
05 과거의길,효도의길,그리고학문의길
06 주변사람들을놀라게한학문의경지
07 까마귀의검은색은빗물로씻어낼수없고
08 암울한죽음의시대,때를만나지못한현사(賢士)들

3장 1548년,계부당과뇌룡사를짓다
09 닭이고니의큰알을품듯
10 가혹할만큼엄격한출사(出仕)의기준
11 후학을가르치는기쁨,현사(賢士)와사귀는즐거움

4장 1555년,명종임금에게을묘사직소를올리다
12 벼슬길로나오라는이황의권유
13 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죽음을결심한상소
14 온나라를흔들어놓은을묘사직소의파장
15 해인사에서만나자는약속
16 지금은벼슬할만한때가아니니

5장 1558년,벗들과함께지리산을유람하다
17 어진사람은산을사랑하고
18 지리산유람에서만난,세군자의숨결

6장 1561년,지리산덕산동에산천재를짓다
19 벽에‘경(敬)’자와‘의(義)’자를붙인까닭
20 부지런한농부들이연둣빛들로나올때
21 이기론보다쇄소응대(灑掃應對)를강조하는학문
22 얼토당토않았던권간(權奸)의시대가저물어가고

7장 1568년,선조임금에게무진봉사를올리다
23 대장부의출처(出處)는태산처럼묵직해야
24 서울로올라가명종임금을만나다
25 선조임금에게‘구급(救急)’두글자를올리다
26 백성은귀중하고임금은가벼우니
27 아전의폐해를지적한상소,무진봉사(戊辰封事)

8장 1572년,처사로서의삶을마치다
28 왜적을막아낼방책이없겠는가?
29 김굉필의그림병풍이전해진내력
30 죽고사는일은평범한이치이니
31 부침을겪은후인들의추존활동

붙임 성운(成運)이쓴남명선생묘갈

출판사 서평

아무것도두려워하지않는기개와절조(節操)로
조선역사의물줄기를바꾼사람,조식!

조식(曺植)은유학의나라조선을대표하는유학자였다.1500년대경상도일대의산림에은거해학문에몰두했으며수많은제자를길러냈다.경상도출신인이황(李滉)과같은시대를살았는데,그명성은조금도뒤처지지않았다.조선의유학자라고하면지금은대개이황을먼저말하지만당대의학문적위상은조식이이황보다못하다고할부분이조금도없다.이후의역사에미친영향을말한다면조식을이황의앞자리에놓아도무방하다.

유학은조선의정치적,사회적,철학적이념이었다.조선의유학자들은성리학의세계관을바탕으로사물의이치와사람의도리를탐구했다.그리고이같은이론적탐구의결과물을현실세계에서실천하고자했다.조식의위대함은바로유학이실천학문이라는점에서드러난다.이황이성리학이론에서누구보다도뛰어난업적을남겼다면,조식은실천유학자로서조선역사의물줄기를바꾸었다.

조식의학문은흔히‘경의지학(敬義之學)’으로일컬어진다.여기서경(敬)은유학자들이학문의핵심으로여기는수기(修己)의방법론이다.공손하면서도진지한태도로사물을접하며,무엇인가를두려워하는듯한자세로말과행동을조심하고삼가는것이다.의(義)는해도좋은일과해서는안될일을분별하는사회적실천의기준이다.사적이익보다는공적이익을앞세우는올바름이고마땅함이다.대장부라면어떤두려움도없이지켜야할것이다.그런데경은조식학문의특징이라기보다는당시의유학자들대부분이강조한것이다.이황과같은경우학문과인생에서경을바탕으로실천궁행한것으로잘알려져있다.조식학문의남다른부분은조식이의를누구보다도강조했다는점이다.

경의(敬義)의학문을바탕으로조식은자신을수양하고제자들을가르쳤으며나아가무도한세상을구하고자했다.조식은경과의에대해제자들에게이렇게말했다.“우리집에이경(敬)과의(義)라는두글자가있는것은마치하늘에해와달이있는것과도같다.이두글자의의미는만고의오랜세월이지나도변치않는것이다.성현들이남긴많은말씀의마지막귀결처를생각해보면모두이두글자에서벗어나지않는다.학문을한다면서경을위주로하지않는다면거짓된것이다.맹자는,학문의방법은다른데있는것이아니니그흩어진마음을수습하는것일뿐이라고말했다.이것이경을위주로하는공부이다.”

당시의조정은조식에게여남은번이상벼슬을제수했다.전례가없던,파격적인품계였다.조식을인정하고존경하던이황이벼슬에나오기를권유하는편지를보내오기까지했다.그러나조식은평생동안단한번도벼슬에나아가지않았다.이런까닭에조식의학문을현실과관계없는것으로잘못생각하는경우도없지않다.그러나조식이벼슬에나아가지않은것은마땅한때가아니라고생각했기때문일뿐이다.조식은벼슬에나아가고물러나는출처(出處)와관련하여“나는공자처럼학문을통해서세상을구제하기를원하는사람”이라고말했다.하지만벼슬에나아가지않은유학자라하여백성의고통에대해아무책임이없는것은아니라는것이조식의생각이었다.

조식이살았던1500년대는피비린내나는사화의시대였다.간신들이권력을장악하고뜻있는현사(賢士)들을죽이고백성들을괴롭혔다.조식은이처럼얼토당토않은정치에분노했다.스스로벼슬에나아갈수는없는때라고판단했지만이를내버려둘수도없다고생각했다.공자는“이익을보면의를생각하고위태로움을보면목숨을내던진다(見利思義見危授命)”고했다.불의에맞서는일은의로운유학자의의무였다.조식은간신들의정치를정면으로비판하는상소를올렸다.

1555년을묘년에명종에게올린〈을묘사직소(乙卯辭職疏)〉에서는“전하의나랏일은이미잘못되었다”고썼고수렴청정을펼치는문정왕후는“깊은궁중에서살아온과부에지나지않는다”고썼다.가을서릿발이칼날처럼쏟아지는듯했다.왕과대비에게이러한상소를올리는일은목숨을내놓기로결심하지않고서는할수없는일이었다.이로써조식은조선대장부의기개와절조를보여주었다.이로써유학자의마땅함이무엇인지를밝히고올바른유학자의전형을세웠다.

조식의절친한벗성운(成運)은‘조식의묘갈명’에서이렇게썼다.“풍채와용모는느긋하면서도고상하여절로법도가있었고,비록다급하고시끄러울때일지라도늘지켜온자세를잃지않았습니다.사람들은,얼굴빛이엄격하고핵심적인사항만을간략하게말하며,조심스럽게무릎을굽히고앉아무엇인가를두려워하는것처럼삼가는공의모습을볼수있었습니다.”또〈선조실록〉의조식졸기에서는이렇게기록하고있다.“조식은도량이푸르고높았으며두눈에서는빛이났다.그를바라보면세속사람이아님을알수있었다.언론(言論)은재기(才氣)가번뜩여천둥이치고바람이일어나듯하여다른사람으로하여금자기도모르게이기적인욕심이사라지도록했다.”

그명성이나영향력에도불구하고조식의생애에대한기록은그리많이남아있지않다.실천을중시한학문적태도로,조식스스로자신에대한기록을많이남기지않았던탓도있다.광해군시기북인정권을이끌었던조식의제자들이역적으로몰리면서학맥이끊어진탓도있다.

이책〈조선의유학자,조식〉은조식의생애와학문을‘찬찬히’따라간다.저자인한문학자허권수는조식이직접남긴기록은물론같은시대를살았던동료유학자와제자들이남긴기록까지,방대한분량의원전자료를섭렵했다.조식이살았던경상도삼가현,김해부,진주목일대의지리적공간도빠짐없이추적했다.이를통해독자들은조식이무슨책을읽고어떤생각을했는지,무엇을배웠고누구를가르쳤는지,어디에서태어나어떻게살았는지등을실감나게알수있다.조선유학자조식의진면목을느낄수있다.

이책의저자인허권수는조식에대해이렇게말한다.“선생의학문은철저하게현실을바탕으로하였다.보통선비라고하면단지말만앞세울뿐현실적인일은아무것도하지못하는존재로잘못인식하고있는데선생은진정한선비란무엇인가를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