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의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

조식의 지리산 유람기, 유두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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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의 지식인들은 왜 지리산에 갔는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했는가?

조선시대 산수 유람기의 전범(典範)!
조선의 지식인들은 지리산을 방장산(方丈山)으로도 불렀다. 지리산을 신선이 살고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유학자들에게 지리산은 온갖 꽃이 피고 청학이 날아오르는, 답답한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어떤 이상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조식에게 지리산은 현실 밖의 신선이 사는 곳만은 아니었다. 기이한 경치를 감상하는 곳만은 아니었다. 조식은 현실적인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공허하다고 생각하는 유학자였다. 조식은 지리산을 유람하면서도 거경(居敬)과 행의(行義)를 강조한 유학자로서의 이념을 잃지 않는다. 조식에게 지리산은 자신의 심신을 닦아서 덕을 쌓는 계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일에 대응하고 사물에 접하는 응사접물(應事接物)’의 공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리산은 옛사람의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무도한 세상에서 당당한 삶을 살았던 현자들의 역사가 남아 있는 곳이었다.

조식은 지리산을 유람하며 자신이 책에서 보았던 것을 마음으로 직접 느끼고, 몸으로 직접 실천해 보고자 했다. 그리고 〈유두류록〉을 통해 자신이 체득한 지리산을 이야기한다. 조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유학자 이황(李滉)은, 조식의 〈유두류록〉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명승을 두루 찾아다니며 구경한 것 외에도 일에 따라 뜻을 붙여 놓았습니다. 분개하고 격앙하는 말이 많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도록 합니다. 뿐만 아니라 조식의 그 사람됨을 상상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특히 하루 동안 햇빛을 쪼여주는 것만으로는 유익할 것이 없다거나, 위로 올라가는 일이나 아래로 종종걸음치는 일은 한번 발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 달려 있다는 말은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또 명철(明哲)한 현자들의 다행과 불행에 대한 이야기는 진실로 일천 년 영웅들에 대한 탄식을 자아낼 만합니다.”

이후 조식의 지리산 유람과 〈유두류록〉은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진다. 많은 이들이 지리산을 찾아 조식이 보았던 것을 보고 조식이 느꼈던 것을 느끼고자 한다. 조식과 같은 생각을 담은 유람기를 쓰고자 한다. 평생 이를 소원한다. 조식의 〈유두류록〉이 조선시대 산수 유람기의 흰눈썹(白眉)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래서이다.
저자

조식

조선의유학자,조식

1500년대경상도일대의산림에머물며학문에몰두했던유학자이다.성리학이론보다는실천을무엇보다도중요하게생각했다.이황과같은시대를살았는데,당대의학문적위상이나이후의역사에미친영향은이황이상이었다.

여남은번이상벼슬을제수받았지만단한번도벼슬에나아가지않았다.간신들이권력을잡고얼토당토않은정치를펼치는때에벼슬할수는없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1555년명종에게〈을묘사직소〉로일컬어지는상소를올렸다.이상소에서“전하의나랏일은이미잘못되었다”고말하며당대조정의정치를정면으로비판했다.1558년네명의벗들과함께지리산을유람하고〈유두류록〉을썼다.이유람기에서“우리는모두길잃은사람들”이라고썼다.경(敬)과의(義),쇄소응대(灑掃應對)를강조한것으로유명하다.

1501년경상도삼가현(현재의합천군삼가면)의외가에서태어났고,1572년지리산덕산동(현재의산청군시천면)의산천재(山天齋)에서일생을마쳤다.자는건중(楗仲),호는남명(南冥)이다.제자들이그의글을모아묶은《남명집》을통해그의삶과학문을접할수있다.

목차

◎조식의<유두류록>에대하여

주해(注解)번역유두류록

一벗들과함께지리산으로
十一日유람길에나서다
十二日진주목가방의이공량집에머무르다
十三日이공량의집으로김홍이오다
十四日이정의집에서갖가지음식을먹다
二현자들의다행과불행
十五日배를타고섬진강을거슬러오르다
十六日한유한의삽암,정여창의악양정을지나다
三겹겹의비와구름속
十七日쌍계사에서,김홍이급히떠나다
四콸콸살아있는청학동
十八日비가내려쌍계사에머무르다
十九日청학동에올라불일폭포를보다
五격렬하게,가장아름답게
二十日신응동으로들어가마음을씻다
二十一日신응사에서냇물을구경하다
二十二日부역을줄여달라는편지를쓰다
六신묘한힘을응집시키는곳
二十三日지리산에서나가악양현현창으로가다
七세군자,하나의덕
二十四日삼가식현을넘어조지서의옛마을에이르다
八박덩굴같은신세로
二十五日벗들과이별하다

축어(逐語)번역유두류록

출판사 서평

어렵기로유명한조식의<유두류록>을,
실감나는‘주해번역’으로읽는다!

조식의<유두류록>을읽는일은쉽지않습니다.몇편의한글번역문이나와있지만,이번역문조차읽기어렵습니다.기본적으로한문으로쓰인글은많은전고(典故)를포함합니다.전고란경전이나역사책에나오는사건과인물,과거의제도나관습등을말합니다.전해오는성현의말씀이나옛날의사실이야기를근거로삼아현재의일을말하고자신의뜻을펼치고자한것입니다.<유두류록>도다르지않습니다.이런까닭에전고의의미를알지못하면<유두류록>의기본적인문맥조차파악하기힘듭니다.

게다가글쓰기에대한조식의태도가우리의어려움을가중시킵니다.조식은표현하고자하는일이있으면“바람처럼달리고우레처럼빨리써서더손대지않았습니다.”수많은전고를끌어오면서또이전고를변형시키기까지합니다.조선시대의유학자들조차‘기이한표현과깊은함축(奇辭奧義)’를제대로읽어내기힘들다고하소연할정도였습니다.조식은글과말로표현하는일을좋아하지않았습니다.조식은“말은간략한것을귀하게여긴다(言以簡爲貴)”고생각했습니다.학자에게무엇보다도중요한것은스스로이치를터득하여몸으로실천하는일입니다.일상적인현실의일을버리고높은이론을입으로만말하는구상지리(口上之理)의학문은껍데기일뿐입니다.

이에이번번역서에서는현재의독자가<유두류록>을이해할수있도록,한글자한글자가능한한자세하게풀이하고자합니다.전고의경우,어떤상황에서이전고가만들어졌는지전고의출전과유래에대해구체적으로설명합니다.해당전고의출전은물론,때에따라서는원문의일부까지인용하여소개합니다.당대사람들의법과제도,지방행정,의식주,생활환경등에대해서도부연합니다.500년전의유학자들이라면대부분이미알고있어굳이길게말할필요가없는내용입니다.그러나현재의우리에게는별다른사전지식이없다면도저히알수없는,생소하기만한것입니다.이책의의도는이러한생소함을가능한한줄이는것입니다.

‘포계(匏繫)’라는말을예로들면다음과같습니다.기존의번역은이말을보통‘매달린박’이라고만풀이하고맙니다.그런데원문은물론번역문을보아도,현재의우리는이것이무슨말인지갈피를잡기힘듭니다.이표현이포함된문장전체를읽어보면더욱난감합니다.“시골집에매달려있는박처럼걸어다니는시체가되어버렸다.”무슨난해한현대시의한구절인가싶습니다.사실‘포계(匏繫)’는《논어》에나오는다음과같은공자의말을줄인것입니다.“내가어찌박덩굴이겠는가?내가어찌한곳에만매달려서아무것도먹지않을수있겠는가?ㅡ(吾豈匏瓜也哉焉能繫而不食)”이로써이‘포계’라는표현은흔히‘뜻을펼치지못하는자신의처지’를한탄하는말로쓰입니다.조식또한이런뜻으로썼습니다.

그런데기존의번역은‘매달린박’이라고만풀이할뿐더이상의정보는제공해주지않습니다.각주조차달아주지않습니다.그렇지만현재의우리는한문학자가아닌이상이말의출전이《논어》라는사실조차알기힘듭니다.이번번역서에서이전고의출전,이전고의원문과기본적인의미등에대해서까지세세하게풀어준다는것은이런이유에서입니다.

이책은조식의<유두류록>을번역한것입니다.그러나일반적인번역서라하기에는지나친점이있습니다.번역서가아니라고해도무방할정도입니다.이책은구구절절소상하게풀이합니다.풀이하고또풀이합니다.때로는원문과는무관한것처럼보이는내용까지말합니다.당연히이와같은번역은위험합니다.조식이<유두류록>을통해말하고자했던바를왜곡할수도있고터무니없는오류를낳을수도있습니다.의도와는다르게지루하고장황해질수도있습니다.그러나현재의독자를위해이런위험은감수할만하다고생각했습니다.

조식에게지리산은콸콸살아있는생명의공간이었습니다.생기발랄한삶의현장이었습니다.그리고<유두류록>은이러한지리산을이야기한것입니다.이번역서는다만ㅡ,이와같은이야기를현재의독자들에게도실감나게전달하고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