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이기전에현상이었고예술이기전에상품이며이야기이전에세상을담았던영화의‘첫번째발자국’19C~1927
19세기말,영화가나타나는시기부터유성영화가등장하던1927년까지의영화의역사를다룬다.세계가급격한변화를맞이하던때,영화가태어날수있던조건들을역사적배경과지적,예술적흐름,과학문명의발달을통해살펴보고유성영화가등장하기전까지의질풍노도의시기를다룬다.그렇다고오랜과거,무성영화시대에대한역사적조망은결코아니다.당시인류에게영화는무성이었다.오히려소리가덧붙여진영화를유성영화로따로구분했다.그러니까이책에서다루는것은무성영화의역사가아니라,인류에게나타난‘영화’라는도구의정체이다.1920년대첫번째전성기를맞이한‘영화’의삶을추적하며인류에게개념으로확립된‘영화’,오늘날영화의개념과다르지않은‘영화’를캐는작업이다.이는현재우리가보고즐기는‘영화’의의미를진지하게찾아보는탐색일것이다.
운동과시간을눈앞으로당겨온역사
영화는에디슨과뤼미에르형제의발명품이었고,대중에게는호기심이자신종사업아이템이었다.또한1차세계대전전후의새로운시장과산업이었고할리우드라는신대륙을탄생시켰으며,단순한출연자를연기자나스타로만드는가하면,제작노동자이던감독을예술가와창작자로변모시키거나,독립제작사들의경쟁을촉발하고,다양한일자리와체제를창출하며세계굴지의거대한기업들을일으켰다.베르그송과들뢰즈등의철학자들에게는철학적사유의대상이었으며,그자체가자본이자,종교였으며,여러갈래의사조가되어오늘에이르러서는산업과예술의영역안에서학문이되었다.이처럼영화는모든시대의다채로운의미였다.이복잡다단한과정안에대체얼마나놀라운뒷이야기가숨어있을까!
‘영화의역사’라고하면,영화가처음발명되던1895년에서시작하는것이당연하지만,그보다선행해야할것은‘영화’가무엇인지에대한정확한개념을인지하는것이다.우리는영화가무엇이냐는물음에제일먼저영화로만든서사,‘이야기’를먼저꺼내들기일쑤다.하지만1895년뤼미에르형제가발명하여선보인것이과연‘이야기’일까?
실오라기하나걸치지않고태어나는인간처럼,영화도탄생할때‘이야기’를입고태어나지않았다.당시뤼미에르가준비한상영회는마치우리가실수로휴대전화카메라의녹화버튼을눌러기록된아무의미없는10초짜리영상따위였다.자,그때의영화가지니는의미는무엇일까?그것에서어떻게오늘날우리가떠올리는영화가나타나게되었을까?
그날,뤼미에르의상영회에참석한사람들은‘이야기’를감상한것이아니다.당시사람들은스크린에비친무의미한움직임을보았다.시간과운동이기계로인해되돌려지고눈앞에서재구현되는기상천외한광경을목격한것이다.여기에서사는없었다.이것이바로초기의영화다.이날은운동과시간을다룬최초의사건이자,인체의시지각작용을구현한과학기술로서의영화가발명된날로인류사에기록된다.그뒤로오랫동안,사람들은그저이의미없는움직임을보기위해기꺼이돈을지불했다.
‘움직임’을재현함으로써,영화는아무도눈여겨보지않던눈앞의‘현상’을인류에들이민다.‘현상’을들여다보는것은영화를즐기는오늘날의우리에게도여전히중요한개념이다.저자는서사를걷어낸자리에바로‘현상’이있음을똑똑히보여주고자한다.저자는철학자베르그송과들뢰즈의사유를관통하는물질과시간,움직임의의미들을영화를통해설명하고,기술의혜택에익숙해져놓치고있던21세기의우리에게‘현상’의낯섦을일깨워영화의실체를드러낸다.
한편,오락물이자상품이라는태생적한계때문에대중의관심과돈의흐름에크게좌우되어,문화나예술로인정받지못한채줄곧서커스의묘기처럼소비되었던것역시영화였다.그러나영화는,그끈질긴생명력과변화에대한갈망으로점차대중의관심을사로잡기시작한다.유럽과신대륙을넘나들며편집과미장센,‘이야기’를시도하고,배우와감독,장르와스타일,사조를탄생시키는것은물론,‘할리우드‘라는제국과굴지의기업들을일으키며거대한산업으로성장한다.
영화의정의,그리고움직임과현상
Movie,Cinema,Film.우리가누구나‘영화’라고해석하는단어다.하지만한단어로설명하기에영화는제법많은정의를가졌다.1894년,뤼미에르형제가처음구현해낸짧은‘움직임’도영화고,제작자들이다루던필름도영화며,서사를가진하나하나의작품들도다영화다.이제껏이의미들을‘영화’라는한단어에뭉뚱그려사용해온것이다.영화의개념을환기할필요가있다.우리말에영화가가진이두가지개념을구분할단어가없다는것은안타까운일이다.우리는영화라는한단어로두개념을통칭하면서모든관심을영화속‘이야기’에만쏟는다.서점의영화코너는‘이야기’를다루는영화책들로가득하고,심지어영화서적과영화들을예술로분류한다.‘영화속이야기’라는문장을뒤집으면‘이야기바깥에영화’가있는셈이다.그렇다면그‘영화’를우리는얼마나알고있을까?
우리는에디슨과뤼미에르영화의차이점도,둘중뤼미에르만영화의발명가로인정받는것도,에디슨이어떤인물이며어떻게몰락했는지도모른다.극장이어떻게탄생하고발전하여지금에이르렀는지도모르고,영화의중심지가프랑스가아닌미국인까닭도,영화가개척기신대륙의땅을밟고동부에서서부로간이유도모른다.도대체‘할리우드’는어떻게탄생했을까?당시의제작,배급은어떤구조였을까?감독과배우라는직업은또어떻게생겨났을까?영화가천덕꾸러기한량의문화였다고?유럽의영화는모르지만,할리우드영화의팬이라고?어원으로보면‘움직임’자체이자매체의일종이지만,이시대의우리는무엇보다도이매체로만든‘이야기’를영화로정의하는경향이크다.그런데영화의의미가다르다면,당연히영화의역사도의미에따라다르게기록되어야하는게아닐까?
우리가쉽게찾아볼수있는영화사나영화서적들은미학과연출을중심으로작품의서사를해석하고연대별로분류하는것에치우쳐있다.이책은‘움직임’에서역사를다시시작한다.영화의역사란곧영화의특수성의역사다.최초의‘영화’는분명히기계나,상품이나,‘이야기’가아니라,'움직이는이미지’였다는것.영화들은모두‘움직이는이미지’를만드는‘영화(시네마)’라는형식에의해만들어진생산품아니던가?기계가재현한움직임이자현상이었고,현상에덧대어진서사였으며,언제나생존을걱정했던하나의기술이자상품으로서의영화.역사란바로그‘시네마’의역사,인간과함께호흡하며살아온‘영화’의삶을다루어야한다.영화들을생산하는양식,19세기이후에인간에게나타난표현양식으로써의'시네마(영화)'의역사를다룬다는것은어떤역사적배경에서어떤영화들이나왔으며또한그것들을뒷받침하는이론적사고가왜출현했는지를추적하는것이다.그리고한편의영화가그시대에지니는의미,단지영화적의미만이아니라일반역사적관점에서의사회적의미를다루면서‘어떤영화들’을보게하는게아니라‘영화’라는표현양식의의미를이해하는것이다.그리하여영화사에서언제나미학뒤에감춰져있던과학과철학,돈과산업,시장과노동자를영화의역사에당당히불러낸다.
발명되어예술을쟁취한기술,영화
영화의역사는실제로도미학을앞세울만큼고상하지않다.초기의영화란한낱단순한기계생산물로서예술과는전혀거리가멀었고,굳이용도를찾는다면한량과지친서민들을위로하는심심풀이오락물에가까웠으며,현재에이르기까지철저하게돈을따라움직여온‘상품’이었다.영화에게있어예술은,산업화시기유럽과개척기의신대륙,세계대전의포화속에서필사의노력으로세상을장악하며쟁취한하나의결과물이었지근원이나본질이될순없다.저자는이러한사실을주지하고,기존의영화사와는다른방식으로영화의역사를서술한다.
예술이었다면소멸이나도태를걱정할필요도없겠지만,영화는기술이었기에자본시장에서생존을위한경쟁을피할수없었다.돈은신대륙개척과1차세계대전을따라흘렀고,영화의운명에많은것을결정했다.영화산업의시스템,영화지형과제작환경을바꿨고,상영과관람의방식을바꿨으며,수많은제작자와제작사를배출해냈다.영화가상품이었듯이,오늘날우리가일종의예술인으로여기는감독과배우도당시에는단순한노동자였다.이들은전쟁과자본이만든생태계속에서그들이할수있는연출과편집,스타일과장르를시도했다.이로써대륙간영화의성질이구분되었고,같은대륙내에서도곳곳에서저마다다른시기,다양한영화들이탄생해사조를이뤘다.이렇듯영화가각각의고유성을지니고창작물로변모해가는동안,영화산업의노동자들도자연스레오늘날우러러보는창작가와연기자로자리잡는다.
기술과철학,자본과미학의관점에서다시쓴세계영화사
영화사가다시쓰여야하는이유가바로여기있다.우리가흔히일컫는미학,작품으로서의영화는,적어도이영화사에서는첫페이지가될수없다.이제영화의역사를바라보는관점이달라져야한다.왜‘영화’를언제나필름들로이해해야만하나?그것은오히려‘영화’를편협하게이해하는것아닐까?저자는또,‘예술그림’,‘예술글’,‘예술음악’이라는우스꽝스러운호칭이영화에서는유독‘예술영화’라는자연스러운합성어로대중에받아들여지고있다는사실을지적하며,영화와예술을동일선상에놓는데강한의문을제기한다.그림이나글,음악이기계로구현될지언정기계였던적은없는데반해,영화는탄생의순간부터이순간까지기술이었고,앞으로도영원히기술일것이다.기계가역사의맨앞자리를차지하는것이자연스러운이유다.에디슨과뤼미에르의기계가달랐고,유성영화가역사에한획을그었으며,흑백영화가색을입었다.그래픽이영화를만드는오늘처럼,기술을빼놓고영화를말할수는없다.엄밀한시각에서1897년발명된기계로부터1927년첫유성영화의탄생까지,영화사의초기를세계사의흐름에맞춰기술과철학,자본과미학의관점에서다시써냈다.
역사는결과를알고보는이야기라고들한다.이러한초기영화의역사를돌아볼때,오늘날영화와영화산업,영화인들이예술의범주에서분류되고현대인의교양으로공고히자리잡아문화를이끌고있다는점은어떻든상당히고무적인일이다.영화는지금도예술과비예술의모호한경계를넘나들고있지만,어떤형태로든일종의새로운예술이되었다는사실만큼은부인할수없다.이책을읽은후‘영화’를향한왠지모를인간적인감정이일어난다면,그건아마도지금껏영화가살아낸불굴의세월때문일것이다.
영화의삶에귀를기울이다
영화를안다고자부하면서도영화에대해제대로논할수없다는것은우리가영화의개념을정리한적도없으며,영화가무엇인지잘모른다는것과다를게없다.지금까지영화의제목만연대별로나열한책만읽어왔다면이제‘영화로만든이야기’가아닌,‘영화의이야기’에귀기울일때다.
십여년이상프랑스에서영화를공부하고연구한김성태박사가여기이『영화의역사『에그동안연구하며수집했던자신의방대한자료와지식을풀어놓는다.이책을통해영화를사랑하는사람들에게,‘영화’를더사랑할수있도록끊임없이,친근한어투로조곤조곤부추긴다.덕분에이책의문장은저자의육성을그대로품게되었다.글에녹아있는특유의화법과목소리는그의제자였다면단박에알아챌수있을만큼생생하다.평생을배우고가르쳐온긴긴시간만큼이나영화를대하는저자고유의감성과남다른애정을책곳곳에서만나볼수있다.영화의역사는아직끝나지않았다.저자는또다른시대의,또다른영화의생,영화의역사두번째발자국을준비중이다.
저자의말
결국,프랑스에서영화를공부하며깨달은것은서구가사고하는방식,행동하는방식이었다.그렇게12년을살다가한국으로돌아왔고20여년을강단에서고말을했고글을썼다.그러다깨달았다.잘못하면우리는서구의지식을해석하고그에대해말하는꾀꼬리에지나지않을지도모른다.나는그러고싶지않았다.그들의지식을습득하고‘내’가세상을바라보는방식,세상에관한생각을지니려고시작한것이지그들의지식을해석하는데급급해하려고시작한게아니었다.지식을습득하는이유는지혜롭게살려는목적외에이렇다할목적이없다.이제우리가세상을어떻게본다고이야기할때가되었다.영화사를그저읽고메모하고외우는게아니라생각하고판단하고새로인식하는것.남들의학문이아니라지금여기서우리가얻은것들로우리의말을하는것.푸코전문가가되기위해공부하는게아니라내가세상을사유하기위해공부하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