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조 (명암으로 직조한 사진, 사진으로 직조한 일상)

직조 (명암으로 직조한 사진, 사진으로 직조한 일상)

$35.00
Description
빛과 그림자라는 씨줄과 날줄로 직조織造한 사진,
그러한 흑백 사진으로 곧게 직조直照한 일상.

번진 듯 흐릿했던 잿빛 장면들이 채도 없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비로소 어제와 다른 오늘.
작은 것들이 밀도를 높인다. 삶의 밀도는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 높이고, 나날의 밀도는 여느 때와 같은 순간들이 높인다.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의 여행이나 일생에 다시 없을 근사한 순간이 아니라. 그럼에도 익숙한 하루하루는 그저 분주하고 권태로울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보통날은 채도를 잃어 간다. 한데 잿빛의 장면들이 여태 불씨를 머금고 있었나. 이호준 작가의 흑백 프레임 속에서 채도 없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운동하러 집을 나설 때도 차를 모는 시대에, 이호준 작가는 뚜벅이를 자처한다. 우리 동네와 남의 동네 골목길, 가장 일상적인 공간을 걸으며 가쁘고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스쳐 보내는 찰나를 그만의 속도로 포착한다. 지면을 채운 말갛고도 아득한 삶의 일면들이 눈물겨운 이유는 결국 그 작은 조각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을 독자의 두 손에서 열리는 상설 전시라 여기며, 흰 지면을 전시실 벽면 삼아 사진 한 장 한 장 조심히 걸 듯 편집한 이유이다.

제한된 관람 시간도, 정해진 동선도 없는 이 전시 공간을 자유로이 거니는 동안 으레 보이던 것을 보던 대로 보아 온 시선에 작은 균열이 생긴다. 그 틈새로 다시 들여다본 하루하루가 이제 와 낯설지는 않다. 그러나 새삼스럽다. 마땅한 것이 새삼스러워지고, 예사로운 것이 대수로워지고, 당연시되던 것이 귀하게 느껴진다. 이호준 작가가 명암으로 직조한 사진과 사진으로 직조한 일상을 담은 이 책은 그가 우체국장으로서 전하는 마지막 우편물, 비로소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저자

이호준

저자:이호준
문득눈에익은풍경이너무아름다워보였다.그렇게DSLR을구입해사진을찍게되었다.40대중반을넘어서던때였는데,어느덧서대문우체국장을마지막으로30여년의공직생활을마무리하고있다.시간이흘렀어도여전히카메라를처음장만하던순간의마음으로휴일새벽카메라를메고걷는다.
국내유수의공모전에서여러차례수상하면서본격적인사진활동을시작했다.여섯번의개인전과일곱번의단체전을열었다.『SW중심사회』,『트래비』등월간지에사진과글을연재했으며다수의방송매체를통해사진에관한이야기를나누었다.대학과지자체,공공기관에서사진특강을하고있다.

목차

추천의말
저자의말

1전시실:점선
2전시실:평행선
3전시실:겹선
4전시실:직각선
5전시실:동선
6전시실:포물선

편집장의말

출판사 서평

이호준작가의우체통사진을보았다.제각각의우체통을반복적으로찍은그에게서기시감을느꼈다.어느지역을가든습관적으로도서관에들르는편집장인지라우체국장인그도그런마음일까싶었다.그때부터그의사진을종종들여다보게되었다.그의피사체들은참,스치기쉬운것들이었다.문득내가손전화에달린카메라를들고서제법심각한모습을할때마다지나가는이들이“아무것도없는데뭘그렇게찍냐.”고물어오던게떠올랐다.

교차되는기억사이로어느새그의사진들이내안에켜켜이쌓였다.그만큼촘촘해진채도의높낮이속에서일정한무채색의결을발견했다.여기까지가흑백사진으로만이루어진이호준작가의글집을기획한편집장의이야기다.그리고여기서부터는편집부의이야기다.이글집을지은책임편집자는검은색과흰색,그사이잔재하는무수한회색의경계와단계를프레임안팎에서다각도로감상할수있도록‘직조’라는동음이의어織造와直照를조합하여그중의성을도면으로삼았다.그렇게‘직조’는『직조』가되었다.
‘편집장의말’중에서

책속에서

흑백사진,이무채색의이미지는언뜻무미건조해보이지만컬러사진과는다른이끌림이있다.색의부재는피사체의부족한틈을메우고은근하게가림으로써핵심에바로다가갈수있게한다.
39쪽

아날로그는시간과함께변해가는모습을제몸에기록한다.돌이나금속같은것들이햇빛,바람,비,눈에의해서서히부서지고부식되듯말이다.풍화는소멸로향하는물리적현상이지만,그과정은아름답다.그리스로마시대건축물이대단해보이는것은처음모습을간직할뿐아니라장구한세월의모습을켜켜이담고있어서다.꼭건축물에도생로병사의과정이있는것처럼.
55쪽

집을나설때는몰랐는데,사무실에서뒤늦게양말에난구멍을발견했다.(…)모든사물은그렇게서서히낡다가수명을다한다.(…)사물은교체라도되는데사람의몸은좀어렵겠지.시간속에서스러지는몸을어찌하지못한다.할수있는거라곤순응하며약간의지혜를갖추는것뿐이다.
91쪽

“우리는죽도록소통한다.”어느철학자의말이다.사람뿐만아니라사물끼리도연결되는소통전성시대에,우리는서로잘통하고있을까?(…)아,여기저기서시도때도없이소통,소통을외치는이유가있었다.소통이잘되지않기때문이다.
120쪽

디지털카메라는무수한컷을남기고,빛이들지않는외장하드구석엔그만큼의B컷이아무렇게나박힌다.B컷,그들에게생명이있다면슬픈일이다.때로정리하기힘들만큼쌓이는사진들은어찌보면과잉소비요,뒷감당안되는감정놀음이다.
186쪽

기다림과는거리가먼우편물이모이는상자가되었지만,그럼에도우편함의낭만은여전히골목골목묻어있다.직접손으로만든듯한멋들어진우편함도심심찮게보인다.아직사람들의마음속엔손편지에대한추억이남아있나보다.장식품으로전락했지만언젠가정겨운소식이날아들거라는애틋한기대를하나보다.오늘도우편배달부가반가운이야기를가지고나타날것만같다.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