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란 (류서재 장편소설 | 개정판)

석파란 (류서재 장편소설 | 개정판)

$20.38
Description
조선 역사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파락호로 지내다가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든 흥선대원군 이하응. 왕 위에 서서 왕보다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인물.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치고 올라간 파란만장한 삶을 문인화의 관점으로 색다르게 조명한 작품.
흥선대원군의 호는 석파, 흥선대원군은 힘없는 왕족으로 숨죽여 살아야 했던 비통의 세월을 석파란으로 표현했다. 석파란은 최고의 경지에 오른 묵란으로 평가되며, 석파란의 심미적 완성 과정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선정 및 수상내역
황금펜 영상문학상 수상작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작
고대문학신예작가상 수상작.
저자

류서재

-고려대학교문학박사
-2010년여성동아장편소설상,고대문학신예작가상
-장편소설〈초희〉,〈석파란〉등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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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추천사]
난세에난초를그리다
정은경(문학평론가,중앙대교수)

『석파란』은흥선대원군이하응의이야기이다.고종의아버지로서최고의권력을누리고19세기말어지러운조선과국제정세속에서민비와정치적대결을하다가결국물러나고난,이풍운아의이야기는다양한방식으로스토리텔링되어왔다고할수있다.김동인의『운현궁의봄』을비롯하여‘명성왕후’를다룬드라마,연극등에서‘흥선대원군’은주연으로,조연으로많은역할을맡아왔던것이다.그것은그가왕손으로태어났으나젊은시절파락호로시정잡배들과어울려다니며불우한생활을했다는것,어린아들이왕위에오르자19세기말부패한조선사회를개혁하는한편외세와맞서고,며느리민비와정치적대결에서패배,결국조선의쇠락한운명과함께사라졌다는드라마틱한삶에서비롯된것이다.개인의삶뿐아니라조선이라는국가의운명이요동치고있는이문제적인물의이야기는장르를불문하고많은작가들에게모티브를제공해왔는데,그러나그것은주로‘정치적’측면에서였다.이하응은왕의살아있는아버지‘흥선대원군’이고이전의세도가인안동김씨를몰아내고각종개혁을단행했으며,외세와대결하여쇄국정책을폈던,‘난세의영웅’혹은조선의몰락을앞당겼던‘국수주의’자로서만주로이야기되어왔다는것이다.
『석파란』의작가는여기에서지워진‘예술가’로서이하응을섬세한솜씨로되살려놓는다.이하응은정치가였을뿐아니라,조선말기의대표적서화가요,가야금에도능했던예술가였다.추사로부터서화를배운이하응은조선의대표적문인화가로꼽힐만큼서화의대가였으며,특히그의호를따서‘석파란’이라고불리는난그림은중국사람들이탐을냈을정도로유명하다.누구보다문인화에능했고,또그림에스스로미쳐있었던화가이하응.작가류서재는이‘석파란’의화가이하응에주목하여그의서화에대한열정과탐미를새로운각도에서펼쳐보인다.그렇다고이작품이단지이하응의‘탐미’만을맹목적으로좇고있는것은아니다.작가는‘석파란’이라는작은화폭안에풍운아이하응의파란만장한정치적삶과고뇌를난을치듯절묘한솜씨로그려넣는다.『석파란』은석파이하응의붓끝을좇아그려나간한장의문인화이자그필치를통해생의파란과고뇌를읽어내고있는한편의서사시이다.
우선,추사가“압록강동쪽에는이만한대가가없다”라고극찬했다는흥선대원군의묵란을들여다보자.이하응의묵란의독보성은그와쌍벽을이룬운미민영익의비교적담백함이나추사의고고함에비해‘거친풍파와고고함’을동시에담고있는것으로얘기된다.투박하고굵게표현된거친바위위에여러갈래로뻗은난초는허공에끝나는그지점까지역동적인긴장감을놓치지않고있다.직선으로뻗은것이아니라춤을추듯율동감있게가느다랗게뻗은여러갈래의난잎.이난초의기기묘묘한선은거친바람과거기에노출된선비의힘겨운투쟁과강직함을동시에보여주고있다.바위를뚫고피어나는생의의지,그리고그척박함에도불구하고비할데없이고결한생동감을지니고있는난초,이것이바로이하응의‘석파란’의본질이고,또작가류서재가포착하려는흥선대원군이야기의심층이다.
『석파란』에그려진‘바위’,즉역경의시공간은1862년~1863년즈음으로한정된다.즉이작품은흥선대원군의섭정정치와그이후의외세와민비와의정치사적대결을보여주는것이아니라고종이조선26대왕으로즉위(1863)직전상황에초점을맞추고있으며고종이즉위하고흥선대원군이섭정정치를시작하는시점에서끝이난다.『석파란』은흥선대원군이섭정을통해세도정치를분쇄해왕권을다시공고히하고,당쟁의온상인서원을철폐하고,『양전편고』등법전을편찬해법질서를확립하고,침략적외세에맞서는등일대혁신정책을강력히추진할수있었던그의신념과이상이어떠한과정을통해서형성되었는지를추적하고있는것이다.무엇보다『석파란』이강조하고있는것은이하응의운명과예술혼과의관계인데,이는작가가이하응의‘석파란’이그의둘째아들이고종이되는데에결정적인역할을하는것으로설정하고있다는점에서더욱근본적이다.이작품의도입부에등장하는조대비(효종세자익종비),실제로철종사후이하응의둘째아들을왕으로추대하는데결정적인역할을한궁중최고어른조대비가이하응과연결되는계기는‘묵란화’이다.헌종의어머니조대비는시어머니인순원왕후의그늘에가려철종대까지권력의외곽에있었던여인이다.남달리예술에조예가깊어높은안목을가지고있는그녀는조카조성하의집을방문했다가한폭의묵란화를보게된다.그그림에서범접할수없는아름다움과유아독존의기품을발견한조대비는조성하에게“이묵란의주인이누구냐”라고묻고,기녀의그림으로만알고있던그그림의진짜주인이이하응을만남으로써‘왕위계승’을성사시키게만든다.이러한설정은사실여부와무관하게,『석파란』의작가가이하응의예술을핵심적인위치에놓고있음을짐작할수있게한다.
소설의내용을좀더잘이해하기위해당대사회와흥선대원군의상황에대해짚고넘어가자.주지하다시피헌종이후사없이죽자헌종비인대왕대비는강화도령철종에게왕위를잇게하고근친인김문근의딸을철종비로맞게함으로써안동김씨가세도를잡도록하였다.안동김씨의세도아래삼정은더욱문란해지고탐관오리가횡행했으며,당쟁과파벌의온상인서원의횡포는더욱심했다.백성들의생활이도탄에빠지게되자,마침내농민들은1862년봄진주민란을일으키고지배층의착취에맞서1860년최제우는동학을창시한다.어렸을때부모를여읜뒤사고무친으로불우한청년기를보낸낙박왕손이하응은시정잡배와어울리며파락호로전락하고안동김씨가문을찾아다니며‘궁도령,상갓집개’라불리며구걸도서슴지않는다.양반을상대로그림을팔아가며근근이살던이하응은조대비와의만남을통해둘째아들이왕위에오르자무소불위의섭정정치를편다.권력을쥐자흥선대원군은안동김씨의세도정치를타파하고경복궁을중건한등쇠락한왕실의힘을되찾았으며,서원철폐,법전정비,쇄국정치등과감한개혁정치를시행한다.
『석파란』의시대적배경인1863년의상황에서흥선대원군은안동김씨의세도에눌려여전히저잣거리를누비면서도오랜친구인김병학과교류를하고있었으며,한편묵란에열중하고있었던것으로그려진다.『석파란』은1863년고종즉위이후흥선대원군의개혁과쇄국정책의사상적기원을보여주고있는데,작가가주목하고있는지점은다음과같다.첫째흥선대원군의강력한정치적드라이브는‘석파란’에나타난그의높은예술적,사회적이상에서비롯된것이다.

이하응은붓을잡았다.공자가살아있다면공자에게길을묻고싶었다.먹물과치욕이차갑게뒤섞이고있었다.날숨이뿌연안개로,뿌연안개가종이의여백으로바뀌는순간은알수없는시간속이었다.높은산깊은계곡처럼꿈이높은사람은현실에깊이절망하는법이었다.꿈은아름다운허상이며바위처럼각박한현실에서피어나는것.흙한줌없는척박한바위.그곳에서의완벽한개화.진흙에물들지않는연꽃처럼그래야했다.바위위에서뼈와같은뿌리들을뻗는난초처럼.거침없는허공에서난초는피어나고난초의뿌리가바위를감싸면서결국에는바위를깨리라.그것이나이하응의석파란이다.이하응은먹물이지나는길을노려보았다.허공과난엽과바위가어우러진절묘한각도였다.이하응은달빛이들어올때까지석파란을들여다보며내내앉아있었다.

윗글은석파란을그리는이하응의심경을통해곧자신의불운한운명과조선의혼란을뚫고자신의이상을세우고자하는영웅적개인과위정자의의지를보여준다.석파란에미쳤다는것은곧,그의이상을끊임없이되새기는것이다.따라서묵란이란이하응에게도피가아니라실천으로통하는고된연마를의미한다.그는김병학과서원문제를놓고논하는자리에서공자의‘완전한도덕정치’를언급하는데,김병학이“어디가불안하고어디가불완전하다는말인가.멋대로말하지말게.정치가묵란인줄아는가”라고반박하자다음과같이대답한다.“정치도묵란이네.헛된줄을알면서도절대로놓을수없는그이상이란놈을말일세.”이하응에게묵란,특히석파란이란곧이상이자정치,더나아가공자의완전한도덕정치이고그것이이하응이꿈꾸는조선의모습이라는것이다.이작품의마지막부분에서서원철폐에대해유생들과대신들이항의하자흥선대원군은“내가조선의법이다”라고외친다.이장면은“조선이라는꽃.그꽃은옹기속에서간신히숨을쉬며어디로팔려갈지도모르는운명속에서살았다.나는햇빛속으로나온꽃을보호하기위해들판을지킬것이다.이제부터쇄국이다.”라는다짐과겹치면서흥선대원군의개혁정책추진에대한강력한의지를상징적으로보여주는것이다.그것은꿈에서흥선대원군이도원을묻는안평대군에게가장완벽하나스러질뿐인아름다움인‘꽃’으로화답했듯,조선의미래에대한이하응의이상의실현을뜻하는것이다.
‘석파란’이곧흥선대원군의조선을통해피우고자하는국가의이상이자도원이고,그실현의지에대한선언이라면그내용은무엇인가.『석파란』은흥선대원군의‘석파란’에어떤빛깔이담겨있는지를역사이면의허구를통해포착해나가고있다.『석파란』에서주목하고있는것은흥선대원군의비전이종교가아니라국가를향해있다는것,또한그국가를바로세우기위해서는조선의근간인성리학을바로세워야하고이를바탕으로한법치주의를실현해야한다는것이다.또한당대사회혼란속에서새롭게대두하고있는서학(천주교)나동학에대해흥선대원군은명확한반대입장을갖게되는데,이러한사상형성은다음과같은작가의시선을통해지지를얻는다.
주지하다시피,흥선대원군의실제적인개혁사상은지배층이아니라민중의삶을체험함으로써형성된것이다.흥선대원군은안동김씨의세도가자신의권력을유지하기위해무분별하게서원을확장하는것을일상속에서체험하고이를비판한다.작가는이를‘불만서원’의이야기를통해묘사하고있다.경주에서들린‘불만서원’이라는곳은지방양반가를확장한것으로진정한서원에값하지못할뿐아니라‘남녀노소모집’이라는간판을내걸어놓고처녀를모집해서부역을시키고또‘원칙’이아닌‘타협’을가르치는곳이다.흥선대원군의서원철폐정책은바로이러한현실체험에서비롯된것이고,때문에그것은병든조선사회에대한올바른처방일수있었다는것을작가는묘파하고있는것이다.
한편흥선대원군이조선왕실을중건하고쇄국정책으로나아가게된배경에는동학과서학에대한깊은사유와체험이놓여있다는것을작가는강조하고있다.작가는이하응이천주학이라는서양근대보다는‘동학’에기울어져있음을암시하는데,이는이하응과최제우의만남을통해제시된다.이하응은우연히자신의집에뛰어들어죽은동학접주‘최갑수’에게서‘후천개벽’이라는말을듣고경주의구미산으로내려간다.구미산의산자락에서맥문동을본이하응은진정한의미의‘꽃’인동학교주최제우를만나독대하게된다.바둑을두면서자살수를두어전체를살리는최제우의바둑에놀라고,또한편‘오심즉여심’이라는평등과상생의동학사상을듣게된이하응은동학이단순히사교가아니라고통받는민중의마음에서비롯된것임을알게된다.
최제우에게서“정치의본질은백성에게다만정성을다하는겁니다.사람이사람을다스린다는것은옳지않을뿐더러또한사람에게정직하지않고서는어찌정치를하겠습니까.”라는간곡한조언을들은이하응은최제우를난세의꽃으로여기며그의뜻을받아들이게된다.역사적사실과무관한가상의만남을통해작가는동학사상과교감하는흥선대원군을보여주는데,그러나실제역사에서그러했듯흥선대원군이동학을수용하는것은아니다.다만작가는흥선대원군이당대조선사회에들이닥친동학과서학에서무엇을읽고또이를통해자신의이데올로기를어떻게강고히하고있는지를보여주는것이다.한편,흥선대원군은아내민씨부인과유모(박마르타)를통해천주학(서학)의사상을접하게되는데,서학의인간평등과인간존엄사상에대해어느정도공감하지만그것은반상의법도에어긋날뿐아니라여전히이분법적논리라고생각한다.즉,“서학이만민평등을주장하나그속에는하느님이라는절대관념아래사람이순명하라는율법이있으니그것도지배와피지배의이분법적논리다.서학의율법이지키기에더까다로운데백성들이그걸모르는구나.백성이성리학을양반처럼적으로만바라보아서그렇다.”라고논평하고동학이나서학이라는“종교는변혁을이루는징검다리일뿐그것자체가신흥국가가될수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