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기계 (이준하 장편소설)

호랑이 기계 (이준하 장편소설)

$16.10
Description
“치유되지 않는 치명적인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여행-
기억을 둘러싼 모험이 시작되고, 서로 다른 시공간이 마법처럼 이어진다"


쉽게 사라지고 무너지고 변해가던 2010년대 초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난하지만 행복했고 어설펐지만 즐거웠던 그때 우리들의 통쾌한 판타지 복수 활극!
영상 제작업체에서 일하는 하나에게 한 의뢰인이 찾아와 비디오테이프의 복원을 의뢰한다. VHS 영상을 확인하던 하나는 잊고 싶은 기억들이 떠오르고, 작업을 포기할지 고민한다. 그러던 중 늦은 밤, 의뢰인 여성이 맡긴 비디오를 넘기라는 의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하나는 그 제안을 거절하지만 며칠 뒤 사무실을 비운 틈에 누군가가 비디오와 하드디스크를 훔치고 불을 지르는 일이 발생한다. 원본을 소실하고 의뢰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하나. 그런데 그녀는 최근 3년간의 기억이 없고 남은 것이라곤 비디오가 전부라며 하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비디오를 복원할수록 외면해왔던 과거를 마주해야 하는 하나는 주저하지만 변화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으리란 생각에 기억을 둘러싼 모험에 나서게 된다.

금빛으로 물든 여름 저녁 날의 해변에서 잠든 것처럼 쓰러져 있는 시신이 발견된다. 〈해변의 여행객 사건〉이라 이름 붙은 사건의 용의자로 거리의 청소년들을 이끄는 리더가 체포된다. 사건을 슬럼가에 방치된 불량소년의 범죄로 서둘러 종결시키려는 경찰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상을 밝히고자 한다. 리더의 동료이자 거리의 아이들이 모이는 〈재즈 피넛〉에서 활동하는 펑크 그룹, 그리고 동태평양 비밀 수사국 소속의 요원들은 해변의 여행객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발생한 의문사 사건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꿰맞추며 추적하는데, 그 중심에는 호랑이 기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저자

이준하

작가이준하는1988년남양주에서태어났다.고등학교때부터대학교까지영상을매개로이야기를전달하는방식에대해오랫동안공부했다.20대시절대부분밴드생활과젊은창작자들과교류하며시간을보냈다.현재서울에서거주중이다.

목차

하나는그녀의나이를짐작할수없었다.창백한피부와반항적으로짧게자른머리칼,렌즈건너편이비치질않는검은선글라스와검은정장,단추들을따라간소한장식이달린하얀블라우스차림의여자를하나는잠시얼어붙은채,영화에서그대로걸어나온배우와마주한듯이바라보았다.여자의오른손엔커다란여행용캐리어가손에쥐어져있었고,보험회사직원이라면결단코신지않을색상의스타킹에는커다랗게올이풀린자국이훤했다.하나는가까스로정신을차려자리를안내했다.여자는그의말따윈들리지않는다는얼굴로잠시서있다가겨우안쪽으로걸어왔다.하나앞을지나는그녀에게서세탁하지않은교복을입고온여학생처럼쾨쾨한냄새가일순스쳐지나갔다.그것만이묘하게도현실적으로느껴졌다.「혼자일하나요?」그녀가말했다.실로오랜만에사무실을찾은손님의물음이었다.하나는그녀에게상진이란창업자이자동업자를,사무실에박혀컴퓨터만지길혐오하고최신형삼소나이트가방을옆구리에낀채시내를활보하는청년을어떻게설명해야할지잠시고민했다.「다른직원은잠시자리를비웠습니다」「그렇군요」그녀는벌써질문의요지를잊은얼굴로다른곳을보고있었다.시선을따라가자하나는맞은편서재중간에커피드리퍼와서버가그대로놓여있음을발견했다.하나는그것이그녀에게자연스러운정물처럼보이길기대하며,얼른말을돌렸다.「어떻게오셨나요?」여자는대답없이자리에서일어나캐리어를테이블로들어올렸다.꽤나무거웠기때문에하나가도와야했다.한파가누그러졌대도저것을끌고서울을헤매는건어지간한고생이리라…지퍼를열어캐리어를개봉하자그안엔별도의케이스없는브이에이치에스테이프들이뒤죽박죽뒤섞여있었다.족히오십개는넘는것같았다.하나는테이프들을조심스럽게살펴보았다.아주오래된것은아니었지만개중엔곰팡이가하얗게핀것도있었다.「큰것은육십이개,작은것은십오개에요」큰것,작은것.그녀는브이에이치에스테이프와디비육미리테이프를간단히구분하고있었다.「테이프를보고싶은데볼수가없어서요.인터넷에검색을해보니이곳에서볼수있게해준다고하던데요」하나는고개를끄덕였다.불과몇분전까지결혼사진의색보정에매진하고있던그는그때서야비로소사무실이미디어복원작업을겸하고있단사실을깨달았다.그러한인터넷광고를올린건한참전의일이었다.장롱속이나수납장깊숙이잠들어있던비디오와사진의상태를개량하고,디지털파일로변환시켜주는작업은개업초기쏠쏠한수요가있었다.둘이공공기관의용역계약에매진한이후로복원작업은확연히줄어들었다.「이걸다복원하실건가요?」하고하나가말했다.「네」하고여자가말했다.하나는잠시계산을해보았다.지금부터복원에만매달린다하더라도족히한달은걸릴분량이었다.「가능할까요?」여자의물음에하나는장난스럽게,난처하단듯이한숨을쉬며대답했다.「시간이아주많이필요할것같은데요」「얼마나요?」「아마한달…빨라야삼주후입니다」「더빨리는안될까요?」여자는다급해보였다.하나는테이블을손가락끝으로톡톡두들기며눈을감고생각을정리했다.한달안에앨범편집과복원작업을동시에끝낸다고가정해보자.현재사무실에브이에이치에스와디비테이프를재생할수있는데크가몇개더라?한개는고장났으니카메라를직접컴퓨터에연결하고캡쳐를받는다고하면동시에테이프두개를돌릴수있다.다른업체에서데크를빌려온다손치더라도제어할수있는인력이하나혼자니속도는별반차이가없을것이다.그렇다고아주불가능한건아니었다.한달동안하나가집에들어가지않는다면,확실히안될일은아니었다.(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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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않아?히터틀까?」
남자가물었다.빗방울이똑똑떨어지나싶더니어느사이추적추적비가내리고있었다.하얀입김이입언저리에서부서지고,다시날아들길반복했다.
「괜찮아요.엥꼬라도나면어떡해요.이근방에주유소가있으리란보장도없는데」
여자가말했다.그러면서티내지않게몸을움츠렸다.남자는설마,하고웃었지만기름잔량이바닥에근접했음을기억해냈다.그는들리지않게한숨을내쉬고는차문수납공간에꽂아두었던두꺼운서류철을꺼내들었다.연락두절,보스,지방국도…이러쿵저러쿵고민한다고풀릴일이아니었다.그렇다면여유를지키는게낫다.여자는핸드백에서무언가를꺼냈다.
「선배,젤리먹을래요?」
「응?하나만」
복잡다단한보고서를이리저리넘겨보던남자는클립에끼워져있던사진을꺼내김이서린전방의유리창에갖다댔다.필름광택지의매끈매끈한뒷면이물기에찰싹붙었다.커다란잠자리안경을쓴중늙은이사내가티테이블에얼굴을맞대고눈을감고있는사진이었다.두사람은말없이사진을보았다.남자는계속사진을붙였다.카페에서습격을당한것처럼쓰러져있는세명의외국인,피아노건반위에엎드려있는귀부인,거리한복판에서두손을배위에포개어눈을감고있는젊은이,트럭운전석에고개를뒤로꺾고입을벌린채누워있는남자,중환자실에고요히누워있는환자까지.
「어떻게생각해?」하고남자가말했다.
「모두눈을감고있군요」하고여자가말했다.
「역시」
남자는만족스러워하며차가운두손을맞비볐다.
「또?」
여자는지긋이사진을보았다.
「외상의흔적은보이지않아요.모두깨끗하군요」
「죽었다고는안했어」
「살아있다고도안했고요」
「너를시험할생각은없어.그냥의견이궁금할뿐이야」
「선배는이사진들의출처를다알고있겠죠?」
「전부는아니야」
남자는아무래도이상황이재미있어죽겠다는눈치였다.그러거나말거나,여자는주의깊게사진들을들여다보고있었다.길쭉한바테이블주변으로아무렇게쓰러진세명의청년들이찍힌사진을가리키며여자가말했다.
「보세요,이사람들이입고있는옷들,같은제복이에요.제기억이정확하다면이란-이라크전쟁무렵의이란정규군같은데요.정확히말하자면정규군으로급히편성된혁명수비대라해야겠지만」
여자는계속사진들을분석해나갔다.이번엔피아노건반위에쓰러진귀부인의흑백사진이었다.
「피아노뒤편으로보이는벽난로위의정물들보여요?포커스가맞지않아다소뿌옇긴하지만…집주인이벼룩시장에서아무거나사모으는수집광이아니라면집주인은아마옛소련의당원임이분명해요.붉은별위에교차된낫과망치가장식된메달보이죠?이건천구백이십년에있었던이차코민테른대회때당에헌신한간부에게수여된기념메달이에요.트로피도있고,스탈린이서명한문서도보이네요.하지만사진속의여자가당원같지는않아요.아마간부의딸이거나가족이겠죠.피아노위에있는곰인형은미샤라고모스크바올림픽의마스코트인데,모스크바올림픽은천구백팔십년에개최되었으니코민테른시기와맞지가않죠」
「무서울정도로잘알고있는데」
「얼마전에잠이안와서러시아혁명사를알아봤거든요」
남자는감탄했다는듯사진을다시관찰했다.
「난톨스토이와서신을교환하던러시아귀부인인줄알았는데」
「내생각엔」
여자가정리했다.
「아무개연성없이모아놓은돌연사시신들의사진같군요.시간이나배경도크게동떨어져있진않지만그렇다고일관적인것도아녜요」
「돌연사라면자연사를말하는거지?」
「네.책상서랍으로들어가타임머신으로이곳저곳을오갈수있는연쇄살인마가있는게아니라면요」
빗방울은계속차지붕위를건반처럼쳐대고있었다.
「제프버클리라는가수가있는데」
남자가말했다.
「그는호수에빠져죽었는데말이야,그때난고등학생이었거든.하지만도무지그가익사했다고믿겨지지가않았어」
「그럼요?」
「다만아직까지물밖으로나오지않았을뿐이라고생각했지」
「선배가가면그때서야나오고요?」
「그래.정말세상이내중심으로돌아간다고생각하던시절이었지.지금도조금그런면이있지만」
조금?하고여자는피식웃었다.제프버클리가빠진건호수가아니라멤피스의강이며시신은얼마지나지않아발견되었단사실을,여자는구태여남자에게말해주지않았다.그녀역시고등학교시절제프버클리의노래를아껴들었던것이다.
「돌연사란표현을썼는데」하고남자가말했다.「정확해.이사건들을맡은경찰이나신문기자들도온갖낭설끝에똑같은결론을내렸지.자네말대로이사진들은돌연사사례들을늘여놓은것에불과할지도모르지만난여기서어떤가설을통해아직드러나지않은맥락을유추해보려고해」(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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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지진이라도난줄알았다.하지만하나가딛고있는땅에선조금의진동도느껴지지않았다.이상하고,이상한일이었다.일시적인현기증이라고넘겨짚는순간,하나는하늘이무너지는걸보았다.은유가아니었다.마치대륙이라도떨어지는것마냥구름이육중하게추락하더니다음은조각난하늘의일부가접착력이다한타일처럼후두둑붕괴하기시작했다.멀리고가도로와아파트가한쪽으로기우뚱쏠리더니급기야삼십이배속느린화면처럼서서히쓰러졌다.
서둘러언덕을내려오던하나는벽돌주택테라스에서옷들을팡팡털고건조대에널고있는자신을보았다.정확히말하면,어느주부의옷차림을한하나였다.자전거를탄사람,평상위의노인,꼬마아이들,주변에보이는모든사람들은하나의얼굴을하고있었다.섬뜩한풍경이었다.고적한일요일의동네는이제범우주적인공포로얼룩지고있었다.하나는주택가를벗어나기위해애썼다.올라왔던방향반대편으로내려가자지상철의노선에따라철로가이어져있고,그아래로조그맣게뚫린굴다리가나왔다.하나는그곳을알고있었다.노란등이매달려있고하수구라해도믿을만큼지저분한굴다리는석관동의신이문역과재래시장을잇는연결통로였다.하나가헤매는이곳은석관동과도시의모습이뒤죽박죽혼재되어있었다.두개의꿈이직조(織造)된풍경에감탄할여유는없었다.하나는불길한기분을억누른채용감하게뛰어들었다.철망아래에서늬랗고침침한빛을발하는백열등,더러운타일,웅덩이,전철이지나갈때마다흔들리는천장…하나가기억하는굴다리그대로였다.그런데굴다리의구간은실제보다훨씬길었다.석관동에선지나치는데삼십초면충분했건만,지금은도무지끝이보이질않았다.빛도점점탁해졌고,길도확연히좁아졌다.무너진건물잔해를비집고나오듯이하나는희미하게보이는맞은편의빛을향해엉금엉금기어갔다.한사람이겨우지나갈만한틈을가까스로빠져나왔을때,하나앞으로펼쳐진것은석관동재래시장이아니라바닷가였다.텅빈해변에파도가연신철썩였고,구름이낮게깔려있었다.예상하지못한풍경에하나는어안이벙벙할수밖에없었다.바람이휘익,하니불자모래사장위로잿빛그늘이졌다.구름이빠른속도로이동했다.파고도높아졌다.태풍이오고있었다.(본문중)

출판사 서평

아무도기억하지못하는짧은노래에서기적은시작된다
2012년한여름,도시어딘가에서한밴드의야외공연이이루어진다.무더운날씨에스태프들조차자리를떠나한산해진객석을바라보며연주를시작하는주인공하나.기대했던반응은없지만친구들과함께있다는사실만으로그저행복하던그순간으로부터3년이지났다.밴드는해체되었고,하나는동업자의작은사무실에서일하지만그의삶은무미건조하기이를데없다.어느날사무실로찾아온의뢰인과함께의문의사건에휘말리는하나.다시찾은도시에서그는모두에게잊힌줄로만알던밴드의노래를아직까지부르는사람들을만나게되고,점점꿈과현실의경계가모호해지는이야기속으로빠져든다.

반전에반전을거듭하는미스테리와판타지가결합된성장소설
『호랑이기계』의플롯은언뜻보기에추리소설의전형처럼보인다.무채색의음울한도시,의문의여성과함께시작된미스테리한사건,집요한추격자와예기치못한곳에서등장하는조연들…소설은무분별한도시개발로커다란사회적혼란중에있던2012년의한국사회를배경으로하고있으며,화려한도시외양뒤에가려진사람들의목소리에주목한다.이야기가흥미로워지는건베일에가려진기억을되찾기위해고군분투하던주인공일행이진실에근접하는후반부에이르러서이다.단단한현실과관계에대한믿음이허물어지는과정은기이하고도아련함을남긴다.

“호랑이기계는모든걸가능하게해줍니다”
잃어버린기억을찾으려는희람과하나에게남은단서는‘호랑이기계’라는의미를알수없는단어뿐이다.모험을떠난두사람이행운과우연,동료들의조력으로조금씩밝혀낸호랑이기계의정체는듣고도믿기어려운이야기로점철되어있다.그리고‘모든것을가능하게’만드는능력을지닌이물건을찾는것이비단주인공일행뿐만아님을깨닫게되는데…주차장의아이들,동태평양비밀수사국요원,반항적인에너지충만한카바레재즈피넛까지실제역사와상상을넘나드는요소들의등장은소설의장르적재미를한껏높인다.

달콤한꿈이출구없는절망이되었을때건네는위로
『호랑이기계』가던지는질문은“우리에게아름다운순간이란무엇인가”로축약할수있다.아름다웠던2012년의시간이거짓말처럼사라지고나서하나와희람은삭막한현실에내팽개쳐진다.하나는환멸하고,희람은기억의부재속에서당황해한다.태도는다르지만지금현재결여되어있는것에대한갈망은두사람을모험에나서게하는원동력이라할만하다.호랑이기계의마법같은능력으로다시마주한‘아름다운순간’에대해하나와희람은과연어떤선택을할까?나의아름다운순간이남에겐외면하고싶은기억이었다면?『호랑이기계』는정답없는질문을독자의지평으로까지확대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