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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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K씨,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회사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라고 하셨지요. 퇴사, 전업, 창업에 대한 글과 책이 워낙 다양하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덧붙이진 않겠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스스로 던져볼 법한 질문이 있어서 여기에 옮겨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한 예술가가 어느 강연에서 던진 물음입니다.

이렇게 질문해봅시다. 당신이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것을 다 얻게 되면 그때는 뭘 해야 할까요? 새로운 사회가 열렸음을 선포하는 전령사의 나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 가운데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어야 할까요? 우리의 일, 매일 하는 일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예전에는 바랄 수도 없었을 긴 여가시간을 갖는 것뿐일까요? 또,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할까요? 내내 잠만 잘까요? 이것이 바로 많은 잘못이 바로잡히고 세상의 모든 지저분한 노동을 혼자 감당하는 미천한 계급이 존재하지 않게 될 때 모두가 대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29~30면)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 윌리엄 모리스 산문선』은 영국의 수공예가 윌리엄 모리스의 주요 강연을 엮은 책입니다. 수많은 이력을 가졌던 윌리엄 모리스를 단지 ‘수공예가’라고만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겠지요. 그는 19세기 후반 건축 실내장식에 참신한 전환을 불러온 건축가였고, 스테인드글라스에서부터 태피스트리에 이르는 공예품에 새로운 패턴을 도안한 디자이너였으며, 옥스퍼드 대학으로부터 문학 교수로 초빙되었지만 이를 거부했던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했고, 영국 내셔널트러스트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생태주의자이기도 했으며, 20세기 초 영국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꿈꿉니다. 어떤 이는 일확천금을 꿈꾸기도 하고 어떤 이는 건강을, 또 다른 이는 명예를 거머쥐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종 빼먹는 질문은 ‘변화 이후의 삶’입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애를 써서 하나의 성과를 낸 뒤에, 혹은 인생 일대의 기회를 맞이했을 때에 맥없이 망연자실할 때가 있는 것이지요. 윌리엄 모리스의 오래된 저 질문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자

윌리엄모리스

시인,판타지소설의원조인로맨스작가,화가,디자이너,예술평론가,최초의디자인회사중하나인모리스회사를성공적으로경영한자본가,그리고사회주의선동가이자조직가였다.1853년영국성공회신부가되기위해옥스퍼드대학교에입학했으나존러스킨을만나면서중세역사와당시의사회문제에관심을쏟았다.1857년여름모리스는로세티,번존스등라파엘전파화가들과함께어울리다가‘모리스마셜포크회사’를설립하고예술공예운동을주도하였다.그는노동자평균수명이15~17세이던참혹한노동지옥을사는영국의노동자들을보면서노동의고귀함을되찾을수있는‘수공업적정신’을회복하기를원했다.그래서그는자본가이면서도1889년부터는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삶을시작하며엥겔스와마르크스의딸인엘리노어마르크스와함께활동했다.그의사후에도바우하우스의설립,영국의뉴레프트운동등그의영향이직접적으로이어져내려왔다.

목차

추천의말모리스로산다는것
엮은이의말일하는즐거움과삶의아름다움

1.예술은그것을만든이를기억한다:민중의예술
2.필요에서아름다움이나온다:고딕건축
3.물건에즐거움을입히는일:현대의생활예술
4.필사의시대:중세채색필사본에대한단상
5.나는어떻게사회주의자가되었나
6.쓸모있는일과쓸모없는노역
7.현재우리의삶과우리가누릴수있는삶
8.어떤미래를바라는가:문명의희망

본문출처

출판사 서평

2020언택트시대에윌리엄모리스읽기

150년전영국빅토리아시대에살았던윌리엄모리스는당시세계의최첨단을구가한영국의산업에비판적인시각을가졌습니다.특히당대자본가들이이윤만을추구하면서대량생산체제를취하는것에문제의식을품었지요.단순히이에비판적이기만했다면그의말을이렇게새로펴낼이유가없었을것입니다.그는자본과산업이미래지향적이지않음을간파했습니다.그래서자본가들이근시안적인사고로눈앞의이윤만을좇지말고,먼미래를내다보며산업의근본적인토대를세워야한다고주장했습니다.
이에대한대안으로윌리엄모리스가내놓은것은바로‘예술’입니다.사전을찾아보면예술은기예(기술,art)이라고정의됩니다.모리스는이같은정의와는전혀다르게,예술을“인간이노동하며느끼는즐거움의표현”이라고말했습니다.그즐거움을표현해야만우리는일하면서행복을느낄수있으며이로써“그물건을만드는제작자와그물건을쓰는사용자의행복”을만들어낼수있다는것입니다.모리스에따르면,자연속의다른생명들과마찬가지로인간은태곳적부터이같은행복을얻기위해애써왔고,현대에들어서기전까지사람들은두루이행복을영위할수있었습니다.하지만대량생산체제의현대사회는‘노동하며누리는즐거움’을철저히배격한채이윤만을추구했던것이지요.
모리스는현대자본주의가언젠가는끝나리라보았고그대안으로‘예술’즉즐거운노동을위한사회를이야기합니다.모리스자신이수백명의직공을고용한사업가였다는점을감안한다면,이는단지중세도제식생산체제로돌아가자는복고주의가아니라중세의수공업정신을바탕으로한생산체제의대전환이라고볼수있습니다.
그렇다면2020년언택트시대에,우리개개인이모리스의이같은주장에서착안하여실천할수있는‘예술’이란무엇일까요.우리는스스로자신의일과행복을합치하기위해얼마나노력해왔는지를돌이켜볼필요가있겠습니다.즉내가생산하는것이‘아름다운것’인지를,직장바깥의공간에서는어떤‘아름다운것’을만들어왔는지를생각해보자는말씀입니다.이때우리는,자신의일생내내아름다운것을만들어왔고이를영국을넘어전세계적으로퍼트렸던윌리엄모리스의조언을다시한번곱씹어볼필요가있겠습니다.‘아름다운것은무엇인가’라는질문에그가‘즐거운노동’이라고답변했다는것을말이지요.

이아름다운것들은대체누가만들었는가

온다프레스가처음이책『아름다움을만드는일』을만들기로했을때는150년이지난지금도여전히모리스의디자인패턴이인기를누리는이유가가장궁금했습니다.모리스의아이디어가어디에서기인했는지,그가어떤생각을품고작품을만들었는지를궁리하면서이책을만들었지요.그답을찾아가는과정에서모리스의목소리가2020년현재의예술을넘어노동,사회전반에큰울림을준다는것을깨달을수있었습니다.
“아름다운물건을만드는일을빼면,제삶을지배하는중요한열정은예나지금이나현대문명에대한증오입니다.”(169면)모리스의이같은고백에서드러나듯이그는현대문명을형편없는체제로,그와반대로중세를훌륭한체제로보았습니다.모리스의이같은중세예찬은2020년대현재를사는우리에게는다소낯섭니다.우리에겐중세가그저‘암흑시대’일뿐이기때문이지요.
하지만모리스의예술관이우리의그것과근본적으로다르다는점을다시금떠올려봅시다.모리스는우리가일상에서자연스럽게접하고만들어내는모든것,생활속에서향유하는모든것을예술로보았고,이는중세시대의거의모든보통의사람들이매일같이하던일이기도했습니다.한마디로모리스에게는공예를중심으로한‘생활예술’이무엇보다중요한예술이었습니다.선사시대이래로예술은사람들이자신의생활공간과물건을아름답게꾸미는일이었지요.

사람들이사용해야하는물건에즐거움을입히는일,그것이바로장식이수행하는하나의위대한역할입니다.이러한예술이없다면우리의휴식은공허하고무료할것이고,노동은한갓심신을소모하는일로그저견뎌야하는것이될겁니다.(104면)

이책에서모리스가말하는‘생활예술’은다른말로‘대중예술’‘장식예술’입니다.좁게는건축의한요소로서의예술,즉“집짓는기술,페인트칠,소목일,목공,금속세공,도예,유리공예,직조등”을가리키지요.넓게는우리가일상에서늘가까이접하는것들을아름답게꾸미는예술분야를두루포괄하고요.모리스는이같은예술의생산자들이특별한기술을가진이들이아니라보통의노동자,즉우리자신임을알아야한다고강조합니다.

훌륭한박물관을누비고다닐때에는,인간의머리에서탄생한그아름다움에찬탄이가슴가득차올랐겠지요.그것은어떻게만들어졌을까요?위대한예술가가도안을그렸을까요?절대아닙니다.‘평민’들이일상적인노동의과정에서만든거죠.그작품에찬사를보낼때우리는곧그런인물에게찬사를보내는셈입니다.
그노동을그들이귀찮고하기싫은일로여겼을까요?그섬세하고신비로운아름다움을빚어내면서,그기묘한동물과꽃을창조해내면서즐거워미소짓는일이많았을겁니다.일을하는동안그들은적어도불행하지않았을것입니다.(41~42면)

150년전어느사회주의자로부터듣는시의적절한조언

안타깝게도현대문명이도입한대량생산체제는이같은즐겁고행복한노동을지루하고괴로운노동으로대체해버렸습니다.자본가들은대규모공장단지에기계를들이고사람들을기계의부속처럼다루기시작했지요.이에맞서러다이트같은대규모기계반대운동이벌어졌지만그렇다고모리스가현대성전부를거부한보수적복고주의자였던것은아닙니다.그는기계를씀으로써우리노동의격을높일수있다고생각한,유연한사회주의자였습니다.모리스에게중요한것은인간이“엄청난규모의지겨운일”즉우리가자신의모든것을바침에도불구하고목표도없고즐거움도없이이뤄지는일들을당장에그만둘수있도록하는사회와제도를만들어내는것이었습니다.
윌리엄모리스의이같은변혁적관점들은독일의바우하우스,영국의뉴레프트운동등으로그명맥을이어왔습니다.다만그의혁신적이고진취적인예술관과노동관은그의디자인패턴이누리는전세계적인기에비하면덜알려진편이지요.우리가150년전빅토리아시대의한예술가의이야기에귀를기울여야하는이유가여기에있습니다.그의말처럼우리모두는“품격있는삶”을살고싶어하며,또한예술은우리를위해“합리적이고충만한삶의진정한이상”을세워줄것이기때문이지요.

예술이우리의노동을아름답게만들고,더향상되고확산되어물건을만드는사람이나쓰는사람이나이를제대로이해하게되면,따분한일과고달프게그일에매인삶이거의끝나게될겁니다.그러면누구라도노동의저주를떠들어댈명분도없고축복같은노동을회피할핑계도없겠지요.이과업을이루는일만큼세계의진보에기여하는것도없을겁니다.이런일만큼은어떻게든우리모두가갈망하는정치적·사회적변화와더불어생겨나리라믿어의심치않습니다.(1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