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이라니

마지막 산책이라니

$14.00
Description
황인찬·서윤후 시인 강력 추천에세이‘마지막산책이라니’
정다연 시인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위로를”
-드로잉 & 에세이북…시인의 첫 에세이!
-시집 ‘내가 내 심장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까’(현대문학)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
저자

정다연

그럼에도불구하고당신의안부가궁금한사람.사랑하는것들을사랑한다고목청껏크게외치고싶은사람입니다.시를쓰며살고있습니다.2015년현대문학시인추천에시를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어요.시집으로〈내가내심장을느끼게될지도모르니까〉2019현대문학,〈서로에게기대서끝까지〉,2021년창비가있어요.문학예능유튜브,문장입니다영의진행자이기도합니다.요즘은숙면과안녕을기원하는단명클럽친구들와재밌는일을꾸미고있어요.사랑하는것들이너무많아서곤란하지만,반려견밤이와함께그날의빛을쬐고,걷는일상을가장사랑해요.
인스타그램@nextaura

목차

1부거친마음의날씨에대처할때
2부흩어진조각이만든무한한별자리
3부선을용감하게따라가다
4부사랑의얼굴

출판사 서평

동물그리기연습-벨루가

감개무량했다.드디어도형을지나생명체를그리는날이왔구나.너무나고대하던날이어서화실에가는내내발걸음이가벼웠다.여름이오는것도,무성해지는초록을보는것도다좋았다.그래서인지평소보다빨리화실에도착했다.선생님은그런나를차분히가라앉히고어떻게구도를잡는것이좋은지시범을보이셨다.이번에는내차례.도화지가득벨루가가차도록위치를잡았다.종이위쪽에서부터직선으로떨어지는등을그은후에이마의굴곡진부분을정성껏표시했다.문득그림을그리지않았다면무언가를이토록관찰하고살펴보는일이내삶에일어났을까물음이들었다.어쩌면평생일어나지않았을것같았다.평소일상을살때는무언가를뚫어지게관찰하는것도그대상에게는폭력적인시선이될까봐자제하는편인데,오히려이런관찰을통해서만얻게되는것도있구나.새롭게알게됐다.너무도당연하지만,예를들면이런것이다.어떤물체나생명체의표면은같은색으로이루어져있지않구나.어떤부분은유독어둡거나밝기도하고,상처나얼룩이있기도하구나.한번은이런적도있었다.그리는생명체의눈동자에환한빛이찍혀있는것같기에모양을자세히살펴봤더니사진을찍은내얼굴의거기에담겨있었다.눈동자는이토록선명하게누군가를반사할수있기도하구나깨달았다.똑같은회색이라고생각했는데,진한회색부터중간회색,밝은회색까지…….언어로는다쪼갤수없는무수한색이있다는것.그저사물에떨어지는빛이라고착각했는데,어떤고유한존재의형상이그안에들어있기도한것.그림을통해서배운것들이다.벨루가를그리면서특히신경쓴부분은그라데이션이었다.벨루가는전체적으로구형태가많고,피부가하얘명암이잘드러나는특성이있다.그것에맞게색감을잘넣어야안구가얼마만큼안으로들어가있는지혹은앞으로나와있는지,입술의두께감은어떠한지입체감있게선명히드러낼수있다.완성된그림만보면손쉽게쓱쓱그린것같지만…….한달동안형태잡기부터색감,그라데이션단계를차근차근진행해갔다.그림을다완성한날,북극을헤엄치는벨루가영상을찾아봤다.얼마만큼의시간이쌓여서저만큼거대해진것인지인간의시간으로는감히다헤아릴수없는빙하를넋놓고보고있는데,깨진얼음조각을헤치고벨루가무리가수면위로고개를들기시작했다.이어서공중에물을내뿜는소리와함께주파수높은맑은소리.맞다,책에서는벨루가를바다의카나리아라고소개하기도했지.찌직-새가지저귀는것같기도하고,고드름과고드름이부딪힐때나는소리같기도한벨루가가내는소리에잔뜩마음을빼앗겨있는데,아쿠아리움에서이상행동을하는벨루가의영상을발견했다.북극을시원하게누비는벨루가가내는소리와수족관유리벽에머리를대고있는벨루가의소리가너무나도달라서놀랐다.솔직히말하면경악했다.이글을마무리하는2021년11월,롯데월드아쿠아리움에서9세암컷벨라를바다로다시돌려보낼계획과절차를밟고있다는소식을접했다.일각에서는벨라가야생으로돌아간뒤거친환경에서생존이가능하겠냐는의문을제기하고있다고.인간은이토록인간중심적이다.자연을비롯한다른동식물들은언제나인간의예상을뛰어넘는다.인간은그것을알아야한다.나는벨라가자신의동료와함께바다를마음껏헤엄치고,새끼를기르고,때가되면따뜻한강하구로몰려가거칠거칠한자갈에온몸을비비며죽은피부를벗겨내는삶을살기를바란다.인간이만든울타리는부수면그만이다.
원근법-물체가맞닿은지점이가장어둡다물체가지면에닿은지점이가장어두워요.빛과어둠의흐름을생각하며그림자의형태를잡고있는데,그말을들었다.물체와물체가맞닿은지점은가장밝은것이아니라어두운거구나.어쩌면그것이당연한걸지도몰라.알사탕같기도하고야구공같기도한구를칠하다가아롱이의그림자와내그림자가겹쳐진순간이생각났다.어두운밤달빛을받으며산책로를따라걸을때,우리의움직임에따라그림자가겹쳐졌다가흩어지는모습을보며나는기쁘게웃었다.그날의장면은어두운밤보다더짙은검정으로마음속에선명히남아있다.돌이켜보면한때의난사람과사람이만나고부딪히는자리는낮처럼환해야한다고생각한것같다.사물의구조를드러내는빛처럼사람의마음은솔직하고투명하게서로를향해야한다고.만남에서칠흑같은어둠이찾아올때,깨뜨릴수없을것같은침묵의시간이찾아올때쉽게절망하기도했다.하지만이제는안다.너무도강한빛은식물의잎을태워버릴수도있다는것을.어둠에잠든박쥐의잠을괴롭힐수있고,바다를헤엄치는사람의등에햇빛화상을남길수있다는것을.어떤존재가간직한어둠과신비를견디지못하고낱낱이파헤치는태도야말로광적이고폭력적인태도아닌가,지금은반문하게된다.어둠을어둠으로내버려두는것.잘기억이나진않지만언젠가책의한귀퉁이에서이런구절을본적이있다.우리는왜내면을가만두지못하는가?물론타인과의관계뿐만아니라자신의행동을들여다보고반성하는태도는중요하다.하지만우리의반성은스스로자책하거나타인을비난하는것으로기울기십상이기때문에추락하기좋은얼음골짜기로미끄러지지않으려면빙벽의상태를확인하듯이내면의상태를짚어보는것이중요하다.무엇보다중요한것은내면을내면그자체로둘줄아는것.달의그림자이야기를들으면이상하게위로가된다.지구의입장에서보면달의모양이바뀌는것이지만,달의입장에서서지구를보면자신은늘한곳을바라보고있을뿐.달라지는점은빛을받은부분이그날그날바뀌는것이다.달에게이목구비가있다면오늘은빛이나의눈동자를비추고,내일은이마,모레는눈썹을비추는식이다.요즘나는타인과의관계에서마음을섣부르게짐작하지않고내려놓는법을배우는것같다.타인의어둠을응달에놓아둔채로언젠가그가준비되었을때자신의일부를조금씩조금씩보여주는순간을기다린다.이따금이불을머리끝까지뒤집어쓰고내가쌓아온관계들이파도한번에무너지는모래성에불과하다는생각이들때아롱이가더짙은그림자를맞대며곁에있어준순간을떠올린다.어둡고어둡다가마침내창문에여명이맺히는순간.그래지금은어두운면에맞닿은때야.그냥기다리면돼.또다른빛의모양이나타날때까지.주문처럼읊조리면한마디대화없이도몸과몸으로기대맞이하는아침이선물처럼도착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