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문학 (1920년대의 공방)

검열과 문학 (1920년대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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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검열과 문학』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학위 논문 주제를 모색하면서였다. 당시 1920년대 조선에서 발행된 종합잡지 〈개벽〉을 공부하다가 자연스럽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1919년 3 · 1운동 이후 식민지 조선은 무단통치에서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되었고, 1920년대에는 제한적이나마 출판의 자유가 허용되는 한편, 사회주의 사상이 빠르게 유입되었다. 〈개조〉와 〈개벽〉은 출발점과 논조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기존의 사회 질서를 갱신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1920년대 동아시아는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주의 · 마르크스주의의 수용 열풍과 더불어, 기존의 문명과 국가, 사회를 재편하려는 ‘개조’, ‘개벽’, ‘신문화’ 담론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시기였다.

『검열과 문학』은 1920년대 일본에서 검열 시스템이 출판계 · 문학계와 어떻게 충돌하고, 협상하며, 공존을 강구했는지를 추적한다. 저자 고노 겐스케는 검열 법규의 입안에 관여한 이들부터 실제단속을 집행한 관료, 그리고 그 단속의 대상이 된 문학 · 출판 · 예술계 종사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물들의 사료를 수집한다. 그리고그것을 시대적 상황, 정치, 검열이라는 국가 권력이 교차하는 하나의 지형도로 엮어낸다. 덕분에 이 책은 폭압의 역사뿐 아니라, 검열이라는 제도가 문학의 형식과 출판 문화의 조건을 어떻게 변형하고 재구성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1920년대 〈개조〉를 둘러싼 검열의 작동 방식과 그에 대한 출판계 · 문학계의 대응을 따라가다 보면, 검열이 단순한 억압의 기제로만 작동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검열을 담당했던 이들과 출판 · 문학계 인물들 사이에는 일
정한 교류가 존재했고, 그 경계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1920년대 후반 일본의 정치 · 사회 · 문화적 격변 속에서 갈등하고 동요했던 지식인들의 행적을 추적한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도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정계와 학계, 출판계와 문학계를 넘나들며 근대라는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간 수많은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한국 독자에게는 낯선 이름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각주로 처리할 경우 설명이 길어져 본문의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인물 이름 옆에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을 택했다. 아울러 고유명사 표기에 관해서는 독자의 읽기 흐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표기 방식을 결정하였으니, 혹여 기존 표기 관례와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역자의 뜻으로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검열을 둘러싼 저항과 논쟁 그 자체보다, 〈개조〉 창간을 둘러싼 일화였다. 야마모토 사네히코는 1918년 시베리아 여행 후 일본으로 돌아와 출처를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자금으로 〈개조〉를 창간한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든 동인지 성격의 이 잡지는 원래 총선거를 앞둔 야마모토의 선거운동을 위한 것이었다. 불분명한 자금의 출처만큼, 창간
당시의 논조 역시 애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어느순간부터 〈개조〉는 사회주의 담론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의 관심을 빠르게 흡수해갔고, 그 결과 국가 권력의 검열 대상이 되는 동시에 대중적 영향력을 넓혀갔다.

이 지점은 ‘주의’나 ‘이즘ism’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사회주의라는 사상이 신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시장과 독자의 요구 속에서 선택되고 소비되는 담론이기도 했다면, 그것은 이념의 진정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사상이 자리잡는 과정에는 의도된 기획과 의도하지 않은 계기가 함께 작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연과 필연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은 채 겹쳐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하나의 시대가 형성된다. 우리 역시 멀지 않은 〈개벽〉이라는 잡지에서 〈개조〉와 비슷한 면면을 찾을 수 있다. 독자 호응을 얻지 못하던 학술 기획이 오히려 “사회주의 담론이 개입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사회주의 관련 기사들이 기존 “편집진이 잃고 있던 조직성과 실천성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에게 기대받았다.* 결국 천
교도 청년회에서 신문화 운동을 위해 만든 애초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잡지의 성격이 바뀌었고, 식민지 체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 역설적이게도 『개벽』의 사회주의 사상의 비중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사실은 비단 사회주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상과 신념을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고 유통되는 방식은, 어느 시대 어느 자리에서나 우리 삶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작동해왔다. 나아가 근대 이후 다양한 문화적 장 전반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조건이기도 하다. 『검열과 문학』이 보여주는 것은 그러한 긴장 속에서 형성된 근대 문학장의 구조이며, 검열은 그것을 외부에서 억
압하는 장치인 동시에, 내부로부터 스스로를 재편하게 만드는 조건이기도 했다.

우한나

* 송민호, 「1920년대 근대 지식 체계와 『개벽』」, 『한국현대문학연구 제24집』, 한국현대문학회, 2008. 4.
저자

고노겐스케

紅野謙介
1956년출생.니혼대학문리학부교수.일본근대문학을전공하며,미디어환경과다양한문화의확장속에서문학을포착하려는시도를지속해오고있다.저서로『책의근대』,『투기로서의문학』등이있다.

목차

차례

『검열과문학』한국어판간행에즈음하여5

들어가는말9

제1장.검열에의어프로치13
검열은전이한다/대일본제국에서출판의자유/내무성의논리/
검열관과작가그리고편집자

제2장.출판법과신문지법29
검열의이중기준/검열의역사와변모/일본의특수성/
애매한기준

제3장.야마모토사네히코의잡지〈개조〉45
종합잡지의시대/개조사이전의야마모토사네히코/
〈개조〉창간으로

제4장.‘내각’이라는관행59
내열제도와절취삭제/최초의발매배포금지/암묵적규칙/
관동대지진과검열

제5장.두편의희곡-후지모리세이키치의「희생」과
구라타햐쿠조의「붉은영혼」77
문학에의개입/「희생」이라는희곡/과잉된다이쇼교양주의/
아리시마다케오신드롬

제6장.1926년7월의미스터리97
7월의필화처분/정당정치의표류/박열·가네코후미코의괴사진사건/
이노우에데츠지로와“우주의법칙”

제7장.문예가협회와발매금지방지기성동맹117
문예가협회의동향/문학·연극·영화/내무성과의교섭/
마사무네하쿠초의비평

제8장.항의운동의균열과엔본의등장147
〈문예전선〉과〈문예시장〉/동맹의내부대립/건곤일척의출판기획/
선거학의수사학/총독음과셰익스피어

제9장.나카자토가이잔「몽전」의절취삭제183
가이잔의등단/내열제도의폐지/분할환급의편법/사실상의전례/
부상하는금기/문학자와선거

나가는말217

주227

발행인의말223

옮긴이의말235

출판사 서평

검열과문학을발행하며

문학책을만든다는것,그것이지금시대에어떤의미를갖는지다시묻게된다.표현의자유가헌법에명시되어있고,누구나책을낼수있는시대라지만,아이러니하게도그자유는점점더정교한제한속에서작동하는듯보인다.국가의직접적인금지나삭제라는형태는줄어들었을지몰라도,플랫폼의규칙과시장의판단,여론의압력과같은또다른기준이보이지않는선을긋는다.그런조건에서'검열'이라는낡은단어를다시꺼내는일은,단지과거를복기하는것이아니라지금여기의조건을되묻는일이기도하다.

독립출판사를설립한지어느덧14년이되었다.2014년겨울,첫책『PBT』를낸이후로실제출판활동은거의12년가까이이어졌다.출판사를왜만들었느냐는질문을받을때마다나는늘"자유로운형태의책을만들고싶어서"라고답해왔다.크고작은판형,컬러와흑백,이미지와텍스트,중철과양장등대중적인출판사들이쉽게시도하지않는양식을실험해보는것자체에집중하고싶었다.책의내용만이아니라,책이라는사물이어떤형식을가질수있는지시험해보는일이기도했다.

돌이켜보면'자유로운형태의책'이라는것도사실은만든이가설정한제약속에서만가능했던셈이다.'나'라는단일저자,'내가하고싶은이야기,'내'가마음에드는디자인-모든것이철저히개인의판단과취향에의한선택이다.의사결정은단순했고,주변의걱정어린조인도굳이따르지않아도된다.초타원형이출판계의큰흐름과는다른방향을걸어온것도그런이유에서였을것이다.
하지만우리가아는대부분의책은그렇게만들어지지않는다.출판이라는행위에는피치못할경제적,사회적조건이뒤따른다.문학전집이든잡지든책이라는형식은외부의압력속에서구성된다.고노겐스케의『검열과문학-1920년대의공방』(2009)은바로그지점에서시작한다.급진적인사상과이념이어떻게서적의형태로출현했고또어떻게통제되었는지를추적한다.단순히억압의역사를말하려는것이아니라,잡지와책이라는매체가역사와어떻게조응했는지를복원하려는시도다.어떤글은연재형식으로분절되어등장하고,어떤사상은평론이나번역의형태로나타나며,또어떤목소리는문학적장치속으로숨어독자에게전달된다.

고노겐스케는오늘날당연하게여겨지는출판형식이검열이라는시스템과함께태어났다는점에주목한다.그리고각사례에서창작의욕망,편집의욕망,대중적영향력에대한의지가서로얽히며형식을만들어냈다고말한다.어떤경우에는작가가자신의사상을직접적으로드러내기보다서사속인물의목소리로우회하고,어떤경우에는편집자가자체검열을통해표현의가능성을확보한다.때로는번역이나평론이라는장르가새로운사상의통로가되기도한다.검열은단순히삭제하거나금지하는행위로만작동하는것이아니라,어떤표현은살아남고어떤표현은다른형식으로변형되도록압력을가하는환경이되기도한다.

이책은문학이고고한정신의산물이기이전에,어떤제약조건과의교섭속에서만들어지는구조물임을보여준다.강한신념을가진저자뿐아니라,정보를편집하고다듬는또다른창조자들-때로는검열자들-의역할까지도포함해서말이다.검열은억압인동시에시스템이며,협업의대상이기도하다.오늘날의풍경도다르지않다.국가의명시적인금지나삭제대신,플랫폼의규칙과알고리즘이어떤글이더널리보이고어떤글이조용히사라질지를결정한다.직접적인금지보다는노출의조정에,삭제보다는가시성의관리에가깝다.표현은여전히자유롭게생산되지만,그것이어떤방식으로유통되고어떤경로로독자에게도달하는지는또다른시스템에의해조절된다.그런의미에서보면오늘날의출판환경역시과거의검열체계와전혀무관한세계라고말하기는어렵다.
100여년이라는시간이흐른지금우리는검열과표현사이에서벌어진장면들을보다겸허한시선으로돌아볼수있게되었다.어떤글이살아남고어떤글이사라졌는지,편집자가무엇을지우고우회했는지,검열관과출관인이어떤방식으로교섭하고때로는협력했는지.당대에는도저히설명할수없었던여러움직임과맥락들이이제는거리를두고조망할수있는시간적여유속에서다시보이기시작한다.

문학연구자우한나가번역한『검열과문학-1920년대의공방』(2026)은초타원형의새로운시도다.그간의책들이대부분'나'라는저자와편집자의시선에서만들어졌다면이번책은철저히타인의글을번역하고발행하는작업이었다.책의형태보다는내용에무게가실렸고,이는기존출판사에서는당연하게여겨질일이지만초타원형에는새로운감각의확장처럼느껴졌다.독립출판물최초로크라우드펀딩을시도하고ISBN을부여했던그시절처럼,기존의어법을다르게바라보고흡수해보는시도이기도하다.

이책을통해독자들이단지일본문학사를들여다보는데그치지않고오늘날한국문학과더나아가서는복합적이고다양한미디어에서의표현의조건에대해각자의자리에서질문을확장해보기를바란다.초타원형이이책을첫번역서로선택한것도그런시도의연장이다.내가쓴글이아닌원본이있고,그위에번역이있다.보이지않는형식과언어가겹쳐지며제작된책.건축도면에서구축선(constructionline)이최종도면에는남지않지만배치와구성을먼저결정하는임시의기준선으로작동하듯,이책역시여러겹의선위에있다.1926년의논의가2026년에도여전히유효해보인다는사실은,문학과표현역시예외없이세계의일부임을다시상기시켜준다.

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