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18.00
Description
우리 삶의 장면 속엔 늘 음악이 있었다
김애란×김연수×윤성희×은희경×편혜영과 함께하는 음악소설 앤솔러지
다섯 곡의 음악, 다섯 편의 이야기, 다섯 번의 삶

“평소 자기 고통을 남한테 잘 표현 안 하는
사람이 부른 이별 노래 같아.”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은미’는 최근 몇 년 사이 연이어 두 번의 이별을 경험한 상황이다. 하나는 오랫동안 사귄 남자친구 ‘헌수’와의 이별. 또 하나는 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엄마와의 이별. 그런 은미가 슬픔과 고립감 속에서 선택하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다. 엄마를 간병하느라 회사를 그만둔 뒤 경력이 단절된 은미는 자신이 다시 일을 구하기가 녹록지 않은 사십 대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당장 영어만이라도 시작해보자고” 생각하며 화상 영어 사이트인 ‘에코스’에 가입한다. 그리고 수업을 받던 어느 날, 원어민 교사 ‘로버트’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한국어로 ‘안녕’은 뭐라 그래?” 그 말은 은미로 하여금 칠 년 전의 하루를 상기시킨다. 헌수와 함께할 미래를 당연하게 상상했던 그때, 은미는 헌수가 틀어준 「러브 허츠(Love Hurts)」를 들으며 평화로운 아침을 맞았었다. 헌수와 같이 그 노래를 들을 당시 은미에게는 애인과 가족이 있었다. 당장 내일에 대한 걱정이 아닌 먼 훗날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그려나가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애인도 가족도 곁에 없고 “생활에 대한 압박감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지금, 은미는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잘 표현 안 하는 사람이 부른 이별 노래’ 같았던 「러브 허츠」처럼 자신의 슬픔을 쉬이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가능했던 것과 영영 불발된 것들을 헤아리기 시작한다.

“빛과 어둠, 고요와 소음이 서로 교차하는 여름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오케스트라였다.”
-김연수, 「수면 위로」

애인인 ‘기진’이 죽은 후 삶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은희’는 도저히 숨을 쉬는 게 어려운 어느 날, 유튜브에서 ‘호흡하는 법’을 검색했다가 ‘유주’라는 사람이 올린 한 동영상을 보게 된다. ‘숨쉬기가 어려울 때마다 나무 바라보기’라는 제목의 그 동영상에서 유주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때에는 나무 앞으로 가서 나무를 바라보라고 설명한다.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보면 흔들리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그 고요한 몰입의 시간을 통해 숨을 쉰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 유주의 호흡법에 뜻밖에 효과를 본 은희는 유주가 올린 다른 동영상을 보다가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며 익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우리 얘기 좀 할래요?” 그건 분명 기진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로 편집한 영상이 빠르게 지나간 후 동영상의 제목이 나왔다. ‘영천에서 오므라이스를 먹다가 만난 시간여행자’. 시간여행자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싶지만 ‘영천의 오므라이스’에 대해서라면 은희도 아는 바가 있다. 기진과 함께 연주회를 본 후 산책을 했던 몇 년 전 여름밤, 비밀이 많은 기진이 드물게 꺼낸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바로 ‘영천의 오므라이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엄마와 같이 지내다가 영천으로 이사를 갔고, 그 동네에 있는 오므라이스로 유명한 중국집에서 오므라이스를 먹은 뒤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 기진은 왜 그날 영천에 갔던 것일까. 삶의 전환이 필요할 만큼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것일까. 은희는 유주가 올린 동영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기진과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나는 나지막이 노래를 불렀다.
엄마가 자면서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윤성희, 「자장가」

오늘은 ‘나’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네 번째로 맞이하는 ‘짝짝이 양말의 날’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나면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등교하는 그 행사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한 학생이 옥상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에 충격을 받은 교장 선생이 만든 것이다. 왜 하필 짝짝이 양말일까? 교장 선생은 학창 시절 한 친구가 자신에게 짝짝이 양말을 선물해주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친구는 선물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우울한 날에는 이 양말을 신어줘.” 설레는 마음으로 검은색 양말과 흰색 양말을 신고 학교로 향한 ‘나’는 평소처럼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평범했던 이 일상은 ‘나’가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일어나면서 커다랗게 뒤흔들린다. 신호등 초록불이 몇 초 남지 않은 횡단보도를 빠르게 건너다가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트럭에 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나’는 죽었지만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닌 것. 그러니까 주변의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다. 다만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고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자신의 장례식이 끝난 후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혹시 엄마가 자신의 죽음에 슬퍼해 잠들지 못할까 걱정이 되니까.

“귓속을 파고드는 음악이 마치 숲과 빗줄기와 바람의 연주 같았다.
자신은 그곳에 처음으로 초대받은 작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은희경, 「웨더링」

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7월, 기차의 4인석에는 네 명의 인물이 마주 앉아 있다. 우선 ‘기욱’. G시에서 열리는 클래식 음악 행사의 진행과 음악 해설을 맡은 기욱은 당장 네 시간 뒤에 열리는 행사장에 무사히 도착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예매 날짜를 당일이 아닌 다음날로 해놓은 것을 깨닫고 꼼짝없이 한 자리 남은 4인석에 앉게 된다. 기욱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희끗희끗하게 머리가 센 나이 든 ‘노인’.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애초에 차단하겠다는 듯 그는 커다란 오선지 악보를 펼쳐 든다. 그런데 오선지에 적힌 음악의 곡명이 기욱의 시선을 잡아챈다. 그 음악은 중학교 시절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음악 교사가 가르쳐준 곡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쩐지 노인의 얼굴이 음악 교사와 닮은 듯싶어 기욱은 곁눈으로 계속 그를 살핀다. 노인이 펼친 악보를 보고 놀란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앞좌석에 앉은 ‘인선’. 그 음악은 지금은 헤어진 옛 애인과의 사랑의 시작을 가능하게 했던 곡이다. 그 사람과 재회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기차에 앉아 있는 인선은 그 음악의 곡명을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것이 일종의 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의 회사 동료인 ‘준희’. 함께 일했던 동료의 부친상 소식에 회사 선배인 인선과 함께 문상을 가게 된 것이다. 상담 의사에게서 “되도록 밝은 생각을 하고 즐거운 자리에 자주 가라는 충고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오르게 된 이 기차행에서 준희에게, 그리고 다른 세 사람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건 이 낡은 카세트테이프에 오래전 엄마가 부른 노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편혜영, 「초록 스웨터」

엄마의 친구인 ‘영주 이모’가 몇 년 만에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나’에게 강화도에 가자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잠시 이모의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연락이 끊긴 지도 오래였다. 강화도에 가길 꺼리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영주 이모는 “받을 돈이 있”다고, “네 엄마 돈이야. 나주가 안 갚았어”라고 말하며 실용적인 이유를 댄다. 그러니까 강화도에 있다는 사람은 바로 나주 이모로 그가 엄마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것. 중학교 때 만나 친구가 된 엄마와 영주 이모, 나주 이모는 오랜 시간 함께 어울려 지내며 우정을 다져왔다. 그런데 빚이라니. ‘나’는 엄마에게 돈을 빌려야 할 만큼 나주 이모에게 다급한 사정이 있었는지 헤아리기도 전에 나주 이모가 그래서 엄마의 장례식장에 안 왔던 모양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모에게서 돈을 되돌려 받는 게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나’에게는 엄마가 죽기 전에 뜨다 만 초록색 스웨터가 있다. 아직 다 짜이지 않은 미완성 스웨터인 그 옷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당연히 엄마가 자신을 위해 뜨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품이 너무 컸다. 이 옷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모는 혹시 알까 싶어서 ‘나’는 스웨터를 챙겨 들고 영주 이모와 함께 강화도로 향한다. 하지만 나주 이모가 일한다는 식당에 들어섰을 때 어쩐지 긴장하는 영주 이모를 보며 알아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이 방문의 목적이 어쩌면 돈을 돌려받는 데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저자

김애란,김연수,윤성희,은희경,편혜영

저자:김애란
2002년대산대학문학상을수상하면서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달려라,아비』,『침이고인다』,『비행운』,『바깥은여름』,장편소설『두근두근내인생』등이있으며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신동엽창작상,김유정문학상,젊은작가상대상,한무숙문학상,이상문학상,동인문학상,오영수문학상,최인호청년문화상등을수상했고,『달려라,아비』프랑스어판이프랑스비평가와기자들이선정하는‘리나페르쉬상(Prixdel’inapercu)’을받았다.

저자:김연수
1993년『작가세계』여름호에시를발표하고,1994년장편소설『가면을가리키며걷기』로작가세계문학상을수상하면서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스무살』,『내가아직아이였을때』,『나는유령작가입니다』,『세계의끝여자친구』,『사월의미,칠월의솔』,『이토록평범한미래』,『너무나많은여름이』,장편소설『7번국도Revisited』,『꾿빠이,이상』,『사랑이라니,선영아』,『네가누구든얼마나외롭든』,『밤은노래한다』,『원더보이』,『파도가바다의일이라면』,『일곱해의마지막』등이있으며동서문학상,동인문학상,대산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상문학상,허균문학작가상,김만중문학상을수상했다.

저자:윤성희
1999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레고로만든집』,『거기,당신?』,『감기』,『웃는동안』,『베개를베다』,『날마다만우절』,장편소설『구경꾼들』,『상냥한사람』,중편소설『첫문장』등이있으며현대문학상,이수문학상,황순원문학상,이효석문학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한국일보문학상,김승옥문학상,동인문학상을수상했다.

저자:은희경
1995년동아일보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타인에게말걸기』,『행복한사람은시계를보지않는다』,『상속』,『아름다움이나를멸시한다』,『다른모든눈송이와아주비슷하게생긴단하나의눈송이』,『중국식룰렛』,『장미의이름은장미』,장편소설『새의선물』,『마지막춤은나와함께』,『그것은꿈이었을까』,『마이너리그』,『비밀과거짓말』,『소년을위로해줘』,『태연한인생』,『빛의과거』등이있으며문학동네소설상,동서문학상,이상문학상,한국소설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이산문학상,동인문학상,황순원문학상,오영수문학상을수상했다.

저자:편혜영
2000년서울신문신춘문예를통해작품활동을시작했다.소설집『아오이가든』,『사육장쪽으로』,『저녁의구애』,『밤이지나간다』,『소년이로』,『어쩌면스무번』,장편소설『재와빨강』,『서쪽숲에갔다』,『선의법칙』,『홀』,『죽은자로하여금』등이있으며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젊은작가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현대문학상,셜리잭슨상,김유정문학상,김승옥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안녕이라그랬어―김애란007
수면위로―김연수049
자장가―윤성희095
웨더링―은희경129
초록스웨터―편혜영167

인터뷰
고요와소란사이에서,음악과이야기사이에서
다섯명의작가와편집자가함께한인터뷰199

출판사 서평

다섯곡의음악,다섯편의이야기,다섯번의삶

“평소자기고통을남한테잘표현안하는
사람이부른이별노래같아.”
―김애란,「안녕이라그랬어」

‘은미’는최근몇년사이연이어두번의이별을경험한상황이다.하나는오랫동안사귄남자친구‘헌수’와의이별.또하나는병을앓다가돌아가신엄마와의이별.그런은미가슬픔과고립감속에서선택하는것은외국어를배우는일이다.엄마를간병하느라회사를그만둔뒤경력이단절된은미는자신이다시일을구하기가녹록지않은사십대의여성이라는사실을잘알고있음에도“당장영어만이라도시작해보자고”생각하며화상영어사이트인‘에코스’에가입한다.그리고수업을받던어느날,원어민교사‘로버트’로부터이런질문을받는다.“그런데한국어로‘안녕’은뭐라그래?”그말은은미로하여금칠년전의하루를상기시킨다.헌수와함께할미래를당연하게상상했던그때,은미는헌수가틀어준「러브허츠(LoveHurts)」를들으며평화로운아침을맞았었다.헌수와같이그노래를들을당시은미에게는애인과가족이있었다.당장내일에대한걱정이아닌먼훗날의미래를안정적으로그려나가는게가능했다.하지만더이상애인도가족도곁에없고“생활에대한압박감이턱밑까지차오르”는지금,은미는‘자신의고통을다른사람에게잘표현안하는사람이부른이별노래’같았던「러브허츠」처럼자신의슬픔을쉬이말할수없는상황에서자신이할수있는것과할수없는것,말할수있는것과말할수없는것,가능했던것과영영불발된것들을헤아리기시작한다.

“빛과어둠,고요와소음이서로교차하는여름밤은
그자체로완벽한오케스트라였다.”
―김연수,「수면위로」

애인인‘기진’이죽은후삶에대한의지를상실한‘은희’는도저히숨을쉬는게어려운어느날,유튜브에서‘호흡하는법’을검색했다가‘유주’라는사람이올린한동영상을보게된다.‘숨쉬기가어려울때마다나무바라보기’라는제목의그동영상에서유주는숨을제대로쉴수없을때에는나무앞으로가서나무를바라보라고설명한다.나무를가만히바라보고있다보면흔들리는부분을찾아낼수있고,그고요한몰입의시간을통해숨을쉰다는사실자체를잊어버릴수있다는것.유주의호흡법에뜻밖에효과를본은희는유주가올린다른동영상을보다가낯익은얼굴이화면에등장하며익숙한목소리로이렇게말하는것을듣게된다.“우리얘기좀할래요?”그건분명기진의목소리였다.그리고하이라이트로편집한영상이빠르게지나간후동영상의제목이나왔다.‘영천에서오므라이스를먹다가만난시간여행자’.시간여행자라니,대체무슨말일까싶지만‘영천의오므라이스’에대해서라면은희도아는바가있다.기진과함께연주회를본후산책을했던몇년전여름밤,비밀이많은기진이드물게꺼낸자신의과거이야기가바로‘영천의오므라이스’에대한것이었기때문이다.우울증을앓고있던엄마와같이지내다가영천으로이사를갔고,그동네에있는오므라이스로유명한중국집에서오므라이스를먹은뒤삶의방향이바뀌게되었다는이야기.기진은왜그날영천에갔던것일까.삶의전환이필요할만큼의어려움을겪고있었던것일까.은희는유주가올린동영상을하나하나살펴보며기진과의시간을되돌아본다.

“나는나지막이노래를불렀다.
엄마가자면서미소를짓는것같았다.”
―윤성희,「자장가」

오늘은‘나’가고등학교에입학하고네번째로맞이하는‘짝짝이양말의날’이다.중간고사와기말고사가끝나면양말을짝짝이로신고등교하는그행사는,기말고사가끝나고한학생이옥상에서투신자살한사건에충격을받은교장선생이만든것이다.왜하필짝짝이양말일까?교장선생은학창시절한친구가자신에게짝짝이양말을선물해주었던것을잊지않고있었기때문이었다.그때친구는선물을주며이렇게말했다.“우울한날에는이양말을신어줘.”설레는마음으로검은색양말과흰색양말을신고학교로향한‘나’는평소처럼친구들과웃고떠들며하루를보낸다.하지만평범했던이일상은‘나’가집으로가는길에사고가일어나면서커다랗게뒤흔들린다.신호등초록불이몇초남지않은횡단보도를빠르게건너다가오른쪽에서다가오는트럭에치이기때문이다.하지만놀라운일은그다음에일어난다.‘나’는죽었지만완전히죽은것은아닌것.그러니까주변의사람들을볼수있고노래를따라부를수있다.다만아무도자신을볼수없고자신의소리를들을수없을뿐이다.‘나’는자신의장례식이끝난후엄마를따라집으로간다.혹시엄마가자신의죽음에슬퍼해잠들지못할까걱정이되니까.

“귓속을파고드는음악이마치숲과빗줄기와바람의연주같았다.
자신은그곳에처음으로초대받은작은아이처럼느껴졌다.”
―은희경,「웨더링」

비가하염없이내리는7월,기차의4인석에는네명의인물이마주앉아있다.우선‘기욱’.G시에서열리는클래식음악행사의진행과음악해설을맡은기욱은당장네시간뒤에열리는행사장에무사히도착해야하는입장이지만,예매날짜를당일이아닌다음날로해놓은것을깨닫고꼼짝없이한자리남은4인석에앉게된다.기욱의옆자리에앉은사람은희끗희끗하게머리가센나이든‘노인’.다른사람들과의대화를애초에차단하겠다는듯그는커다란오선지악보를펼쳐든다.그런데오선지에적힌음악의곡명이기욱의시선을잡아챈다.그음악은중학교시절괴팍하고신경질적인음악교사가가르쳐준곡이기때문이다.그러고보니어쩐지노인의얼굴이음악교사와닮은듯싶어기욱은곁눈으로계속그를살핀다.노인이펼친악보를보고놀란사람은또있다.바로앞좌석에앉은‘인선’.그음악은지금은헤어진옛애인과의사랑의시작을가능하게했던곡이다.그사람과재회할지도모른다는일말의가능성을품고기차에앉아있는인선은그음악의곡명을바로눈앞에서마주한것이일종의계시가아닐까하는생각이들어가슴이두근거리기시작한다.그리고마지막으로인선옆에앉아있는사람은그의회사동료인‘준희’.함께일했던동료의부친상소식에회사선배인인선과함께문상을가게된것이다.상담의사에게서“되도록밝은생각을하고즐거운자리에자주가라는충고를들은”지얼마지나지오르게된이기차행에서준희에게,그리고다른세사람에게과연어떤일이일어날까.

“그건이낡은카세트테이프에오래전엄마가부른노래가
남아있을지도모른다는뜻이었다.”
―편혜영,「초록스웨터」

엄마의친구인‘영주이모’가몇년만에느닷없이전화를걸어와다짜고짜‘나’에게강화도에가자고한다.엄마가돌아가신후잠시이모의집에서살았던적이있지만시간이흐르면서연락이끊긴지도오래였다.강화도에가길꺼리는‘나’의마음을눈치챘는지영주이모는“받을돈이있”다고,“네엄마돈이야.나주가안갚았어”라고말하며실용적인이유를댄다.그러니까강화도에있다는사람은바로나주이모로그가엄마에게돈을빌린뒤갚지않았다는것.중학교때만나친구가된엄마와영주이모,나주이모는오랜시간함께어울려지내며우정을다져왔다.그런데빚이라니.‘나’는엄마에게돈을빌려야할만큼나주이모에게다급한사정이있었는지헤아리기도전에나주이모가그래서엄마의장례식장에안왔던모양이라고결론을내린다.그렇게생각하자이모에게서돈을되돌려받는게당연한수순처럼여겨진다.게다가‘나’에게는엄마가죽기전에뜨다만초록색스웨터가있다.아직다짜이지않은미완성스웨터인그옷을처음보았을때‘나’는당연히엄마가자신을위해뜨기시작한거라고생각한다.하지만그러기에는품이너무컸다.이옷의주인이누구인지이모는혹시알까싶어서‘나’는스웨터를챙겨들고영주이모와함께강화도로향한다.하지만나주이모가일한다는식당에들어섰을때어쩐지긴장하는영주이모를보며알아챘어야했는지도모른다.이방문의목적이어쩌면돈을돌려받는데있는것이아닐지도모른다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