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꽃은 거기에 놓아두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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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코클리코 요양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생애
우리의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2022년 기준 OECD 회원국의 평균 기대 수명은 80.5세,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83.5세다. DNA 분석을 통해 확인된 인간의 자연 수명이 38세라고 하니 현대인은 경이로울 정도로 오래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장수는 과연 축복일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옛사람들의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할까? 고령에 따른 노화와 질병, 외로움, 빈곤 등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기억이 흐려지고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려 더 이상 스스로의 몸과 정신을 통제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 존엄한 삶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행복하고 존엄하게 산다는 건 도무지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꽃은 거기 놓아두시면 돼요』는 노인 요양원을 배경으로 노년의 삶을 그려 보이는 그래픽노블이다. ‘코클리코 요양원’에 들어온 노인들은 누군가의 수발 없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가족들의 돌봄도 여의치 않은 인물들이다. 휠체어를 타거나 치매를 앓는 게 아니었다면 얼마든지 혼자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하는 등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했을 테고, 그랬다면 굳이 요양원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든 부모의 이삿짐을 부려놓고 떠나는 자식들은 얼마간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늙은 부모를 돌보느라 젊은 자식의 삶을 희생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노인의 돌봄을 가족에게 미루는 건 현대 국가에서 피해야 할 해악이다. 따라서 집처럼 안락하고 다정한 돌봄이 있는 노인 요양원이란 오늘날 사회복지의 대표적인 얼굴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노인들이 시설에서 보내는 마지막 생애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는가이다.
이상하게도 『꽃은 거기 놓아두시면 돼요』는 이야기의 초점을 노인들의 ‘웰다잉’에 맞추기보다 약간 비껴서 그들을 돌보는 간호사 에스텔에게 정조준한다. 에스텔은 남자친구와 지지부진한 연애를 하고 휴식 시간에는 동료와 시시덕거리고 가끔은 클럽에 가서 술에 취하는 평범한 청년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말년을 지켜보고 돌보고 마침내 죽은 이들의 시신을 닦아 떠나보내는 돌봄 노동자다. 목욕시키던 남성 노인의 신체 변화에도 도리어 위로를 건넬 만큼 다정하고 섬세한 에스텔은 노인들을 돌보는 동안 어떻게든 평안한 나날을 보내게 해주려고 애를 쓴다. 젊은 시절의 기억 속에 잠겨서 에스텔을 동성 애인으로 여기는 노인이나 평생 공장 노동자로 살았으면서 자신이 프라하 주재 프랑스 대사였다고 주장하는 노인을 대할 때 에스텔은 그들의 판타지에 적극 동조한다. 때로는 가족들의 원성을 사고 상사에게 경고를 듣기도 하지만 진짜 삶과 진짜 기억, 지금 여기에서의 만족스러운 시간 중 무엇이 중요할까. 요양원의 노인들은 그저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여야 할까?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떠나고 나면 돌봄 노동자는 냉정한 얼굴로 빈 침대를 정리하고 새로운 입소자를 맞으면 그만인 걸까?

저자

캉탱쥐티옹

캉탱쥐티옹은시나리오작가이자만화작가다.디종국립고등미술학교를졸업한후블로그에올린‘미스터큐의작은거짓말’이라는작품이소셜네트워크를통해널리알려졌다.2016년에는첫번째작품인『날개들Desailes』을발표했으며,이후『침대아래에서Souslelit』와『색시증Chromatopsie』을출간했다.2022년『모든공주는자정이후에죽는다』와『LaDameblanche』를함께발표했다.쥐티옹의성숙한작품들은몸,동시대의사랑,정체성에대해탐구하고시적감수성과폭력성사이를오가며우리시대를드러낸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모두노인이되고언젠가죽는다
돌봄의순환과그아름다움에대하여

『꽃은거기놓아두시면돼요』를펼치면얼음처럼푸른색과흰색을기본으로하는서늘한이미지들이모든책장마다가득하다.이따금등장하는빨간입술과담뱃불,알록달록한꽃들은우리삶에가끔씩만존재하는기쁨이나즐거움처럼보인다.특히주름과검버섯으로가득한노인들의얼굴은생생하고리얼하지만동시에비극적인아름다움을표현해낸다.요양원에입소한노인들에게는각자의삶이있다.기억을잃어버린엄마에게가족앨범을보여주는딸,기꺼이할아버지의대화상대가되어주는손녀처럼규칙적으로방문하는가족들도있다.그러나시간이흐르면가족들의발걸음이뜸해지고노인들은점차잊혀져간다.노인들도기력이쇠하고가족에대한기억도흐릿해지니피차마찬가지일지모른다.존재도,관계도스르르소멸해가는삶.그러나여전히노인들의삶은계속되고있고,에스텔은그속에함께있는존재다.평생이루지못한꿈과죽을때까지남는회한같은것들을뒤늦게환상속에서나마충족시킬수있다면그러지말아야할이유가어디있을까.문제는에스텔이노인들을돌보고일상적으로죽음을맞는동안거듭해서이별과상실을경험해야한다는데있다.“내가애정을가졌던사람의시신만벌써수백구를봤어.누구도,진짜어느누구도괜찮냐는말한마디로우리를챙겨준적없어.”

돌봄노동자에게맞는마음가짐과태도는무엇일까?가족의영역에있던돌봄이공식적인노동이되면서이따금돌봄은차갑고의무적인행위로치부될때가있다.누군가를먹이고씻기고대화를나누는일들이아무런감정없이가능하기라도한것처럼.에스텔은죽은노인들이남기고간물건들을하나씩빼돌려서랍속에고이모으고자신에게이정도유품을가질권리쯤있다고주장한다.에스텔에게노인들은처리해야할일거리가아니라한사람한사람의인간이자사랑의대상이었기때문이다.수많은노인들을돌보다가떠나보내는동안에스텔이경험하는상실감은단순히지나치게예민하고인간관계에과몰입하는성향때문은아닐것이다.우리는모두노인이되고언젠가죽는다.그러니요양원에서죽음을기다리는노인들이어떻게완벽한타인일수있을까.에스텔이느끼는혼란과슬픔,비통함은삶과죽음의경계에서누구나느낄수있는보편적인감정일것이다.

생애주기상인간은필연적으로누군가의돌봄을필요로한다.그리고질병이나장애가있는사람,너무어리거나너무늙은사람을돌보는것은공동체가마땅히나눠야할책임이다.우리는모두서로를돌보고돌봄을받을수밖에없다.내가너와다르지않다는걸제대로이해하고타인에게감정이입을하는것보다중요한일이또있을까.그리고그것이야말로이야기와예술이가진진짜효용일것이다.『꽃은거기놓아두시면돼요』에서이야기의막바지에이르면독자들은충격적이지만지극히당연한장면을맞이하게될것이다.그리고이윽고겸허하게우리의삶을통시적으로돌아보게될것이다.『꽃은거기놓아두시면돼요』는밀도높은서사를통해삶과죽음,돌봄,돌봄노동에대해진지하게고민해보기를권하는한편,서늘하고아름다운그림을감상하는예술적재미도담아낸그래픽노블이다.죽음앞에선우리모두가읽어야할책이다.

책속에서

p68
정말로.네눈에비친세상과,내모습이어떤지…또네가사는세상이어떤지알수있다면좋겠어…

p91
내나이가서른셋인데내가애정을가졌던사람의시신만벌써수백구를봤어.누구도,진짜어느누구도괜찮냐는말한마디로우리를챙겨준적없어.그래서내가어쨌게?그래,내가나자신을챙겨주기시작한거야.소소한추억거리를챙겼다고.나도이정도유품은받을자격이있잖아!

p92
있잖아…나도이해해.누구나소중한사람을잃으면한바탕실컷우는게당연하니까.근데너,평생울고만살수는없어.

p101~102
내손녀딸앞에서만큼은싫다네.애가걱정을하잖나.그러니자꾸나한테서멀어지려고하는게야.어디그애를나무랄수야있겠나.그아이의눈빛을보면...나때문에겁을먹고있다는느낌이들거든…

p129
네가원하는현실을선택하면돼.낯선모습을쫓아내든지,받아들이든지.선택은너의몫이야.변함없는진실을생각하면돼…내생각을하면되는거야.

p145
에스텔,어르신들이죽기전에마지막으로보게될사람들은우리야.그사실을본인들도여기들어올때부터안다고.우리가가족이나유모,친구가되어드리겠다고스스로다짐하기는쉽지만…그렇게될순없어.아침마다커피를가져다드리는우리는,그분들에게단지자신이삶의끝에다다랐음을매일일깨워주는존재일뿐이야.

p157
저는간호사로서제게맡겨진사명이이런거라고생각합니다.진실과망상중무엇이고통을주는지파악하고…고통을덜어드리는것말입니다.

p204
나는마녀이기도했고…손녀딸도되었다가…심지어는천사가되기도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