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우리는 왜 이토록 자유롭고 민주화된 시대에 인간을 불안에 떨게 하는 노동을 감내하는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매니지먼트의 기본 원리에서 나치즘의 흔적을 발견하다
나치 친위대 장군이자 나치즘의 핵심 이데올로그에서 독일 경영학의 원로가 된 라인하르트 혼, 그의 머릿속을 추적한 역사 르포르타주
당연하다고 여겨온 매니지먼트의 기본 원리에서 나치즘의 흔적을 발견하다
나치 친위대 장군이자 나치즘의 핵심 이데올로그에서 독일 경영학의 원로가 된 라인하르트 혼, 그의 머릿속을 추적한 역사 르포르타주
나치. 그들의 잔혹한 폭력성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인류에 쓰디쓴 자성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나치가 충격적인 이유는 인류를 학살한 유일한 사례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치 이전에도 분노로 점철된 민족·인종 청소는 있어 왔다. 그럼에도 다른 사례에 비해 유독 나치가 지금까지도 더 많이 회자되는 까닭은 그 체제의 구성원들이 나름의 확고한 이념적·법적·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학살을 행했다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독일 민족과 인류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다. 바이마르 민주 공화국의 시민들을 나치, 또는 나치에 협력하는 전사로 만든 것은 인종주의, 우생학, 사회적 진화론, 레벤스라움처럼 상아탑에서 개발한, 가장 세련된 형태의 이론들이었다. 그 사상들이 뒤를 받쳐주었기 때문에 아이히만은 고도의 효율성과 냉정함을 발휘하여, 숱한 유대인을 죽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 인류는 혐오스럽지만 탄탄한 논리를 갖춘 그 이론들의 주조자들을 연구해야 한다.
그런 이데올로그 중 라인하르트 혼이 있다. 그는 나치 친위대 산하 보안대의 장군이었다. 법학자였던 그는 전체주의의 핵심이었던 '공동체'를 집요하게 파고든 인물이다. 그는 왜 개인은 공동체에 헌신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나치의 대답을 만들었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아주 아이러니하다. 공동체에 헌신, 복종하는 개인은 자유롭다. 개인은 공동체에 복종하고, 그것의 수족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개인은 공동체의 기계부품이 아닌 살점이고 혈액이고 뼈이기 때문에, 공동체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획득한다. 손톱과 발톱이 인체라는 공동체 없이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나치는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흩어졌던 독일 민족, 187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독일 민족에게 강력하게 호소했다. 복종하라, 자유를 누리리라.
물론 이러한 공동체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데에는 간계가 숨어 있다. 이는 독일 민족 구성원들의 노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방의 적들과 대규모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일 민족 구성원은 일당백의 효율을 발휘해야 했다. 도덕적 망설임, 자아 고찰 따위의 비생산적인 행위에 탄환을 만들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될 노릇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강대국 틈에서 독일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인종적 우월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오로지 생산에 투입해야만,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독일 민족은 유기체처럼 한 몸이 되어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나치는 패배했다. 종전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매니지먼트 학자로 변모한 나치 장군 라인하르트 혼은 나치가 패배한 이유를 충분히 '나치답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그가 주조한 나치즘을 현실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학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며 그는 군 조직의 역사를 고찰한다. 그의 시선으로 기업체는 현대사회의 군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프로이센의 부흥기를 이끈 개혁가들, 특히 샤른호르스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나치 시대부터 쭉 이어온 그의 나치즘 공동체 사상에 더해 샤른호르스트의 가르침을 얹어 그는 '위임의 위계' 원칙을 만들어 낸다. 즉 관리직을 맡은 중간 간부급 직원들에게 권한을 거의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그의 자율성을 확보해준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의 참여, 게르만의 자유'를 울부짖었던 나치만큼이나 라인하르트 혼의 매니지먼트는 자율과 참여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인을 물상화하고 착취, 학대했던 나치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에는 크나큰 반도덕성이 내재해 있었다. 그의 '위임의 위계' 안에서 우리는 '도태 되지 않을까', '혹시나 상사의 눈밖에 나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그리고 하급 직원을 착취하고 학대하게 된다. 라인하르트 혼의 경영학은 바트 하르츠부르크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독일식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독일 경영학의 큰 뿌리가 되었으며, 그는 원로로 추대되었다.
이 책은 우리의 통념, 즉 너무 강력히 머릿속에 달라붙은 그 개념에 도전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이론들, 단지 도구라고만 여겼던 매니지먼트학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삶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우리가 직장에서 행했던 모든 소소한 일들이 지금껏 그토록 손가락질했던 나치의 모습과 어쩌면 닮은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내림차순으로 이어지며 반복되는 학대와 증오의 사슬을 단절하려면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어떤 원리에 의해 조장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한다.
그런 이데올로그 중 라인하르트 혼이 있다. 그는 나치 친위대 산하 보안대의 장군이었다. 법학자였던 그는 전체주의의 핵심이었던 '공동체'를 집요하게 파고든 인물이다. 그는 왜 개인은 공동체에 헌신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나치의 대답을 만들었다.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이 아주 아이러니하다. 공동체에 헌신, 복종하는 개인은 자유롭다. 개인은 공동체에 복종하고, 그것의 수족이 될 때에야 비로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개인은 공동체의 기계부품이 아닌 살점이고 혈액이고 뼈이기 때문에, 공동체와 완전히 하나가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진정한 존재의 이유를 획득한다. 손톱과 발톱이 인체라는 공동체 없이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나치는 오랫동안 지리멸렬하게 흩어졌던 독일 민족, 1871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프로이센에 의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던 독일 민족에게 강력하게 호소했다. 복종하라, 자유를 누리리라.
물론 이러한 공동체 개념을 정립하고 발전시킨 데에는 간계가 숨어 있다. 이는 독일 민족 구성원들의 노동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착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방의 적들과 대규모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독일 민족 구성원은 일당백의 효율을 발휘해야 했다. 도덕적 망설임, 자아 고찰 따위의 비생산적인 행위에 탄환을 만들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될 노릇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강대국 틈에서 독일 민족이 살아남으려면 인종적 우월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오로지 생산에 투입해야만, 적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독일 민족은 유기체처럼 한 몸이 되어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나치는 패배했다. 종전 이후 우여곡절 끝에 매니지먼트 학자로 변모한 나치 장군 라인하르트 혼은 나치가 패배한 이유를 충분히 '나치답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즉 그가 주조한 나치즘을 현실에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학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서며 그는 군 조직의 역사를 고찰한다. 그의 시선으로 기업체는 현대사회의 군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프로이센의 부흥기를 이끈 개혁가들, 특히 샤른호르스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나치 시대부터 쭉 이어온 그의 나치즘 공동체 사상에 더해 샤른호르스트의 가르침을 얹어 그는 '위임의 위계' 원칙을 만들어 낸다. 즉 관리직을 맡은 중간 간부급 직원들에게 권한을 거의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그의 자율성을 확보해준다는 것이다. '공동체에의 참여, 게르만의 자유'를 울부짖었던 나치만큼이나 라인하르트 혼의 매니지먼트는 자율과 참여를 강조한다. 하지만 개인을 물상화하고 착취, 학대했던 나치와 마찬가지로 그의 말에는 크나큰 반도덕성이 내재해 있었다. 그의 '위임의 위계' 안에서 우리는 '도태 되지 않을까', '혹시나 상사의 눈밖에 나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그리고 하급 직원을 착취하고 학대하게 된다. 라인하르트 혼의 경영학은 바트 하르츠부르크 방식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독일식 사회적 시장 경제 체제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독일 경영학의 큰 뿌리가 되었으며, 그는 원로로 추대되었다.
이 책은 우리의 통념, 즉 너무 강력히 머릿속에 달라붙은 그 개념에 도전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이론들, 단지 도구라고만 여겼던 매니지먼트학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삶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우리가 직장에서 행했던 모든 소소한 일들이 지금껏 그토록 손가락질했던 나치의 모습과 어쩌면 닮은 것은 아닐지 생각하게 한다. 내림차순으로 이어지며 반복되는 학대와 증오의 사슬을 단절하려면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 어떤 원리에 의해 조장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한다.
복종할 자유 : 나치즘에서 건져 올린 현대 매니지먼트의 원리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