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보니 (양장본 Hardcover)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보니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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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새로운 생명이 세상과 만나는 곳에서 무수한 관계를 깨닫는 의사 시인,
아프고 슬프면서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는 게 인생이라 여겨…
아픔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자라고, 상처를 남기고, 그리고 힘들게 승화해간다. 삶의 현장, 새로운 생명이 세상을 만나는 곳에서 무수한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시인도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실토한다. 그런 관계 속에서 ‘초심’을 생각하는 시인은(「관계」), 황혼 속에서 부모의 죽음을 인지하고, ‘죽는 법과 다시 사는 법’을 배운다(「황혼」). 그림 그리며 글 쓰는 의사 시인 고영미의 작품들은 이렇듯, 처음에는 낯익게 다가왔다가 결국에는 어떤 묵직한 깨달음 한 토막을 던져놓고 간다.

이 시집의 또 다른 매력이자 반전은 시와 함께 수록된 시인의 ‘그림’들이다. 시인이 그림을 그리고 글까지 얹게 된 계기는 뜻밖에도 남편과의 이별. 병을 얻은 남편이 어릴 적 꿈이던 그림을 그리고자 사두었지만 끝내 그리지 못했던 스케치북과 미술도구를 시인이 대신한 것이다. 연필과 파스텔로 그려낸 그림들이 하나하나 시와 나란히 대응을 이루고 있다. 시를 읽던 눈이 그림에 가 닿으면 그곳에는 또 다른 예인(藝人)의 숨결이 들린다. 서툰 듯 그려간 터치가 오히려 더 담백함을 북돋아준다.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은 그렸지만 끝내 시인의 모습은 남기지 못하고 떠나간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그림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저자

고영미

그림그리며글쓰는의사시인.1963년생.중앙대의학과를졸업했다.가톨릭대의대에서산부인과학전문의자격을취득했으며,동대학에서석·박사학위취득후10여년동안여의도성모병원,성바오로병원등에서전임강사와조교수로근무했다.지난2005년부터산부인과분만의원을운영하고있다.
분만의원을운영하는의사의결혼생활에대한감회는“어느날문득”이아니라항상뒤죽박죽이다.잘산다고,잘했다고여겼던인생이고일상이었지만막상남편이덜컥암에걸리는시련이닥쳐왔고,시간이흐른후돌아보니복잡한자신의인생에그를끌어들인것같은회한에마음이아팠다.
완벽주의자인남편은그림을그리고싶은의욕에안정을찾으며많은스케치북과미술도구를사놓았다.어릴적아들모습은쉽게그렸으나정작시인의모습은그림을잘그리게되면그려주겠다고하고서는모든걸뒤로한채떠났다.그런후몇년이코로나19와함께훌쩍지나갔다.어느날부터남편이남겨놓은빛바랜스케치북에시인이그림을그리고글을썼다.
일상이힘들어도즐길것이많은사람은행복하다고여긴다.즐길것이돈이덜드는것,시간을덜써도되는것,오감으로느낄수있는것,신체를써서할수있는것이라면남은인생도행복할수있다고생각하는사람이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우리는

지는꽃들에대한자세
친구(親舊)에게
Nothingelsematters
새가되면
Covid-19
처음처럼
어느날문득
대보름아기
보여지는것
달팽이
수산시장에서
안산에서
울고있는아가에게
우리
옛날이야기


〈제2부〉사는법

사라짐의기술
강가에서
관계
춘천(春川)
화요일엔비가
너덜바위
이유
비와불면
비내리는고가도로
황혼
Whowantstogoonforever
기약
상갓집
사라진두친구에게바침


〈제3부〉다시사는법

한가위에응급
연꽃감상
친구딸의결혼식
위로
아들과고양이와부엉이
우린
마님이
돈다,돈
강릉에서
송정해변
저바다와같이
색.감
관송(觀松)
하멜등대
지붕위
그림을그리고싶었는데시간이없었네

시인소개·고영미

출판사 서평

그림그리며글쓰는의사시인,그가세상을껴안았다

응급상황과분만이있을때,밤에도가면을써야했던산부인과의사
완벽주의자인남편떠나보내고,문득인생길되돌아보게돼
남편이남겨놓은빛바랜스케치북에그림그리고글곁들여
마음에들어와가슴치고머리를움직이는시간들의의미재해석
인생은,아프고슬프면서도행복한순간들있다는것깨달아…

의사시인이라고요?

시인의직업은다양하다.‘시인’이직업인이도드물게있지만,대부분은먹고살기위한생업을가지고있다.의사라는직업을가지고시를쓰는이들도많다.대표적으로마종기시인을들수있다.연세대의과대학본과3학년이던1959년,시「해부학교실」등의작품으로박두진시인의추천을받아〈현대문학〉을통해등단한이후,꾸준히시작활동을했던시인이다.2012년5월에는‘한국의사시인회’라는시인단체가만들어지기도했다.그만큼시를쓰는의사들이많다는이야기다.
그런데이들‘의사시인’을두고다소편견이섞인시선도존재한다.특수한직업에종사하는이들일수록신기한(?)눈길을보낸다.하지만‘시인’앞에직업을붙일필요는없을듯하다.오롯이‘시’로만공감을다지고,시인이펼쳐낸언어의풍경과배경안으로들어가는게중요할뿐….
한국의사시인회가2016년제4시집『가라앉지못한말들』의출간기념회를열었을때,한문학평론가가했던말이의미심장했다.문학평론가이경철은이자리에서“그좋은직업을갖고(의사들은왜)밥도뭐도안되는빌어먹을시에왜목매달고들있는가.순정한삶의핵이요시의알파요오메가이면서도결코채워지지않는그리움.그리움때문”이라고말했다.그러면서그는“‘의사시인’이란말은필요없다.시인이면그냥시인이다.예나지금이나시써서밥벌어먹기는힘들다.해서전업시인은드물고대부분다른직업을갖고있다.”라고지적하면서,“의사시인이고농민시인이고또무슨,무슨시인이고간에직업에따라시가별쭝난것도아니다.그냥시이다.시인앞에직업을붙이는것은시와는별개의짓으로오히려시의시성만떨어뜨리는선입견을주입해역작용을부를수있다.”라고강조했다.시앞에는그무엇도놓을필요가없다는발언이다.

‘사는법’에서‘다시사는법’을깨닫다

고영미의시집『세상에서인간으로살아보니』는모두45편의시를담고있다.제1부‘우리는’15편,제2부‘사는법’14편,제3부‘다시사는법’16편이다.시의소재도다양하다.안산이나춘천,강릉,송정해변같은구체적인공간에서부터관계,이유,위로와같은추상적상황등,시인의몸과시선,관계망이형성된자리까지폭넓게소환된다.이는고영미의시편들이편안하고담담하게읽히는이유의하나이기도하다.
시집에수록된첫번째시는「지는꽃들에대한자세」다.‘꽃들에대한자세’인데,‘활짝피어나는꽃’이아니라‘지는꽃들’이라는데주목할필요가있다.“갓피어난꽃들만/황홀히들여다보지마라.”라고시인은노래한다.아픔을겪은자,밤새창가를두들기는바람소리에불면의시간을보내면서,문득어떤그리움하나를발견한이들이낼만한발언이다.그러기에시인은“나,한때는앳된씨앗으로/거친대지를뚫고나온인고의성년”이라고자신을응시한다.
시집에수록된마지막시편은「그림을그리고싶었는데시간이없었네」.눈밝은독자라면쉬알아차릴것인데,이시는‘사부곡(思夫曲)’이다.그는,“어느날,연필도사고물감도사고평소에안사던/비싼스케치북도샀”던사람이지만,“모든것을그대로남기고/드로잉만수채화만조금그리다가/노란색을좋아한다는말을남기고…”훌쩍떠난시인의남편이다.1930년대시인이상이‘멜론’을말하고세상을떴다면,시인의남편은‘노란색’을말하고삶을접었다.그가말한노란색에서어쩌면시인은다시사는삶의희망하나를힘겹게발견했을지도모른다.
그렇다.아픔은언제어디서나우리와함께머물고,자라고,상처를남기고,그리고힘들게승화해간다.삶의현장,새로운생명이세상을만나는곳에서무수한사람과의관계를만들어가는시인도인간관계가어렵다고실토한다.그런관계속에서‘초심’을생각하는시인은(「관계」),황혼속에서부모의죽음을인지하고,‘죽는법과다시사는법’을배운다(「황혼」).고영미의시들은이렇듯,처음에는낯익게다가왔다가결국에는어떤묵직한깨달음한토막을던져놓고간다.
이시집의또다른매력은시와함께수록된시인의‘그림’들이다.연필과파스텔로그려낸그림들이하나하나시와나란히대응을이루고있다.시를읽던눈이그림에가닿으면그곳에는또다른예인(藝人)의숨결이들린다.서툰듯그려간터치가오히려더담백함을북돋아준다.
그렇다면,시인고영미는왜시를쓰는것일까?「보여지는것」이란시가힌트를준다.“시간에따라/있는그자리에서그꼭짓점에서/보여지는그대로잘살았다고/말하고싶습니다.”라고시인은노래한다.이말을전하고싶은이는먼저간그의반려자,혹은그가불면의밤에만났던무수한뭍생명일수도있으리라.그렇지만그는아직해답을완전히찾아내지는못한것같다.여전히비내리는밤,“雨雨雨/그대도들었군요.빗소리/취해잠들리.저빗소리”라고몸부림치며불면을앓기때문이다.
“주어가단수인건세상에서가장재미없는일/우리가무엇에관심이있든없든/어떤일을하든안하든/우리인것은변하지않는다.”(「사라짐의기술」)라고말하는이시인의성찰과언어가어디로뻗어갈지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