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장례식

행복한 장례식

$15.00
Description
1991년 8월, 뉴욕시의 아파트에서 러시아 이민자들이 ‘알릭’이라는 임종 직전의 예술가 주위에 모인다. 죽어가는 남자와 러시아에서의 삶에 대한 그들의 회상은 논쟁과 말다툼으로 강조된다. 루드밀라 율리츠카야의 소설 ‘행복한 장례식’(Веселые похороны)은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성공하지 못한 화가인 알릭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린다. 러시아 이민자들이자 유태인들인 이 친구들은 보드카를 마시면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알릭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는데, 때 마침 텔레비전을 통해 모스크바의 쿠데타를 시청하게 되면서 이들은 러시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삶과 죽음, 사랑과 비탄, 가정과 이민에 대한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놀라운 지점은 알릭이 죽은 다음에 일어난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없이 어떻게 인생이 계속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 속에서 소용돌이 치는 삶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하나의 커튼 뒤에 있는 세계는 새로운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

류드밀라울리츠카야

1943년러시아바시키르자치공화국에서태어나,제2차세계대전종전후가족과함께모스크바로왔다.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생물학을전공하고유전학연구소에서근무하다가1970년지하출판물을소지하고유포했다는이유로해고당했다.그뒤로모스크바유대인극장에서일하면서각본,평론,소설등을쓰며창작활동을시작했다.

1992년중편소설『소네치카』로러시아부커상최종후보에올랐고메디치상,주세페...

출판사 서평

최후의만찬과희생제의,그리고행복한장례식

생활의일상적이고세부적인사항을차분한시선으로꾸준히들여다보는능력이탁월한,‘보통사람’의이야기직조자로서울리츠카야는「소네치카,1992」에서고전에뿌리내린세계의저력을,『메데야와그녀의아이들,1996』에서가족,이산의문제를통해신화적상상력을유감없이내보이며구소련몰락이후사회주의리얼리즘전통을대체할러시아문학의보편적세계관을향해모험을시작했고,두작품에이어발표한장편이바로미국뉴욕으로이주한러시아인들의이야기『행복한장례식,1997』이다.이작품은10년뒤감독블라디미르포킨이영화화했다.주연알렉산드르압둘로프는극중자신이맡은배역인알릭처럼몇년후종양으로세상을떠나배역이배우에게예언이되었다.

작가가훗날인터뷰에서밝힌바에의하면,두아들은십년간미국에살았고작가는매년아이들을만나기위해일정기간미국에머물며같은언어를쓰는사람들,즉러시아이민자사회에서그들이관계맺는방식과그들의운명이나아가는방향을관찰했다.그렇게쓰인소설이『행복한장례식』이다.소설은별도의소제목없이1부터21까지의장면번호로만구분되어있다.이야기는더운날,죽어가는알릭과급격히마비되어가는그의무력한몸을둘러싸고있는거의벌거벗은여자들에대한묘사로시작된다.그여자들은그가사랑했거나그를사랑했거나그에게영향을받았다.모두그를돌보기를자처한다.알릭은누구라도그를아는사람이면사랑에빠지지않을수없는치명적매력을가진남자다.그의아파트는집이면서집이아닌곳이다.

“그들이사는집은그저지나다니는통로같은곳이었다.아침부터밤까지사람들로붐볐는데밤에도누군가는꼭남아있었다.파티라면몰라도정상적인삶을살기는불가능한장소였다.다락창고를개조한곳으로,합판칸막이로끝쪽을막아작은부엌,화장실과샤워실,손톱만한창문을낸침실을구분했다.조명이두개달린커다란작업실도있었다.”

울리츠카야는코뮤날카(공동주택)의18제곱미터짜리방에서가족과함께보낸유년의기억을가졌다.건물뜰에서다양한모습으로살아가는주민들과사귐을가졌던기억도.그러니까이창고같은건물꼭대기알릭의작업실또한작가가상상하는러시아적소통의핵심장소로역할을해내고있는것으로보인다.

많은여자중에핵심적인인물은이리나다.소련에서서커스단원이었고이주해온미국에서이제막날개를달기시작한변호사다.자폐장애를가진딸이하나있고알릭과는소련에있을때연인관계였다.지금알릭의아내는니나다.소련정보국고위층의딸이지만알릭을뒤쫓아무작정미국행을택했다.심신이미약하고알코올중독에빠져있다.또다른사람은발렌티나다.수년전샌드위치가게에서우연히만난이후,알코올중독에빠진니나가잠든새벽부터오전시간에걸쳐알릭이불륜관계를맺어온여자다.이야기가진행되면서많은사람이알릭의아파트를찾아온다.이야기전반에걸쳐알릭의친구들과집주인,정교회신부,유대교랍비가등장한다.

알릭은기적을베푼다.5살때자폐장애를진단받은15세소녀마이카는알릭을만나자폐증세가사라진다.별다른치료법이드러나지않는‘대면’으로일어난일이므로기적이라할만하다.혹은,현대서구의학이지니는증상억제위주의치료법에대비되는러시아적관계맺기와공동체적우애가강조되기도한다.그의죽음을앞두고정교사제와유대교랍비를소환시킴으로써두종교지도자는각자의신념을변론한다.그의육신은미국에닿아진정이방인의지위를획득했으며죽음에이르러정교도도유대교인도될수없는,러시아인이지만더이상러시아인이아닌자신의정체성에대해뒤로물러설수없는질문을던진다.알릭은두종교지도자의인간적인면모에감화되며반대로그둘도알릭의존재로인해그간알지못했던세상을본다.알릭에게아직마비가찾아오지않았을때그가몰두했던주제는최후의만찬이다(그의그림에는열두제자대신열두개의석류가식탁을차지한다).

그러나자본주의세상에적응할수없는태생적보헤미안인알릭은주변의희생에철저히기대어살아간다.알릭의아파트를찾는친구들은돌아가며집세나통신비를대신지급한다.그림을그리던시절에도경제적으로유능하지못했지만,마비가찾아온이후로는경제활동을아예멈춘다.다른사람들이그를위해제공하는‘일용할양식’에대해그는신경쓰지않는다.니나는마리아이자라헬이고,이리나는마르타이자레아다.

미국이개인에게거의강요하다시피하는빚에대한비유인곰팡이비유를살펴보자.새땅에서의적응도에서큰차이를보이는두의사피마와베르만에대한묘사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의사업은잘돌아갔고,성장해가면서더욱추진력을얻었지만,모든소득은이나라에서습기찬벽에곰팡이피듯,눈깜짝할사이저도모르게불어나는대출이자를갚는데사용되었다.
베르만의빚은사십만달러이상되었지만,피르마의빚은사백달러였다.미국식논리로말하자면,한사람은번영했고,다른한사람은여전히비참한상황에놓여있었다.그들은둘다낡아빠진아파트에서살고있었고싼음식을먹기도매한가지였다.유일한차이점으로귀결되는것은,베르만에게의사신분에어울리는품위있는양복세벌이있다면,피마는거지같은옷을걸치고다닌다는정도였다.”

자본주의시스템에적극적으로올라타지못한피르마와어느정도속도감을가지고적응해가는베르만은습기찬벽속곰팡이처럼크고작은빚을떠안고산다.그런데생활감각이전혀없는알릭만은친구들의능력에기생해살며소득도없지만곰팡이즉빚도없다.알릭의정신적탐색과미심쩍은매력은불가사의한러시아정신의일부로해석될수있을지언정곰팡이피는자본주의적현실의대안이되지는못한다.그러니“시끄럽고무질서한소굴”에서그는석류를그리다석류꼭지를뽑고죽어간다(석류와수류탄은어원이같다).

환청과환상에시달리는알릭의마지막시간묘사가흥미롭다.현상에대한작가의자연과학적분석이탄탄하게뒷받침된가운데떠나온세계에대한근원적그리움을환상적으로그려냈다.그를사후세계로손짓해부르는주요인물은학창시절물리학선생이었던니콜라이바실리예비치다.울리츠카야는인터뷰에서10살때자신을가르친안토니나보그다노바선생을떠올린다.1953년스탈린이사망한이후선생은“모든민족은훌륭하다.”라고말했다고울리츠카야는기억한다.어린울리츠카야에게는이전까지익숙하던“평등하다”가아니라“훌륭하다”라는말이가슴깊이와닿았다고한다.이것은작가가‘관제전통’이아닌실제전통으로삼은명제다.

「소네치카」에서지금은잊혔으나한때는전설적인화가였던로베르트빅토로비치는간략하게요약되는역사적사건들과함께뒷배경으로사라지고이모든일의관찰자이며인내하고수용하는삶을산소네치카가과거를전하고현재를살며내일을이야기하는주인공으로남은것처럼,『행복한장례식』에서비범한재능과주변인의마음을사로잡는인간적인매력에도불구하고방만하고무책임한삶의태도를보이는알릭도뉴스화면으로전해지는쿠데타소식과함께세상을등지는데,이모든일의보호자가되고궁극적으로주변을화해로이끄는인물은이리나다.울리츠카야가개인과역사의서사를통해탐구하는것은용서와화합의가능성이다.

결국알릭의죽음은미국인과러시아인,유대인과기독교인,부자와가난한자,흑인과백인을한자리로불러모은다.약초를이용한러시아식민간요법이미국의최신핵의학과대비되고볼리비아원주민의제의적음악과흑인음악에기초한재즈가맨해튼곳곳을배경으로들려지다가민속학을연구했던발렌티나를통해러시아민요로마무리된다.울리츠카야의‘전통’에대한문제의식은이리나의각성으로윤곽을드러낸다.

“‘과거는이미끝났고바꿀수도없다.그러나과거가미래에대한권리를갖지는못한다.’그녀는그런경우이렇게말했다.그러다갑자기,바꿀수없는그녀의과거가그녀에대한권리를가진다는걸알게되었다.
다가올죽음에대해서도,과거의삶에대해서도이리나는알릭과대화해본적이없었다.그러나그녀가상상조차할수없었던일이일어났다.티셔츠가알릭이나그의친구들과그토록쉽고자유롭게대화를나누다니.그들중누구도이소녀가그토록복잡한정신적장애를겪고있다고는생각지못했다.그러나지금이리나는무엇이자신을이시끄럽고무질서한알릭의소굴에벌써이년째시간날때마다오게하는지자신에게설명하기어려웠다.”

고통가운데서도인내하며자신의인생을개척해온이리나에게결국은알릭의유산이계승된다는점은결코우연이아니다.
배경이맨해튼인만큼성적인묘사나욕설이속속등장한다.전작인「소네치카」의자연주의적인묘사에호감을느낀독자라면당황할수도있다.그러나소련은무너졌고사회주의리얼리즘적미학을대체할전통의기반을찾던울리츠카야는정신착란직전까지가있던자신의러시아를자본주의가활동하는최전선인맨해튼으로데려가러시아정신을고민한다.발표당시서구에서러시아정신을난잡하고미덥지않고무책임한것의총체로여길까봐불편해하던러시아인들이많았다고한다.이민사회를배경으로그가보여주는러시아정신은배타적이고독단적인것이아니다.'고통'을직시하는것으로출발해고난받는존재들을보듬는능력이다.이는피마를통해고백된다.

“이나라는고통을증오했다.고통을존재론적으로거부하고,즉각적인근절이요구되는특별한경우정도로만여겼다.고통을부정하는이젊은국가는,철학,심리학,의학집단이총체적으로단일한직무에종사하도록만들었다.어떤대가를치르더라도인간을고통으로부터구해야한다는임무였다.피마의러시아적두뇌에는이러한이념이자리잡기힘들었다.그를키운토양은고통을사랑하고소중히여겼으며심지어그것을자양분으로삼았다.고통속에서인간은성장하고성숙하고현명해졌다.”

소설의상당부분이유대교와기독교의입장을제시하고화해의장을마련하려는초대에할애되었다.여기서주제를발전시켜홀로코스트와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간의화해의필요성을다룬본격적인소설이『통역사다니엘슈타인』이다.작가가바라보는종교는독단적교의와권위를강요하지않고신과이웃사랑을실천하는,삶속에녹아든종교다.

풍부한어휘력에묻어나는유머감각과러시아인의범주에속한수많은인종과민족이전통으로삼는문화를깊이있게전달하는능력은울리츠카야만의미덕이겠다.이는번역자로서흥미로운지점이면서고민의지점이되기도했다.러시아어인명을포함한고유명사가지니는낯섦과러시아정교,유대교교리와제의적특성을설명하려다보니불가피하게긴각주가붙은점도독자들에게양해를구하게되는대목이다.
-2022년7월옮긴이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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