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던 모든 당신 (이미산 시집)

궁금했던 모든 당신 (이미산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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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명멸하는 사랑들의 구체성으로 한 걸음 내딛는 시어들을 담다
이미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궁금했던 모든 당신』이 출간되었다. 2006년 《현대시》로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2010)에서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희망을 시어로 기록했고, 두 번째 시집『저기, 분홍』(2015)에서는 삶의 누추와 그것을 먹고 자란 욕망이 마주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에서 시인은 모든 희망과 욕망이 시작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장소로서의 ‘사랑’을 그려낸다.

사랑과 환멸의 낙차가 빚어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이 시집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물빛에 물빛을 더하는 유배의 시간“(「수색」), ”순간들의 재생“(「면목동」)을 반복하며 시인은 구체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사랑을 온전하게 포착하기 위해 모든 감각과 감정들을 동원한다. 그리고 가까스로 마음 한가운데 새겨진 사랑이 지워질 때, 시인은 ‘당신’이 사라진 그 자리에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또다른 사랑에 대해 기록한다. ”불빛 하나 꺼진다고 누가 아파할까“(「청산도」)라고 슬퍼하던 시인은 이 고통스러운 기록의 과정에서 현실을 ”서로를 수정하기에 충분한 장소“(「베란다」)로서 의미화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난다. 시인의 언어 속에서 사랑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현실 바깥의 비밀을 품은 ‘진실’의 형태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사랑의 도취에서 벗어난 주체의 보다 차갑고 쓰라린 실재의 내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며, 이로써 세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인식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

이미산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저기, 분홍』을 펴냈다.

목차

시인의 말·5

1부

연화도(蓮花島)·15
이후·16
수색·18
비가 온다·20
베란다·22
흘러가는 아가씨·24
미워지는 밤·26
하품하는 사과·28
면목동-작가론·30
우리는 잊기 위해·32
청산도·34
복사꽃 필 때·35

2부

리라와디·39
늘·40
친절한 한낮·42
흐르는 혀·44
오르골·46
위구르·48
궁극·50
곁이라는 습관·52
청진기·54
달은 종종걸음으로·56
그리마·58
손·60
청춘·62
상투적·64





3부

아네모네·67
나나·68
방앗간 삼거리·70
늪·72
녹턴·74
허공 카페·76
이별의 알고리즘·77
여인숙·78
사월의 눈·80
비지스를 몰라서 미안해요·82
춘천·84
신혼 이후·86
그 많던 미뢰는 누가 다 훔쳤을까·87
빨랫비누가 닳아지듯이·88

4부

콘트라베이스·91
꽃살문·92
1968년 진달래꽃·94
재·96
옥상의 환풍기들·98
개별적인 노을·100
암표상·102
곡비(哭婢)·104
개요와 맥락·106
가끔은 로맨틱·108
화병(花甁)·110
검은부리아비·112

해설 | 박대현(문학평론가)
사랑의 실재에 대한 시적 기록-사랑에서 환멸로, 환멸에서 사랑으로

출판사 서평

명멸하는 사랑들의 구체성으로 한 걸음 내딛는 시어들을 담다

이미산 시인의 세 번째 시집 『궁금했던 모든 당신』이 출간되었다. 2006년 《현대시》로 등단한 시인은 첫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2010)에서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존재하는 희망을 시어로 기록했고, 두 번째 시집『저기, 분홍』(2015)에서는 삶의 누추와 그것을 먹고 자란 욕망이 마주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이번에 출간한 시집에서 시인은 모든 희망과 욕망이 시작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는 장소로서의 ‘사랑’을 그려낸다.

사랑과 환멸의 낙차가 빚어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이 시집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물빛에 물빛을 더하는 유배의 시간“(「수색」), ”순간들의 재생“(「면목동」)을 반복하며 시인은 구체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사랑을 온전하게 포착하기 위해 모든 감각과 감정들을 동원한다. 그리고 가까스로 마음 한가운데 새겨진 사랑이 지워질 때, 시인은 ‘당신’이 사라진 그 자리에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또다른 사랑에 대해 기록한다. ”불빛 하나 꺼진다고 누가 아파할까“(「청산도」)라고 슬퍼하던 시인은 이 고통스러운 기록의 과정에서 현실을 ”서로를 수정하기에 충분한 장소“(「베란다」)로서 의미화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난다. 시인의 언어 속에서 사랑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현실 바깥의 비밀을 품은 ‘진실’의 형태로 변화한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사랑의 도취에서 벗어난 주체의 보다 차갑고 쓰라린 실재의 내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으며, 이로써 세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인식을 경험하게 된다.


이별과 환멸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사랑을 따라잡다

이미산 시인은 평온한 일상의 빈틈에 내재한 위태로운 긴장감을 포착해낸다. 이는 달리 말해 시인의 불안한 내면이 평온한 일상의 빈틈 속에 들어앉는 것이기도 하다. “새들이 전선 위에 앉아 오늘의 뉴스를 시작합니다/부리마다 남자와 여자가 매달려 있습니다”(「방앗간 삼거리」)와 같은 문장에서 드러나듯, 시인의 극심한 내적 혼란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일상의 한가운데에 놓여 더 위태로워 보인다. 시인은 이런 풍경의 중심에 ‘여자’와 ‘남자’를 배치한다. 그리고 이 둘을 통해 우리가 삶 속에서 반복하는 감정의 극단을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환상의 형태로 보여준다.

소반만 남았다
응시하는 가구와 응시가 키운 암전과 이 빠진 찻잔의 동면

개다리소반만 남았다
변덕스런 날씨와 견디는 그늘과 각자의 잠꼬대가 건너다니는 새벽

관성으로 포개지는 한 쌍의 다리 사이

스스로 풀어져 범람하는 곡선 사이

키를 딱딱 맞춰보는 젓가락의 일상 같은

해빙 후 흘러가는 물의 성질 같은

구석을 지키며 비천해지는 다정들
- 「신혼 이후」 전문(86페이지)

이 시는 사랑의 끝을 예감해버린 신혼 이후의 비천함으로 가득하다. 소박한 신혼살림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달콤한 사랑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는 신혼살림에 대하여 “소반만 남았다”, “개다리소반만 남았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한다. ‘소반’은 ‘개다리 소반’으로 다시 점층적으로 진술되고 있는데, 개다리소반에서 환기되는 그 앙상함은 신혼 이후 균열이 가버린 부부 사이를 암시한다. 서로를 마주보는 눈길의 다정(多情)이 아니라, 가구의 메마른 응시만이 있고 대화의 단절로 인한 “이 빠진 찻잔의 동면”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사랑은 삐걱이면서도 관성으로 행해진다. “관성으로 포개지는 한 쌍의 다리”는 마치 개다리소반만큼이나 앙상할 것이다. 하여 신혼살림을 채우던 “다정들”이 이미 “비천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환멸의 감각은 아래 시를 통해서 잊힐 수 없는 이미지로 남게 된다.

잘 살아,
당신이 어깨 펴고 씩씩하게 돌아설 때

서른 개의 마음을 보았지
옆구리에 가슴에 들썩이는
백 개 천 개의 다리를 보았지

수많은 유머 중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어여쁜 소용돌이
다리는 많을수록 매력적이겠지만

그리하여 울퉁불퉁한 한 쌍이여 안녕
다리에 다리를 포개 사랑이라 호명한
아슬아슬이여 안녕

약속은 허구의 질감이었으니
비밀을 훔쳐 서로의 궤도를 돌아와
귓속에 몰래 키운 미망의 꽃이었으니

사랑이여 마침내 안녕

건너지 못한 다리와 착각으로 키운 착란과
천 개 만 개로 부활하는 마음들

다리에 관한 패러디 하나 완성했으니
마음에 관한 비애가 나를 구애했으니
- 「그리마」 전문(58~59)
제목이 ‘그리마’인 이 시는 사랑에 대한 혐오의 정서를 배면에 깔고 있다. ‘그리마’의 끔찍한 다리들은 이 시의 지배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리마’의 혐오스런 다리들을 연인의 얽힌 다리와 겹쳐지게 함으로써 혐오의 정서를 사랑의 행위에 부착시킨다. “서른 개의 마음을 보았지/옆구리에 가슴에 들썩이는/백 개 천 개의 다리를 보았지”, “다리에 다리를 포개 사랑이라 호명한/아슬아슬이여 안녕”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마’의 다리들은 ‘당신’과 ‘나’의 다리가 포개졌던 상황을 환기시킨다. 사랑의 행위가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은 사랑의 행위가 “관성으로 포개지는 한 쌍의 다리”(「신혼 이후」)처럼 느껴질 때다. 사랑이 ‘그리마’에 대한 혐오로 전락하고 만 것은 이별 이후의 상처 때문이다. “잘 살아,/당신이 어깨 펴고 씩씩하게 돌아설 때”. 연인과의 이별이 아름다운 경우는 드물다. 사랑의 환상이 제거된 사랑 행위의 점액질은 벌레의 체액만큼이나 혐오의 대상일 수 있을까. 과장 섞인 상상일지라도 체액은 환상이 제거된 사랑의 실재적 이미지와 관련되며, 혐오의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대상이 혐오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순간 환멸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환멸의 이미지가 바로 ‘그리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사랑에 대한 인식은 ‘환멸’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 반복되는 환멸의 감정이 흐릿해진 자리에 나타나는 풍경들에 더 집중한다. 사랑은 환상이다. 환상은 일종의 베일 효과로서 이루어진다. 베일은 은폐하면서 노출한다. 은폐는 대상을 신비화하고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강화하며 노출은 그 욕망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도록 한다. 사랑의 대상에 관한 극사실적 정보만큼 사랑을 향한 최고의 저주는 없다. 사랑은 환상 속에서 싹트고 무지 속에서 날개를 펼치지만, 환상의 베일이 사라질 때 사랑은 그 생명력을 잃는다. 그럼에도 사랑을 유지하고자 할 경우 환상이 사라진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정서와 육체의 친밀하고도 안정된 교감은 환상이 사라진 이후의 결핍을 채워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랑의 환상은 실재를 드러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마’의 모습과도 같은 환멸을 오랫동안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은 환멸조차도 중화시킨다. 환멸의 세월마저 흐릿해진 이후에는 삶의 공허가 한동안 내내 따라붙기도 하고, 사랑 이후의 일상을 관조하는 내면의 싹이 자라나기도 한다.

당신과 나 사이
한 아이가 태어났다

못 보는 사이 예뻐졌네 통통하니 복 받겠어, 조카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아이의 뼈가 굵어지고 있다 종아리 좀 봐 운동선수 같네, 조카니까 덕담으로
아이의 체형이 분명해지고 있다 벌써 어른 같아, 안부나 주고받으면 더 없이 좋은

예의 바른 인사가 거리로 환산되어
펼쳐진다 마주보면 휑하고 한 발 비껴서면 더할 나위 없는

어쩌다 함께 호명되면 한 송이 꽃으로 충분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랑 이후처럼
- 「허공 카페」 전문(76페이지)

이 시는 사랑 이후의 풍경을 쓸쓸하게 드러낸다. “허공 카페”의 풍경. 시적 화자는 사랑하고 이별한 후(“사랑 이후”)에 오랜만에 누군가를 만난다. 그 오랜 사이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허공 카페’에는 아이도 함께지만, 오랜만에 보는 아이에게 건네는 인사는 “조카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예의 바르”고 어색하며, 무엇보다 서로 간에 미묘한 심리적 “거리”가 존재한다. 이 시는 “사랑 이후”에 형성되는, “마주보면 휑하고 한 발 비껴서면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을 소묘하듯 드러낸다. 카페라는 일상적 공간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리는, ‘허공’을 떠도는 관계의 쓸쓸함이 이 시의 지배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관계의 공허에서 오는 쓸쓸함은 존재의 개별성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때 나는
그리움이 먼 곳에서 온다고 믿었다

바람이 부려놓은 냄새
눈가에 드리우는 실루엣
모르는 당신이 남기는 발자국

그리하여 내 안으로 당신을 들인 날
나는 눈물이 났다

우연이 우연의 옷자락에 닿아 오늘이라 불리듯
가까워도 닿을 수 없는

긴 팔을 키우는 가려운 등처럼
별빛을 당겨 제 몸을 식히는 지구처럼

한쪽 발을 물에 담그고 나의 전부를 생각했다

당신이라는 눈물만이 또렷해지는 즈음

다시 오지 않는 그날과
그리워하는 그곳 사이

이후가 시작되었다
- 「이후」 전문(16~17쪽)

이 시는 ‘이후’라는 제목부터가 각별하다. 이 시집의 두 번째 작품으로 위치하는 만큼 시인의 내면을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후’는 어떤 사건을 상정한다. 이 시의 마지막 문장이 “당신이라는 눈물만이 또렷해지는 즈음//다시 오지 않는 그날과/그리워하는 그곳 사이//이후가 시작되었다”인 것을 보면 역시 이별이라는 사건이 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별의 대상인 ‘당신’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람에 부려놓은 냄새/눈가에 드리우는 실루엣/모르는 당신이 남기는 발자국”이 암시하듯이 ‘당신’은 그 흔적만을 감지할 수 있는 은폐된 절대적 존재일 수도 있겠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망자(亡者)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