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고주의자의슬픔과의지가담긴시적공간들
“왜세상은고통과슬픔으로점철되어있으면서한없이접혀들어그복잡한속내를감추고야마는가.”김재홍시인은그와같은질문을차마놓지못한사람이다.그는현실이그토록부드럽고매끈한것이아님을모른척지나칠수없는자이다.세상의표면이부드럽고매끈하게보인다면,그것은실제가아니라단지자신의눈이흐려진것일따름임을알고있는자이다.그와같은자에게는눈앞에놓인현상의표면을관통할수있는시력(詩力)이있으며,동시에그시력으로인해차마다떠안을수없는슬픔마저도감각하고감내해야만한다는사실을통해축적된내력또한존재한다.그의시가단순한현상에서부터시작하되,그속살을하나하나짚어가며피치못할슬픔에골몰해지는까닭이여기에있다.
김재홍시인의시적인'눈'은그래서가장사소한것처럼보이는개별자들의삶을향하고있다.개별적인삶안에는그에준하는충만한의미들의세계가또한존재하고있기때문이다.하지만그와같은사실을모르는자와아는자에게,이충만한의미의세계는다른정도의굴절률을가진다는사실또한명심해야만한다.
김재홍의시적세계속화자의언어로부터독자들이느낄수있는것은존재그자체에대한연민,다정함에가깝다.즉,이부정적편린이암시하는것은시적화자의회의주의적성격과같은주체의특수한인격적정보에대한것이아니다.이미이세계자체가회의주의적창조주에의해직조되어있는것이므로,회의주의적진술은그의시선이정직하고투명하게작동하고자노력하고있다는증거에가깝다.비극적인사태는처음부터이세계의안에내포되어있었던것이며,시인은그것을정직하게관찰하고이를언어를통해재현하며활로를모색하고자시도하는것이다.
평생을막일로
자식셋키워낸어머니는
이제늙어쭈글쭈글한육신에그영혼에
무수한빗금이칼날처럼새겨져
라고말하면안된다
라고말할수없다
어머니는
말이아니라
언어이전에언표바깥에서
평생을막일로어떤잠재성도가능성도
어떤특이점도변곡점도없는
외삽의필생을사셨다
어머니의연속성과
어머니의항상성과
어머니의필연성사이에
아무것도존재하지않고
그리하여운명이란
누가시켜서사는게아니라
버티며살아내는것이라는표식을
온몸에온마음에새겨놓았다
라고말하면안된다
라고말할수없다
-「라고말할수없다」전문(본문42~43쪽)
위의시에서화자는무수한세월이할퀴고지나간늙은어머니의육신을바라본다.여기에서화자는노모의육신에새겨진삶의비애를바라보면서도,그것에대해말하는방법에대해서는다소의혼란을느끼고있다.“라고말하면안된다/라고말할수없다”라는감각은어머니의삶에대해보편적이고일상적인언어로말하는것을허락하지않는시인의날카롭고도고고(孤高)한정신을보여주는데,이와같은고고한통각이가닿는것은어머니의삶에새겨진상처란결코쉬이말해질수없는복잡성을감추고있다는사실이다.
산다는것은결코손쉽게말해질수있는것이아니며,인간의삶이내내평안하고행복할수만은없다는것을아는시인에게있어,어머니의삶에대한기술이란그것을쓰고취소하는형식을통해서만에둘러말해질수있을따름이다.이와같은취소의형식은대상에대한온전한기술이실패할수밖에없다는보편적언어의한계를가리키는것이면서,동시에그와같은실패만이대상의본질을실루엣으로나마현상할수있다는사실을가리킨다는점에서역설적인성공이다.이것은세세하지는않으나,오히려그렇기에가능할수있는최소한이자최대한의진실을건언어이다.
언어의실패를통해성공을거머쥐는역설적인묘사와재현의과정,그로부터비롯되는의미화의심층은김재홍의시에서나타나는특징가운데하나이다.아래시에서확인할수있듯이그대상의범위는결코사물자체에만제한되지않으며,관념과개념과같은비실체적인요소에까지확장된다.「기원에대하여」라는시에서화자는‘나’의기원이라는불분명한대상에대해물으며,종래에는‘기원’이라는것의의미와그것의가치에대해서까지재정위할수있다는사실을엿봄으로써자신이걸어갈길을새로이도정하는언어적활로를모색한다.
기원을묻는다면
바이칼이거나부리야트거나어떤
동종교배와족내혼의기원을묻는다면
미토콘드리아와핵을넘어
세포넘어분자넘어기원을찾는다면
차라리폐호흡과횡격막과언어의기원을찾는다면
아니면툰드라와스텝과열대우림너머
냉혈의대기권과화성과목성너머
태양계와은하계너머
우리를기억하지못하는
우리를알지못하는
그러므로기원은누구에게있는것이아니라
누구를위하여있는것이아니라
어디에도없는
어디에도있을필요가없는
어떤기원을믿는다면
차라리기원의전체주의를
믿음의전제적폭력을
고발하기위하여
이겨내기위하여
넘어서기위하여
-「기원에대하여」전문(본문78~79쪽)
자신의기원에대하여묻는이시에서,처음에화자는신화적세계로부터그해답을탐문한다.우리와닮은외모를지닌,바이칼호의광대한자연속에서신을믿으며살아가는부리야트족의모습에서시작되는‘기원’에대한물음은이내인류학적관점과생물학적관점을거쳐무수한자연의틈속으로달려간다.그러나툰드라와열대우림에서도질문에대한해답을찾아내지못하는화자의눈은이내대기권너머로,생명의근원을향해나아가지만,그어디에서도화자는질문에대한해답을찾아내지못한다.현상의내부로부터찾아질수없는근원에대한질문이이처럼인식바깥으로뻗어나가는것은일견자연스러운현상처럼보인다.먼옛날부터인간은해명할수없는현상앞에서그것을신의의지로,우리가차마헤아릴수없는고차원의질서가작동하는것이리라생각해왔기때문이다.
하지만여기에서김재홍의시적화자가내놓은답변은정반대이다.우리가알지못하는현상은저기어딘가에있을누군가의의지일것이라는유신론적답변대신에,그는‘기원’이란무엇을위해존재해야하는가라는물음에가닿는다.예컨대이와같은지점에서,‘기원’에대한물음은‘기원’그자체에대한물음으로새롭게도정되는것이다.역사적사례속에서기원에대한물음이자신과자신이속한공동체의정당성을입증하기위해동원되어왔음을떠올려보자면이와같은물음의만곡은자신의정당성을타자를향해입증하는것으로부터,자신의정당성을새롭게정립하고자하는주체적태도에가깝다.또한정당성을입증하기위해가해진무수히많은역사적폭력의사례를떠올려보자면,이와같은주체적사유는타자에대한폭력이아니라폭력의역사그자체에대한폭력이라는새로운형태의규범적질서를모색하기위한태도라할수있다.즉,여기에는또하나의변곡점이존재하는셈인데,시인은‘기원’그자체를부정하는것이아니라이에대한질문으로부터또다른질문으로계속적인시적사유를노정해나감으로써역사속에내재된인간의한계자체에대해질문하며,새로운가능성을그자체의역사로부터탐문하고있는셈이다.
어쩌면이것이김재홍이라는시인이주창하는‘의고주의자’의의지가아닐까.사전적의미에서그것은옛것을숭상하고흠모하는,그리하여모방하고재현하는자를가리키는말이지만,김재홍의시에서나타나는의고주의자의의지란그사정이한결복잡하면서도그로인해생겨날수있는창조적지점을소유한다.이는‘기원’에대해사유하며,그것을재발명해내는「기원에대하여」의화자에게서엿볼수있는의지이기도하거니와,동시에그의시에서일어나는특유의‘발산’과도관련되는지점이다.
대상에대한긍정도,부정도아닌이의고주의자의사유방식이란대상의실패를다시금반복하는것이되,그와같은실패를더잘반복하려는의지에가깝다.때문에「어느의고주의자의아침」에서처럼,그는옛미래를바라보되,그시선은과거에붙잡혀있는것이아니라미래를향해뻗어있다.이와같은시선은대상에내재된실패를동일하게반복하게끔만들지만,이와같은반복이거듭될때여기에서는분명한차이가발생한다.일종의“클리나멘혹은편위”(「어느현재주의자의기록」)라불리우는현상으로,동일한대상에존재하는최소한의차이이다.다만그것은너무나도작고미세하여한눈에식별될수없는것이기에,시인은일상속에서그와같은실패를거듭반복하며이미세한편위의상황을거듭써나가며편위의역사를새롭게구성해나가고자시도한다.
시인은부인하지않는거라며
인정하라고받아들이라고
무엇보다화내지말라고
꿈꾸는꿈은오지않고
꿈의뜻대로온다고
꿈은하루치일뿐이라고
불현듯비명을지르거나소리치거나
입추지난아침은아직더운데
자다깨다뒤척이다늦잠에들고
-「간절기의아침」부분(본문48~49쪽)
김재홍의시에서슬픔은단일하지않다.그것은두개의결로나뉘어져있으며,특정한대상에대한감각이면서동시에그와같은감각조차현실속에서마모되고말것이라는필연성에대한감각이기도하다.그러한의미에서,김재홍의시가거듭슬픔을앓고그것을다시금앓는것은생각만큼단순하지않은현상이다.현실로의몰입을통한망각과마모가하나의질서로작동하는세계속에서이와같이반복되는슬픔에대한되새김질은쉽게마모되거나망각하지않겠다는의고주의적의지의발현으로이해되어야한다.특정한누군가를,특정한시간을,특정한공간을거듭언어화하여되새김질하는것은감정의통증을대가로하여벌어지는법칙에대한도전이다.그것은자신의삶안에상실한대상의자리를마련한다는뜻에서단순히는대상을잊지않겠다는의지의발현인것이며,보다확장된의미에서는‘인용’이라는그의시적방법론이지닌의미이기도하다.즉,인용은본래의사건/혹은단언이미처현실화되지못한가능성을다시금반복하는것이되,지금-여기의이미지들을통해다시금실패하는방식이며,사라져가는것이사라지지않도록현실의중력에저항하는방법이다.이것이실패한다하여도개의치않는것은,실패의반복속에서어떤편위들이거듭누적되어갈것임을김재홍이라는의고주의자는알고있으며,또한믿고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여기에서반복되는것은‘실패’이면서,결코동일한실패의반복이아니다.더잘실패하는것,그와같은실패속에서거듭편위를축적해가는것,그리하여어떤한시점까지이어지게만들고야말겠다는것.예컨대이와같은실패는그의의지가현실화되는유일한방식이라는점에서한낱실패가아닌,고고한실패인것이다.
허공을향한
저맹목적인눈
벌어진입
열린몸으로빈틈없이
스며드는솟구치는숨소리
극점을향해타오르는목젖
끝에는침묵이
어떤정물과평화와심연이
유기적연쇄를끊은출렁거리는
외로운세포들의적막의한순간이
쏟아지는사악한반성의한순간이
슬픔보다빨리
슬픔보다차갑게
슬픔보다날카롭게
몰아치는휘몰아치는순간의순간
시공의굴절은
찢어진분절은
휘어진범주는
관점을
통곡을
발산하는
순간
-「발산하는,순간」전문(본문16~17쪽)
비록그순간이언제인가를유한자는명확히알수없다하여도,그것은시인에게있어슬픔이아니다.또한,실패가반복된다한들,그또한시인에게는슬픔이아니다.반복되는실패속에서슬픔의형상이거듭다른결로분화되며누적되어가는것은외려새로운편위의발생이며,그것은언제고이뤄질「발산하는,순간」에대한보증이다.이의고주의자로서의시인의모습이한낱노스텔지어적인욕망이나고전에대한동경으로환원될수없는까닭이바로여기에있다.시간의순순한흐름에있어이와같은의지는일탈이아닌발산을,그리하여새로운규범적질서의정초를예비하는태도이기때문이다.무한하지만유한한경로로흐르는시간은그와같은태도로부터단절되고,굴절되고,휘어지고,찢어지며,새로운경로를물색한다.시인이말하는,슬픔으로부터연유하는“통곡”이단순한정서적표현이아닌낯설고도기이한가능성을지닌어휘로식별되어야하는것은이때문이다.
어쩌면시인이그토록상실에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