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김종회 디카시집)

징검다리 (김종회 디카시집)

$13.06
Description
디카시에 대해 말하려면, ‘디카(디지털 카메라)’라는 매체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디카시는 ‘디카’와 ‘시’를 합친 말이다. ‘디카’와 시가 어울려 디카시가 만들어진 것이라면, 디카시에는 분명 일반 시와는 분별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디카시와 시가 갈라지는 지점은 ‘디카’라는 매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가 언어를 매체로 이루어지는 상상의 양식이라면, 디카시는 디카와 언어를 매체로 이루어지는 상상의 양식이다. 디카시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탄생한다. 독자들은 디카시를 보고 읽는다. 사진이미지가 언어표현으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한 편의 디카시가 생성된다고나 할까.

우리가 사는 일상은 지천에 날이미지가 널린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이미지는 날이미지를 디카로 찍는 순간 펼쳐진다. 일상에서 보는 진달래꽃 한 송이(날이미지)와 디카로 찍은 진달래꽃 한 송이(사진이미지)는 같으면서도 다른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시인은 날이미지가 사진이미지로 구현되는 ‘순간’을 포착하여 그 감흥을 언어로 표현한다. 사진이미지로는 미처 담지 못할 날이미지를 시인은 언어로 드러내는 셈이다. 사진이미지와 언어표현이 하나로 어우러져야만 제대로 된 디카시가 탄생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독자들은 사진이미지에서 연상된 내용을 바탕으로 언어표현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젖힌다. 사진이미지를 ‘보고’ 언어표현을 ‘읽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우리는 디카시를 감상하는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저자

김종회

金鍾會
JonghoiKim,Ph.D.

경남고성에서태어나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를졸업
하고동대학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26년간경희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했다.

1988년《문학사상》을통해문학평론가로문단에나온이래활발한비평활동을해왔으며
《문학사상》《문학수첩》《21세기문학》《한국문학평론》등여러문예지의편집위원및주간을맡아왔다.한국문학평론가협회,한국비평문학회,국제한인문학회,박경리토지학회,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등여러협회및학회의회장을지냈다.

현재황순원문학촌소나기마을촌장,이병주기념사업회공동대표,한국디카시인협회회장을맡고있다.김환태평론문학상,김달진문학상,편운문학상,유심작품상등의문학상을수상했으며평론집으로《문학과예술혼》《문학의거울과저울》《영혼의숨겨진보화》등이있고《한민족디아스포라문학》등의저서와《삶과문학의경계를걷다》등의산문집이있다.

목차

Ⅰ.소나기마을정갈한얼굴

새봄손짓
연달래
여름초입
가을소나기
무지개동심
가을햇볕
만추의표정
순백설경
징검다리
소년말하다
갈밭머리쉼터
쪽빛구름쉼터


Ⅱ.책과꽃과풍경이있는곳

책과꽃
『악의꽃』초판본
봄이오는길목
작은입술들
함평용천사꽃무릇
수종사에서본양수리원경
신두리해안사구
목포문학박람회수변무대
하동송림
고성장산숲
동해해변산책로
이병주문학관


Ⅲ.미국여행길의맑은풍광

옐로스톤국립공원
캘리포니아오로라
샌디에이고미항
요세미티하프돔
와이키키해변
바닷가야자수길
하와이민속촌
빅아일랜드정원
낙원절경
맥주거품폭포
용암바다
푸른사자머리
어떤실루엣


Ⅳ.중국북방에서만난역사

안중근의사의자리
하얼빈모데른호텔
장춘관동군사령부
광개토왕릉가는길
집안장수왕릉
삼족오문양
감숙성칠채산
돈황실크로드
명사산오아시스
황하상류
강의어머니
등악양루
북중러접경지대


해설

소년의눈으로들여다보는세계-오홍진

출판사 서평

[시집해설]


소년의눈으로들여다보는세계
-김종회의디카시

오홍진(문학평론가)

디카시에대해말하려면,‘디카(디지털카메라)’라는매체를먼저생각해야한다.디카시는‘디카’와‘시’를합친말이다.‘디카’와시가어울려디카시가만들어진것이라면,디카시에는분명일반시와는분별되는지점이있을것이다.디카시와시가갈라지는지점은‘디카’라는매체를어떻게규정하느냐에달려있다.시가언어를매체로이루어지는상상의양식이라면,디카시는디카와언어를매체로이루어지는상상의양식이다.디카시는디카로찍은사진을언어로표현하는과정을통해탄생한다.독자들은디카시를보고읽는다.사진이미지가언어표현으로이어지는자리에서한편의디카시가생성된다고나할까.

우리가사는일상은지천에날이미지가널린세계라고말할수있다.사진이미지는날이미지를디카로찍는순간펼쳐진다.일상에서보는진달래꽃한송이(날이미지)와디카로찍은진달래꽃한송이(사진이미지)는같으면서도다른맥락을내포하고있다.시인은날이미지가사진이미지로구현되는‘순간’을포착하여그감흥을언어로표현한다.사진이미지로는미처담지못할날이미지를시인은언어로드러내는셈이다.사진이미지와언어표현이하나로어우러져야만제대로된디카시가탄생하는까닭은여기에있다.독자들은사진이미지에서연상된내용을바탕으로언어표현을이해하는길을열어젖힌다.사진이미지를‘보고’언어표현을‘읽는’과정을거침으로써우리는디카시를감상하는길에접어들게되는것이다.

나무그늘아래낮은개울가
저만치소녀가앉았던징검다리
소년의눈을열면모두다보이는데

-「징검다리」

?
김종회의디카시에는여행자의시선이드리워져있다.여행자의시선은무엇보다낯익은일상을보는눈과는거리가멀다.여행자는낯익은장소(고향)를떠나낯선곳을배회한다.주변에보이는풍경이참으로낯설게보일수밖에없다.위시에드러나는대로,시인은현실속에서허구를보고있다.황순원의「소나기」에나오는“나무그늘아래낮은개울가”를현실에서보고있고,“저만치소녀가앉았던징검다리”또한현실에서보고있다.이곳(소나기마을)이아닌또다른장소에도개울가와징검다리는있을것이다.시인이이곳에있는개울가와징검다리를낯선눈으로바라보는이유는현실과허구가겹친자리에서피어나는낯선풍경때문이다.저개울가와저징검다리는바로소설속소녀와이어져있기에시적이미지로거듭날수있는것이다.

중요한것은개울가와징검다리에서린시적이미지는“소년의눈”을통해서만확인될수있다는점이다.소년의눈은허구를들여다보는눈을가리킨다.보이지않는것을보는눈이라고할까.일상에익숙해진어른의눈으로보면개울가징검다리에앉아소년을기다리는소녀가보이지않는다.시인은“소년의눈을열면모두다보이는데”라고쓰고있다.돌려말하면소년의눈을열지못하면우리는아무것도볼수없다.개울가는그저개울가일뿐이고,징검다리는그저징검다리일뿐이다.여행자가되어소나기마을을방문한시인은소년이되어허구속으로뛰어들어간다.정확히말하면시인은소년의눈으로소나기마을을들여다본다.소나기마을은그러니까현실과허구가교차하는새로운장소가되어버린것이다.

시인이사진이미지로제시한것은시골어디서나흔히볼수있는개울가이다.징검다리가개울가를가로지르고있다.「소나기」라는문학작품을연상하지않으면별다른흥취를느낄수없는이풍경에시인은소나기속소년과소녀의눈을들이댄다.똑같은풍경인데도소년과소녀의눈으로보는풍경은확실히다르게나타난다.물론여기에는보이는것에서보이지않는것을보려는시인=여행자의마음또한깃들어있다.날이미지가사진이미지로압축되는순간,시인은비로소소년과소녀가만나는장소를상상하게된다.개울가와징검다리는소년과소녀의눈을통해시적인이미지로뻗어나간다.보이는사물을‘보는’동시에보이지않는사물을‘보는’시인의존재는바로이지점에서태어난다고해도좋겠다.

차마진달래라부를수없어서
연한속살의이름으로불러본다
그대첫봄의맑은얼굴

-「연달래」

화사하고넉넉한함성
작은것들의연합은아름답다
내안의것들도그렇다

-「작은입술들」

「연달래」라는시에나타나는대로,시인은진달래를보고도차마진달래라고부를수없는소년의눈으로사물을바라보고있다.‘진달래’라는언어로어떻게“그대첫봄의맑은얼굴”을표현할수있을까?언어는언제나사물의일부만드러낼수있을따름이다.의사소통을위해사람들은언어를만들었다.그들은진달래를진달래로부르는상황을중시한다.진달래를진달래로부를수없으면의사소통이되지않기때문이다.의사소통이란사람들이만든약속체계가아닌가.시인이아닌누군가가진달래를“맑은얼굴”로부르면어떻게될까?사람들은그와이야기를하려고하지않을것이다.그러기는커녕그를사회부적응자로내몰것이다.언어에드리워진질서가이해되는가?의사소통수단으로언어를규정하는순간,우리또한언어질서에묶인존재로규정되는셈이다.

시인은진달래를차마진달래로부를수없어“연한속살의이름으로불러본다”.사진이미지로는한껏자태를뽐내는진달래꽃이제시되어있다.시제목인‘연달래’는‘연한속살의진달래꽃’을줄인말일것이다.진달래꽃의부드러운속살을보려면‘진달래꽃’이라는언어를고집해서는안된다.연한속살은‘진달래꽃’이라는언어너머에있다.시인은일상인의눈으로진달래꽃을보려는게아니라소년의눈으로진달래꽃을보려고한다.소년의눈은언어너머를들여다보는시선과이어져있다.김소월에게진달래꽃이“영변에약산/진달래꽃”이라면,시인에게진달래꽃은연한속살을깊이깊이감추고있는“그대첫봄의맑은얼굴”이다.누구나보는꽃이아니라,소년의눈을지닌사람만이애오라지볼수있는꽃이라고이야기하면어떨까.

「작은입술들」에도사물을바라보는소년의눈은어김없이나타난다.화사하게핀꽃무리를보며시인은“화사하고넉넉한함성”을상상한다.저꽃들은누구를향해저리함성을지르는것일까?화사한꽃은제자리에서다른생명들이오길기다리지않는다.땅에뿌리를박은몸이니스스로움직일수는없다.날개달린생명들이야날아서이리저리움직인다지만,날개가없는꽃들은어떻게다른생명으로가는길을열어젖힐까?시인은“넉넉한함성”을말하고있다.꽃들은커다란함성으로자신의존재를알린다.혼자내지르는소리가아니다.수많은꽃들이“작은것들의연합”을이루어목놓아함성을지른다.시인은온몸으로함성을지르는이꽃들을보며아름다움을느낀다.제몸을활짝열어다른존재를기꺼이맞이하는생명만큼아름다운게세상어디에있을까?

꽃은온몸으로아름다움을표현하고,시인은온몸으로그아름다움을맞이한다.물론시인이온몸으로표현하는아름다움은반드시‘언어’라는매개를거쳐야한다.디카시라고해도마찬가지다.디카시는사진이미지로시작해언어표현으로끝나는과정속에서이루어진다.시인은온몸으로생명을피운꽃을사진이미지로제시하고있다.그꽃이미지에서시인은꽃들의함성을듣고,작은것들이이루는연합을본다.꽃잎하나하나가입술(시제목이‘작은입술들’이다)이되어소리를친다.시인은작은꽃들이연합을이루어함성을외치는이풍경을“내안의것들도그렇다”라는문장으로잇는다.작디작은꽃들만함성을외치는게아니라시인또한마음속에서끊임없이다른존재들을향해함성을지른다.시인이온몸으로지르는이외침을우리가아니면누가들어줄까?

진달래꽃을차마진달래꽃이라부를수없는마음이있기에시인은꽃들이외치는함성을들을수있는것이다.인간은사물에의미(언어)를부여하여사물을지배하려고한다.언어밖에있는사물을언어안으로끌어들이는이작업은,사물입장에서보면당연히폭력이될수밖에없다.사물이죽은자리에서언어가뻗어나온다는한철학자의말을굳이되새기지않더라도,인간은분명언어를통해사물을지배하려는욕망을내면깊이지니고있다.시인은어찌보면이러한지배욕망을내려놓고사물을사물자체로보는‘소년의눈’을기꺼이받아들이는존재인지도모른다.소년의눈으로봐야작은것들이이루는연합이보이고,소년의귀로들어야화사하고넉넉한함성이들린다.이리보면소년의눈은자신을중심에세우지않는존재의눈이라고할수있다.사물의시선으로사물을보는눈.

야자수터널건너바다를보다가
선물처럼좋은영상을얻다
삶의보화도곳곳에숨어있는데

-「어떤실루엣」

지구의속살을보았다
숨겨진것은모두드러나는법
내안의붉은빛이거기있었다

-「감숙성칠채산」

여행자는바깥에펼쳐진낯선사물을보며자기내면깊숙한곳에자리한이미지를떠올린다.여행자는낯선곳을떠돈다.처음보는것이든,이미본것이든,여행자의눈에는모든것이새로이보인다.앞서말한대로,여행자는고향(낯익은곳)을떠난존재이기때문이다.고향에서본사물들을여행지에서본다고해도,여행자는새로운것을보는마음으로그것을본다.사물이새로운게아니다.사물을바라보는마음이새로운것이다.일상을중시하는어른의눈을내려놓고,일상너머를바라보는소년의눈을얻은덕분이라고나할까.소년이되어야개울가징검다리에앉은소녀(의마음)를이해할수있다.소년은눈에보이는것만을보려고하지않는다.눈에보이지않는것이“연한속살의이름”(「연달래」)으로존재할수있는걸소년은철석같이믿는다.

「어떤실루엣」은미국여행길에서본“선물처럼좋은영상”을사진이미지와언어로표현한작품이다.‘선물’이라는시어에암시된바,시인은야자수터널건너로열린바다를보다가문득시적영감을떠올린다.시적영감은선물처럼온다.선물이란대가없이주어지는것이다.무언가를얻기위해주는물건은선물이아니라뇌물이다.바다는시인에게아무것도원하지않는다.그러면서도바다는시인에게선물과도같은좋은영상을보여준다.물론바다가내보이는영상을아무나볼수있는것은아니다.오로지볼준비가된존재만이이영상을볼수있다.사물이자기속살을드러내는것은‘순간’에이루어진다.순간을놓치면아무리뛰어난시인이라고해도사물의속살을들여다볼수없다는말이다.

시인은마음을활짝열고사물이번뜩이는순간을온몸으로받아들인다.시인의말마따나,삶의보화는곳곳에숨어있다.사물들저마다보화를품고있으니,사물이있는곳이라면어김없이보화가있다.사물이없는곳은없으니,우리네발걸음이닿는모든곳마다보화가있다고말할수있다.시인은사물이언뜻내보이는이보화에‘어떤실루엣’이라는시구(시제목이기도하다)를붙인다.실루엣은뚜렷하지않다.시인은사물이순간적으로펼친무언가를보기는봤지만,그것이무엇인지정확히는모르고있다.사물은무언가를내보이는듯하면서도숨긴다.보이는것만으로사물을판단하는사람은따라서시인으로서자질이부족하다.시인은늘사물이내보이는것을통해사물이숨긴것이무엇인지알아채야한다.시는무엇보다사물이숨긴진실속에서흘러나오는보화인것이다.

중국여행길의영상을기록한「감숙성칠채산」에서시인은이러한보화를“지구의속살”로표현한다.사진이미지에는붉은흙을온몸으로드러낸감숙성칠채산이고스란히드러나있다.우리가옷으로속살을가리듯,지구는나무로속살을가린다.시인은나무한그루없는칠채산을보면서속살을온전히드러낸지구를상상한다.우리또한알몸으로이세상에태어나지않았는가.속살이든,알몸이든생명은제안에아무나들어갈수없는장소를지니고있는법이다.아주결정적인순간이오지않는한생명은그장소를밖으로드러내지않는다.그것이노출되는순간생명은더이상생명으로서남을수없기때문이다.알몸으로태어난생명은알몸으로죽는다.속살이나알몸은삶과도이어져있지만,죽음과도이어져있다.사진이미지를다시보라.삶이보이는가,아니면죽음이보이는가?

나무한그루없는황량한산에서삶과죽음을나누는것은허망한일인지도모른다.“숨겨진것은모두드러나는법”이라는시구로나타나는대로,시인은삶과죽음이결국은하나로이어진다고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