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시시콜콜수다떠는승객들만나는재미로버스에오른다’
인생의행로는버스가다니는운행노선과같습니다.첫노선은미지의세계로가는호기심과두려움이교차하지만,시간이지나반복되는일상은우리의삶을지루하게만들거나,지치게합니다.그러나내마음대로새로운길을개척해서가기가어렵습니다.누군가가그려놓은노선을따라다람쥐쳇바퀴돌듯이도는것이,어쩌면우리가타고난운명인지도모릅니다.내자유의지대로멈출수가없습니다.내리는승객이있어야버스는멈춥니다.
버스기사라는직업은피곤한직업입니다.정신적,육체적모두….가끔방전된에너지를충전하고자,한노선이끝나고살짝끼어든시간적틈을이용해운전석에앉은채로눈을붙입니다.그짧은시각에도꿈을꿉니다.아내와의만남,학창시절,도시에서의생활등.천연색의화려한꿈을꿉니다.잠에서깨어나운전석에앉아있는저자신을발견하고는현재의직업에새삼스러움을느낍니다.벌써,시골버스기사생활이4년차가다되어가지만,어디까지가꿈이고현실인지분간을못할때도있습니다.
이책에실린글들은버스좌석에쪼그리고앉아잠자면서꾸었던꿈속이야기들입니다.우리이웃의이야기도,저의과거와가족이야기도있습니다.시골버스는이땅에서살아가는,힘없고가진것없는소시민들의생활공간입니다.그분들의이야기를통하여,이책을읽는독자들이그분들보다상대적으로얼마나많은것을소유하며,누리고살아왔는지되돌아보는계기가되었으면좋겠습니다.
책속에서
내가사는마을앞승강장에서낯이많이익은학생이버스에올랐다.자세히보니우리아들놈이다.코로나때문에마스크로얼굴반을가렸으니,‘저놈이내아들인지,이놈이내아들인지’헷갈릴때가있다.아들놈이버스에오르자마자단말기에카드를척갖다대었다.“안녕하세요.”단말기에서기계음이흘러나왔다.(일반은‘감사합니다’,청소년은‘안녕하세요’,어린이는‘반갑습니다’이다.그래서소리만들어도누가버스에승차했는지대충알수있다)“아들아!아빠가운전하는버스인데요금을꼭내야겠니?”“이버스가아빠것은아니잖아!남들과똑같이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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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멕이질말던지.”청천터미널에서버스에오르시는할머니의푸념이다.그것도시골버스기사가잘듣게큰소리로.앉아계시던승강장벤치옆에는큼지막한개사료한포대가기대어있었다.아마버스가도착하기전,사료를파는가게사장님이먼저옮겨놓은모양이었다.힘없는노인이20여킬로그램이되는개사료포대를옮기려하니엄두가나지않아입에서자동으로나오는푸념이었다.당신한몸도가누기힘든노인이거대한개사료포대를들고버스에오르기란애초에불가능한일이었다.
---p.80
충돌사고가날경우운전기사는무의식적으로자신의생명을보존키위하여핸들을좌측으로꺾는다고하여버스에서가장위험한좌석은버스기사의우측좌석,즉조수석이고안전한좌석은버스기사바로뒷좌석이라고이야기들을한다.그러나이이야기가통계적으로검증되었거나학자의연구로보고되었다는이야기는아직듣지못했다.시중에떠도는썰정도가되지않을까생각한다.
---p.111
버스기사들은아침,점심,저녁을거의회사구내식당에서해결한다.그런데회사구내식당의메뉴는특별한날을제외하고항상그날이그날이다.단조로운메뉴에싫증을내는버스기사도간혹있지만매일먹어도배탈한번난적이없고집밥같아서편안하고좋다.배차된버스가하루종일터미널에들어올일이없는노선인경우외부식당에서밥을사먹는경우가있다.
---p.148
여름을부르는봄비가촉촉이내린다.이런날이면남한강줄기두물머리근처고급스러운카페의넓은유리창을흘러내리는빗물을보면서사랑하는그녀와향기로운커피를한잔마시면좋겠다.나는특별히카푸치노를좋아하는데이커피는테이크아웃해서빨대로빨아먹으면절대안된다.빨대로흡입하면층층이쌓인거품과시나몬가루를동시에먹을수없기때문이다.무늬가없는백색의커다란잔에입을대고달콤하고향기나는시나몬가루와부드러운거품,그리고진한커피를동시에쭉들이킬때진정한카푸치노를느낄수있기때문이다.커피를마실때입술에묻은부드러운거품은상대방의키스를부르는입술로변한다.(그냥그렇다는말이다!확대해석은하시지말기를.)
---p.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