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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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삶은 어떻게 불행 한가운데서도 빛을 잃지 않을 수 있는가”
그해 겨울, 하리와 미혼모들은 폭설이 모든 것을 뒤덮는
혹한의 세계를 견디고 있었다.
2022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 선정작!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자 서경희의 놀라운 장편소설
“우리가 쉽게 만나기 어려운 미혼모의 세계를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작품”

2015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데뷔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그려온 서경희 작가의 장편소설. 2022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서 심사위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선정된 《하리》는 우리 사회가 지금껏 외면해왔던 미혼모들의 삶에 강인하지만 동시에 사려 깊은 필체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끼니를 때울 곳도, 잘 곳도 없이 거리를 떠돌던 미혼 임산부 하리는 아이를 불법적으로 입양시킬 수 있는 미혼모 쉼터 ‘분홍하마의 집’을 찾는다. 젊을 때 연극배우를 꿈꿨으나 지금은 임산부들의 엄마를 자처하며 쉼터의 대모가 된 마마, 쉼터 건물 1층의 초원슈퍼에서 하리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할아버지 미스터 칙, 하리와 똑같이 갈 곳 없는 만삭의 몸으로 쉼터를 찾은 초련, 예나, 아이린, 소희까지. 저마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불행한 과거를 짊어지고 이곳에 모인 자들은 서로를 혐오하기도,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면서 긴 겨울의 시간을 치러낸다. 이 군상이 드러내는 슬프고 충격적인 진실은 독자들의 마음을 조금씩 빼앗아 작은 구멍을 만들고 새로운 질문이 들어설 자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저자

서경희

2015년단편소설「미루나무등대」로김유정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경주시립극단에서배우로활동했으며,극단다파대표를역임했다.지은책으로는『수박맛좋아』『복도식아파트』『꽃들의대화』『옐로우시티』『하리』가있다.제3회‘넥서스경장편작가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프롤로그

[1부]가을

분홍하마의집
산모수첩
고백의시간(1)
미스터칙
고백의시간(2)
굿바이몬스터

[2부]겨울

날짜와요일을잃어버린나날들
마녀아이린
고백의시간(3)
구멍난통장과전과14범
벽지라도드세요
고백의시간(4)
기억을팝니다
집회
제인구달을닮은할머니
불법입양
고백의시간(5)
누가시장을보러갈것이냐는생존이걸린문제
감자박스가비어가는시간
최초의도둑질
쓰레기통의영아시체

[3부]다시봄

설탕차와벤자민샐러드
백설의탄생
폭설
고백의시간(6)
탈출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삶은어떻게불행한가운데서도빛을잃지않을수있는가?”

그해겨울,하리와미혼모들은
폭설이모든것을뒤덮은혹한의세계를견디고있었다.

열여덟에아이를밴하리가거리를떠돌다끝내내몰리게된곳은입양특례법을우회하여아이를불법으로입양시켜주는대신쉼터를제공하는‘분홍하마의집’이다.쉼터를운영하는원장과쉼터의대모인마마는돈이될물건을잉태하고있는임산부들을마치상품을관리하듯돌본다.하지만하리에게는애초에아이를제대로낳을생각이없다.그저불청객처럼자기인생을덮쳐버린이‘괴물’을어떻게하면배속에서그대로죽여버릴수있을지를고민할따름이다.한편분홍하마의집에서는정기적으로‘고백의시간’을갖는다.본래는서로의상처를공유하고빗대어보며치유의시간을갖기위한취지지만,이는마마의강압적인고백강요로인해거짓으로불행한기억을지어내야만하는‘불행전시의시간’이되어만간다.임산부들은마치자기자신을혐오하듯비슷한억압과학대의기억을가진다른임산부들의이야기를혐오하고헐뜯으며하루하루를이어간다.한겨울의시간이찾아오던어느날하리는마침내아이를유산하는데성공하고소위상품생산력을잃어버리게되는데,예상치못하게도쉼터에서쫓겨나는대신마마의역할을이어받게된다.

우리가한번도들어본적없는게아니라
한번도귀기울인적없는이야기

통일바람과함께장밋빛개발전망에들떴다가이제는완전히버려지다시피한북방지역에들어선쉼터는한때는꿈과사랑을좇았다가가장낮고외진곳까지밀려난등장인물들의삶을은유하는것같다.그때문인지우리는처음《하리》를읽기시작할때마치철조망을두르고저쪽을삼엄하게경계하는이쪽의현실처럼,등장인물에게서압도적으로느껴지는냉소와적의에적잖이놀라게된다.이들이적의를쏟아내는‘이쪽’은아마도독자인우리가속한곳일테니까말이다.이는인생의황혼녘에풍파에바짝말라버린몸을잔뜩웅크리고있는마마와미스터칙을제외하면모든미혼모캐릭터들이취하는태도이기도하다.그런데이야기를계속읽어내려가다보면오히려무심하게폭력적냉소를행사하고있는건‘이쪽’이아닐까하는의문이생기게된다.믿기지않을정도로환대가상실된세계.자주현실이소설보다비현실적이라는것을새삼떠올려본다면《하리》가그려내는극단적사태가오히려진실에더가까운것은아닐까.어쩌면작가는우리가쉴새없이분노를쏟아내는이인물들을견디면서우리자신의진실을제대로직시하기를바라는것일지도모른다.

삶이한편의연극이라면
우리는어떤결말을향해나아가고있는걸까

《하리》에서미혼모들을껴안아미약하게나마공동체의온기를지키는역할을도맡는마마와하리는공통적으로연극을좋아한다.어떤독자들에게는이들의취향이불안정한현실로부터도피하기위한심리적기제때문에형성되었으리라추론할수도있겠다.하지만그자체로인간삶을은유하는무대라는공간과시간속에서,‘인간의육체’야말로이야기로구성된이세계의주체임을집중도높은페이소스로드러내는예술이연극이라면,이들의애호를조금다른관점에서긍정하게된다.원치않는임신,벗어날수없는가난,부조리하게들이닥치는노년으로인해육체성(생명력)을상실한두인물이눈앞의불행을연극에빗댈때(연극대사를읊을때)재앙과같은불행은마침내삶이라는서사의안쪽으로끌려들어오면서긍정할만한것이되기때문이다.그래서또다른미혼모초련의앞에서하리가자신이초련을임신시킨남자인양연기하며역할극을진행한끝에초련을어떤치유의순간에데려다놓는장면은《하리》에서가장감동적인순간중에하나이다.

매주열리는‘고백의시간’에쏟아져나오는분노에찬미혼모들의고백에도불구하고열여덟살하리를따라가다보면왠지모르게“모든이야기에는어디에든,어떤식으로든해피엔딩이있다”는말을믿게된다._강영숙(소설가)

‘오늘도살았다!’는탄식과함께삶의다음장으로자기육체를나아가게하는힘은얼핏나약하게만보이는한주체의내부에서자꾸만솟아난다.《하리》는이런힘으로우리를내치고짓뭉개려는세계에끈질기게맞서는이들의이야기이다.이가련하지만강인한인물들로부터《하리》를읽는독자들이어떤삶의경이를다시한번확인하면서책을덮을수있기를바란다.

추천사

강영숙(소설가)

서경희의《하리》는우리가쉽게만나기어려운미혼모의세계를보여주는매우귀한작품이다.원하지않는임신으로미혼모쉼터인‘분홍하마의집’에모인여성들의삶은부조리극의한장면처럼보인다.주인공‘하리’가괴물이라고지칭하는배속의아이는무사히태어날수있을까.다른임산부들은힘든출산과정과그에동반되는고통스러운시간을지나해피엔딩을맞이할수있을까.매주열리는‘고백의시간’에쏟아져나오는분노에찬미혼모들의고백에도불구하고열여덟살하리를따라가다보면왠지모르게“모든이야기에는어디에든,어떤식으로든해피엔딩이있다”는말을믿게된다.

조예신(성우,중앙대학교예술대학원겸임교수)

이책은삶의본질을꿰뚫는인간본연의모습을그만의필체로써내려간글이다.어느새빠져들고심장이두근대며마음을데우는글.이모든것이그이기에가능하다.그의작품은삶이익어가는과정을읽어가는과정이며어느계절에읽어도그계절을흡수하는마력으로잔잔한감동과소소한행복,그리고깨달음에이르는미학이다.다시오지않을이시간.오늘도변함없이그의책을권한다.

책속에서

분홍하마의집은미인가미혼모쉼터다.쉼터이름에‘집’을붙이는건아무래도웃기는일이다.수용소라면몰라도.학교도그렇지만집이라면넌더리가났다.그래서가출해서도찜질방,PC방같은‘방’에서만생활했다.그런내가분홍하마의집에입소하기로마음먹은이유가있었다.출산한아이를미혼모의호적에올리지않고입양을해주었기때문이다.말로만듣던불법입양이었다.불법이든합법이든괴물만치워준다면오케이다.무엇보다출산하고나서얼마간의현금을챙길수있다는장점이있었다.물론건강한아이를낳았을때의일이지만말이다.
---p.14

“내가왜돈은안되고힘만드는이일을하는지아니?젊어서지은죄때문이다.빵을들락거리다가하느님을만났기때문이야.하느님이아니었다면,고마움도모르고양심이라고는1그램도없는,간음하지말라는주님의말씀을어긴,너희같은버러지를거둘이유가있을까?”
“고맙게생각하고있어요.”
나는원장이하는말이듣기싫어서그렇게말하고말았다.
---p.29

“용용아,너는내가몇살이면좋겠니?”
미스터칙은나를용용이라고불렀다.하리가내이름이라고아무리말해줘도소용없었다.임신으로몸이망가지긴했지만사람이아닌동물을닮았다니,그것도상상의동물을.하루가다르게몸이부었다.아침마다단백뇨검사스틱에소변을묻혀검사를했다.원장이결과를물을때마다정상이라고거짓말을했다.두통과어지럼증이심해졌지만참았다.임신중독이심해지면태아도위험하다고했다.괴물이견디지못하고그냥사라져버렸으면좋겠다.
“몇살이면좋겠냐고.”
“소년이요.나랑또래였으면좋겠어요.”
---p.60

“아기가잘못됐으면어쩔뻔했니?”
원장이다그쳤다.
“잘못되면어떻게되는데요?”
“뭣되는거지.”
원장에게태아는아주중요했다.
“제밑으로들어간돈회수못할까봐요?”
“걱정안한다.몸으로때워도되고.”
---p.76

나는마른장미꽃잎처럼바싹말라서죽어야겠다고결심했다.체내에있는수분을쏟아내기에는눈물만큼좋은게없었다.나는있는대로악을쓰면서울었다.미스터칙이가만히머리를쓰다듬어주었다.
“울어.울수있을때마음껏울어.”
“칙이에요?”
나는꺽꺽넘어가는소리로물었다.
“그래.용용아.”
미스터칙의품으로파고들었다.마음껏울기에는사람의품만큼좋은게없었다.혼자우는것보다달래주는사람이있을때더신명나게울수있는법이다.
“나도너처럼울고싶은데안돼.우는법을잊어버린거같아.울고싶어도울지를못해서병이생겼어.속상한일이있어도울지를못하니까폭삭늙더라고.한번만더울고싶은데어떻게울어야하는지모르겠어.”
---p.137

기억의창고를쓰레기통에버릴수는없었다.이노트는내것이아니었다.기억의창고는분홍하마의집을거쳐간수많은미혼모가낳은아이들의족보다.아이들을찾아서노트를돌려주어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그일은평생을바쳐야할만큼오랜시간이필요할지도모르지만,이곳에서살아서나가기만한다면그일을시작할것이다.먼저여자들과아이들을살린다음에말이다.
---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