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여우는 (전정예 시집)

여우는 여우는 (전정예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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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더욱 깊어진 ‘여우’ 시리즈의 귀환”
전정예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여우는 여우는』은 오래도록 넘어온 고개들 끝에서 다시금 ‘여우’를 부르는 시집이다. 어릴 적 불러보던 “여우야 여우야”에서 시작된 여우의 길은, 외롭고 그리운 존재로, 그리고 결국 서로를 비춰주는 작은 등불로 이 시집에 이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삶의 고개 앞에서 시인은 또다시 여우를 찾아 나서며, 그 그리움 자체를 삶의 방식으로 껴안는다.

『여우는 여우는』에서 여우는 더 이상 혼자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건너온 기억과 사랑, 상실과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당신의 신화”와 “여우는 여우는”에서 보이듯, 이 시집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신화에서 일상이 되고, 다시 조용한 전설로 내려앉는지를 보여준다. 젊음의 열망과 좌절, 그리고 50년의 시간 끝에서 남은 것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의 발을 닦아주는 하얀 수건 같은 마음이다.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자연으로 향한다. 달개비꽃, 겨울의 얼음과 모직코트, 시냇물과 나무, 꽃과 바람은 이 시집에서도 묵묵히 말을 건다. 작고 소박한 존재들 앞에서 시인은 삶의 후반을 살아가는 자세를 배운다. 떠남과 끝을 말하면서도 비극으로 기울지 않는 것은, 자연이 가르쳐준 단정한 태도와 조용한 수용 덕분이다. “소리 없이 가기를” 바라는 소망에는 삶을 정리하는 한 시인의 담담한 기도가 배어 있다.

또 한 축을 이루는 것은 기억과 관계의 서사다. 오래된 집, 유리잔, 서랍 속, 혼자 사는 여인, 노부부, 친구와 어머니, 자식과 사랑에 이르기까지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은 온기를 세심하게 더듬는다. 이별과 상실은 반복되지만, 그 자리에 끝내 남는 것은 그리움이다. 『여우는 여우는』의 시편들은 삶이 결국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임을 조용히 설득한다.

전정예 시인의 『여우는 여우는』은 여우 시리즈의 연속이자, 깊어진 귀환이다. 더 빨리 달리지 않고, 더 높이 오르려 하지 않으며, 그저 저무는 해를 비춰보며 다음 고개를 준비하는 시집이다. 해가 지면 서로의 등을 밝혀줄 여우들처럼, 이 시집은 오래 살아온 독자의 마음 곁에 작은 따뜻함 하나를 남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이 정도의 빛이면 잘 살아온 것이라고 조용히 말해준다.
저자

전정예

서울대학교,미국조지타운대학원졸업
언어학박사
건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
현재건국대학교국어국문학과명예교수
1998년〈세기문학〉시부문신인상수상
2004년시집〈여우야여우야〉출간
2015년시집〈여우가여우가〉출간
2016년시집〈여우랑여우랑〉출간
2025년시집〈여우는여우는〉출간

목차

시인의말

1부당신의신화
당신의신화/여우는여우는/12월에오기까지/달개비꽃앞에서/겨울1/겨울2/새벽의시간/나무처럼/시냇물하나/수많은물결되어/파도와모래톱/오래된목로

2부그렇네
그렇네/내옷/내가살던집/아무것도/장맛비/혼술/유리잔을씻으며/서랍속/수줍음/그대와나/그저그럴뿐

3부데스벨리에가거든
데스벨리에가거든/안데스에서/쿠스코할머니/파타고니아/아프리카에서는/장미호수/르토로네수도원/코츠월드마을/사그라다파밀리아/동전세개/빈의자/경포대에서/꽃1/꽃2/꽃3/꽃4/꽃5/꽃6/꽃7/꽃8

4부사랑
노부부/행복한비상/혼자사는여인/산다는게/조우1/조우2/돌아간너/다행이다2/내친구경숙이/어머니말씀/하랑이/산타이야기1/산타이야기2/아가야1/아가야2/사랑1/사랑2/사랑3/사랑4/사랑5

발문

출판사 서평

여우를부르는일은결국삶을다시부르는일이다.전정예시인의네번째시집『여우는여우는』은그렇게오래불러온이름,여우의끝에서다시시작되는시집이다.어릴적“여우야여우야”를부르며넘었던고개들,『여우야여우야』와『여우가여우가』,『여우랑여우랑』을지나온여우의길은이시집에서한층조용해지고,한층깊어진다.끝날듯끝나지않았던고개앞에서시인은다시여우를찾고,그그리움자체를삶의방식으로받아들인다.

이시집에서여우는더이상외로운존재에머물지않는다.여우는서로의등을비춰주는존재,오래함께살아온사람들의시간과닮은얼굴로서있다.「당신의신화」와「여우는여우는」에서시인은젊음의신화,열망과좌절,책임과사랑을통과해온삶의전경을담담히펼쳐보인다.거창한승리나극적인결말대신,남은것은서로의발을닦아주는작은손길,오래함께한시간의체온이다.

전정예시인의시는여전히자연에기대어인간을바라본다.달개비꽃,겨울의얼음과모직코트,시냇물,나무,꽃들은이시집에서도말없이삶의태도를가르친다.떠나야할시간을앞두고서도시인은자연앞에서겸손하고단정하다.크고요란한감정보다는소리없이스미는여운으로,삶의끝자락을준비하는마음을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