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코리안 스포츠 영웅 열전

재일코리안 스포츠 영웅 열전

$22.00
Description
재일코리안 출신 스포츠 스타를 몇 명 꼽아보라면 금세 떠올릴 사람들이 있다. 전설적 프로레슬러 역도산, 안타제조기 장훈, ‘야신’이라 불린 감독 김성근, 한국프로야구 전무후무한 30승 투수 ‘너구리’ 장명부, 그리고 유도와 격투기에 이어 엔터테인먼트 영역에서도 맹활약 중인 ‘섹시야마’ 추성훈… 이 책은 이들의 화려한 영광뿐 아니라 우리가 잊은 수많은 재일코리안 선수들의 활약상과 좌절, 애환의 족적을 따라간다.
오랫동안 한일 양국의 스포츠 문화를 취재해온 전문 르포라이터 오시마 히로시는 감동적인 그들의 삶에 관한 자료를 찾고 증언을 정리하여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영웅 열전으로 묶어냈다.
야구, 축구, 유도, 레슬링, 농구, 배구, 마라톤, 골프, 피겨스케이팅 등 각 종목별로 기술한 스포츠 교류사뿐만 아니라 재일코리안의 생활문화사를 기록한 역사서로서 뿌리 깊은 ‘차별 의식’과 ‘승리지상주의’를 향해 통렬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

오시마히로시

1961년도쿄에서태어났다.메이지대학졸업후연세대학교한국어학당에서한국어를연수하고,일본으로건너가한국스포츠관련취재를기고해온자유기고가이다.숙명의라이벌로서수많은명승부와드라마를거듭한한일축구사를기록한첫저서『日韓キックオフ??:ワ?ルドカツプ共催への長き道り(일한킥오프전설:월드컵?공동개최의기나긴여정)』(?業之日本社,1996;集英社,2002재간행)으로2002년‘미즈노스포츠라이터상’을수상했다.한국야구의기원에서부터한일스포츠교류의역사를다룬『韓?野球の源流:玄界灘のフィ?ルド?オブ?ドリ?ムス(한국야구의원류:현해탄과꿈의경기장)』(新幹社,2006),스포츠약소국
에서‘극일’이라는신조를바탕으로스포츠강국으로변모한,한국스포츠사를서술한『コリアンスポ?ツ?克日???(코리안스포츠‘극일’전쟁)』(新潮社,2008)등의저서를통해한일문화교류에초점을맞추어한국스포츠를소개하였다.

목차

한국어판출간에부쳐
프롤로그64년만의런던올림픽
1장현해탄을오가는혼신의흰공―야구편
<대담>30년전고시엔대회결승을이야기하다
―가네무라요시아키(호토쿠가쿠엔)×한유(교토쇼교)
전전과전후를가로질러달려온전설의야구인들
탄생!재일교포학생야구단
분단된조국에서고뇌한명외야수배수찬
‘야신’이라불린남자김성근의반골정신
임창용을키운에히메출신의영웅신용균
조국에서활약한재일코리안2세와3세들
후쿠시와니우라,혹은장명부와김일융

2장재일에깃든국기國技축구의자긍심―축구편
이유형에서이충성까지,축구한일전60년
고라쿠엔구장에서개최된국제축구경기
재일코리안이시작한주오대학축구부의‘전후戰後’
‘재일전全코리아’선발팀이넘은벽과넘지못한현실
독일에서뛴재일코리안축구소녀강유미

3장메달리스트를배출한‘승부’의계보―유도편
덴리대학출신,한국유도최초의메달리스트김의태
도쿄올림픽과재일사회
금메달에가장가까이간‘아름다운패자’오승립
스포츠강국을향한기반정비와재일코리안의역할
고독한동메달리스트박영철의유도한길
영웅과악역사이추성훈

4장한국스포츠영광의역사,그단서―레슬링편
메이지대학출신한국레슬링선구자들의파란만장한인생
런던올림픽과요코하마사건
한국스포츠사를바꾼도쿄에서의3개월,장창선
프로레슬링의혁명전사조슈리키,그혼신의외침
역도산의차남모모타미쓰오,아버지를말하다

5장코트위의인연―농구·배구편
한일스포츠의거장이상백
해협의파도를넘은사랑의토스,박계조
아시아의거포강만수의와세다대학입학
‘신마녀’팀주전시라이다카코의파란만장한배구인생
니치보출신의한국대표팀주장조영순

6장‘세계최강’의원점―골프편
국가상비군의위력을보여준아시아제패
한일역전의시작,서울아시안게임과서울올림픽
해외진출선구자구옥희를지원한사람들

7장운명의어깨띠릴레이―마라톤편
한국마라톤,전설적인영웅들의올림픽과하코네역전경주
김철언이달려온인생의등반길

8장‘불모의땅’에서올림픽을개최하기까지―동계스포츠편
기나긴겨울
한일피겨최강시대에핀재일의꽃김채화

9장저마다의재일정신―럭비·사격·하키편
코리안,그리고장남의숙명을짊어진전설의럭비선수,도요야마게이치
문세광사건1년후아시아제패라는무게,사격선수박영주
일본과한국에계승되는겐코쿠클럽하키의DNA

에필로그한일스포츠역사속재일코리안

해설기록/기억되어야하는재일코리안스포츠영웅들|유임하
일본어판감수자후기|박안순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이책은재일코리안출신스포츠인의감동적이지만망각된활약상을한국근현대사속에위치시킨다.그들은옛식민지종주국에서차별받았을뿐만아니라,모국에서도‘반쪽발이’로조롱받기도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특유의강인함과모국을향한애정으로한국스포츠의수준을한단계도약시켰다.

선수뿐만아니라재일사회의지원도꾸준히이어졌다.대한민국정부가수립되기보름전에개막한1948년런던올림픽.첫태극마크를단선수단은후쿠오카와요코하마를경유해장도에올랐다.일찌감치환영준비위원회를꾸린재일교포들은선수단이주요역에도착할때마다김치와선물을안기며맞이했고64만엔이넘는거액의찬조금과운동기구를전달했다.전쟁으로초토화된상황에서출전한1952년헬싱키올림픽때도재일코리안사회는유니폼과보스턴백,운동기구등출전에필요한장비일체를기부했다.이러한지원은서울올림픽까지이어져100억엔의대대적인기부가이어지기도했다.

현해탄을사이에두고격랑속에몸을던진재일스포츠영웅들의파란만장스토리

장면#1

한일국교정상화가이루어지기1년전인1964년겨울,스물을갓넘긴야구유망주김성근은일본의재류자격을포기하고한국으로향했다.당시로서는언제실현될지모르는국교정상화를기다릴여유가없었다.“야구가하고싶었어요.”어머니는맹렬히반대했고여권을숨기기도했다.어머니가아들의영주귀국을반대한까닭은고국에서살아가는일이얼마나혹독한지알고있기때문이었다.“어쩔수없구나.네가택한인생이니네가책임져야한다.혹시잘못되더라도원망하지말거라.”아들의각오를바라는어머니의말을김성근도단단히새겨두었다.“그것이지금까지삶의근본이지요.무슨일이있어도,그누구탓도하지않을때가많았어요.”

장면#2

남북이자존심을걸고대립했던시기,1972년뮌헨올림픽에첫출전한북한은금메달한개,은메달한개,동메달세개로종합22위를달성하며,은메달한개가유일했던남한을압도한다.한국의유일한메달리스트는재일코리안출신인유도의오승립이었다.하지만노메달의공포에서구한그에게비난이날아든다.결승전에서패배한상대가바로일본의세키네시노부였기때문이다.“너,마지막엔일부러쓰러져준거지?”“일본에살고있으니까일본에져준거냐?”참다못한오승립은생각한바를한국어로잘전달하기어려워서,“실례지만일본어로말씀드리겠습니다.”하고자신의마음을쏟아낸다.“시합을하는사람의기분을생각하신다면그런말이나옵니까?나는내나름대로최선을다했고,나라를위해서도정말열심히노력했습니다.지고싶어서지는인간은그누구도없습니다.”“한국에오면‘반쪽발이’라고부르고일본에서재미좋았냐는말까지듣습니다.일본에서는외국인이라부릅니다.도대체어쩌란말입니까?우리들마음을모른다는생각이들었어요.”

장면#3

1944년4월22일,일본프로야구사상제1호데뷔첫타석홈런이라는대기록을달성한가네미쓰아키오의본명은김영조.홈런을허용한비운의투수후지모토히데오는절치부심하여1950년,일본프로야구첫퍼펙트게임을달성한다.후지모토의본명은이팔용.

30여년이흘러,1981년8월21일,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가펼쳐진고시엔야구장전광판에는정(鄭)과한(韓)이라는낯선‘조선인’의이름이켜진다.하지만그날그들이속한팀을정확히100개의공으로압도하며완봉승을거둔투수는가네무라요시아키.그역시김의명이라는민족명을가진재일코리안이었다.가네무라는이후한국의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도참가했고,그의일본프로야구진출상황은당시한국언론에서도단골기사로오르기도했다.

일본여자최강실업팀의득점왕이었던이와모토에이코는한국농구사에는국가대표농구팀주장조영순으로기록되어있다.일본마라톤및하코네역전경주의스타였던김철언은잘알려져있던기노시타데쓰히코라는이름을과감히버리며활동을이어갔다.그밖에도장명부혹은후쿠시히로아키,추성훈혹은아키야마요시히로처럼‘혹은’으로연결되는그이름들은한일사회에서경계인으로서불리함을마다치않고모국의부름에응답했고,때로는한일교류의첨병으로공헌해왔다.외국국적이라는이유로활동의장을빼앗기고양국의틈새에서고뇌하고갈등하면서도계속싸워온재일코리안체육인들의역사는이제망각의봉인을열어젖히고기억되고기록되려고한다.

한국근현대사속에서다시보는재일코리안스포츠영웅과스포츠교류사

저자는야구,축구,유도,레슬링,배구·농구,골프,마라톤,동계스포츠등종목별로서술하지만,시간적으로는식민지시대의불평등한관계속에서시작된한일스포츠교류사를숙명의라이벌시기를거쳐한일공동월드컵이개최된2000년대이후까지종횡무진넘나든다.

식민지시기:식민지시기한일스포츠사에드리워진명암의대표적인사례는다음과같다.‘한국의쿠베르탱’으로불리는사회학자이상백이일본농구협회의산파역할을하며‘일본농구의아버지’로도알려진사실이빛이라면,그리고손기정이베를린올림픽마라톤에서금메달을따고일본유학을떠났어도육상경기를금지당한아픈사연은그림자에해당할것이다.

1950년대:국교단절과반일정서속에서도재일코리안의활동과기술전수는꿋꿋하게이어졌다.지고돌아오면현해탄에몸을던지라던이승만정부의압박속에서어렵게성사된1954년의축구한일전,1956년창설된재일교표학생야구단은그대표적인사례이다.민단과총련으로격렬하게대립하던재일사회에서도이념을넘어선재일전(全)코리아축구팀이결성되는감동스런일화도기억해둘만하다.

1960년대:재일사회는북한으로의귀환운동,한일국교정상화등긴장의시대를맞이하여각개인마다어느쪽을선택해야하는가라는선택을강요받았다.국적의벽에가로막혀국가대표로는물론,사회인스포츠팀이나프로선수의길도여의치않았던일본사회속편견과차별은말할것도없었다.

1970년대:북한이국제무대에본격적으로출전하면서,이에대항하기위해한국이전력강화와스포츠인프라를구축하려할때,국가대표팀에소속되어조국을빛냈던선수들도많았다.하지만‘우리안의외국인’이던재일코리안에대해따뜻하지만은않았다.병역면제나진학특혜등의제도적틀바깥에있는재일코리안을향한시선도차가웠다.1970-1980년대고교야구의황금기에그라운드를뜨겁게달구었던‘재일동포’야구팀도마찬가지다.토너먼트초기에는열렬하던응원이8강,4강,우승에가까워질수록분위기가급변해흡사원정경기같은상황속에서경기를치러야했다.

‘86서울아시안게임’과‘88서울올림픽’을계기로한일의스포츠강국의지위가역전되기시작한1980년대부터월드컵공동개최로전환기를맞은2000년대까지이야기는이어진다.가깝고도먼두나라의스포츠문화교류속에서재일코리안은어떻게활동의장을펼쳐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