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중국·이슬람 문화의 융합과 세계화의 길)

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 (중국·이슬람 문화의 융합과 세계화의 길)

$29.96
Description
본서 ‘세계문화 바꾼 청화백자’는 한마디로 청화백자가 일구어낸 문화적 세계화의 커다란 단면을 보여준다. 청화백자가 이룩한 중국 문화와 이슬람 문화의 융합과정과 함께 그 청화백자가 걸어간 세계화의 길을 찾아간다는 소리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에 걸쳐 웅대한 제국을 건설한 이래로 중국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결합하여 태어난 대표적, 상징적 산물을 꼽으라고 하면 그것은 단연 청화백자다. 그 청화백자가 중국에서 탄생했지만 원류를 따지면 그 태생지는 이슬람권이다.

이슬람권이 원산지인 코발트 블루로 청화백자를 화려하게 치장한 화초문과 기하문의 기원도 이슬람 모스크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그 청화백자가 몽골족의 원나라에서 태어났건만 한족의 명나라가 자존의 상처를 달래려고 그 사실을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원대청화백자는 600년 넘게 지나서야 그 탄생의 역사가 햇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중국인이 아닌 영국인, 미국인의 손을 빌려서 말이다.

문화패권주의가 고유와 독창이란 말로 포장한 문화적 편협성을 뽐낸다. 하지만 인류의 모든 문화는 오랜 세월에 걸친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융합현상을 보여 왔다. 중국이 자랑하는 청화백자도 중국의 백자에 이슬람의 코발트, 기형, 문양이 결합해서 태어났다. 그 청화백자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납치해 끌고간 조선도공에 의해 일본에서 다시 화려한 개화기를 열었다.

출생의 비밀이 오랜 세월 역사의 뒤안길에 가려졌던 청화백자이지만 이슬람 세계에서는 중국황제의 그릇으로 대접을 받았었다. 유럽이 무슬림 상인들의 손을 거쳐 건너간 청화백자와 마주치는 순간 천상의 신비에 탄성을 연발했다. 그들의 눈에는 보석청이 찬란하게 빛나는 청화백자가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빚었다고 믿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돌처럼 생긴 갖가지 기형의 하얀 물질에 갖가지 파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위를 덮은 옅은 유리질의 물질이 빤짝빤짝 빛나니 말이다. 영어 porcelain(자기)의 어원이 라틴어 porcellana(조개껍질)라는 사실이 그것을 말한다. 그 유럽이 대포로 무장한 전함을 앞세우고 나침판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도자왕국을 찾아 나서면서 세계는 유럽의 약탈과 살육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그들은 대항해 시대라고 부른다. 그것은 중국의 발명품인 나침판과 화약의 역습이었다.

그 이후 유럽에는 귀족과 부호들 사이에 청화백자 수집열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유럽의 이름난 고성과 궁궐마다 청화백자로 장식한 중국방(China Room)을 차려놓고 저마다 더 좋은 자기를 더 많이 가졌다고 경염을 펼쳤다. 부귀와 영화를 자랑하던 그 유행의 물결이 유럽에 중국풍의 문화적 선풍을 일으키고 나아가서 중국을 배우자는 계몽주의를 일깨웠다.

중국이 조공무역을 철칙처럼 여겼지만 돈은 그 장벽을 어렵지 않게 뛰어 넘었다. 중국은 유럽을 남쪽 나라 오랑캐라고 치부하고 대면조차 거부하며 겉으로는 체면을 차렸지만 속으로는 그들의 은을 열심히 챙겼다. 스페인의 멕시코 은화가 중국인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통화로서 통용될 정도였다. 중국은 그 은으로 장대한 만리장성을 개축-증축했다. 또 세금을 은으로 내는 은납제도 실시함으로써 물류비용을 크게 절감했다.

이슬람 세력의 이동에 따라 유럽으로 따라간 이슬람의 코발트 블루가 그곳에서 델프트웨어 도자기, 아줄레주 벽화로 재탄생했다. 델프트웨어는 생활용기, 장식용 도자기로, 아줄레주는 도시의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더니 건축자재로 변신했다. 지구촌 건축물의 내외벽면을 덮은 타일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가 아닌 도기였다. 유럽이 중국백자의 신비를 풀기까지는 긴 세월이 걸려 18세기 들어서야 천년독점이 깨졌다.

한편 일본은 조선도공의 손을 빌려 단숨에 백자를 구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조선도공의 후예들이 빚은 일본의 청화백자와 채회자기가 상륙하자 유럽은 또 다시 동방의 신비에 경탄했다. 격정의 고흐, 빛의 모네의 화풍에도 도자기 포장지로 쓰였던 일본 목판화의 숨결이 깊게 배어난다. 일본 목판화 우키요에(浮世繪)에 매료된 파리의 화단은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그려냈다. 일본제국 출현의 배경에는 도자기 수출로 벌어들인 돈줄이 자리하고 있다.

청화백자가 유럽의 식탁에서 금속제 식기류를 밀어내더니 이제는 세계인의 식기류와 장식품으로 사랑받는다. 21세기 들어서도 세라믹은 여전히 첨단소재로서 그 효용성을 자랑한다. 이 책은 청화백자를 중심으로 이뤄진 동서양의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통해 파생된 세계적 변화를 말한다. 세계문화를 바꾼 청화백자가 1320년대 후반에 태어났으니 이제 탄생 7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저자

김영호

한국일보견습기자입사,편집부,경제부
1980년신군부에의해강제해직
세계일보경제부장,논설위원,편집국장
한국방송공사(KBS)이사

월간지-일간지기고가활동
내일신문.경인일보,경향신문,한겨레,농민신문,세계일보등10여개신문에〈김영호칼럼〉1,000여편기고(최근순)

한국외국어대학교,고려대학교,성균관대학교,한양대학교,순천향대학교,신구대학강사(최근순).세종대학교재단이사.

〈저서〉‘지구얼굴바꾼인종주의’,‘태평양시대의세계패권’,‘경제민주화시대대통령’,‘언론권력언론비평’,‘건달정치개혁실패’,‘와르르공화국’〈IMF부른정책실패고발서〉,‘관권경제특혜경제’,‘경제의현장’〈최근순〉

목차

중국-이슬람문화의
융합과세계화의길
세계문화바꾼청화백자

(1)천년신비의청화백자

중국-이슬람문화의융합물
〈말과활이건설한인류역사상최대의몽골제국〉
〈비단길통해동서양교역시대개막한몽골제국〉
〈청화백자는중국-이슬람권교류가낳은상징물〉
〈청화백자개발로도자에그림그리는기법도입〉

600년간어둠에갇혔던청화백자
〈런던에서팔린청화백자가출생의비밀푼열쇠〉
〈영국-미국인손에의해햇빛찾은원대청화백자〉
〈한족의반감으로역사의미궁에빠졌던원대청화〉
〈원대청화400억원에팔리자중국전역서가짜소동〉

1,500년자도징더전
〈1,500년간가마불꺼지지않은청화백자요람지〉
〈19세기런던스모그보다심했을징더전대기오염〉

(2)이슬람권의중국도자보고

터키-이란궁전의수집열풍
〈중국도자발달사한눈에보는터키톱카프박물관〉
〈베트남-일본도자기도다수소장한톱카프박물관〉
〈황금동굴처럼생긴이란아르데빌의중국도자기집〉
〈전란-약탈로사라진이란아르데빌사원의소장품〉

(3)이슬람청화의세계화

벽화로승화한청화
〈시공과문화뛰어넘어상통하는이슬람문양〉
〈서쪽으로간이슬람청화는건축자재로발달〉
〈포르투갈에서옥내외벽화로승화한청화타일〉
〈리스본과포르투는청화벽화의옥외전람회장〉

(4)금단의나라도자왕국

오랑캐라치부대면조차거부
〈중국의발명품화약들고중국침탈한서유럽〉
〈목숨건도발잇달아도열리지않던중국시장〉
〈죽음이기다리던동방세계에대한끝없는도전〉

포함앞세운서유럽의개항압력
〈포르투갈이인도서중국가는데15년걸렸다〉
〈중국에도발한첫유럽국가포르투갈의연패〉
〈태평양건너마닐라서중국에도발한스페인〉
〈중국문열려다연패로끝난네덜란드의도발〉
〈100년늦게중국진출시도했던영국의연패〉
〈아시아보물찾기에뒤늦게덤볐던유럽국가들〉

(5)해군사령탑접수한해적

무적함대격파한해적수괴
〈무적함대무찌른영국해군부사령관은해적두목〉
〈스페인무적함대의패배로무너진동방무역독점〉

명말바다는해적의독무대
〈해군총수로발탁된정지룡은해적출신의거부〉
〈해적출신명군:네덜란드-해적연합의대회전〉

조선침략주력부대는왜구
〈이순신한테참패한일본군함대총사령관은해적〉
〈왜구는몰락한가문의무사들이가담한해적무리〉

(6)조선도공이개발한일본백자

세계두번째백자개발한조선
〈조선은중국보다150여년늦게청화백자개발〉
〈청화백자-채색자기크게발전시키지못한조선〉
〈터무니없는극찬넘친달항아리엉터리감상법〉

이도다완의불편한진실
〈중국흑유완수입막히자조선에눈돌린일본〉
〈조선막사발을찻잔으로사랑한일본의예찬론〉
〈이도다완은정치적가치가창출한역사적산물〉

도자수출의산실조선인가마
〈임진왜란은조선도공납치해백자개발한자기전쟁〉
〈조선도공이일군백자가마가일본도자수출의산실〉
〈유럽에서중국도자기누른조선인이만든일본자기〉
〈조선인이만든백자에중국색채입힌일본채회자기〉

(7)동방제국세운유럽소국들

서유럽의동방무역쟁탈전
〈오스만봉쇄뚫고세운포르투갈의동방제국〉
〈인구200만명의포르투갈이건설한해양제국〉
〈지구를둘로나눠가졌던포르투갈과스페인〉
〈40년걸려얻어낸포르투갈의마카오거주권〉
〈일본의대외교역200년간독점했던네덜란드〉
〈일본서10년만에빈손철수한영국동인도회사〉

포르투갈-네덜란드의유산
〈일본요리덴뿌라,카레는포르투갈이남긴유산〉
〈가톨릭탄압하면서도유럽배워선진국발돋움〉
〈쇄국불구화란의무역창구통해유럽배운일본〉

(8)신분과시의상징물청화백자

수요넘치자가짜까지판쳐
〈16세기이후포르투갈이중국도자기직접수입〉
〈청화백자유럽에알린포르투갈상선습격사건〉
〈일본-페르시아도자중국제로속여판네덜란드〉
〈청화백자쟁반으로천장장식한포르투갈궁전〉
〈미국백악관벽난로장식했다사라진명대자기〉

중국배우고따르자는사조
〈유럽귀족들이열광했던중국풍의문화적현상〉
〈유럽대륙휩쓴중국문물을배우자는계몽주의〉

(9)세계의‘은’은중국으로갔다

은이대항해시대의국제통화
〈스페인을사상최강의제국으로만든포토시은광〉
〈동아시아은화결제시장경제에참여한유럽국가들〉

세계은의종착역중국
〈수출해서번은으로세금내는은납제실시한명조〉
〈중국서통용된스페인국왕얼굴새긴멕시코은화〉
〈16세기세계의은빨아들여지은중국의만리장성〉
〈유럽은과중국금바꾸면환차익이2배나생겼다〉

(10)일본판화에매료된유럽

문학,정원에도풍미한일본풍
〈대중적인기업고예술로승화한일본풍미술〉
〈정원,문학,음악에도일본풍일으킨자포니슴〉
〈워싱턴벚꽃길은태프트-가쓰라밀약의보답〉
〈일본의채색목판화를접목한인상파화가들〉
〈격정의고흐,햇빛의모네는일본판화수집광〉

(11)멀고먼중국가는길

조공과고두례가기다렸다
〈조공무역에적극참여한유럽국가는네덜란드〉
〈포르투갈-네덜란드의조공품에는상아,서각도〉
〈청조초기130년간의서양사신접견은11건뿐〉
〈대영제국특사에무릎꿇는굴욕적의식강요〉

세계변화거스르다패망
〈영국특사가청황제알현하려대동했던기술자들〉
〈유럽인의상업활동지역제한하고여성거주금지〉
〈중국전통도자밀어낸주문제작한유럽풍광채자〉
〈오랑캐한테안판다큰소리치다종막내린청조〉

(12)유럽의뒤늦은백자개발

청화백자모방품델프트웨어
〈델프트웨어는중국청화백자모방한생활용기〉
〈대항해시대의영광말하는네덜란드청화도기〉
〈미술작품에나타난네덜란드도자기와생활상〉

중국백자의비밀푼유럽
〈청화백자의신비풀려던메디치가문의실패〉
〈친위대600명청화백자127점과바꾼수집광〉
〈중국보다천년늦게태어난유럽최초의백자〉
〈중국백자의천년독점유럽서반세기만에붕괴〉

(13)서방의중국역사-문화강탈

영-불연합군이파괴한원명원
〈원명원은이름난정원모두본뜬천하의으뜸〉
〈영-불연합군이부순중국의서양식궁전-정원〉
〈영-불이약탈한동물머리상150년만에귀향〉
〈아버지는파르테논약탈,아들은원명원파괴〉

‘중국역사’털어간서방열강
〈서방열강이약탈해간중국문화재1천만여점〉
〈은화몇닢주고역사의보고돈황석굴털어가〉

(14)유럽문물에눈뜬중국

황제곁의유럽선교사들
〈궁정고문위촉되고베이징에성당지은신부〉
〈이탈리아선교사랑스닝은궁중화가의최고봉〉
〈선교사들이연주한서양음악즐겼던중국황제〉

중국황실의유럽시계소장열풍
〈유럽은시계탑,중국은종루-고루가시각알려〉
〈광저우에시계공데려가서현지공장차린영국〉
〈유럽기계기술과중국공예가연출한탁상시계〉

(15)일그러진서울의얼굴

서울의광장은광장이아니다
〈잔디밭입은서울광장은놀이터도광장도아니다〉
〈돌판깔려고수령100년은행나무가로수길없애〉
〈편심배치로대칭미와균형미가파괴된광화문광장〉
〈경복궁관통하는직선의중심축파괴된광화문광장〉

출판사 서평

〈문화쇠락으로꽃피우지못한중국보다앞섰던홍화청자〉

고려중기에표주박모양의기형을연꽃잎으로감싸듯이조형한‘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전자’(靑磁辰砂蓮花文瓢形注子)는높이33.2㎝,밑지름11.4㎝로서호암미술관이소장한국보제133호다.그런데국가유산청의국가유산포털에서는‘진사’가아닌‘동화’라는단어를써서‘청자동화연화문표형주자(靑磁銅畵蓮花文瓢形注子)라는명칭을쓰고있다.

진사(辰砂)는도자기표면에문양이나그림을산화동(酸化銅)으로붉게그리는채색법을가리킨다.그채색기법은고려중기부터사용되었는데조선후기인18~19세기에더러쓰인흔적이남아있다.조선조들어도자기술이쇠락하면서그채색법도퇴색했기때문으로보인다.산화동으로선명한붉은색을내기가쉽지않다.가마불의세기에따라담황색,암록색,암흑색등으로발색하는까닭이다.

이고려청자는한마디로국보에어울릴만큼조형미가탁월할뿐만아니라청색과홍색의발색도출중하여세계적으로자랑할만한걸작이다.청화백자개발이도자발달사에서갖는중요한의미는도자기에그림이나문양을그려장식할수있다는점이다.그런데이기물은회화적장식기법이적용되었다.원대이전에는도자기를옥기를만들듯이칼로깎고다듬어서장식효과를냈다.

다시말해마르지않은태토를칼로깎고파내는방식으로문양을만들어장식했다.더러첨화(添畵)라고해서장식물을만들어붙기도했다.즉조각적기법으로도자기를장식했던것이다.그런데이고려청자는조각적-회화적장식기법이화려하게결합해태어난작품으로서푸른빛의비색(翡色)도뛰어나다.무엇보다도보기드물게청자에다유약밑에그린붉은색의유하채(釉下彩-Undergrazing)가특이하다.연꽃잎가장자리를홍색으로채색한장식이그것이다.

이고려청자는복을부른다는표주박모양의기형으로서신성,청정을뜻하는연꽃의꽃잎으로감싼모습을연출하고있다.그리고꽃잎가장자리를붉은색으로채색했다.이주자를언뜻보면장식문양의끝이뾰족하여파초문으로보이나꽃잎줄기가직선으로뻗어있다는점에서연꽃잎이맞다.파초문은가운데굵은잎줄기가있고거기서잔줄기가사선으로펴져나간다.

칼로파낸연꽃잎줄기에유약이고여청색이더짙게나타나아름다움을더해준다.연꽃봉오리모양의아가리에는뚜껑이덮여있다.잘록한목부분에는동자가연꽃봉오리를두손으로껴안고있다.잎줄기를살짝구부려붙인손잡이위에는개구리한마리를앉아있다.액채를따르는주구(注口)는줄기가달린연잎을말라서붙인모양이다.한마디로회화적장식기법과조각적장식기법이만나태어난걸작중의걸작이다.

이기물은경기도강화도최항(崔沆)의의무덤에서출토되었다.그가1257년사망했다는점에서이고려자기는고려고종재위기간(1213∼1259년)에제작된것으로추정된다.중국청화백자는1320년대후반에개발되었다는학설이사실상정설로굳어졌다.중국에서는산화동으로유약밑에붉은색을내는유리홍(釉裏紅)도청화백자와같은시기에개발되었다.

그점을고려하면고려가유하채를중국보다훨씬먼저도자기제작에응용했다고볼수도있다.물론그에앞서북송의자주요(磁州窯)가유하채(釉下彩)도기를생산했지만이작품은청자가그채색법을적용했다는점에서획기적이다.자주요는청화백자와제작방식이비슷하여유약밑에산화철로검은그림을그린도기를생산했었다.다른점은자주요의철화석기는도기였고,코발트로푸른빛을내는청화백자는자기라는사실이다.

그런데고려말기와조선조를거치면서국력이쇠퇴해져청자와홍화가꽃을피우지못해조선은다양한채색자기를개발하지못했다.산화코발트는중국에서재수입해야하는형편이기에청화백자는재료난으로생산량이아주희소했다.하지만홍화와철화의재료인산화동과산화철은넉넉한편이었지만그것들을채색자기도료로적극적으로활용하지않은탓이었다.

중국은산화동을이용하여많은유리홍자기를생산했으며,또산화코발트와산화동을함께써서훌륭한청화유리홍자기를제작했다.조선은무능,무식,무지하고무도한임금들이어좌를차지하고나라를어지럽혔으니경제적,문화적으로융성할수없었다.그탓에나라가잇단호란,왜란을맞아강산이유린되고백성이도륙되는망국지란을겪었던것이다.

여기서진사라는용어도따져볼필요가있다.진사는수은과황의화합물인광물을일컫는데왜굳이진사라는근거도부족한어려운단어를쓰는지모르겠다.산화동으로채색한도자기를조선시대에는붉은점을그렸다고주점사기(朱點沙器),또는아주붉다는뜻으로진홍사기(眞紅沙器)라고불렀었다.그런데20세기들어서진사라는표현을쓰기시작했다고한다.

중국과한국에서는산화철을사용하여검은색을내는문양이나그림을철화(鐵畵)라고일컫
는다.철화백자가그예다.그점에서산화동을사용해그린문양을동화(銅畵)라고불러도좋
을듯하다.그러나청화백자에서볼수있듯이재료보다는색채로표현하는방식이의미를분명하게전달할수있다.

중국에서는유약밑의붉은색이라는뜻으로유리홍(釉裡紅),일본에서는붉은색으로그림을그렸다는의미로적회(赤繪)로표현한다는점도고려할필요가있다.진사대신에홍화(紅畵)가좋을듯하다.적화(赤畵)는색채가너무강렬한느낌도주고어감도좋지않다.

〈터무니없는극찬넘친달항아리엉터리감상법〉

조선백자가운데서도달항아리는유독인기가많아고명한인사들의칭송이그치지않는다.달항아리를보기만해도예찬이저절로나온다고말하는이도있다.어떤전시회도록에는세계도자사상달항아리처럼거대한둥근항아리가제작된예는찾아보기힘들다는찬사가나온다.중국에는달항아리같이훤칠하고우람한항아리는존재하지않는다는단언까지서슴지않는다.

조선달항아리의순백미와균형감은세계에서유례를찾아볼수없다느니,순백의아름다움은세계인의흠모와찬탄의대상이라는…등등.온갖미사여구가쏟아진다.중국도자발달사는고사하고중국과일본의도자기도록이라도한번만봤으면그같이좁은시야에갇힌무지와무식이넘쳐나는글을함부로쓰지못할것이다.

조선의달항아리는백자지만표면에백장토(白裝土)를발라구웠다.백장토는도자기에화장하듯이입힌흰흙을뜻한다.백자에굳이백장토를바른이유는태토가유백색이나설백색을내지못하거나잡티가많아그것을감추려고발랐다고보아야한다.자토에철분이많이섞여있으면그같은현상이일어난다.

그나마백장토를군데군데덜바르기도했고바르다그만둔듯한기물도있다.또가운데둘레의이음매를잘다듬지않아더러울퉁불퉁한흔적이그대로남아있다.그것은도공들이정성을다해만들지않았다는말말고는달리설명할도리가없다.작업환경이열악하다보니대충만들었다는소리다.

달항아리중에는좌우와상하가1:1의비율을이루지못한비대칭이많다.어떤기물은상하비율이좌우비율보다훨씬커서달같은둥근느낌을주지않는다.이음매가반듯하지않고불이고르지않아거의조금씩찌그러진모양이다.그마저도불완전연소에따른산화로인해군데군데황갈색을나타내기도한다.

달항아리는거의성형(成型)과정에서생긴접합부위를깔끔하게처리하지않거나번조(燔造)과정에불을잘못관리해찌그러지거나틀어져거의완벽한구형을이루지못했다.사진을통한평면을보더라도정원(正圓-Roundness)을갖춘달항아리는찾아보기어렵다.그이지러진구형의비대칭을두고달항아리만이지닌아름다움이라는찬미가잇따른다.

그모양을두고천의얼굴을가졌다고칭송하는애호가들도있다.그찌그러진결점이달항아리만이지닌매력이라고말하기도한다.달항아리는성형-번조기술이모자라완벽한구형(球形-Sphere)을이루지못한탓에보는각도에따라모양이달리보이는것이다.예찬할일이아니다.

도자기의빙렬은기술부족이나번조과정에서도생기지만오래세월이흐르면서일어나는미세한수축현상으로인해나타나기도한다.그에따라어떤도자기는저절로금이전체적으로,또는부분적으로생긴다.그빙렬은세파를견디어낸나이테같아도자기감정의한단서가되기도한다.더러유약표면에잔금이간달항아리도있다.바로그금을인위적인장식기법인냥찬사를늘어놓기도한다.

〈이도다완은정치적가치가창출한역사적산물〉

조선의볼품없게생긴막사발이일본에서이도다완이란이름을얻으며국보급으로다시태어났다.조선막사발이이국땅에서일구어낸놀라운신분상승이다.그까닭에이도다완에대한한국인들의필설로다하지못한다는경탄,찬사가시간을초월해이어진다.

그런데평상인의눈에는그저조악한막사발로비칠뿐이지그들이말하는예술의경지가보이지않는다.애국적,민족적시각에충실하다보니작품성과예술성을꾸며내어침이마르도록예찬하나보다.그것은무지의위선이다.

일본전국시대에는군벌이조선막사발에가루차를타서한모금씩나눠마시면서충의를다졌다고한다.또선물로주고받으며동맹을포섭하고복속을결의했다는것이다.찻잔에스며든그같은정치적사연이그가치를무한에가깝게끌어올리지않나싶다.

임진왜란은일본을통일한세력이조총을앞세워해외로원정나간첫침략전쟁이자조공국이종주국인명나라와싸운전쟁이다.조선에서수탈한막사발은그전쟁의상징적전리품이다.절대적권력자쇼군앞에서그전리품을놓고무용담을말하고국사를논의했을것이다.수백년간에걸친격동의정치사가이도다완에쓰며들어상상을초월하는가치를창출해냈다고보아야한다.

다시말해이도다완이일본에서국보급으로대접을받는이유는수백년간에걸친일본역사의격동적내력을안고있기때문이다.이도다완은권력자의애장품이었다는점에서소유자체로서권력과금력을과시한다.거기에다일본다인(茶人)들의고매한심미안이찬사를보탬으로써조선의막사발이이도다완이란국보로재탄생할수있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