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임대운 (5.18광주항쟁 목격자 데이비드 돌린저 회고록)

나의 이름은 임대운 (5.18광주항쟁 목격자 데이비드 돌린저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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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5.18 광주항쟁의 한가운데 한국 이름으로 불렸던 미국인의 이야기
데이비드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싶다는 것. 미국 청년 데이비드는 평화봉사단으로 1978년, 한국에 처음 도착한다. 한국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하고, 한국어 선생님에게 ‘임대운(林大雲)’이라는 한국 이름을 받는다. 그 후로 그는 임대운으로 불리며, 전라남도 영암의 보건소에서 결핵 환자를 돌본다.

1980년 5월 18일, 동료 평화봉사단원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에 대운은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광주로 간다. 터미널은 짙은 최루탄 냄새와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영암으로 가는 버스가 없어 광주에 발이 묶인 대운은 동료 평화봉사단원이자 친구인 팀 원버그와 마주친다. 팀이 격앙되어 군인들이 젊은이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대운은 광주 시내의 분위기를 보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날 버스 운영이 재개되어 대운은 영암으로 돌아오지만, 광주로 전화가 끊기고 계엄군의 폭력 강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소식이 들린다. 팀과 한국인 친구들이 걱정된 대운은 광주로 돌아가 친구들이 안전한지 확인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보기로 한다. 5월 21일 그가 탄 광주행 버스는 나주에서 멈추고, 아름다운 한국의 5월에 대운은 걸어서 광주로 들어간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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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용주

ChoiYong-ju
전남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하고서울대학교대학원을거쳐서미국켄터키대학에서사회학으로박사과정을수료했다.1980년광주항쟁당시기폭제역할을했던전남대학교총학생회에서학술부장으로활동했다.5.18기념재단비상임연구위원을역임했고,「광주항쟁과초국적후원망」,「라틴아메리카의민주화와이행기정의」등의논문을발표했다.번역서로폴코트라이트『5.18푸른눈의증인』,욘엘스터『이행기정의:역사적관점』등이있다.광주항쟁해외기록물을발굴,수집,분석하던중당시평화봉사단원청년네명이목격하고남긴기록을확인하고,이들을찾아나섰다.팀원버그는일찍세상을떠났으나다른두사람데이비드돌린저,폴코트라이트와연락이닿았고,이것을계기로폴코트라이트의회고록에이어데이비드돌린저의회고록을번역하게되었다.

목차

제1부언제나새로운시작
1장여정의시작
-1978년1월부터6월

2장정착과자아찾기
-1978년7월부터1980년5월

제2부광주항쟁
3장두려움과희망
-5월16일금요일부터5월17일토요일

4장이대로두고볼수는없다
-5월18일일요일

5장은밀하게퍼져가는소식들
-5월19일월요일부터5월20일화요일

6장앞에놓인길
-5월21일수요일

7장잠깐동안의해방
-5월22일목요일

8장우리가무엇을할수있을까?
-5월23일금요일

9장도청에서보낸밤
-5월24일토요일

10장계속되는긴장
-5월25일일요일

11장장례식과이별
-5월26일월요일

12장목격
-5월27일화요일

13장결과
-5월28일수요일부터6월2일월요일

제3부광주이후의삶
14장다시발견하기
-1980년6월부터8월

15장반정부인사와접촉
-1980년9월부터1981년7월

16장진실알리기
-1981년부터현재

17장광주항쟁에대한내결론

부록1.팀원버그를추모하며
-광주항쟁:목격자의견해
-팀원버그

부록2.세상에알리다
-데이비드돌린저의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