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강대선 수필집)

해마가 몰려오는 시간 (강대선 수필집)

$15.00
Description
먼 섬에서 울던 바람
바람이 휘두르는 채찍에 하얀 갈기를 세우고
일렬횡대로 밀려드는 해마
부풀어 오르는 고뇌의 시간
하얀 비늘에 적어 내리는 십만 페이지 햇빛이 물결치고
바다 저 멀리, 구름은 흘러내린 상념에 먹빛으로 짙어져 있다
번개 치는 저편에서 푸른 영혼을 붙잡는다
저자

강대선

「동아일보」신춘문예시조「광주일보」신춘문예시당선.「시와사람」으로등단.시집으로「가슴에서핏빛꽃이」외5권.장편소설「우주일화」,「퍼즐」.가사수필집「평화」발간.한국해양문학상,한국가사문학상,여수해양문학상소설부문대상,김우종문학상,직지소설문학상대상,송순문학상,에세이스트작품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ㆍ4


1
고양이바코드14
그여자의등뒤에서들려오는빗소리20
스파링26
은박지에물린시간31
책벌레를만나다36
호랑이와감자41
해마가몰려오는시간47
가을,그사이에뭔가지나갔다54
무한광변로(無限廣變路)61
코로나블루70
평화75


2
사고(思考)뭉치84
촛불의심장89
과일가게94
볏짚으로지은집101
겨울반딧불이107
구더기경전112
나비가달다119
너에게잠수하다124
돌담길편지131
상처화138
낙화143


3
당신이라는미늘150
두겹의잠155
백치아다다160
분절166
이른바람에172
이승과저승177
저기요,여기요183
초록교정188
탱자꽃하모니193
화무(火舞)198

출판사 서평

서정적묘사의예술성을지향하는수필집


강대선수필집[해마가몰려오는시간]을들여다보면몇가지키워드가분명하게나타난다.묘사,서정,문학성또는예술성그리고사유가그것이다.여기에다한가지더붙인다면구성이다.이키워드들은문학으로서의강대선수필,즉수필의예술적가치를돋보이게한다.이가운데가장핵심이되는키워드는역시서정이기본이된묘사이다.[해마가몰려오는시간]대부분작품이서정적묘사로이루어졌기때문이다.

대체로서정이란주어진사물에서환기된느낌과사유등감정과심리적반응을두루일컫는용어이다.정서는인간의희로애락등주어진사물에서환기된서정의구체적표현이다.서정성은문학의고유한특성이라고할수있다.
서정성은수필의생명인문학성,즉예술적생명을부여하는기본요소인데강대선수필가의이번수필집[해마가몰려오는시간]은수필의예술적생명성을치열하게추구하는작품들로엮었다.
이제갓수필을쓰기시작한수필가들이최종적으로지향해야할목표이며,다소연륜있는수필가들은자신의작품을최종적으로숙성시켜야할종착역이어디인지를보여주기도한다.

[신은언제까지나봄을겨울기둥에묶어둘수없었을것이다.때가되자신은봄을묶었던끈을잘라유연하고탄력이넘치는골목으로풀어준다.탄력의유전자는일렁이는물결에서왔는지모른다.
하얗게부서지는물보라속에서봄의유전자를핀셋으로채집하고싶다는생각이들때면고양이울음소리가들려온다.고양이처럼자유를누리며도시의봄밤을어슬렁거리고싶다.눈으로확인할수없는도시의구석구석을뒤지고맛보는녀석들의발톱과날카로운울음소리,그리고일자로세워진눈동자가어른거린다.
봄이면고양이는더말랑말랑해진다.털을쓰다듬으면손끝으로봄의온기가전해진다.탄력이넘치는녀석들은도시의어둠속으로봄볕을끌고사라진다.도시의은밀하고구석진곳에봄볕으로집한채지어놓았을것이다.철새들에게신호기를심어이동경로를알아낸것처럼,녀석들에게도바코드를찍어이동경로를알고싶다.바코드를찍는다면어디가좋을까.]-[고양이바코드]중에서

이작품은,자신의사물을육안(肉眼)이아닌,영안(靈眼)이나심안(心眼)으로들여다보는듯한묘사로천착해가는강대선수필의꽃이라해도과언이아니다.마치현미경을들이대고작은개미의더듬이움직이는소리조차묘사해내는느낌을받는다.“때가되자신은봄을묶었던끈을잘라유연하고탄력이넘치는골목으로풀어준다.탄력의유전자는일렁이는물결에서왔는지모른다.”에서보듯이,강대선수필문장에서등장하는제재(題材)하나하나는비범한선택이아니라,지극히소소하고평범한것들이다.하지만이들제재를연결하여서정적묘사로그려내는탁월한필력은누구나쉽게따라할수있는경지가아니다.

수필가들중에는‘묘사’를어렵게이해하는이들이더러있다.서술이스토리식기술이라면묘사는느낌이나심상을그려내는것이라고이해해도된다.물론스토리식기술로이어진수필이라고하여예술성의부재를말하는것은아니다.묘사가예술성의전부가아니기때문이다.
일반적으로묘사란사물이나상황등대상으로부터받은인상이나느낌을감각적으로그려내는방식이다.객관적이해나지식전달목적의서술이아니라,대상으로부터캡쳐한인상과느낌을독자에게생생하게전달함으로써,‘독자가자신과동일한체험을가질수있도록몰입하게하는것’이다.대상에서일으키는심리적정서나정신적심상은추상적관념이아니라하나의그림처럼감각적이고도구체적이다.대상의색채,촉감,향기,소리등제반감각작용의활용,구체적인상황제시,참신하고생동감있는언어등효과적인묘사를위한중요한요소들이강대선수필집[해마가몰려오는시간]의바탕을이루고있다.


강대선수필의예술성

[여자가몸을돌려눕자처진젖가슴이살짝드러납니다.내가하도많이만져서내것인줄알았던젖가슴입니다.부드럽고몽글한빵같았지요.나는매번여자에게만지게해달라고어리광을부렸지요.여자의가슴은이제벽에걸린시래기처럼처져예전의탄력을잃어버렸습니다.
나는이사실이못내슬픕니다.여자의가슴은내마음이슬프고괴롭고외로울때나를위로해주는치유의밀실이었기때문입니다.아버지한테꾸중을심하게듣는날이면그밀실에숨어울음을넘겼으니까요.세상에내편이라고는하나도없을것같은때에도나는그밀실에들어온전히내편이되어준여자의온기를느꼈으니까요.
여자의숨소리를듣는이시간이더고요해집니다.이상하기도합니다.빗소리가가득찬이밤이이토록고요할수있다니요.[-[그여자의등뒤에서들려오는빗소리]중에서

[한순간에향기로워지는,어느말보다충만함으로채워지는‘자기’라는말은실상우리가가장간절히원하는말일것이다.나는‘자기’를갖고있는가.‘자기’로불렸던기억을지니고있는가.지금도‘자기’로살아가는가.
갈기를세우고떠나간사람들이돌아오고있다.영혼들이바다와우주를돌아나에게밀려들고있다.나는밀려드는해마와함께바람이되고구름이되고안개가되고빗방울이된다.
기억은가슴에서봉인을풀고그들의이름과만난다.할머니도,‘쫑’도,아픈죽음도환희로빛나는순간도모두갈기를세운기억속에살다가죽는다.
차를몰고해안을돌아나오면서해마의울음소리를듣는다.바다저멀리서부터짙어진먹구름이밀려온다.삶은앞으로도녹록지않을것이다.나는시련과고통으로번개치는저편에서달려오는내일을생각한다.나는아직오지않은미래를향해‘자기’라는이름을부여한다.기대하고사랑하고희망하는이름이‘자기’라면시련과고통으로점철된내일이라고하더라도나에게는설레는‘자기’일것이다.
해변에도착한해마가크나큰소리로할머니와쫑과그늘진기억을쏟아놓더니모래처럼부서진기억을한알한알어루만지며바다로돌아가고있다.]-[해마가몰려오는시간]중에서

[나는입속의꽃에대한상상을이어간다.입속에핀꽃들도바람에흔들리고비와눈을맞으며꽃대를세울것이다.어쩌면꽃대하나만앙상하게남아있을지모른다.
하지만꽃은미지다.저겹을열면어떤향기어떤빛깔이나올지모른다.예전에봤다고같은꽃이피었다고섣불리판단하면안된다.
모든꽃은다르다.꽃을본다는것은미지를향한모험이다.이붉은,혹은청색과보라와흰빛깔을어디에서감아올렸을까.
봄볕과흙의고요와우주의별이주된재료였을까.이재료로방아를찧고손톱에봉숭아꽃잎을감듯칭칭감아물들게했을까.
미지의세계가열리면우주가놀라한번휘청할것이다.맛있는고기맛에꽃을피우는것보다우주를물들게하는미지의꽃이내영혼을더자극한다.
꽃은영혼의창을열수있게한다.보는것만으로도나는다른세계에들어가는듯경이로움에취해웃는다.향기를맡으려코를킁킁거린다.]-[나비가달다]중에서

작품일부예시를세개씩연달아올린이유는,위에서언급한수필의예술적생명성이[해마가몰려오는시간]에는어느한작품에서두드러지는게아니라는사실을강조하고싶기때문이다.
문학평론가김우종교수는‘수필의예술성’이라는글에서다음과같이적고있었다.

“허구의세계는상상의세계다.상상은문학의필수조건이다.문학은상상력의힘을빌려서언어(문자)로쓰여진다는것이기본개념이다.그러므로소설은작법의기본자체가상상이므로그것만으로도예술의기본조건을갖추게된다.그런데수필은사실의세계가기본이며이를함부로배반할수없으므로운명적으로비문학적비예술적장애조건을지니게된다.그러므로수필은이런조건이타장르와다른수필의특성인이상이개성의바탕위에서수필고유의예술의집을지어야하며,그것을수필의전형으로삼아나가야한다.즉예술의가장본질적조건이이상상의문을통해서만들어지는것인이상상상력에의한수필의예술성은어떻게가능한것인가를정리해나갈필요가있다.그런예술을위해서가장중요한것은상상에의한유추와상상의기법을극대화해나가는것만큼효과적인것은없다.”

이처럼김우종교수는수필의문학성인예술성재고를위해‘상상에의한유추와상상의기법을극대화’해나가기를강조한다.강대선수필은여기서한걸음더나아가허구를배제하고수필의정통인‘사실의세계’를기본으로삼으면서도,잠재적인‘상상기법’을밑절미로서정과묘사를좀더차원있게추구함으로써문학으로서의‘수필’을창작하고있는것이다.

필자는해드림출판사나그자회사인〈도서출판수필in〉을통해출간된수필집가운데특별히독자에게추천하고싶을때는‘출판사의자존심을건다’라는표현을하곤한다.이는독서식감이어느책보다뛰어난책이수필집임에도유독수필집에곁을잘내주지않는,우리나라독자를향한안타까운심정에서비롯된말이기도하다.강대선수필집[해마가몰려오는시간],이역시믿고읽으며독서식감을충분히맛보기를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