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사라질뻔했던고대의지식은
중세천년동안어떻게보존되고혁신되었나
책과지식의역사,과학과문화의지리학을읽다
‘태초에그리스가있었고,그다음에로마가있었고,그다음에르네상스가있었다.’서구문명의역사는흔히이런식으로서술되곤한다.이간명한구도에서중세천년은‘암흑기’라는말로쉽게망각되고,유럽밖의세계는존재하지도않았던것처럼물러난다.정말그럴까?고대그리스와로마의유산은오랜시간까맣게잊혔다가르네상스기에불현듯‘재생’된것일까?유럽과비유럽세계는영향을주고받지않고단절되어있었을까?
당연히,그렇지않다.영국의지성사연구자바이얼릿몰러의『지식의지도』는서기500년경부터1500년경까지천년에걸친과학과지식의역사를추적함으로써기존의관점과는다른역사서술의지평을열어보인다.이책에따르면,서구세계의토대가된지식은고대그리스에서근대로건너뛴것이아니라,중세천년의분투속에서보존되고분석되고혁신된결과이다.로마제국의멸망과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파괴후사라질뻔했던고대의책들은중세문명을주도한이슬람세계를중심으로필사되고번역되며일부가살아남아르네상스와과학혁명의동력이되었다.이과정에서서유럽과이슬람세계는지적문화적으로활발히교류했으며,특히아랍학자들의눈부신성취가지식의전승과혁신에결정적인역할을했다.
이중세지식의지도를효과적으로그리기위해저자는‘과학(책)’과‘도시’라는두축을교차시킨다.즉고대그리스과학을대표하는유클리드의『원론』(수학),프톨레마이오스의『알마게스트』(천문학),갈레노스의의학저술이중세지식의허브였던일곱도시(알렉산드리아,바그다드,코르도바,톨레도,살레르노,팔레르모,베네치아)에서추앙받고망각되고재발견되고확산되는여정을추적하고있다.이여행은고대의지식이중세에어떤경로를밟아근대에도달했는지,아랍세계와기독교세계의연결망이문명을어떻게성장시켰는지보여준다.경이로운것들에호기심을품고책과사상을혁신하는데삶을바친사람들은이지식전승드라마의또다른주인공이다.중세천년동안의‘책과지식의역사’이자‘과학과문화의지리학’인이책은“깊이있는연구를토대로했으되유려하고흥미롭다.대중적인지성사책중최고로꼽히기에손색이없다”(『텔레그래프』)는평가를받았다.
지식의허브일곱도시와책들의지도
관용과협업으로지식의경계를넓히다
유클리드,갈레노스,프톨레마이오스는각각수학,천문학,의학에서지식의내용과구조를설정한고대과학의거인들이다.이들의접근법은오늘날우리가‘과학적방법’이라고부르는것의주춧돌을놓았다.바이얼릿몰러는세학자의책이파피루스두루마리에서코덱스를거쳐인쇄물에이르는궤적을,학문의중심지였던지중해인근일곱도시를지나가는경로를살펴본다.이도시들은정치적안정,자금과서적의지속적공급,뛰어난인재풀,그리고무엇보다타민족과타종교에대한관용이라는공통점이있었다.중세에그리스-아랍-서구문화가조우한장소였고,이를통해가능해진협업이야말로학문발달의가장중요한요소였다.“그러한협업이없었다면번역도,지식이문화의경계를넘어이동하는일도없었을것이며,개념과사상이하나의학문전통에서또다른학문전통으로넘어가융합될기회도없었을것이다.”
알렉산드리아-바그다드-코르도바-톨레도
지식의최전선을순회하는여행은고대세계의지적심장부였던알렉산드리아에서시작한다.유클리드와프톨레마이오스와갈레노스가이곳에서집필하거나연구했고,이들의저작은이곳에서부터시리아와콘스탄티노플까지지중해동부전역에퍼졌다.세상에존재하는모든문서를보관하는종합장서의개념이태어난도서관의도시도바로이곳이다.그러나서기500년경알렉산드리아는쇠퇴하고파피루스에기록된텍스트의운명은불확실해진다.
위태로웠던학문이다시꽃을피우는것은바그다드의아바스왕조시대다.9세기가되면서방대한이슬람제국의수도이자신생계획도시였던바그다드의학자들이지중해동부에있던고대의저술을수집해아랍어로번역했고이를토대로독자적인과학지식을발달시키기시작했다.바그다드는고대이후의세계에서최초의진정한학문중심지였으며,이후아랍세계의많은도시가바그다드를본떠도서관을짓고과학을후원했다.
그러한도시중두드러졌던곳이후기우마이야왕조의수도였던스페인남부도시코르도바이다.왕조의전폭적인후원아래수세대의학자들이유클리드,프톨레마이오스,갈레노스의저술을연구하고비판하고향상시켰다.이저술들은스페인의다른도시로도퍼졌고,기독교도가이베리아반도를무슬림으로부터‘재정복’하기시작했을때번역활동의중심지가된톨레도에서라틴어로옮겨져기독교와라틴어의세계로들어오게된다.
살레르노-팔레르모-베네치아
이탈리아남부의살레르노에서는북아프리카에서들어온의학문헌들(갈레노스에기초한아랍어저술)이라틴어로번역되었고,그결과살레르노는수백년간유럽의의학중심지로서의학지식확산에중요한역할을할수있었다.그다음에는시칠리아의팔레르모에서갈레노스에이어유클리드와프톨레마이오스가중심무대에올라왔다.『원론』과『알마게스트』를라틴어로번역한팔레르모의학자들은정확성을더높이기위해아랍어본을중역하지않고그리스어원전을저본으로삼아작업했다.
15세기후반베네치아에서는필사본으로유통되던저술들이처음으로‘인쇄’된다.인쇄본들은유럽전역의도서관과독자들에게전해지고안전하게보존될수있었다.“그이후는종합과수정,재발견과재발굴의시기였다.이러한재평가작업을통해다음세대의과학자들은유클리드,갈레노스,프톨레마이오스,그리고1000년동안이들의저술을보존해온학자들의노력을딛고수학,천문학,의학에일대혁명을가져올수있게된다.”
잊혀진거인들,아랍학자들의경이로운성취
더넓은앵글로역사를보다
중세지식과책들의지도는그것을연구하고필사하고번역하고전파한사람들의역사이기도하다.뛰어난사상과이론을찾아내고보존하고심화하는데인생을바친학자들,파피루스두루마리를조심스레말고펴며옮겨적은필경사들,도서관에지식을저장하고소실될뻔한책들의은신처를마련한수도사와장서가들,학문활동을후원하고주도한군주들,지식의전파와확산에핵심역할을한번역가,서적상,출판업자들….이들이서로다른세계를연결하고지식의경계를확장했다.몰러는이지식세계의인물들을흥미로운스토리텔링을가미해소개한다.그중에서도과학의역사에공헌한아랍학자들의성취는경이로울정도이다.
9세기바그다드의수학자알콰리즈미는‘알고리즘’과‘대수학algebra’이라는단어의기원이된인물이다.그는알고리즘개념을발달시키고,대수학을독립된학문으로정립했다.인도?아라비아숫자를이용한산술학의새장을열었으며,이차방정식의유형과그해를구하는방법을제시하는등수학에혁신을일으켰다.자신의관측값을토대로『알마게스트』의관측자료를개선한천문학자이기도하다.그의책들은여러차례필사되며이슬람제국전체에퍼졌고,12세기이후라틴어로번역되어십진법확산에기여하는등유럽에도영향을미쳤다.알콰리즈미외에도바그다드의학자들은”관심사의범위와지식의전문성이라는면에서르네상스의모습을몇세기먼저보여준르네상스형인간이었다.”
10-11세기안달루시아의의사알자흐라위는의학의역사에서진정한거인이었다.그가집필한의료종합서『키타브알타스리프』는원인과증상,치료,식이요법,약재,수술등에대한지침을수록하고있는데,특히수술에대한부분이유명하다.겸자,절개용메스,접이식칼,외과용후크,바늘과주사등그가고안한수술도구들은오늘날에도쓰인다.또아편과대마초에적신해면을흡입하게하는마취법,인체내부에서쉽게분해되는재질을이용한체내봉합,심인성증상치료,해부학과생리학에대한강조와윤리,정신의학과아동교육등알자흐라위가개척한혁신적이고실용적인접근법은끝이없다.그의저술은톨레도에서라틴어로번역되었고다시유럽전역에전파되었다.
11세기톨레도에서활약한알자르칼리는이슬람세계를통틀어가장뛰어난천문학자이자천문장비생산자였다.그가고안한범용아스트롤라베는너무나혁신적이어서유럽,중동,북아프리카,인도에서까지제조되었고,그가만든물시계는정확하기로유명했다.톨레도천문표의사용법을설명한『천문표작성의규칙』은라틴어로번역되어유럽의천문학에수세기동안영향을미친다.또수성의공전궤도가타원형이라는획기적인주장을펼쳤는데,16세기에요하네스케플러는알자르칼리의연구에착안해화성의공전궤도또한타원형이라는것을증명했다.1085년이슬람세력이멸망했을때알자르칼리는톨레도를떠나지만,그의이론은기독교학자들이넘겨받아유럽전역에전파했다.
중세에이슬람과학이이룬성취와유산은오늘날에는거의잊혔다.대부분의사람들이알고리즘은알아도알콰리즈미는알지못한다.인문주의학자들이고대그리스를우상화하면서이슬람학자들을과학의역사에서배제하려했고,중세에아랍어서적을번역한유럽의번역가들도이슬람출처를제대로밝히지않았기때문이다.또중세말기와르네상스기에유럽의부와권력이성장하고제국을건설하기시작하면서유럽은이슬람에대한문화적우월감을가지게되었다.이렇게하여아랍학문을주변화하고과거로밀어넣는서사가형성되었다.
우리가이책에서확인한중세지식의역사,그리고오늘날종교와문화간혐오로인한비극은이왜곡된관점을새롭게써야한다고말한다.서로다른세계가관용과포용의정신으로공존했을때인류문명이얼마나풍요롭게빛났는지,이책은대안적이고통합적인시야로보여준다.더넓은앵글로역사를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