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응 열사 평전 (4·1 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김구응 열사 평전 (4·1 아우내만세운동의 주역)

$15.00
Description
독립운동에 대하여 ‘알려진 사실’ 너머의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는 소중한 기록
4ㆍ1아우내만세운동을 실제로 계획하고 주동한 사람은 유관순 열사가 아니다
주인공은 바로 당시 아우내 지역에서 진명학교 교사로 일했던 김구응 선생이었다!
강제 병합으로 국권을 침탈당한 우리 민족의 울분은 일본의 수도 한복판에 울려퍼진 도쿄 유학생들의 〈2ㆍ8독립선언서〉 낭독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대한해협을 건너 조선으로 들어온 분노와 독립에의 열망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이는 곧 〈3ㆍ1독립선언서〉 낭독과 전국적인 만세 운동으로 타오른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으로 유명한 충청남도 천안의 아우내(병천)에서도 조선 민중이 집결했는데, 그 역사의 현장에 섰던 사람이 바로 아우내에서 진명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김구응 선생이다. 그는 3ㆍ1독립선언서 낭독 소식을 듣고 ‘자주독립’이라는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구현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다. 학생, 주민들과 함께 밤새 만든 태극기를 들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만세운동의 선두에 선 것이다. 이에 일제는 잔혹하게 총과 칼로 아우내장터에 모여든 조선 민중을 학살했는데, 그 과정에서 김구응 선생과 그의 어머니 최정철 여사가 순국한다.
이 책을 쓴 전해주 신부는 “사제로 있던 교회의 옛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4ㆍ1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한 강애단 신부의 회고록을 보았고, 거기서 ‘김구응’이란 이름을 발견했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4ㆍ1아우내만세운동을 실제로 계획하고 주동한 사람은 유관순 열사가 아니라 당시 진명학교 교사였던 김구응 선생이었다. 그동안 나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고 역사적 사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접한 새로운 사실은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라고 고백한다. 그러고는 ‘역사 속의 김구응’을 알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자료들을 모았다. 그는 “진입로조차 없어서 논두렁 밭두렁을 넘어야 했던 김구응 선생의 묘역은 지자체와 나라에서 공을 들인 흔적이 너무도 역력한 유관순의 것과 비교할 때 너무 초라해 보였다.”고 하면서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듯 탐색을 이어갔고 마침내 옛 4ㆍ1만세운동에 대한 신문기사와 그의 공적을 알리는 역사 자료들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실 그 모든 자료가 단지 ‘알려지지 않은’ 것일 뿐이었고, 유관순 열사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을’ 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후 그는 가려져 있던 사실들을 한데 모아 한 편의 논문으로 활자화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책은 그 같은 자료를 기반으로 김구응 선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조금 더 그러모으고, 유족 및 관계자들과의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최종적으로 그의 삶과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톺아본 것이다.
김구응 열사는 민족정기를 전수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일제의 총칼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분이다. 따라서 열사의 실천적 삶은 진정한 교육자의 모범으로서 그리고 귀한 아우내의 지역사로서 기억되고 계승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자본인 ‘아우내4ㆍ1만세혁명’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순국자추모각에 모신 독립운동가들의 유지를 받들며 올바른 역사의 기억을 계승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큰일을 도모하게 해주는 데 꼭 필요한 작은 불씨가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이 책 ≪김구응 열사 평전≫에는 독자들이 잘 알 수 없는 일제강점기 아우내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영국의 성공회가 충청 지역에 안착하게 되었던 배경과 경위, 아우내라는 작은 지역에서 상업과 근대식 교육이 부흥하게 된 이유, 당시 지역 유지들과 교육자들이 독립운동을 통해 상호부조했던 이야기 등이다. ‘아우내4ㆍ1만세혁명’의 주역이었던 김구응 열사와 그날의 함성으로 얼룩진 아우내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

전해주

서울에서초중고를졸업하고,성균관대학교중어중문학과를졸업했다.직장생활을하다마흔이넘어성공회에입문하여49세의늦은나이에사제로서품을받았다.4.1아우내만세운동의근거지인충남병천의성공회에서사제로지내면서자연스레김구응열사를알게되었다.김구응열사는병천에서진명학교교사로서독립선언서를낭독하고,학생과주민들을이끌고만세운동에앞장섰다.역사의숨은면면을알리고자김구응열사에대한자료를모아논문(2005년)을발표했고,이작업을인연으로《4ㆍ1아우내만세운동의주역김구응열사평전》을펴내게되었다.

목차

기획자의말_김종수(김구응열사기념사업회회장)
기획자의말_이용길(천안역사문화연구회회장)
기획자의말_김운식(김구응열사손자)
추천사_김지철(충청남도교육감)
추천사_한시준(천안독립기념관장)
추천사_유낙준(대한성공회대전교구장)
저자의말_전해주

1장김구응,그는누구인가
김구응선생의뿌리를찾아서/진천시절,근대교육의세례를받다/병천시절,아우내만세운동의터를닦다/김구응과그의가족들
2장성공회와진명학교
충남병천에기독교가들어오다/성공회선교의시작/성공회선교의특징
3장그날의함성
그해그날의3ㆍ운동/아우내(병천)에는김구응선생이있었다/김구응,만세운동의주역/아우내만세운동을계획하고준비하다/아우내만세운동의현장
4장아우내만세운동에대한평가
성공회의3ㆍ운동에대한입장과분위기/후손들의삶과‘김구응기념사업회’

〈꺼지지않는아우내의횃불〉_이윤옥
참고문헌및기타자료출처

출판사 서평

김구응은누구인가?
김구응선생은1887년에태어나대한제국시기에진천면서기관과입장면서기관으로재직했지만,1908년사임하고고향인병천에청신의숙(靑新義塾)을설립한다.민중을깨우치는일만이나라가살길이라고보고교육에투신한것이다.이후선생은1908년부터1915년까지청신의숙을운영했고,기독교계감리교회에서운영하던장명학교에서1915년부터1918년까지교사로근무한다.이때가르친이중에조병옥박사의당질로아우내독립만세운동을이유로8개월형을받은조만형선생과유관순열사의오빠인유우석등이있다.1918년부터1919년4월1일운명하기전까지선생은성공회에서운영하던진명학교에서선생으로재직했다.선생은서울에서일어난3ㆍ1독립만세운동소식을접하고,동네유지인조인원선생등을위시해성공회의청·장년신자들과아우내에서도독립만세운동을전개할것을논의했다.3월13일,서울에서내려온유관순열사도독립만세운동소식을전한다.이에김구응선생은유관순열사와지역의교인·학생들을동원하여진명학교와성공회등에서수백장의태극기를밤낮으로만들었다.그러고는1919년4월1일(음력3ㆍ1)아우내장터에약삼천여명의사람들이모이자선두에서독립선언서를낭독하고,시위에앞장서다현장에서순국했다.

우리가김구응열사에게주목하는이유
당시만세운동을주도했던김구응선생은천원군동부6개면을위시하여오창등각지와비밀연락망을짜고봉화신호에맞추어일제히총궐기하도록밀령을전달했다.그는또“유관순열사에게‘나이어린여학생이니일경(日警)의눈에띌염려가없다’며태극기의제작과연락책임무를맡겼다”(1991.3.1.중앙일보).유관순열사가연락책이자봉화책임자라는중요한역할을맡았다면선생은전체계획을짠지도자였다.선생이1919년4월1일아우내4ㆍ1독립만세운동으로순국했을때의나이는32세였다.그뒤로26년의세월이흘러한국은마침내독립을이루어냈다.그때의기록은≪한국독립운동사략≫≪한국독립운동지혈사≫≪미국신한민보≫에실려있다.그러나우리는여전히그사실을모른다.여전히아우내4ㆍ1만세혁명의역사에는이를준비하고실행했던인물과조직과전개과정에대한실증적인기록도객관적인평가도생략되어있다.유관순열사를제외한열사59명에대한조명은부실하거나전무(全無)하고무명열사11명은명부에서조차삭제되었다.우리가아우내4ㆍ1만세혁명의역사를자랑스럽게기념하고그정신을계승하려면무엇보다도그역사적실체를객관적으로규명하고정당하게재평가해야하지않을까?이러한의미에서≪김구응열사평전≫은그출발점이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