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이름을잘부르는일”
세월호참사이후사회전체가여전히충격과고통속에빠져있던2014년8월27일,스물다섯명의작가가세월호관련‘긴급행동’을벌이자고이야기를나눴다.팽목항이든광화문이든안산이든어느현장에서든작가들은자신의글을통해참사희생자를추모하고참사의진상을규명하는데힘을보태자고뜻을모았다.그로부터20여일쯤지난2014년9월20일서울광화문광장에서‘긴급행동―첫번째304낭독회’가열렸다.아직끝나지않은,2024년3월현재까지연인원1,196명이1,223편의작품을낭독하고발표해온‘304낭독회’의시작이었다.(304낭독회의시작에대해서는김현·양경언·황정은의「대담」을참고.)
첫낭독회에서는작가들과작가의친구들이옹기종기둥그렇게모여서서문장306개를읽었다.광화문거리를걷던시민들이그옆빈자리를채우며그원은조금더촘촘해지고더욱커졌다.그당시의경험은무척많은이들에게‘신선한충격’을주었다.자연스레몇몇작가들들이‘일꾼’을자처하고나섰다.대략20~30명의작가들이단체SNS창에서다음회낭독회에대해논했고행사당일4시16분이되면그중사회자역할을맡은누군가가마이크를잡고이야기했다.“약속한4시16분이되었습니다.304낭독회시작하겠습니다.여는글로문을열겠습니다.‘오늘은,4월16일입니다.이렇게우리가모인오늘은…’”
만약우리에게달마다얼마만큼의시간과공간이주어지고그속에서자신의목소리를통해나와이웃의삶에대해이야기할기회가생긴다면우리각각은어떤말을털어놓을까.그말에는선의가담겨있을까,그어투는단정히정돈되어있을까.다른건몰라도,그자리에앉아자신의목소리에귀기울이는사람들앞에서자신의목소리가꽤크게울려퍼지는것을느꼈을것이다.그반향을느끼며내목소리뿐아니라“서로의목소리가공명하여더크고넓게울려퍼질”(15면)것을알았으리라.즉문학이활자매체에서일어서서우리의일상에서각자의목소리로서서로부딪히며생생히살아숨쉬는장을만들어낸것이다.
초기의낭독회에서는참사의고통을떨쳐내기가쉽지않았다.낭독하는이도,그말을듣는이도마음이무거웠다.문학만이아니라온세상이그러했다.“이언어의무능함과마음의무능함이대낮에두눈을뜨고그수많은생명들을잃어버린한나라의무능함과같다.잘가라,아니잘가지말라.이렇게쓰는만사(輓詞)가참으로무능하다.잘가라,아니잘가지말라.”(24면)
낭독회가작가들만고요한안뜰이아니라시민들이다같이참여하는열린마당이라는점은,하나의고정된장소에서열리는것이아니라여러투쟁현장을비롯하여다양한장소를오가며열린다는점은낭독회에크고작은활기를가져다주었다.묵직한이야기들속에서도약간숨통이트이는느낌이랄까.참사초기에는낭독회참가자들이참사유가족들의아픔에공감하고때로는이사회의무감함에절망하며자기반성을촉구하는목소리를모아주었다면,시간이흐르면서낭독자들의목소리는조금씩그톤을달리한다.단순히세월호참사를추모하는일을넘어우리의생활을고백하는말들이낭독회의토대를조금씩채우기시작했다.지난10년간일어난다양한사건들,젠트리피케이션,산업재해,미투운동,기후위기문제등을깨우치는목소리도빠짐없이담겼다.우리사회의풍경을천천히읊으며그렇게10년의시간이흘렀다.
그렇다면그10년의시간이흐르는동안304낭독회는,아니한국사회는어떻게변모했을까,아니바뀌지않았을까.우리는“여전히기쁘고또슬프”며(246면)“슬픔이견딜수있는것이라는게이상하다”(252면)라고느낀다.그리고우리의애도가차츰바뀌어가고,또바뀌어가지않는것을느낀다.소설가황정은의다음과같은말처럼.“나는애도라는것이늘처음과같을수는없다고생각한다.알맞은과정을거치면애도는다른것이된다.다시는이런일이일어나지않기를바라는마음,혹은기도가되기도하고.그래서삶‘속에’애도가있다.애도가삶보다크면어떻게되겠나.그런데사건이벌어졌을때진상이규명되지않고책임을명확히하지않으면남은사람들은애도를끝낼수없다.국가와사회가애도를끝낼기회를주지않는데어떻게애도를끝내나.삶이애도가되어버린다.책임있는모든사람이당사자들에게저지르는가해다.나는이게세월호참사와10.29참사의생존자들,유가족들에게한국사회가저지른일이라고생각한다.”(297면)
“희망은지난하게그러나확실하게만들어진다”
재난참사이후다양한연대활동이세월호유가족들과함께했다.하지만304낭독회처럼10년이지난지금까지매월꾸준히자리를마련하는활동은찾기어렵다.낭독회일꾼들은세월호“유가족분들이계속이야기하고있다는사실”을잊지않고있다.“이분들의이야기가있기때문에낭독회도계속된다.”(298면)
낭독회의작가들이10년이지나서도힘을잃지않는데에는또어떤이유가있을까.그에대해낭독회일꾼들은당장세상이바뀌지않더라도“언젠가는바뀔것이라고,절망은언제나이른판단일뿐이라는것(…)희망은지난하게그러나확실하게만들어진다”(304면)고이야기해준다.
낭독회일꾼인시인김현,평론가양경언이소설가황정은과함께이야기나눈대담,「읽고쓰기에담긴힘을믿는다는것」은이책의별미다.책을일별하면서낭독의일정한리듬과호흡에익숙해졌을독자들이라면김현,양경언,황정은의대담에서한편으론발랄하고다른한편묵직한목소리를통해작가들의생생한생각들을만날수있다.우리가사는세상에는여전히고립과망각속에서고통받는이들이있기에,이낭독회는304회째를지나서도계속될것같다는생각을품게된다.오래전6.9작가선언이304낭독회의토대가되었듯이,4.16세월호참사의시간이10.29이태원참사의시간을견딜수있게해주었듯이,작가들은먼미래의사회적고통과어깨를겯고일어설것이다.
304낭독회의「여는글」은낭독회에참여하는이들에의해조금씩고쳐지고,덧붙여진다.이같은‘공동의집필’이꾸준히이어진다는점은304낭독회의생명력의주된원천이기도하다.이책에실린「여는글」은‘112회째낭독회의여는글’로서다음과같이끝을맺는다.“앞으로도사회적참사를생각하는서로의목소리가공명하여더크고넓게울려퍼질수있도록,지금서있는시간으로부터,슬픔과분노로멈춘우리의시계가다시움직일때까지,계속읽고,쓰고,행동하겠습니다.”
서문에서시인하재연이말하듯304낭독회에서우리가말하고자하는바는“우리가서로에게,그리고스스로에게보내는희망의편지이며,우리가달고있는노란리본에담겨있는빛의의미”이다.“이목소리에부디귀기울여주기를,당신의목소리를덧붙여주기를(…)언젠가는함께낭독회후에읽어내려가는다음의문장들을같이읽을수있기를”(8면)바란다.
이렇게모여,우리는사람으로돌아가는꿈을꿉니다.
목숨이삶으로,무덤이세상으로,침묵이진실로돌아가는꿈을꿉니다.
이렇게모여,우리는사람의말을이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