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평전 (한국 현대 기독교의 초상 | 양장본 Hardcover)

옥한흠 평전 (한국 현대 기독교의 초상 | 양장본 Hardcover)

$55.00
Description
❝옥한흠 목사의 공과功過를 공정하게 읽어 낸,결과적으로 가장 정확한 형태의 명예 회복이라 할 수 있다.❞
한 인물의 생애를 살피는 일은 언제나 그 시대를 함께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님의 삶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인적 열정과 신앙적 확신을 가지고 목회의 길을 걸었지만, 그 발걸음은 언제나 당시 한국 사회와 교회의 변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이 평전은 그의 생애를 면밀히 기록함으로써, 한 목회자의 이야기를 넘어 한국 현대 기독교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함께 살피려는 시도다. 은보의 사역은 한국 교회가 압축 성장하던 시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한국 전쟁 이후의 혼란, 산업화로 인한 도시 팽창, 그리고 새로운 교회 성장 모델의 도입 등은 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했던 중요한 전환기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 시기에 평신도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목회 방향을 모색했으며, 오랜 숙고 끝에 발견한 사역의 모델을 발전시켰다. 이는 그의 독창적 시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 시대가 요구했던 신학적 과제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다. 제자훈련은 그 시대가 경험한 부흥의 동력과 함께 작동하며 은보 자신과 한국 교회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저자

박응규

저자:박응규
총신대학교신학과를졸업(B.A.)하고,미국필라델피아에소재한WestminsterTheologicalSeminary에서M.Div.와Th.M.그리고Ph.D.학위를취득하였다.미국개혁·장로교회사를전공하면서한국교회와의연관성에주목하며종말론과부흥운동,그리고선교역사에지대한관심을갖고있으며,2006년에는PrincetonTheologicalSeminary에서연구교수를역임하였다.

주요저서로는한국복음주의신학회제8회신학자대상수상작인『가장한국적인미국선교사,한부선(BruceF.Hunt)평전』,MillennialismintheKoreanProtestantChurch,역서로는『부흥의계절』(CLC),『역사속의종말인식』(CLC),『페르시아와성경』(CLC),『종교개혁과개혁신앙』(크리스챤출판사),『교리속종말론』(그리심),『이성의시대』(그리심)등이있으며,다수의논문들을집필하였다.

1999년부터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에서교회사및역사신학교수로재직하고있다.신학과학과장,학생처장,교무처장을역임하고현재는기획처장으로봉직하고있으며,한국복음주의신학회협동총무를역임했고,현재개혁신학회부회장,성광교회협동목사로있다.가족으로오르가니스트인아내김정희와의사이에남매성희(에스더)와종준(조나단)을두고있다.

목차

서문

1부:자신을깨운한사람,옥한흠

1장옥한흠의출생과성장
한사람,옥한흠의출생|경남거제지역의기독교신앙|옥한흠의성장과정|책벌레,옥한흠
2장옥한흠의신앙형성
옥한흠의회심|옥한흠과학생신앙운동|옥한흠의소명
3장옥한흠의청년시절과결혼
옥한흠의대학생활|아내와의만남과결혼|옥한흠의아내,김영순
4장신학생옥한흠의목회사역준비
1960년대후반의총회신학교와교수진|옥한흠의신학수업과「신학지남」|옥한흠의지도력과경건생활

2부:평신도를깨운광인(狂人),옥한흠

5장옥한흠의성도교회대학부사역
옥한흠의좋은교회에대한꿈|제자훈련의교두보:성도교회대학부|교회속의제자,세상속의제자|옥한흠의광인공식:미쳐야미친다.|옥한흠의멘토김성환목사와평생동지들
6장제자훈련신학화를위한미국유학
칼빈신학교유학과이민목회|김영순사모와세아들,그리고경남진영|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한스큉의『교회론』
7장가장행복한결정
교회개척,강남은평교회|왜이교회를?|세가지창립비전|작은예수운동
8장예수의제자됨과제자훈련목회
제자훈련목회와그리스도의하나님나라사역|옥한흠의교회론과사도성,그리고제자훈련|성령충만과제자훈련,그리고선교적교회론|옥한흠의시대인식과제자훈련의당위성

3부:제자훈련의장인(匠人),옥한흠

9장제자훈련목회에함께미쳤던동역자들
사랑의교회와초기부교역자들|여집사제자들과옥한흠의아내|사랑의교회의전도부인들|사랑의교회의권서들:남성들의제자훈련
10장제자훈련목회의터전들
제자훈련,현대판카타콤|제자훈련목회현장리포트,기도행전|제자훈련교과서,『평신도를깨운다』
11장제자훈련지도자(CAL)세미나
『평신도를깨운다』의후속타,CAL세미나|CAL세미나의영향과확산|제자훈련,전도,문화명령,그리고사회적책임|제자훈련목회와대각성전도집회

4부:목사들을깨운목사,옥한흠

12장옥한흠의지도력과사랑의교회
지도력형성과특성|지도력과공동체|지도력과확산|
13장옥한흠의교회론적비전:교회의순수성과연합운동
교회론적비전|예장합동교단|교회갱신목회자협의회(교갱협)|한국목회자협의회(한목협)
14장옥한흠과제자훈련목회의선교지향성
제자훈련목회의국내외확산|제자훈련목회의사회적영향력|제자훈련목회의선교적적용

5부:그리스도의참제자,옥한흠

15장은퇴전후의옥한흠
참제자의길|교회를위한선택,조기은퇴|오정현의부임과그이후
16장옥한흠의한국교회를향한외침
한국교회를향한절규|사랑의교회설립30주년|고뇌와병고
17장옥한흠의마지막투병과소천
이제는그모든짐을내려놓아야할때|옥한흠없는사랑의교회와한국교회|소명자는낙심하지않는다.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옥한흠이태어난1938년은일제의압제가더욱거세지고있었으며신사참배강요를끝까지거부하며버티던한국장로교회마저굴복하고말았던치욕과수치의해이기도했다.그때는일본제국주의자들의침략전쟁이1931년의만주사변을거쳐1937년에일어난중일전쟁을통해본격화되고있었고,다시1941년에도발한“대동아전쟁”이라부른태평양전쟁으로확대되고있었다.그리고일제는식민지백성조선사람들의전쟁협력을받아내기위한갖가지정책을강화하고있었다.일제강점기의끝자락에빈농의가정에서태어난옥한흠은일제치하의민족적수난기에개인적으로도결코적지않은어려움을겪으면서성장했다.옥한흠은일제통치의잔악성을실제로경험하고피부로느끼기에는어린나이였지만,그시대를처절하게살아갔던그의부모와전前세대로부터창씨개명,조선어사용금지나이른바황민화정책등여느식민지배와는확연하게다른민족말살을획책하는야만적이고폭압적인가슴아픈이야기를들으며자랐다.더군다나장남옥한흠이태어났어도지독한가난때문에그의어머니는음식을제대로먹지못해아들에게젖한번풍족하게줄수없었다.
---「옥한흠의출생과성장」중에서

옥한흠은초등학교3학년시절에호롱불밑에서바느질하는어머니로부터느닷없이마태복음27장을읽어달라는부탁을받았다.그의어머니는겨우한글을읽을정도의실력으로날마다성경을들고정말열심히읽었지만한장을가지고오랫동안씨름하기가일쑤였다.어느추운겨울날오후,주일학교에서성경읽기대회를자주열어그날도성경읽기를준비하며앉으나누우나성경을손에서놓지않고읽고있었던아들에게,어머니가그런부탁을했던것이다.그말씀은지난주에들은주일설교의본문이었기에어머니는다시한번더듣고싶어했다.예수그리스도께서재판을받으신다음십자가를지고골고다로향하시는말씀을누워서읽는가운데이상한느낌이들어어머니를힐끗쳐다본순간,어머니의뺨에하염없는눈물이흐르고있었고,조금후에는어머니가흐느껴울기시작했다.더이상성경을읽지못하고당황해하는아들을향해,감정을진정시킨어머니는“나는예수님이나를위해그처럼비참하게죽으셨다는사실을전에는잘모르고있었던것같구나”라고고백했다.그때의감격을옥한흠은이렇게기억하며표현했다.
---「옥한흠의신앙형성」중에서

초등학교시절부터옥한흠은목사들의설교를듣는것을좋아해서학교공부를소홀히할만큼종교성이매우강했다.또한하나님의은혜로예수그리스도의십자가의은총을경험한이후에는성경을처음부터끝까지깊이읽고숙고하는혼자만의시간을평생가져왔다.성경을읽으며자신을깨우고,진리를통해깨우친바를세상일로빼앗기지않으려고자기의마음을깨우는일에매우민감했다.특히예수그리스도의재림을강조하며대환란을당할때살아남아야한다는메시지때문에,한때는‘대환란공포증’으로고민하기도했지만,이세상의일로영적인잠을자지않으려고부단히자신을깨우는일은그이후에도여전히계속되었다.그는평생‘말세불감증’에걸리지않도록그자신부터철저히깨우는신실한자세를유지하려노력했다.
---「옥한흠의신앙형성」중에서

대학생옥한흠은영문학을전공하면서많은강의를들었지만,대학졸업후수십년이흘러도그의마음에깊은자국을남긴채기억에서사라지지않는강의가있었다.그것은바로당시연세대학교영문학과교수로있으면서성균관대학교에와서희곡을가르쳤던오화섭교수의강의였다.오교수는아서밀러가쓴『세일즈맨의죽음』이라는유명한희곡을강의한적이있었는데,그강의에옥한흠은완전히매료되었고예술에대한그의관점이전적으로변화되었다.그가신앙생활을시작한어린시절의교회분위기에영향을받아연극이나드라마,그리고춤등에대해서는아주부정적인태도를취해왔던것이사실이었다.그런데이강의를들으면서그의편견을극복해갈수있었다.그때의감격과흥분을훗날이렇게언급했다.“‘야,드라마가이런것이구나.음악이라는것이이런것이구나.예술이라는것이이렇게파워가있구나’하는것을그때서야비로소알게된것입니다.
---「옥한흠의청년시절과결혼’중

광인옥한흠이되면서부터불행히도가족들을돌보는일은소홀하게됐다.성도교회에서5년을사역하는동안사택이남산밑에있었음에도,한번도가족들과함께남산에올라가본적이없었다.”그나마며칠되지않는공휴일마저가족들과보내기보다는젊은학생들을양육하고변화시키기위해기도원으로,그리고수양관으로데리고다니면서시간을보냈다.제자훈련의광인옥한흠은아내와아들들과오붓하게보낼시간이없을정도로제자훈련에철저하게미쳐있었다.
---「옥한흠의성도교회대학부사역」중에서

청년옥한흠에게목사로서귀한롤모델이있었는데,그가바로김성환목사였다.김성환은성도교회담임목사였을뿐만아니라,그의나이40대에부흥사요탁월한설교자로한국교계에서유명인사였다.그는한국교회에강해설교를본격적으로선포한설교자들중한사람이었다.김성환은평남강서출신으로고려신학대학교와경희대학교영문과를졸업한후,박윤선목사가설립하고시무했던서대문동산교회에서목회하다가1972년성도교회로부임했다.그는영어와일어에능통했던학구적인목회자로서,오랜기간동안「기독신보」에“칼빈주의해설”이라는칼럼을연재했으며,평신도들이이해하기쉽게다양한교리들을해설한논설위원으로활동하기도했다.후에는그의글들이모아져『평신도를위한칼빈주의해설』이라는책으로출판되어한국교계에널리알려지기도했다.김성환은칼빈주의적입장에서성경관을비롯한모든교리를일목요연하게요약적으로진술할뿐만아니라,“기독자한사람한사람이걸어가야할정로正路”를탐색함으로써“예수님에게로가는길”과“천국으로가는길”을제시하려고부단히노력했던신실한목회자였다
---「옥한흠의성도교회대학부사역」중에서

예기치않게웨스트민스터구내서점에서그의눈을사로잡는한권의책을발견하게되었다.그책은개혁신학자가아닌가톨릭신학자한스큉이저술한『교회론』이었다.가톨릭신학자가저자라는점이부담이되기도했지만,개혁신학을철저하게교육하는신학교서점에놓인책이라면괜찮겠지하는마음으로펼쳐들었다.그리고금방그책속으로빨려들어갔다.특히“사도성”에관련한부분은서점바닥에앉아단숨에다읽어버렸다.이책의내용을살펴본옥한흠의마음은말할수없는기쁨과감격으로가득찼다.그책과의만남은제자훈련의신학적토대를마련할수있는희망을가져다준아주값진발견이었다.
---「제자훈련신학화를위한미국유학」중에서

개척목회를시작하기로결정한옥한흠에게는“한사람이라도제자훈련해서투철한소명자로만들면기적이일어나겠거니하는단순한믿음”에사로잡혀있었다.그렇기때문에개척교회의장소나시설,그리고여러외부요인들을별로걱정하지않았다.그렇다고해서옥한흠이개척교회의미래가밝을것이라고낙관적으로만생각한것도아니다.교회당은당시에는외진곳이라할수있는반도유스호텔앞의3층짜리건물의2층에40평정도를배기주목사가계약함으로마련되었다.새로시작하는교회의입지조건으로는적합하지않았고교통도불편했지만,교인들을바르게제자훈련하면된다는일념에사로잡힌그에게는장소문제는그리큰고민거리가아니었다.주변여건은별로좋지못했다.당시충현교회는인근지역에공사를하려고말뚝을여기저기꽂아놓았다.옥한흠은전혀주눅들지않고“충현교회는충현교회고,우리교회는우리교회다”라는마음자세로시작부터당당하게임했다.
---「가장행복한결정」중에서

옥한흠은제자훈련을통해자신이먼저변했고,그변화의중심에는복음과영혼의중요성,그리고하나님나라의비전이있었으며,그영향으로대학생들이변했고,후에는성도들의변화로연결되었다.그리고이러한변화는공동체적으로도나타나대학부나교회의영적체질도바뀌는것을그는실제적으로체험했다.제자훈련을통해옥한흠자신부터시작된변화는그의목회사역을참된변화의장으로만들어나갔다.이런면에서옥한흠은우리에게,참성도이자제자는어떻게살아가며사역할지에대한좋은모범을보여주었다.한사람이자목회자였고제자훈련에생애를다바친옥한흠의인간성은솔직하고투명했다.이러한면이주위사람들에게감동을주었으며,서로신뢰의관계가형성되면끝까지교제와관계를유지해나갔다.그래서그의첫제자들에게비친첫인상은“믿을만하고진실한맏형”같은느낌이었다.옥한흠의대표적인특성을“신실信實하다”라고표현하는것이가장적절할것이다.자신을드러내거나대접받는것을싫어했고,그어떤과시나허세도허용하지않으려고했다.
---「옥한흠의지도력과사랑의교회」중에서

옥한흠은교회의순수성은바로종교개혁자들이강조한세가지의참된교회의표지들과직결됨을강조하면서,먼저말씀을옳게전파하고가르치는교회인지,다음으로성례를성경이교훈한대로바로시행하는교회인지,그리고권징을바로하는교회인지가순수한교회임을드러내는고귀한증표들임을지적한다.특별히마태복음28장18-20절의말씀처럼하나님의말씀을가르치고선포하고교육해야하며,세례를비롯한성례를성경말씀대로시행하며,교인이말씀대로살지못할때에는권징해야한다고한다.이러한표지들이분명하게나타나는교회라면교파에관계없이참된교회요순수한교회가아닐수없다.물론교파간차이나교리적차이를완전히배제할수있는것은아니지만말이다.옥한흠은“십자가와부활이라는본질적인진리에어긋나지않는이상”,우리는각교회나교단간의상이성은긍정해야한다고주장한다.
---「옥한흠의교회론적비전:교회의순수성과연합운동」중에서

옥한흠은그의목회가절정기에있을때,사역을마감하고물러나야할시기가언제일지모색하고있었다.그는1995년10월1일주일예배에서요한복음강해설교를하면서,목회를마감해야할때과감하게그럴수있기를소망한다고자연스럽게언급했다.옥한흠은세례요한을“영적거인”으로추앙하면서,그근거중하나로“예수그리스도는흥하여야하겠고자신은망하여야하리라”는자세를꼽았다.요한은그러한태도를견지했기때문에오실메시아가나타나셨을때과감하게자신의자리뿐만아니라그의제자들마저도예수께로보내드렸다는것이다.그러한요한의모습에목회자인자신의모습을투영해보았다.그때부터그가물러날때를가늠하는가장중요한요소는그리스도와그리스도의몸된교회를위하여자신이물러가야할때가되면,단호하게행동하겠다고강하게암시했다.
---「은퇴전후의옥한흠」중에서

옥한흠이목회사역을마감하기6-7년경전에아시아권교회들(특히일본과중국등)에제자훈련목회가확산되어질수있는기초가놓아졌다.이런상황에서제자훈련을국제화하기에적합한사람이그의후임자가되어야한다고생각했다.이에대해이동원은그의견해를이렇게밝혔다.“앞으로오정현목사와사랑의교회가직면한과업은교회가글로벌라이즈되어야한다는것이다.사실옥목사님이이부분때문에오정현목사를선택한것이다.본인은한계를느낀다고하셨다.그래서다음세대사람이글로벌라이즈하고더그시대에맞는글로벌디사이플십이나와야할것으로본다.”하지만많은지인들과동역자들중에는그와같은옥한흠의견해에이견을가지고있는자들이많았다.평신도를동역자로삼는그의사역정신에비추어보아도후임자선정과정에그의영향력이과도하게행사된것에는비판의여지가있다.평신도지도자들을동역자로삼고자평생을목회해온옥한흠이어떻게보면가장중요한결정을앞두고누구보다도많이고민하고기도했겠지만,자신의일방적인견해를중심으로성도들을설득해나가는모습은제자훈련목회자의이미지와는상반되는측면이강했다.
---「은퇴전후의옥한흠」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