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법정 : 아름다운 날들 2

소설 법정 : 아름다운 날들 2

$16.50
저자

백금남

1985년제15회삼성문학상을수상하면서본격적으로작품활동을시작했다.1987년KBS문학상을수상하였으며이후신비한상징과목가적서정으로백정집안의기묘한운명을다룬장편소설『십우도』와『탄트라』가잇따라히트하면서90년대를대표하는베스트셀러작가중한명이되었다.2003년에는『사자의서를쓴티베트의영혼파드마삼바바』로민음사제정올해의논픽션상을수상하기도했다.2008년에는일본의화신(畵神)으로불리는도슈샤이샤라쿠가바로한국의김홍도라는충격적인사실을추적한소설『샤라쿠김홍도의비밀』을발표하여세간의화제를모았으며,신윤복과조선후기회화사를집중취재한내용을바탕으로『소설신윤복』을발표하였다.2016년에는법정스님의일대기를그린『소설법정:바람불면다시오리라』를발표해큰관심을모았다.소설『관상』은영화와함께‘관상신드롬’을일으키며베스트셀러가되었으며,『궁합』,『명당』과함께역학3부작으로꼽힌다.어려워보이는역학을소설로쉽게풀어냄으로써굉장한몰입도와흥미를선사한다.성철스님의일대기를다룬소설은그가젊은날에작가로등단한후꼭한번은써보고싶었던것이다.

목차

불일암7
진정한무소유37
함석헌과등불56
거울사연64
스님,한말씀만써주세요69
초콜릿하나드릴까요?81
수녀의출가90
너의발을씻어주마98

3장불속의꽃이되어인과103

어머니108
미소지으며가노라112
자야의사랑118
텅빈충만134
수류산방138
연못에연꽃이없더라161
해탈의해방구183
연꽃,드디어피다190
정년이없다195
올챙이의항변199
병마203
이제돌아가노라207
세상과의이별223
불속에피는꽃227
에필로그233
법정스님연보240

출판사 서평

법정스님의출가기와수행과정을생생하게그린소설!
은사효봉스님과사형들의반대에도불구하고
자기수행으로글쓰기를놓치지않았던고독한수행자.

법정스님의손상좌이며추천사를쓴원경스님과미황사전주지이며승가대학교교수인금강스님,그리고편집자는이소설을읽으면서눈시울연신닦았다고한다.그만큼소설속의이야기들은마음의울림이컸다.글쓰기는수행에방해가된다는은사효봉스님의혹독한질타속에서그의글쓰기는고독한길이었다.그리고마침내아무도몰래문단에등단한다.이소설속에는법정스님의등단작〈미소〉가실려있다.

저자의말

너는네세상어디에있느냐?
너에게주어진몇몇해가지나고
몇몇날이지났는데
너는네세상어디쯤에와있느냐?

(오스트리아철학자마르틴부버가《인간의길》에서한말로,
법정스님이인용하여거듭강조하신말씀)

법정스님에관한한줄의자료를찾아천리를마다하지않았고,수많은밤을뜬눈으로지새웠다.이제와생각해봐도그과정에서그분이쓴시와산문을발굴해낸것은참으로감격스러운일이아닐수없다.무엇보다한인간의행로를되짚어볼수있었다는것이크나큰행운이었다.색이바랜신문지속에박여있는그의글은매우순수했고아름다웠다.어느날그분이내게와물었다.
“나는모두버렸는데왜나를가지려하는가.”
내가대답했다.
“스님은왜살아중생을가지셨습니까?왜그들의마음을훔치고,그들의가슴속에들어앉으셨습니까?그래서거두어간것이아닌가?그거두어감의세계를바로쓰려는것입니다.”결국이런모양새를알고있었지만,후회는없다.무서울것도없다.나는그를그렸고,그의전설은이제바람이되어흩어질것이다.

책속에서

자야라는여인이있었다.우리나라에서둘째가라면서러워할대원각요정의주인이었다.천재시인백석과사랑하다헤어진뒤곡절많게살아온여인은,어느날《무소유》라는글을읽고그글을쓴스님에게대원각요정을조건없이내놓겠다고했다.대지가무려7천평이나되는엄청난재산이었다.
---p.16

늙은승이물었다.
“속가의이름이재철이라고했느냐?”
“예.”
늙은승이지필묵을당기더니흰화선지에무슨글인가를썼다.재철이내려다보니‘법정(法頂)’이란글자였다.
“네법명이니라.세상만물의이치가부처의법에있나니그정수리를틀어쥔다면바로부처가될수있으리라.”
“법정……!”
재철은낮게부르짖었다.기분이훨훨날아갈듯했다.
---p.81

효봉스님이일갈했다.
“수행자는탐욕을털어내는데그본분이있는것이야.무엇에욕심을부린다면수행자라할수있겠느냐.이세상의모든것은본래네것이요,또한무(無)한것이라…….”
그렇게알길없는말로제자들의기를꺾어놓았다.자연히그의무소유정신은제자들의뇌리에박히게되었고,훗날법정스님이수필집에‘무소유’라는제목을붙일정도였다.스승의무소유정신이무의식중에작용했는지도모른다.아무튼효봉스님의무소유정신은상수제자구산에게먼저전해졌다.법정보다구산이먼저축발하고효봉스님을모셨기때문이다.
---p.94

방문이벌컥열리며스승이들이닥쳤다.
“네놈이글을쓰고있다고?”
스승이노트를집어보더니,어이가없는듯입을벌렸다.
“이놈,여기가사가방이냐.여기는부처를공부하는승방이다.그런데어찌하여이런글을쓰고있는것이냐?”
법정은할말이없었다.
“내뭐라고했느냐?속가의학문은필요가없다고하지않았느냐.오히려네놈이배운알음알이를몰아내지않고는불교의본의를깨칠수없다고했거늘.그런데또속가의책을들고앉아있다못해글을써.네놈이정신이있는것이냐,없는것이냐.여봐라,이놈의소지품을뒤져라.”
---p.103

어느날법정사미가쌀을씻다가몇알흘리자수챗구멍에알알이박힌쌀알을한알도남기지않고주워먹게했다.등산객이나신도들이가끔올라와밥찌꺼기를수채에버리고가면그릇과젓가락을가져오게하여자신이모두건져먹었다.촛불의촛농조차마음대로버리지못했다.그것을모아다시써야했다.하룻밤에성냥한개비이상은쓸수없었다.첫불을일으키면초에붙인뒤재빨리돌아가며붙여야했다.그불은잠자리에들때까지켜져있어야했고,그러면다시성냥을쓸일이없었다.
---p.127

성철스님은법정이보는앞에서대필묵을휘둘러댔다.도저히이해하기힘든풍경이눈앞에서펼쳐지고있었다.그래서물었다.
“스님,스님이지금쓰시는글은문자가아닙니까?”
성철스님은눈썹도까딱하지않았다.그대로대필을휘두르다가불쑥한마디내뱉었다.
“무방(無方)이다.”
“무방?”
법정은자신도모르게되뇌었다.그제야성철스님이시선을들어법정을쏘아보았다.
“그이치를알겠느냐?”
‘무방’이라면모양이없다는말이다.그러니까모양이있으되모양이없는세계라는뜻이다.
---p.140

미소

어느해던가
욕계나그네들이
산사의가을을찾아왔을때
구름처럼피어오른
코스모스를보고
그들은때묻은버릇을버리지못했다.

이한때를위한
오랜기다림의가녀로운보람을
무참히꺾어버리는손이있었다
앞을다투는
거친발길이있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지니지못하는
어둡고비뚤어진인정들……

산그늘도내리기를머뭇대던
그러한어느날
나는
안타까와하는코스모스의
눈매를보고
마음같은표지를써붙여놓았다.
《대한불교》1964년9월27일(법정스님등단작)

이시가덜컥붙었다.실감이나지않았다.그때선에든사람이셋이었는데,첫째로실렸다.아,이제시인이되었구나.법정은자신의희열을못이겨산으로내달렸다.그렇게기쁠수가없었다.그때같이뽑힌이들이시〈불상〉을쓴석성덕,〈이눈물을〉이라는시를쓴김원각이었다.
---p.196

효봉스님이가시고1년후인1967년,법정은새롭게시작한다는각오로‘동국역경원’개설에참여했다.부처님의말씀을빨래판으로두지않으려면어려운한문투성이의글을쉬운언어로전해야한다고생각했다.법정은역경위원으로활동하면서계속글을썼다.타악기를두드리듯그동안잊고있던시어가터져나왔다.이상한현상이었다.축복처럼머릿속에서마구쏟아져나오는것이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