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이로 불린다는 건 (박재웅 시집)

쟁이로 불린다는 건 (박재웅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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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리얼리스트 쟁이 마침내 시詩 밭을 일구다

현실 속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리얼리스트입니다. 거미처럼 아찔한 경지에서 삶을 영위하지만 먼 곳을 바라볼 뿐 결코 포기하지 않는 실존주의자입니다. 대지를 뚫고 심연 속에 가라앉은 소중한 것들을 길어 올려 우주를 향해 상승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상상하는 리얼리스트를 다른 말로 ‘쟁이’라 부릅니다. 한 뼘 모자라는 구석이 우리 삶을 곤경에 빠뜨릴 때 무심히 가늠하며 넉넉히 채우는 능력자입니다.
시집 『쟁이로 불린다는 건』은 도서출판 봄싹이 펴내는 새로운 시집 시리즈 ‘리얼리스트 시전 詩全’의 전위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리얼리스트 시의 미래입니다. 그곳에 현실적 상상력이 가득 합니다. 그처럼 일단의 노동자들을 이끌고 와 굳어 버린 공간을 새로운 장소로 변주시켜 내는 쟁이가 박재웅 시인입니다. 그는 반평생 노동 현장에서 몽상했던 시인입니다. 누구나 꿈꾸었을 백일몽에 눈길 주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넓혀 온 리얼리스트입니다.
2010년 『분단과 통일시』 2집에 김규동 시인 천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그의 시심에 한 시대를 품을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가 꿈꾸는 시 밭에는 구름이 흐르고 별이 가득하고 바람이 불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무딘 발걸음을 알아챈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가 문단 언저리를 서성거릴 때 눈여겨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면 침묵은 모두 그의 몫입니다. 그러나 그 침잠이 시 밭을 갈아엎는 쟁기가 되어 마침내 그의 시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김규동 시인은 경계를 넘어온 디아스포라입니다. 선을 넘어보지 못한 이들의 불온한 시선을 감내했던 리얼리스트입니다. 박재웅 시인은 그를 사사하여 시문詩門에 서 있습니다. 그의 손을 잡고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들어갈 사람들은 하루하루 갈고닦고 쓰다듬어 먼지 앉은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빛나게 합니다.

『쟁이로 불린다는 건』은 무엇을 담았는가?

봄빛에, 프라스마 푸른 빛에 서린 빙렬氷裂 화음

이 시집은 봄날 양지바른 곁을 담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었는데 어느샌가 멀리 사라진 시간과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퇴색하지 않는 원형原型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수복의 시 「봄비」에서 노래했던 죽음의 그림자도 서럽게 비칩니다. 삶과 죽음이 한 몸이니 죽음에 앞서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삶의 실체가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어찌 살아야 할지 같이 생각하는 순간입니다.
아울러 노동과 사회와 역사 현장의 부조리가 일으키는 거대한 열기가 있습니다. 온통 녹아낼 듯 다가서는 폭력 앞에 모두 사라질지도 모를 공포와 연민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시인은 일터와 광장에 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게 변색하며 하나의 물결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스며드는 뜨거움이 그의 삶을 금 가게 합니다. 그렇게 흘러내린 물방울이 시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화음을 이루며 네 가지 빛으로 발산합니다. 1부 〈우리들의 셈법〉은 자본과 권력이 펼치는 그들의 셈법에 대항하는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담았습니다. 2부 〈구두를 닦는다〉는 시인의 지난 역경이 새겨져 있습니다. 아찔하기도 하고 캄캄하기도 하며 그러다 한껏 부풀기도 하는 삶의 편린이 서려 있습니다. 3부 〈나는 서쪽으로〉는 시적 인식을 담았습니다. 노동하며 싸우며 사랑하며 얻은 깨달음입니다. 4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밤길〉에는 시인의 근원적 공간이 펼쳐집니다. 선회할 수밖에 없는 무의식입니다. 그의 시심이 만만치 않음을 그때부터 발원했다는 징표입니다.
저자

박재웅

경기이천출생.(주)두레아이앤시대표.2010년『분단과통일시』2집에김규동시인천거로작품활동시작.한국작가회의회원.

목차

1부우리들의셈법
공치는날이아니다11
어둠소굴로간다12
마곡사가는늦가을13
그들의셈법14
고독한사내는처음부터없었다16
딱따구리박씨17
이목수18
봄단장19
마담은귀신처럼안다20
접대한상床같은시21
석불역에서22
방통치는사람23
장마소식24
영동교25
전사장26
미세누수漏水27

2부구두를닦는다
십이월에핀꽃을위해31
그날도인력회사일용직과하루종일씨름하다
돌아와32
선회旋回33
물형석物形石돌대가리34
목련아래서35
몰러몰러36
강물은흘러만가지않았으니37
민들레38
별하나에희망39
쟁이로불린다는건40
소리없는아우성41
거시기같은날42
그남자의봄빛44
너에게가는길46
불빛속으로47
거미의아찔한양식48

3부나는서쪽으로
그해봄시인학교51
두레박질52
새벽강53
새순법문54
저만치사랑잃은56
인도人道57
설아다원뒤뜰58
청천靑天59
동안거冬安居60
새끼조폭들61
장미의눈물63
봄밤64
빙렬氷裂화음65
가을빛깔66
발효67
이명耳鳴68

4부혼자서는갈수없는밤길
음짓말경희71
얘야그만자거라-김규동선생님영전에72
아버지마음73
아버지병상일지74
지독한행군75
우리끼리라는말76
촌놈이하는욕77
공친날79
할머니방식80
함박꽃81
장독대82
이젠엄마가끓인꽁치국이먹고싶다83
친구-동엽에게84
달은한번도늙은적이없었으니85
민달팽이86

여백89
해설90

출판사 서평

시집해설에서

청년의시적순정,삶-노동의통찰력

누군가의안식처를위해
염천허공에힘줄을엮는
철골노동
-「거미의아찔한양식」전문

여기한사람의인생이있다.결코자기인생을자랑하지는않는다.시내용과제목을연결했을때,아,하고수긍하고수수께끼를푼느낌이든다.자랑은커녕고된노동과위태롭고위험천만한노동조건을떠올리게한다.생앞에시인은무엇일까고심했기때문일것이다.은유를가미한‘거미’는철골노동자를떠올리게한다.그런데굳이‘거미의아찔한양식’이라고했을까?일견생각하면‘거미’의안정적인거처인동시에먹이를낚기위한사냥도구인거미줄을쉽게비유한방관자적관찰로여겨질수도있다.그러나‘거미’가‘철골노동자’로치환되는순간,다시삶의고단하고위기에가득한전모가떠오른다.거기에‘양식’까지가미되니시인의삶,노동에휩싸인-뭉근하게버무려진-한생애가감지된다.
나날이노동에매몰되다보면자신과노동의관계가긴밀한지소원한지구별되지않고한바탕일원론적인행위에묻히기쉽다.자기의식은실상내온몸의활동이전달하고보고하는모든지식과정보,신호를관장,제어,해석하고반영하는결과를각성하는대뇌피질의기능과역할을가리킨다.반복적이고지속적인노동의동력이바로스스로를자각하는일이다.그런데각성과자각의순간이주의와집중의시간으로초점화되기보다는휴식과수면,재충전의갈망을충족하려는욕구로집중되기때문에사람들은대부분노동의메카니즘을사무적이고기계적인과정으로만치부한다.삶,노동이의식意識/儀式-양식화樣式化하는미적·정치적국면을거쳐야한생애는노동과삶이일체화된다.나아가삶과노동이분별되는‘따로또같이’의차원으로상승한다.‘거미의아찔한양식’에담겨있는분리와결합,초월의기술은그런점에서의미심장하다.
한생애의노동과삶에대한박재웅의소회가불과석줄밖에안되는이토록짧고강렬한시에충만하다니.아마도그것은그의시에대한이해와삶에대한통찰이만만치않음을예시하는증좌일것이다.그가종사하는건축업과관련된소재선택에서비롯된바“누군가의안식처를위해”일했기때문일것이다.그는거기에서삶의복잡다단한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숙고하고자양분으로삼았음을짐작케한다.무릇직업인거개가종속되거나소외된노
동과정(메카니즘)에사로잡히게마련이다.깨어있는몇몇만이자기와자기노동을관조한다.즉,성찰하는것이다.시적화자는‘삶-노동’의‘아찔한’운명을저리사유한다.삶이어쩌면‘염천허공에힘줄을엮는’일과다를바가없듯이‘철골노동’의강도높은도로徒勞는소진될가능성에항상직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