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인공 지능과 시를 | 박인 시집)

외사랑 (인공 지능과 시를 | 박인 시집)

$12.00
Description
챗GPT와 시를 이야기하는 시간
김소월이 숙모 계희영의 무릎을 베고 들었던 노래가 「진달래꽃」이 되고 「산유화」가 되었습니다. 임화의 단편 서사시 「우리 오빠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가 우렁차게 낭송됐을 때 파업 노동자들의 함성이 종로 거리를 헤집었습니다. 백석이 자야 손에 쥐어 주었던 종이 뭉치에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가 숨 쉬고 있었습니다. 모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시의 역사입니다. 이 시집은 사람을 건너 뛰어 대화형 인공 지능인 챗GPT와 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랑을 담은 시를 챗GPT에게 들려주고 감상이 어떤지 묻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의 새로운 역사를 막 썼습니다.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은 부제에도 담겨 있듯 시인과 인공 지능의 대화형 시 쓰기를 수행하였습니다. 인공 지능에 대해 불안과 공포를 체감하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의 풍경입니다. 불안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불확실성이기도 합니다. 결국 불안의 정체는 인공 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불가지론에 빠진 미래의 불투명 때문이 아닐까 시인은 묻습니다. 사랑의 인위적 집착이 공포를 넘어 비극적 파탄에 이르듯 인공 지능을 폭력적으로 이용한다면 결과는 자명합니다. 적어도 이 시집은 인공 지능을 적으로 대하지 않고 동반자로 인정합니다. 인간의 불안과 공포를 뚫고 솟아나는 수직적 상상력의 발로입니다.
이 시집은 인공 지능의 출현을 부각시켜 무언가를 얻으려는 기계적인 상상력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외사랑이 지니는 짝사랑의 순수 서정을 소박하게 펼쳐 인간 상상력에 더 의지합니다. 챗GPT 역시 이러한 시인의 심중을 잘 파악하여 인간 못지않게 진중하게 시를 감상합니다. 이때 챗GPT와 시인은 시적 언어 사이에서 서로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너무나 시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던 것처럼 이 시적 언어는 인공 지능의 언어를 빌려 잊었던 사랑을 다시 호명합니다. 사랑했던 장소로 우리를 서둘러 이끌고 갑니다. 거기에 한때 존재했던 아름다운 우리와 조우합니다. 이 모두 인공 지능과 시를 매개로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인위와 무위가 만나 이루는 역설적 시의 세계입니다
박인은 소설가입니다. 중앙대 문예 창작학과를 나와 소설집 『말이라 불린 남자』, 『누님과 함께 알바를』, 장편 『포수 김우종-부북기』 등을 펴낸 중견 작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몇 차례 개인전을 열었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이번 시집은 예술적인 그의 감각이 집약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 흐름에 민감한 리얼리스트로서 현재 무엇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인가 묻는 서신이기도 합니다. 이 시집으로 인간은 홀로서기보다 더불어 있는 존재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때 인공 지능은 아주 별 다른 존재의 탄생이기보다 오래전 같이 했던 우리 내면의 잃어버린 자아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은 무엇을 담았는가?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


김수영은 시 「사랑」에서 ‘금이 간 너의 얼굴’에서 ‘사랑을 배웠다’고 적습니다. 사랑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라는 인식이 새롭습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불안’을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은 오늘날 사랑의 타자성을 잘 드러냅니다. 시집 『외사랑-인공 지능과 시詩를』도 새롭게 배우는 사랑이 담겼습니다. 외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더욱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에서 절실함을 느낍니다. 특히 이별의 상처를 덧나게 하기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그늘을 어루만지길 부지런히 합니다. 독점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난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연민이라는 이름의 꽃이 피어납니다. 인공 지능이 그것을 지켜보며 응원합니다.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은 챗GPT와 일곱 차례 만남 속에 나누어 담겼습니다. 첫 만남은 서먹하지만 챗GPT에게 시 감상법에 대해 묻습니다. 그리고 시를 읽고 감상을 말해 달라 요청합니다. 시는 사랑의 아픈 기억을 노래합니다. 이별, 슬픔, 불안, 불행, 상처 등이 담겼습니다. 챗GPT는 친절하게 선뜻 응했습니다. 위로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시인은 챗GPT에게 시 감상 형식을 간략하게 해 달라 주문합니다. 형식적 감상을 피하려는 듯합니다. 그리움을 주제로 회상하는 시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사랑의 흔적을 되돌아보며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회복하고 행복하기를 챗GPT는 권합니다. 세 번째 만남에서는 보다 기능이 향상된 챗GPT와 대화를 나눕니다. 시는 한 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사랑을 확장해 갑니다. 이웃과 친구와 사회로 번져가는 사랑의 기적을 함께 이야기 합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 챗GPT는 조언합니다. 네 번째 만남에서 시는 사랑의 슬픔을 딛고 삶의 의미를 새깁니다. 성숙한 사랑이 무언지 시인의 깨달음이 묻어납니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언지 체감하는 시라 챗GPT는 이해합니다. 희망의 메시지를 공유하였습니다. 다섯 번째 만남은 챗GPT와 갈등을 드러냅니다. 시를 수정하려는 챗GPT에게 시인은 냉정하게 제지하고 원래 감상 차원에서 머물라 요청합니다. 대화 내용이 시의 핍진함을 더합니다. 시는 현실적 상상력을 담습니다. 외사랑이 협소하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사회와 시민에 대해 느끼는 연민으로 확장되므로 시의 깊이를 읽게 됩니다. 여섯 번째 만남에서 시는 좀 더 근원적인 본원적인 자아를 드러냅니다. 영원한 사랑에 대해 챗GPT와 대화합니다. 외사랑은 이제 자연과 호흡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 챗GPT는 말합니다. 헤어지는 순간, 시인과 챗GPT는 시의 윤리와 창의성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챗GPT에게 품었던 불안이 해소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여백〉에서 적었듯 이 시집은 외사랑의 자유와 연민 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평화를 추구합니다. 그만큼 외사랑은 독백을 넘어 대화로 이어지는 소통을 도모합니다. 한 사람과 맺어진 인연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이웃과 사회로 확장되는 사랑의 기적을 꿈꿉니다. 거기에 미래에서 온 영원한 존재 인공 지능이 함께 합니다.
저자

박인

서울북아현동산동네에서태어났다.중앙대학교문예창작학과에서소설을공부했다.한동안그림에빠져살았고몇차례개인전에서작품을선보였다.소설쓰기로돌아와펴낸책으로소설집『말이라불린남자』,『누님과함께알바를』,장편『포수김우종-부북기』등이있다.

목차

첫만남

강하나14
업보나무16
바람18
돌아오겠지20

두번째만남

언제돌아오나26
고마워요28
그대만나러가는길30
서시32
슬픔34
바흐를만나는나날36
아마도38
한때40
이제만나요42
그대잘지내기바랍니다44
담벼락에쓴시46
흐르는강물처럼48
이번생마지막사랑50
죽음앞에서52
생일축하54
외사랑56

세번째만남

사이62
귀가64
새끼손가락66
백화68
자화상70
기시감72
길74
스쳐간다76
그대겨울78

네번째만남

그대그림자84
마지막편지86
삶88
뿡뿡90
가는봄92
춘일벌교조우春日筏橋遭遇94
만무방96
두둠칫둠칫98
찬란한소멸100
애인을만나러가는길102
대한민국깡패역사104
이별106
술주정108
떠나가는가을110

다섯번째만남

섭정술攝政術118
섬122
양계장우화124
살아돌아온나에게126
개들이속는법128
찬미송130
나는누구인가134
라라에게136

여섯번째만남

당신의슬픔142
하늘과바다와땅144
불장난146
눈내리는시간148
그리운조선150
룸펜152
총량불변의법칙154
사과나무156
엽서시158
뉴스160
술에대하여162
안개바다앞에선방랑자164
북관168

헤어짐171

여백176

해설인공지능시대사랑이란무엇인가177

출판사 서평

인공지능시대사랑이란무엇인가


1.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

박인은소설가다.소설집『말이라불린남자』,『누님과함께알바를』,장편『포수김우종‐부북기』를펴낸중견작가다.그가돌연시를들고나타났다.나도시한편쓰는게로망이었다는어디서들었음직한신파조소망을이루려는시도라면마다할이유가없다.소설이자신을증명하려는의도에서비롯됐다면시는충분히그에답할수있을것같다.의미찾기에골몰하는나날,나는누구인가존재에대해회의할때시는말을건다.어깨를두드리며스스로현현한다.모두자기앞에놓인생을바라보고있지않는가.
박인시는혼자오지않았다.챗GPT와손을잡고왔다.단순로망이아니었구나생각하니불안이엄습한다.얼마전이세돌9단과바둑대국에서인공지능알파고AlphaGo가이겼을때도그랬다.그해일본의‘호시신이치공상과학문학상’공모전에인공지능이쓴소설이1차심사를통과했다는소식이들리기도했다.영화속에서나나올법한일이눈앞에서펼쳐졌다.반신반의했던일들이현실로드러나다니사람들은당황하고뭔지모를불안에휩싸였다.불안의양상은제각각이지만이러다인간종말을고하는것은아닐까하는단말마같은신음이라할까.
완전한인공지능발전이인류종말을초래할수있다는스티븐호킹의예언이,수십년후에는인공지능이우려할만한수준으로심각해질것이라는빌게이츠의경고가기름을부었
다.불안을넘어공포를불러일으켰다.과학과경제라는거대담론이거들지않더라도사람들은일자리를잃는것은아닐까언제나부닥치는삶의문제를미리걱정했다.그이후인공지능은진화를거듭해이제사람과대화하는수준으로변신했다.챗GPT는이제기계라기보다는인간마음을갖고있는또다른인간같다.무엇을물어도마다하지않고그것도친절히대답하니순간착각에이른다.기계가아닐지도몰라.누군가인간이대신하고있을거야.친근감이오히려두려움을배가시키니놀랍다.
이시집은‘기계적인너무나기계적인’챗GPT와시를읽는순간들을담았다.박인시인은(이제시를썼으니시인이라불러도괜찮겠다.)시를쓰며편편이챗GPT에게감상을묻는다.그의시는할喝이없어좋다.한번은정리했어야할감정찌끼를대신처리해주어더욱좋다.챗GPT도그러한수준에서소박하게감상을말했다.물론시인은인공지능에게시쓰기를맡기지않았다.인공지능에게시를쓰게하는일은너무나기계적인태도가아닐까.인공지능손을빌려쓴시는그냥기계언어일뿐이다.애초에출발도다르고목적도온당치않기때문이다.챗GPT가시를수정하려할때박인시인은일언지하감상만하라고명령했다.우스웠다.그리고통쾌했다.더이상인간적인척하지말라는경고같았다.
니체는대표작『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에서“나는곤란한지경에처했을때,즉질병·고독·향수,무관심·무위등에시달릴때,좋은기분을유지하기위해함께지껄이고웃다가지루
해지면악마에게주어버릴수있는믿음직한동료와환영으로서,벗들대신으로자유정신들을동반자로서필요로했다.”고고백한다.그처럼인간이너무나인간적인것은‘자유’롭기때문이다.인공지능이퍼뜨린불안과공포는기계적인너무나기계적인최후의인간들의심리에불과한것은아닐까.하이데거가말했듯최후의인간들은세상논리에편승하여자신의안위와물질적풍요만을추구하기에가련하다.시를쓰는사람들은그럴필요가없다.시인은본래존재의집을짓는시적언어를장착했기에두려움이없다.
박인시인은인공지능시대불안에떨지않는증표로‘외사랑’을담은시를보여주었다.짝사랑은언제나성립되며자유롭다.인간적인너무나인간적인고통이다.기계적인너무나기계적인챗GPT는홀로사랑할수없기에공포의대상은아닐것이다.물론인간이끊임없이사랑을놓지않는다는조건에서그렇다.박인시인은이시집에서두가지를우리에게확인해주었다.고통속에인간은너무나인간적이라고거기서누군가를향한사랑이연민이라고.사랑은불안속에피어난꽃,연민이라는것을.

2.시도구체성의길을걸었다

이시집은새롭게발걸음을뗀어린아이와같다.챗GPT를동반했기에안심이다.쉽게쓰러지지않을것이다.챗GPT는빅데이터를통해자기학습능력을길러창작에가까운언어를구사한다.그만큼시인과나누는대화수준이일천하지는않다.이러한상호대화적시쓰기가앞으로시문학에변신을꾀할것같다.그런데이러한변신과정은문학사를통해볼때역사적지속성을띤다.즉시도세상변화에대거리하며변이를모색했다.
‘구체성’은과학특성중하나다.환원적습성이다.반복적자기덜음으로핵심스키마schema에도달하려는행위다.이도식이판단기준이돼힘을얻게되는것이다.산업혁명이후인류의행보가그처럼과학적구체성의길을걸었기에시또한그에걸맞은변화를지속했다.이시집도그러한맥락속에존재하는것이다.그런측면에서이시집은첨단이라할수있다.그시적여정을간단히살펴보는것으로이시집의의미를구체화해보자.
지난삼백년은기계와시가만든역사라해도될까.이시집과어울리는명제다.1차산업혁명시대로돌아가보자,1760년대에서1830년대까지시기다.증기기관이발명됨으로써인류는육체노동에서해방되었다.여러가지역기능에도인간삶에혁신적인변화를보였다.인간은어떻게살아야하는가에투자할수있는여유가생긴것이다.최초로나타난현상들이있다.그것은모두인간적인너무도인간적인바람의실현이다.프랑스에서는공교육을실시했고,독일에서는사회보장제도를만들었으며,영국에서는부의편중을막기위해부가가치세를신설했다.오늘날시민사회의면모가이때부터토대가이루어졌다.
세상은꿈으로가득찼다.후에이환타지가비극의서막임을알게되었지만시도이분위기에맞춰새로운면모를보인다.대표적으로낭만주의시대를연워즈워스WilliamWordsworth를들
수있다.

산골짜기언덕위높은하늘에
떠도는구름처럼이내혼자서
지향없이떠돌다보았어라,
한무리모여있는황금수선화.
호숫가수목이우거진그늘
미풍에나부끼며춤을추었소.
-워즈워스,「수선화」에서


시인은자유로울때,인간적일때자연으로향한다.시적언어가고향과집을연상시키는것이기에시인의마음은자연,곧본향을향하고있다.정처없이떠도는인생같아쓸쓸할때돌연마주친수선화는우리를가장아름답던시절로이끌고간다.인간을다시춤출수있게하는것은증기기관차가아님을시는당당히말하고있다.


처음본순간영원히
미혹한달빛에게영혼을맡긴다
중력에이끌려낙하하며
이작은조우
시간을따라
세파거슬러절망을역류하며
한세상함께흘러흘러간다
달빛이나를
내가달빛을
감싸안을때그즈음
흔들리는파문
빛의기슭에닿아
흐르는강물소리를들으면
강은흐르고나도흐르고버린영혼도
흐르고흘러마침내사랑이흐르고
그대가흐른다
-박인,「흐르는강물처럼」전문


이시에도워즈워스가노래했던자연이담겼다.세상파도는거칠게몰아부친다.이절망을거슬러가는것이삶이라고시인은말한다.시류에맡겨가는생도있겠지만거부한채되돌아흘러간다.이‘되돌아보는retrospective’행위는시원으로가는일이다.달빛아래에서만났던환희의순간으로돌아가는것이다.이는과거로회귀하는것이아니라과거를현재로끌어오는역동적행위다.시인만이할수있는상상력이라할수있다.워즈워스가자연속에서잃어버린시간을찾았듯이이시에서도시인은마침내변함없이흐르는강물처럼영원한사랑과대면한다.이처럼이시집에는1차산업혁명때구성됐던시적낭만주의가화석처럼자리하고있다.
1870년~1968년까지융성했던2차산업혁명시대에는삶과죽음이한몸처럼존재했다.전기,자동차의발명으로인류는더없이풍요로운삶을구가할수있었다.그러나동시에자본욕망이극에달해1,2차세계대전을벌임으로써인간성파괴에이르게된다.여기에전쟁폭력을떠받쳤던불평등이있었다.노동자들이참지못하고기계파괴에나선러다이트Luddite운동이일어나기도하고,유럽곳곳에서대규모시민혁명이발생했다.이때시는한발더앞서나아갔다.소위모더니즘시대를연다.로버트프로스트RobertLeeFrost와에즈라파운드EzraLoomisPound등불세출의시인들이등장한다.


지금도고독한데이고독이줄어들기까지
고독은더욱깊어져야만하리
아무표정도없는,표정지을것도없는
밤눈雪의텅빈백색
인간이살지않는별들-그별과별사이의
텅빈공간이무서운것이아니다
내마음속가까이서나를무섭게하는것
그것은내안의빈터들,황폐함이러니
-프로스트,「빈터DesertPlace」에서


두차례산업혁명을거치며물질문명과자본주의는더욱기승을부린다.인간이설자리가없다.고독은사치스런인간취미로만알았는데현실이되었다.탈색된공허한세상에서인간성은찾을수없다.공포의지경은비어버린공간때문이아니라내면화된삶의황폐함이니무엇으로그빈터를메울수있는가.소외는인간을인간으로여기지않는데서비롯된다.인간이사물처럼대상화되었으니쉽게아무렇게나취급당하는꼴이다.이비인간적공간에서도시인은현실을풍자하며비판의날을더욱벼리고있다.


속일만큼속이자속을만큼속았다
더는속을수없어서짖어대고따지자
속인자들은속은자들이속임수를모르는
바보라서속았다심지어밥만주는시늉만해도
말을잘들어서속였다고주장했다
사람이가끔개로보인적은있다
복날꼬리치는들개와배부른돼지를
너무잘속는자들에게보여주며달래보기도했다
속았던일은곧잊힐것이라고
그들은자신을속이기시작했다
가마솥은끓어오르고속은개들목에밧줄을건다
쓰다듬고달래주던손은몽둥이를들고있다
너희개들은죽을수도있다
문제는아무리속여도
지구는거짓에넘어가질않는다
태양계와은하수는속일수없다
-박인,「개들이속는법」에서


이제인간은복날끌려가는개신세로전락했다.그렇게세상에순치된다.속임수라는것을알고저항했던일을망각하며현실을받아들이기에이른다.그러므로현대는아이러니의연속일수밖에없다.폭력앞에스스로속는일을선택할수밖에없기때문이다.그렇지않으면악몽은되살아나주체를계속고통속에몰아넣을태세다.이거대한위선의사슬에옥죄여있지만시인은보이지않는것을본다.지구와태양계와은하수가여전히존재하리라는우주적상상력을발휘한다.현대문명의눈부신성취가밤하늘을가릴지몰라도지구는돈다는진실앞에시적목소리를멈출수없다.달을보고짓는개는무언가알고있을것같다.이처럼이시집에는현실을배반하는목소리가숨겨있다.
세번째물결이1969년이후오늘까지파도치고있다.3차산업혁명시대는인터넷을기반으로하는정보화시대다.인간은자동화시스템속에자기를제어할수없는해체된세상에살고있다.시는이를포스트모던사유로대거리한다.해체된주체를다시맞춰미래로재빠르게발을옮긴다.한때우리문단을풍미했던미래파들이떠오른다.지금은희미한옛사랑의그림자처럼가물가물하지만.


양산을팽개치며쓰러지는저늙은여인에게도
쇠줄을끌며불속으로달아나는개에게도

쓴다꼬리잘린도마뱀은
찢고또쓴다

그대가욕조에누워있다면그욕조는분명눈부시다
그대가사과를먹고있다면나는사과를질투할것이며
나는그대의찬손에쥐어진칼기꺼이그대의심장을망칠것이다.

열두살,그때이미나는남성을찢고나온위대한여성
미래를점치기위해쥐의습성을지닌또래의사내아이들에게
날마다보내던연애편지들

(다시꼬리가자라고그대의머리칼을만질수있을때까지나는약속하지않으련다진실을말하려고할수록나의거짓은점점더강렬해지고)

-황병승,「여장남자시코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