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걷는 여자 (조영여 시집)

뒤로 걷는 여자 (조영여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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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뒤로 걷는 일은 생성으로 가는 걸음
되돌아보는retrospective 일은 과거를 단순히 회상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베르그송이 말하는 ‘지속의 시간’은 아닐까 합니다. 왜 시인은 뒤로 걸어가는 걸까요. 생각해 보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은 죽음으로 귀결될 뿐입니다. 이미 예견된 시간 앞에서 문득 시인은 발걸음을 멈췄을 겁니다. 침묵일 수도 있고 깨달음일 수도 있는 시적 순간일 겁니다. 그리고 뒤로 걷기를 마음먹었을 겁니다. 그 마술적 시간은 단선적 시간의 흐름을 극복하고 무언가 사라지지 않는 영원을 추구하는 도정입니다.
이 시집은 앞을 향해 달려가는 맹목적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무엇인지 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되묻는 일입니다. 가장 느리게 흘렀던 최초 시간까지 가 봄으로써 외면했던 사람들과 망각 속에 밀어 넣었던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나는 경이로운 순간과 마주하게 됩니다. 거기에 우리가 가꾸었던 공동체의 이야기가 아직 생생하게 눈뜨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집을 읽고 난 후 우리는 한결 가벼운 몸으로 다시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삶의 동력을 얻게 될 겁니다.
조영여는 우리 시의 흐름에서 빗겨난 시인입니다. 누군가는 우리 시의 껍질을 벗기면 입신출세주의와 교양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끄럽게도 시의 모습은 아닙니다. 김수영이 힐난했던 딜레탕트의 면모일 겁니다. 애써 그 길로 가지 않은 뜻이 이 시집에 담겼습니다. 그가 시 공부를 거쳐 신화의 품속으로 걸음을 옮긴 것도 그가 추구하는 시의 역행적 방향과 무관치 않습니다. 시간의 강물에 뽀득뽀득 씻은 시의 얼굴 속 갓난아기의 눈망울을 보게 될 겁니다.

『뒤로 걷는 여자』는 무엇을 담았는가?

종말 이전 아주 길었던 시간

이 시집은 세 개의 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도도의 노래’, ‘수평의 시간’, ‘사막을 건너온 시간’입니다. ‘도도의 노래’는 묵시록입니다. 뒤돌아보는 예언자의 계시입니다. 도도는 오래전 사라진 생명입니다. 오래된 미래처럼 그 존재의 사라짐은 앞으로 다가설 우리의 현존이라고 낮은 노래 소리가 귓전에 울립니다. 어쩌면 요람을 흔드는 자장가일지도 모릅니다. 노래하는 자의 눈길은 연민이 가득합니다.
‘수평의 시간’은 일상적 삶의 도정입니다. 상징에 갇힌 시간이기도 합니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입니다. 삶은 평이하고 밋밋하여 시가 곁들지 못했던 시간입니다. 보이는 나를 껴안고 보이지 않는 나와 살아가는 나날입니다. 도도가 사라지는 때와 이유를 알지 못했듯이 눈먼 자의 여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비애가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습니다. 시의 서정으로 외피를 두른 시간입니다. 숨 쉴 만큼만 납작 엎드려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온 시간’은 신화의 계절입니다.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기이하게도 불모의 땅에서 꽃을 피우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수평의 시간에 살기 이전 수직적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슐라르가 파고들었던 상상력의 공간입니다. 평면적 삶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역동적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 깊고 깊은 지하에서 두터운 대지를 뚫고 일어나 우주로 쏘아 올리는 눈부신 빛입니다.
이 시집은 환상을 꿈꾸었던 유아적 세계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 존재의 품에 귀의하는 종교적 결단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요. 도도의 노래는 순간입니다. 수평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막을 건너온 시간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먼 옛날입니다. 이 시집을 따라 긴 시간 여행 끝에 우리는 존재의 빛을 받는 나와 만나게 됩니다.
저자

조영여

『거미』동인,『스토리밥작가협동조합』작가,
『브런치스토리』에신화해석글연재.

목차

제1부 ㆍ 도도의노래

동피랑으로간도도11
네무덤에도별꽃이필테고16
참단순한이치19
뒤로걷는여자의변21
믿음이큰여자24
별의행간27
윤달의노래30
팝콘전주곡33
술래잡기36
그믐전주곡39
왼편의노래41
그림자의주문44
그림자의주문247

제2부 ㆍ 수평의시간

말51
어떤은총53
수평의시간55
오독.57
잠자는양초가고래를상상하는동안59
허리휜물고기에게62
차한잔할래요64
정시의노래68
미궁70
꿈73
들풀이들풀에게75
눈의나라에서76
하늘로가는터널78

제3부 ㆍ 사막을건너온시간

빛을그리다83
근황86
마흔88
피어라꽃91
푼꽃,분꽃93
나비94
위로95
가문비나무97
섬돌아둑길98
씨앗을가꾸는여자100
초경102
비오는집103

에필로그환상을품은아이104

여백109
해설도도의노래(김병호)110

출판사 서평

도도의노래

1.

늦은밤,눈그렁그렁한여자가막차를기다리고있다.여자곁에는어둠만이장막으로쳐져있다.차는오지않는다.여자의눈은불안하게흔들린다.

2.

영웅서사는모든이야기의뼈대라할수있다.영웅이태어났으나운명은등에낙인되어자신은볼수없다.그는남과다르다.그는배척당하고자책하면서어디있는지모를부모를원망한다.그는떠난다.세상을떠돌며수많은난관을극복하는동안그는자신의등을비춰본다.영웅이된그는세계와화해하고고향으로돌아온다.여기미친년서사가있다.

3.

광인은남과다른사람이다.오래전작은공동체는광인을‘신과가까운자’라부르며구성원으로인정하고품었다.더많은사람이모여살면서관계의규모가커지자사회적구조가견고해지고규범이강화된다.그러나광인은이런틀을인정하지않고바깥에존재하는이들이기에환자복에묶인채사회에서격리된다.광인은사회적권력관계에서내쳐진존재이다.
미친년은여자광인이다.여자라는성에는사회적억압위에또하나특별한족쇄가추가된다.권력관계로종속된성이다.이때미친년이탄생한다.미친년은모든억압을거부하며인간으로서실존하려몸부림치는존재이다.낱개인간으로사회적,성적억압을부정하다가내쳐진이들이며조직적저항을하지못할지언정최소한지랄이라도하는존재이다.그렇게자유를찾은자이자억압을깨치고나아가려는존재다.시대의눈에이런존재가마뜩할리없다.어떻게든딱지를붙여내치고깎아내려야한다.이때각성하지못한이는자신을억압하고종국에자신을지워버린다.정신병의세계이다.이처럼미친년이라는호칭은타자들이저주를새긴부적으로붙인말이다.그러나세계와맞서개기는여자스스로에게는자신을긍정
하고광야를질주하는말이된다.미친년서사는미친년으로태어났으나세상을바라보는순한눈으로시작한다.그러나곧자기안에서꿈틀거리는뜨거운온도와외부의차가운압력이만나격렬한화학작용이일어난다.앞이보이지않는연기가가득하다.누군가아프다.자신을부정하다가발병하는무병巫病같은것이다.고통을짊어지고세상으로나간존재는드디어자신이누구인지깨닫고스스로를인정한다.세계와싸우면서새로운관계를맺고화해하는것이다.이제이곳이바로고향이다.

4.

시인조영여가던진시편들은앞에서부터읽으면풍성한은유를체로쳐내가며구체로가는여정이지만뒤에서부터읽으면미친년서사이자분열과확장의연대기이다.

5.

여자는모순의딸로태어났다.「초경」에이른여자는‘함박눈내려함박꽃피는줄믿던바보’였다.그래서‘신이봐주지않아도좋아라/지상에서가장순결한창녀를꿈’꾼다.모든존재의씨앗은모순으로빚어지지만의식이그비밀을눈치채기까지는많은곡절이필요하다.그러나여기작은여자는무의식적으로이사실을발설하고있다.이제씨앗은싹을틔워떡잎을내놓는다.여자는씨앗을가꾸는여자로살고있다.

그씨앗이제크의콩나무처럼자라나
구름사다리로오르는행운을안겨주든
가시덤불을이뤄내살을후벼오든
이제아무래도좋습니다
-「씨앗을가꾸는여자」에서

여자는자기안의것을분별없이긍정한다.이긍정은안의것이사실바깥으로부터온것이라는사실조차분별하지않는다.또그것이자신안에서어떻게자라고어떤열매로현실을왜곡시킬지의심하지않는다.회의하지않는믿음의시기이다.그것이무엇이든받아들여야하는운명으로생각한다.아니생각하지않는다.그러나씨앗은필연적으로분별의씨앗이다.분화되고심화되어새로운정체성으로진화하며그결과새로운싸움을낳을수밖에없는것이다.이과정을알건모르건여자는모든것을품는다.이제불안은연기처럼자란다.
‘세월이흐르면/거기/화전민처럼떠도는우리를만날지몰라/……/이것이우리의운명이야/뱀이건네준사과를받아든날부터/뚜껑을열어버린판도라의상자를/다시닫을수는없는일이라고/돌아갈길은없는거라고/……(「꿈」에서)’

무언가다가오고있다는전조가가득차있다.그
리고혼몽의안개속에서어렴풋하게그너머를본다.
돌아오지못하는길을떠나는사람이있다.영혼의디
아스포라에오르는여자가있다.불안은반드시현실
로몸을바꾼다.여자는그실체를만난다.
기억해요?
미친년보랏빛치마,그눈빛
당신이날업고
섬돌아돌아둑길에서만난
초경의경련처럼번지는붉은하늘아래
자궁다드러낸채시들어가던
도라지꽃
출렁이며바다를물들이던
그보랏빛치마
-「섬돌아둑길」에서

어느둑길에서만난도라지는자궁까지다드러낸채시들어가고있다.당연히흐드러진치마는보랏빛이다.미친년이다.자신안에서눈을뜨고있는미친년이다.꽃은시들어가지만보랏빛치마에서눈뜨는어느정체가거기현현해있다.내안의떡잎이자라밖으로나오고있다.

6.

여자가울고있다.울음은회상이다.과거가남긴흉터에짠물을들이부어고통을불러내고그고통으로상처를생생하게살려내는일이다.아물지않을지언정구석구석갈라진상처를쓰다듬으며미치기라도할일이‘비쩍마른나귀한마리/젖은솜을싣고/검푸른안개사이/길을더듬는다/……/지금조용히아무도괴롭지않아/이곳은/비(「비오는집」에서)’

이런정적은울음의반대가아니라가장큰울음이다.
갚을힘이없어요
세상의친절이두려워요
저는당신의등을밀어드릴힘이없어요
그리말하려는내게
그마음다안다는눈빛으로
가만히내등을어루만지며
등에사마귀가큰걸보니제몸보다무거운
짐을지고걷는구먼.
-「마흔」에서

공중목욕탕을모두가감춰둔슬픔을까서겨루는조용한도박장이라치자.그래서몇은당당함으로포장하지만결국뒤집어야하는열패감으로벌겋게달아오르고웅크린몇은자신이밀어놓은슬픔의무게로노근한승리를누리는곳이다.이것이수증기를헤치며작은플라스틱의자위에알몸으로자리잡는이유이다.거기서여자는자신의억압을들킨다.아니내어놓는다.등에자리잡은커다란사마귀.이것은존재자체가가지는제한이라기보다는관계가만든억압이다.여자는이것을알고있기에상징아닌직유로말한다.날것의현실이기때문이다.
영웅이자신의등에새겨진낙인을결국마주하듯미친년은진정한자신을마주하면서사마귀를쓰다듬는순간조금씩변태한다.‘미친년/미치려거든곱게미쳐라//곱게미칠수없어가둬버린너/……/사랑해야만비로소꽃필수있거늘/미치는것이어찌고울까/고운것이어찌미칠까(「피어라꽃」에서)’

갑갑하지?
뛰쳐나오고싶은거알아
너원래푼수잖아
그래,푼수
자신을알아버린분수
비로소사랑하게된꽃말
-「푼꽃,분꽃」에서

이제몇걸음더나가는일은어렵지않다.‘히!하고/헤~하면/하루다간다//뭘그리이고지고살았을까(「근황」에서)’여자는아직도울고있지만울음은점점구성지게변한다.울음은리듬을가지고있다.격렬하게쏟아내는호흡을넘어서면꺼이꺼이썰물빠지기도하고마
지막울음딸꾹질까지고유한리듬들이서로얽히고설켜점점구성을만든다.이렇게구성진울음은노래가되고노래가되는순간울음은세상과강렬한대화로몸을바꾼다.노래가된울음,미친년의노래는이제일사천리로나간다.

7.

여기에서노래가되었다는말은단순히시라는장르자체가가지고있는음악성에기댄말이아니다.시인의몸에생래적으로배어있는깊은리듬자체로노래가된것이다.어떤시편을들추어도시인이자신의몸으로만든고유한리듬이읽는이를끌고다닌다.

나는말이지.달리는말이지달리다죽은말이지
나는말이지죽은말이지무덤속에서빛을본말이지
그러니까나는말이지죽었다산말이지영원히살말이지
그러니까말이지진짜말이지말다운말이지
힘차게뛰고춤추고노래하는말이지
-「말」에서

세상을흔들며광야를달리는말은,죽음에서부활해영원히사는말은신의속성을말한다.신이신으로서세상에드러나는방식은말이다.‘힘차게뛰고춤추’는정신에서나온살아있는말이야말로신이자,신의말이다.그래서고유한리듬으로울리는노래는신에대한찬송이기도하다.그러나이노골적리듬은이야기를추적하는일이불가능할지경까지이끈다.그저흥얼대며따라읽는자신을발견한순간시는리듬만으로의미를,아니고유한무의미를만들어내기시작한다.울렁거리며사라져가는의미의뒷자리에서무의미가만드는무미의맛을보고있는것이다.
반대로무의미에서시작해정갈한의미로진행하는역과정의시편들이있는가하면오롯한정황에서흔들리는정신으로이행하기도한다.그러나공통적인것은이런변이의과정을많은부분리듬이해내고있다는점이다.

가보지않아도안다는흰소리와
가봐도여전히모르는까만소리가지지배배떠들어
산새는배쫑배쫑풍광은비비디바비두부
벚꽃이버짐처럼번지고팝콘이관광버스를타고달리고있어
불라불라메치카불라버튼을누르면곧팝콘이터질거야
-「팝콘전주곡」에서

이쯤되면특별한정신상태에들어신과대화를나누는방언이다.이렇듯미친년을꾹누르고살던여자의울음이,구성진울음이노래가되었다.이노래가굽이쳐흘러가는곳은신화의세계이다.이곳에서노래는주문이된다.주문은마법이현실에모습을드러내는열쇠이다.주문은자신만의리듬으로현실에마법을구현하는것이다.이런주문은어떤가?

부디우리의무지를용서마소서당신이심은싹이초식동물로자라더니아가리를벌리고닥치는대로먹고있습니다당신의귀는당나귀귀입니까당신의입은조랑말의입입니까돌아올화살을모르는무지와만행이돌아올화살에대한염려와음울과한쌍을이루는저
녁입니다부디우리의죄를용서마소서
-「술래잡기」에서

이비틀리고당돌한주문은자신의죄를고백함으로신을초대하고그와의대화를빙자해과연신이,우리가무엇을했는지슬그머니추궁하고있다.신의이름으로행해진반생명적인패악을따지고있으며필연코돌아와대지를휩쓸검은파도를예언자의눈을빌려증언하고있다.우리의자백이흘러야할물꼬를트고있다.주문이작동하는신화의세계에들기는하였으나온전히세상에순응하는주문따위는기대하지말라는선포인것이다.
‘그래요.모두가양지만을사랑하겠다면/그래요.그건마녀의몫으로남겨두죠./쓰레기와똥물은혼자떠안고가도록.(「그림자의주문2」에서)’이렇게바르지않은것,어두운것,더러운것,순응하지않는것들모두를자처한다.기꺼이마녀가되어세상을할퀼작정이다.자신만의리듬으로완성한주문을외워온통뒤집힌마법을실현할각오다.

우울을잊고울렁울렁파도를타고저만치
꽃상여를타고망망대해바다에이르면좋겠어
가만히노래하고가뿐히순한마음으로떠날
수있으면좋겠어……태어나기도전죽은아
이를위해죽을쑨대요풀이말해요……태어
나지않은너의죽음을축하한단다아가야네
무덤가에미역을널어줄게미꾸라지들이헤엄
을치면상여가나갈거야……미끄러져갔던
아이들이피리를불어요필릴리필릴리무덤가
엔미역이널리고요밀물이밀려와요미꾸라지
들이미역을불리는중이에요……시름시름
앓다가바다로간아이들이한데모여피리를
불어요미끄러져갔던아이들이늙은가재의
뱃속에서피리를불어요필릴리피일릴리.
-「윤달의노래」에서

시인이풀어놓은것처럼윤달은‘공달’이고‘썩은달’이며‘송장을거꾸로세워도탈이없는달’이다.신이사람에대한감시를쉬는시간이기때문이다.그렇다면윤달에늙은부모의수의를짓는일은장수를기원하는일이아니라그반대이다.무엇을해도되는벌받지않는시간이다.억압의봉인이해제되는시간이기에미친년의시간이다.
신화의세계에서모두는수동적이다.선택지는벌을받거나용서를받는일뿐이다.신화가공동체의이야기라는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