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양장)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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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아이가 잠든 후 조심스럽게 타자를 치던 새벽,
나는 무엇이 그토록 간절했을까.
내 이름을 갖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랬다.”
나는 엄마로서도 작가로서도 자주 실패한 하루를 산다.
이런 문장을 읽고서 가슴이 무너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작가는 매일 이상한 전장에 서 있다. 가장 사랑하는 두 대상이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칼끝을 겨누는 것만 같다. 직업적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과, 아이에게 모든 애정을 쏟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이 무방비하게 맞부딪친다. 그 전투 공간에서 엄마-여성-작가는 자신의 실존이 점점 얇고 투명해지다가 결국 지워져 버리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한다. (정이현 소설가 추천사 중)

여섯명의 엄마인 작가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여성들이 있다.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여성들. 뜨거운 심장을 품에 안고 계속해서 글을 써온 여성들. 자신의 삶을 자신의 글로, 글을 곧 삶으로 만들어온 여성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까봐 전전긍긍하는 여성들. 여기 모인 여섯 명의 작가들은 엄마가 되는 일의 기쁨과 슬픔, 불안과 공포의 감정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엄마이면서 작가인,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모습을 모두 해내고 싶은 그녀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어느 한 모습에 전념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여성들의 격렬한 투쟁사이다.
저자

김미월,김이설,백은선,안미옥,이근화,조혜은

2004년『세계일보』로등단했다.소설집『서울동굴가이드』,『아무도펼쳐보지않는책』,『옛애인의선물바자회』,장편소설『여덟번째방』,『일주일의세계』,산문집『내가사랑한여자』등이있다.‘신동엽문학상’,‘젊은작가상’,‘오늘의젊은예술가상’,‘이해조소설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돌려받는사랑-백은선

3번은되지않기를-김미월

지나갈시간에대한기록-안미옥

글쓰는엄마-김이설

숨구멍-이근화

쓰지못한몸으로잠이들었다-조혜은

쓸수없는것을위하여-김나영

추천의글-정이현

출판사 서평

“천국을등에업고지옥불을건너는거야.”-나의작은천국인나의작은아이에게

‘어느날은손톱발톱이생기고,어느날은투명했던피부가차오르고,어느날은빛을감각하게되고,어느날엔발차기를할수있게’(안미옥,72쪽)된아이가마침내한사람으로태어나성장하는모습을지켜보노라면아이에대한무한한사랑이샘솟는다.그러나이사랑은자연스럽게만들어지고유지되는것이아니다.밥을굶어가며밥을먹이고,잠들지못한채재우고,이성으로해결할수없지만이성적으로대해야하는,양육이란극한일을해내기위해서는감히한사람을넘어서는사랑을해내야만하기때문이다.자신의아이들에게자신은절대적으로필요로하는존재니까,끝없이사랑해야만하는존재니까.

엄마들은자신에게서나온또다른가능성을최선의것으로만들려애쓴다.그럼으로써아이들은그녀들이엄마-되기의‘지옥불’속에서지켜낸‘천국’(백은선)이된다.그렇다고아이들이마냥품에안겨보호받기만하는것은아니다.그녀들이‘지옥불’을힘겹게견디는동안품안의‘천국’들은‘난데없이나타나서느닷없이입을맞추’(조혜은,147쪽)며사랑을고백한다.그러니까그녀들은엄마-되기를통해‘천국’의절대적인사랑의가호를받게되는것이다.때때로받게되는‘천국’의입맞춤으로그녀들은엄마-되기를버틴다.또한아이들에게밥을먹이고씻기고입히는일상은그녀들에게‘오늘은껌에관한시를써볼까’(이근화,122쪽)처럼끝없는자극을준다.아이가있기전에는이해할수없었던일들이이해되기시작하고볼수없었던것들을보게된다.아이들은엄마들의영원한타인으로서끝없이이해할수없는행동들을하므로,엄마들의세계는자꾸만넓어질수밖에없다.좋든싫든.

“3번은되지않기를”-포기할수없는나의‘숨구멍’,글쓰기

여성의의사와는상관없이아이들이그녀들삶의외연을넓히듯,아이를양육하는동안여성은삶의주도권이아이에게로넘어간것같은느낌에사로잡힌다.엄마라는칭호를다는순간부터그녀들이쌓아온삶은모두아이들을위한것으로수렴되고만다.아무리20년동안글을써왔다고한들엄마로서읽히는순간,그일은‘엄마가소설가니까아이들국어공부는걱정이없겠어요’(김이설,95쪽)라는말처럼아이들을보조하기위한일이되고만다.엄마는엄마니까,엄마는아이들을키우는일에전념해야하니까.엄마면서엄마를벗어나나의일을잘하고싶은욕망은어쩐지죄책감이따른다.분명온종일아이들을위해나를썼는데도나를위해나를쓰려할때는‘몰래’빠져나오게된다.

그렇게하루의끝에겨우얻은시간,그녀들은글을쓴다.왜?그것이그녀들이‘좋아하는일’이니까.작품활동을아예접고육아에만전념하게된‘3번’(김미월)만은되지않기를간절히비는그녀들의글을향한사랑에,아이들은순진무구한표정으로말한다.“엄마,그냥안쓰면안돼?”(조혜은,165쪽)마치엄마의사랑을다른것과나눠가질수없다는듯,오롯이자신들만의것으로독점하고싶어한다.게다가글쓰기노동을통해버는충분하지않은수입으로는가정내에서경제적주체의자리를차지할수없다.엄마에게엄마이외의시간이필요하다는걸이해하지못하는가족들틈에서,불안한경제적입지는작가로서의그녀들의자리를흔든다.그러므로그녀들은싸울수밖에없다.부족한잠을쪼개고쪼개가면서고갈될정도로몸과자본을바쳐가면서그녀들은밤새글을쓴다.글쓰는사람으로서의자신을잃지않기위해,글쓰는자신을죽이지않기위해,그녀들은한글자한글자글쓰는자신을살릴‘숨구멍’(이근화)을뚫는다.

“실비아플라스를읽는엄마라니,”-너는네가되렴,나는내가될게

자녀가보는엄마,엄마가보는자녀의이야기가많이공유되었다.서로를대상으로바라보는이야기에서조금더나아가자면엄마가된자녀가비로소엄마의마음을이해했다는이야기정도가보태질것이다.그러나각자의자리에고정된목소리외에엄마가아닌나의마음은찾아보기어렵다.엄마가‘엄마’인동시에‘엄마’가아닌존재로서의욕망을가졌다는걸받아들이기어려웠기때문이다.엄마들로서도‘착한엄마’가아닌모습을내세웠다가는그동안열심히아이들을돌봐온‘엄마’로서의삶을,베풀어왔던사랑을부정당할수도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끝끝내쓰기를포기할수없는여성들이있다.쓰지않고서는견딜수없는,뜨거운심장을가진여성들.뜨거운심장을품에안고계속해서글을써온여성들.자신의삶을자신의글로,글을곧삶으로만들어온여성들.“쓰지못한몸으로잠이들”(조혜은,153쪽)까봐전전긍긍하는여성들.여기모인여섯명의작가들은엄마가되는일의기쁨과슬픔,불안과공포의감정들을솔직하게털어놓는다.엄마이면서작가인,양립할수없어보이는두모습을모두해내고싶은그녀들의솔직한이야기는어느한모습에전념하라고강요하는사회속에서자신을잃고싶지않은여성들의격렬한투쟁사이다.

아무리그래도우리엄마가실비아플라스를읽다니!하지만세상에는실비아플라스를읽어야만하는엄마가있다.그런엄마들은동그래진눈동자를한자녀에게다정하게,그러나단호하게말한다.“너는네가되렴.나는내가될게.”(김이설,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