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보다 오래된 :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이름보다 오래된 :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

$29.00
Description
고라니는 한국에서 흔하디흔한 야생동물이다. 우리 사회에서 고라니의 죽음은 익숙하다. 가장 자주 로드킬 사고를 당하는 동물이며 농촌에 해를 끼치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 현상금 3만 원에 포획된다. 매년 인간에 의해 죽는 고라니는 약 25만 마리로 추정된다. 한반도에 사는 고라니 수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문선희 사진작가는 어느 날 고라니와 마주친 강렬한 경험 이후, 그 얼굴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고라니들이 고속도로와 농작지에 출몰하는 것은 원래의 서식지를 인간에게 침범당했기 때문임을 알았고, 생태적 고려 없는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에 의문을 품었다. 어느새 고라니 현상금 지출액이 고라니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보다 커졌지만, 정책은 복잡하게 얽힌 농촌 경제와 생태 문제를 아우르지 못하며 사회는 고라니의 죽음에 관심이 없다. 이런 속도로 고라니가 사라진다면, 한순간 절멸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으로 작가는 카메라를 들었다. 전 세계적으로 고라니는 멸종위기종이다.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은 작가가 10년간 찍은 고라니 얼굴 50여 점과 그 긴 여정의 기록이다. 고라니가 작가와 눈을 맞출 때까지 오래 기다려 찍은 얼굴들에는 단 하나뿐인 생명이 담겨 있다. 우리 사회가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얼굴들이 생태계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는다.

구제역·조류 독감 매몰지를 기록한 《묻다》,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모은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등 전작을 통해 생태 문제와 역사적 비극을 직시해온 문선희 작가의 신작으로, 2023년 제13회 일우사진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 작가 정혜윤과 장혜령, 생태학자 김산하가 이 작업의 의미를 해설하고 지지하는 글을 함께 실었다.

저자

문선희

현대사회와역사의모순을직시하는사진작가.2015년에발굴금지기간이해제된구제역·조류독감매몰지100여곳을기록한연작《묻다》로주목받기시작했다.(2019년책출간)2016년에는5·18광주민주화운동당시자신의언니처럼초등학생이었던광주시민80여명의기억에관한인터뷰를바탕으로설치작업《묻고,묻지못한이야기》를발표했다.(2016년책출간)2019년에는지난15년간고공농성...

목차


인트로_구조요청

어린고라니의초상

마주치다
마음의잔상
야생의삶
봄의탄생
너의이름들
경계의전쟁
사라지는숫자들
자연의균형추
고라니에게인간은

마주하다
초대받지않은손님
틈새의삶
여름의어린생명
연결된시간들
비무장지대에서
드러나는얼굴들
생사의교차점
안녕을위한의식

어른고라니의초상

추천의글
끝내사랑하는꿈,눈이찾는빛_정혜윤
도착할수없는편지는사라지는가?_장혜령
세계와연결되는가장인간적인길_김산하

아우트로_생명의편에서

출판사 서평

★“도대체얼마나더많은고라니가죽어야하는것일까?야생동물을멸종위기에처하게하는것도,그로부터지키는것도사람이다.우리는공존을포기해서는안된다.”-본문중

★인간이자초한생태문제를직시해온『묻다』문선희작가10년의역작

★유해야생동물과멸종위기종사이,사라지고있는고라니의얼굴들

“어쩌면그것은구조요청이었을까?”

어느이른아침,차앞에고라니한마리가뛰어들었다.멈춘차창너머에서간절한눈빛을보내며망설이듯돌아보던고라니는들개에게쫓겨홀연히사라졌다.잠깐이었지만강렬했던이순간은문선희사진작가가고라니를촬영한계기가됐다.노루였어,고라니였어?누군가의질문에문득,이름만알았지이동물들에대해아무것도모른다는사실을깨달았기때문이다.

『이름보다오래된:문명과야생의경계에서기록한고라니의초상』은고라니의현실을마주한긴여정이다.한국에서흔하디흔한야생동물인고라니는빈번히로드킬사고를당하며농촌에해를끼치는‘유해야생동물’로지정되어포획된다.하지만막상살아있는그들을만나기는쉽지않다.서식지의상당부분이난개발로침범당했기때문이다.고라니를찾아첩첩산중까지다니는것만으로도작가는야생의삶이얼마나인간의등쌀에시달리고있는지체험했고,생태적고려없는개체수조절정책의부조리에의문을품기시작했다.고라니는전세계적으로는멸종위기종으로,한반도에서사라지면절멸은시간문제다.

이책에는문선희작가가10년간만난고라니200여마리중50여마리의얼굴이실려있다.작가는인간이고라니를향해폭력을가하지않는유일한장소인야생동물구조센터와국립생태원등‘비무장지대’에서비로소이들과마주할수있었다.고라니스스로작가의눈을들여다볼때까지몸을낮춘채하염없이기다려찍었다.생명체의고유성과다양성을드러내는단하나뿐인얼굴들이다.이얼굴들을보고도,이들이쓸모없는존재라고쉽게말할수있을까.작가는우리사회가한번도들여다보지않았던얼굴들을드러냄으로써,생태계에서의인간의역할을다시묻고자한다.

구제역·조류독감매몰지를기록한『묻다』,5.18민주화운동에관한광주시민들의기억을바탕으로한『묻고,묻지못한이야기』등의전작을통해생태문제와역사적비극을직시해온문선희작가의신작으로,2023년제13회일우사진상다큐멘터리부문수상작이기도하다.작가정혜윤과장혜령,생태학자김산하가이작업을해설하고지지하는글을실었다.

★“인간과어떤종이경쟁관계에놓여있다고해서그들을유해하다고한다면그목록엔세상모든종이포함될것이다.유해하다고하는그들의얼굴을바라보라.”-김산하,생태학자?생명다양성재단사무국장

★문명과야생의경계에서치러지는전쟁의의미를다시묻는질문들

매년유해야생동물구제사업으로목숨을잃는고라니는약18만마리다.로드킬당하는수는약6만마리다.환경부의〈야생동물실태조사〉에따르면한국에는약45만마리의고라니가사는데,이중절반이상이매년인간에의해목숨을잃는셈이다.

이와중에고라니가멸종위기에처했다는사실은간과되곤한다.고라니는한반도와중국에만사는토착종인데,북한과중국일부에서도개체수가크게줄었다.전세계적으로남은개체수가사자·하마·치타·코알라와비슷한수준이다.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멸종위기정도에따라지정하는적색목록에‘취약’수준으로등재되어있다.

작가가고라니의현실을들여다보면볼수록해소되지않는의문들이웅성거렸다.고라니의생살여탈권을쥔지자체는농민의항의를두려워했지만,생태학자들의경고는무시했다.사냥허용범위를넓혔고고라니한마리당3만원의현상금을내걸었다.매년포획되는고라니가늘어나서2015년부터는현상금총지급액이고라니로인한농작물피해액보다많아졌다.이제고라니들은각자1만5천원어치농작물을먹은혐의(2018년기준)로,3분에한마리씩총에맞는다.이런부조리를어떻게이해해야할까.

작가는생명의편에서묻기시작했다.인간에게과연야생동물의숫자를적절히조절할능력과지혜가있는걸까.태곳적부터살아온영역을침범당하고도오히려불청객으로내몰린고라니의관점에서보면인간이란무엇일까.방향을잃고살생만남은문명과야생사이전쟁터가작가의눈앞에펼쳐져있었다.이절박함이사라지고있는고라니를기록하는작업으로이어졌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만난몇몇아기고라니들덕분에작가는“마치베일이벗겨진듯”고라니의얼굴에눈을뜨게되었다.넉살좋은‘초코’를다른고라니들과구분하게되면서그얼굴들이다다르고,단하나뿐임을깨달았다.

고라니초상사진작업은생명을기록하는일인동시에사진작가로서의철학적질문들을풀어가는일이기도했다.본다는것과안다는것이무엇일까,사진은언어를초월한마주함을담아낼수있을까.이를위해작가는고라니가직접초대하는사진을찍고자했다.고라니스스로마음을열때까지기다렸다.어린고라니들의눈높이에맞춰똥이뒹구는땅바닥에납작엎드린채기어다녔다.살인진드기를막으려면무더위에도두터운방진복을입어야했다.고라니를놀랠수있는플래시는시도조차하지않았고,최소한의장비만을사용했다.

국립생태원에서는강한야생성과단단한송곳니를지닌수컷고라니들과대치하기도하며,작가는인간의언어와앎을내려놓고동등한생명체로서로를마주하는법을다시배웠다.작가가깨친요령은오직하나였다.주의를기울이며시간을함께보내는것.거리는느리게좁혀졌고변화는미묘했다.마침내고라니가자신의눈을지그시들여다보는순간,작가는조용히셔터를눌렀다.그순간하나하나가작은기적이었다.

★“생명의존엄성에관한이야기의‘시작’과도같은책.”-정혜윤,작가?CBS라디오피디

★생명의편에서윤리적책임을요청하는‘타자의얼굴’과사진의힘

이책에실린고라니의얼굴들이첫눈에는그저순수하거나평화로워보일지도모른다.하지만현실에눈을뜨면,더이상그런마음만으로는볼수없다.태어나자마자어미를잃고구조센터로왔던아기고라니들은젖만뗀후다시야생으로돌아간다.어미로부터생존법을배우지못한채,홀로살아남아한다.작가가기록한고라니들중과연몇마리나무사히어른이되었을지알수없다.심지어구조센터조차고라니구조와포획을동시에하는생사의교차점이다.지극히인간적인이해와방식으로생태문제를해결하려는딜레마가고라니를둘러싸고있다.그점을느끼는독자에게이얼굴들은레비나스가말한,윤리적책임을절실하게요청하는‘타자의얼굴’로다가올것이다.

고라니는,고라니도,언제든사라질수있다.야생동물의절멸은한순간급격히진행된다.한개체군의규모가일정수준이하로감소하고유전적다양성이떨어지면,전염병등단하나의부정적인요인만발생해도치명적인영향을받는다고전문가들은말한다.코로나19가인간을강타한것처럼,호주산불이코알라를위기에빠뜨린것처럼,고라니에게도언제어떤일이닥칠지모른다.한국에서고라니가절멸한다면지구상에서사라지는것도시간문제다.고라니를흔하고하찮은존재로대하는사회적시스템으로생태적위기를해결할수있을까.“생명이란인간의이해를넘어서는기적이기에이에대항해싸움을벌일때조차경외심을잃어서는안된다.”는레이첼카슨의말을빌려이책은거듭애틋하게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