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펭귄 (양장본 Hardcover)

하와이 펭귄 (양장본 Hardcover)

$16.85
Description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존재와 삶에 대한 성찰
김혜주의 첫 소설집 『하와이 펭귄』
김혜주 소설 『하와이 펭귄』은 정글 같은 일상과 천민자본주의의 차가운 얼굴을 예리한 상징과 알레고리로 형상화하고 있다. ‘고향’과 ‘현실’을 오르내리는 여로형 서사 형식으로 ‘홀로 살아 있는 인간’을 형상화한다. 〈하와이 펭귄〉의 ‘형수’는 돈이 없어 어린 자식의 주검을 병원에 버려둔 채 도망쳐 평생 홀로 세상을 떠돈다. 〈케이지〉의 ‘미등록 외국인들’도 정글 같은 타향 어디에서도 기댈 자리를 찾지 못하고 쫓겨 다닌다. 〈제자리 뛰기〉의 ‘소녀’는 새 아빠와 엄마로부터 방치돼 어른들의 자본주의 지평을 헤매고 있다. 〈제일상가 사람들〉의 ‘제일상가’는 쓸쓸히 홀로 죽음을 기다린다. 〈먼지 폭풍〉의 ‘모녀’ 혹은 ‘부부’는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하루살이 중이다. 이처럼 현실은 ‘고아’나 ‘단독자’의 인간 형상을 제시한다.

고향은 ‘가족주의의 해체’가 시작된 곳이다. 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이 숨 쉬는 장소로서 현재 작중 인물이 처해 있는 현실의 빅뱅 영역이다. 〈해마가 사막은 건너려면〉의 ‘장경수’는 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의 고향 마을을 찾는다. 그에게 고향은 사람과 전통적 가치를 상품화하고 돈 때문에 아귀다툼을 벌이는 천민자본주의의 얼굴로 다가온다. 정신적 고향과 떠도는 자아의 상징은 〈명파리 가는 길〉의 ‘명파리’와 ‘택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작가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인생을 영동고속도로 위로 펼쳐지는 여로의 서사에 살며시 포갠다. 폭설 앞에서 헤매는 세 사람 앞에 명파리는 공통의 시원으로 다가온다. 왕소금의 고향 명파리는 서서히 노랑머리와 화자의 정신적 고향으로 확장된다.

이 소설은 이 시대 삶의 그늘을 투영하는 그림과도 같다.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뒤에 누리는 번영의 그늘, 칙칙한 뒷골목 사람들의 슬픈 삶을 리얼리티 강한 문체로 형상화하고 있다. 공간과 제재와 등장인물은 다양하나 주제는 결국 하나로 상통한다. 외화(外華)로 가득한 대도시의 삶에서 도태되어 가는 주변인들에 대한 연민을 담아냈다. 전편을 통해 흐르는 그런 작가정신은 독자에게 위안과도 같은 감동을 안겨 준다.

대도시 삶에서 도태되고 밀려나는 사람들을 작중 화자로 삼고 있다. 하나 같이 고향이나 가족을 떠나온 작중 인물들은 온갖 무법과 무질서, 폭력, 불신, 고독, 배신 등에 떠밀린 세상의 파편으로 본연의 날개를 깁고 비상을 꿈꾼다. 작가는 그 날개의 완성 직전 타이밍을 통해 정신적 고향을 찾는 긴 여로의 도중을 드넓게 펼치고 있다.
저자

김혜주

저자:김혜주
동국대예술대학원졸업.2007년《매일신문》ㆍ《경남신문》신춘문예수필부문으로당선되었다.
2022년계간《문학과의식》소설부문신인상으로등단했다.

목차

-케이지
-제자리뛰기
-하와이펭귄
-해마가사막을건너려면
-제일상가사람들
-먼지폭풍
-명파리가는길

-해설
-작가의말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사내의재촉에형수는축축하고묵직한저항이느껴져비닐봉지를잡았다얼른내려놓았다.마치못볼것을본사람처럼얼굴을옆으로돌린채폐기물들을수레에옮겼다.형수의가슴에고인울음이바닥으로가라앉았다.시간이흐를수록그의표정은새파랗게질려있었다.허벅지는바위처럼굳어지고손목이부러질것같은통증이팔전체에느껴졌다.형수는무릎을꿇고손을뻗었다.길쭉하게생긴검정비닐봉지하나가눈에들어왔다.‘앙고라토끼(암컷)’라고연습장을찢어쓴이름표가붙어있는봉지였다.겨울이라그나마덜부패하긴했으나냄새가코를찌른다.비닐테이프로아무렇게나묶은검은덩어리가돌처럼굳어있다.동물원에서는검은비닐봉지에담길수밖에없는그것들의운명에대해함구한다.바닥에붉은핏물자국이묻어있고야생동물의발톱몇개가비닐봉지를뚫고삐죽나와있다.
‘조금만참으면돼.’
형수는속으로그말을삼키며이빨을깨물었다.겨우남아있는어금니도빠질듯흔들거렸다.바위처럼단단한검은물체에싸늘한칼바람이할퀴듯파고들었다.형수는머리위로자루를들고수레를향해힘껏던졌다.공중에서자루가꿈틀하다가바닥으로다시떨어졌다.동물원직원의거친욕설이형수에게쏟아졌다.길거나,짧거나,무겁거나,가볍거나헤아릴수없는생명들이미리파놓은구덩이근처로옮겨져산처럼쌓였다.언땅이라중장비가아니고는땅을파는것이불가능해보였다.흙벽에굴삭기의깊은자국이선명했다.깊고넓게파놓은구덩이를바라보며형수는생각에잠겼다.

-하와이펭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