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의 현장 :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 - 우리의 자리

박정환의 현장 : 다시, 주사위를 던지며 - 우리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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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고시원 총무 ‘박총’은 어쩌다 기자가 되었는가, 기자 생활 10년간 무엇을 썼고 무엇을 느꼈는가, 또 문제는 무엇이며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필요하다면 위장도 하고 잠입도 한다. 박정환 기자는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정면 돌파한다. 그의 맘이 늘 기우는 곳은 현장이며, 그의 몸이 이미 가 있는 곳도 현장이다. 대상에 육박하여 망설임 없이 부딪치는 몸이 그의 글에는 있다. 세월호, 유병언, 탄핵 정국 등등 박 기자가 전하는 생생하고 절절한 현장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자리〉를 시작한다.”

〈우리의 자리〉는 언론·출판인 에세이 시리즈이다. 언제부턴가 ‘기레기’라는 오명이 자연스러워진 언론인들, 늘 불황이라면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여 걷고 있는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욕먹어 싸더라도 그들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니까. 구조적인 문제로만 탓을 돌리기엔 개개인이 지금도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언제까지고 이들을 비난하고 조롱해 봤자 나아지는 것은 없다. 그럴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빠르게 망가질 것이다. 소명할 건 소명하고 반성할 건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럼에도, 이제는 다 함께 나아가야 한다. 우선 세 기자의 책을 동시에 펴내며, 이후에는 언론인과 출판인을 망라하여 시리즈를 이어 갈 생각이다. 이 시리즈가 우리 사회의 저널리즘과 출판정신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 보겠다.
저자

박정환

저자:박정환
‘박기자’라는호칭으로불린지벌써10년째다.주간지『일요신문』에서기자생활을시작했고,통신사『뉴스1』으로자리를옮겼다가방송사CBS에정착했다.가끔세상을뒤흔들만한특종을꿈꾸지만,현실은매번발제와마감에허덕이는평범한기자다.예상치못한일이터지면심각한표정을짓기보다유머코드부터찾는낙천주의자다.화려한실력보단소박한꾸준함이좋고,직업생활역시그렇게이어나가는편이다.

목차


프롤로그|‘박총’은어쩌다기자가되었는가
1장|나는무엇을어떻게썼는가
2장|무엇이문제일수있는가
3장|미래의저널리스트에게
에필로그|다시,주사위를던지며
집자코멘터리|우리가흐르던자리에서

출판사 서평

그리고,〈우리의자리〉를시작한다.‘그래서’(로)시작할수도있고,‘그럼에도’(로)시작할수도있겠지만,‘그리고’(로)시작하고싶다.희망을찾아서시작하는것도아니고,절망을극복하기위해시작하는것도아니기때문이다.그저그냥,일단시작해보고싶기때문이다.

〈우리의자리〉는언론·출판인에세이시리즈이다.언제부턴가‘기레기’라는오명이자연스러워진언론인들,늘불황이라면서도스스로그길을선택하여걷고있는출판인들의이야기를듣고싶었다.욕먹어싸더라도그들의역할은여전히중요하니까.구조적인문제로만탓을돌리기엔개개인이지금도고군분투하고있으니까.언제까지고이들을비난하고조롱해봤자나아지는것은없다.그럴수록우리가사는세상은더욱빠르게망가질것이다.소명할건소명하고반성할건반성해야한다.그리고,그래서,그럼에도,이제는다함께나아가야한다.우선세기자의책을동시에펴내며,이후에는언론인과출판인을망라하여시리즈를이어갈생각이다.이시리즈가우리사회의저널리즘과출판정신에어떻게기여할수있을지계속고민해보겠다.

그런데왜,에세이인가.안그래도하고많은게에세이인데.짧게답하자면에세이야말로우리가가장잘흐를수있는자리라고보았다.사적일수도있고,공적일수도있고,가벼울수도있고,무거울수도있고(특정할수없는내용).때론시보다아름답고,때론강령보다강렬하며,때론매뉴얼보다상세하기를(특정할수없는형식).우리가있는자리는어디인가,어디여야하는가,또어디일수있는가.이걸함께고민할수있는자리가에세이말고는떠오르지가않았다.

시리즈의첫발을박정환·손정빈·고기자세명과함께뗄수있어서기쁘다.이들에게는풍부한경험과깊은사유가있고,무엇보다미래가있다.특히,박정환기자는좌고우면하지않으며정면돌파한다.그의맘이늘기우는곳은현장이며,그의몸이이미가있는곳도현장일것이다.대상에육박하여망설임없이부딪치는몸이그의글에는있다.필요하다면위장도하고잠입도한다.세월호,유병언,탄핵정국등등박기자가전하는생생하고절절한현장이야기를독자들은이책에서읽을수있다.

책속에서

팽목항의낮과밤은좌절로가득했다.그나마전국에서온자원봉사자들의손길로고단한하루하루를이겨내고있었다.수천여명의자원봉사자들은식사와간식을,의료품을,생필품을전달했고한국전력공사에서는전기를지원했다.기자들은읍내로나가찜질방,모텔등에서기거하며교대로취재를이어갔다.하지만기자들은이곳에서최악의‘불청객’이었다.신분을드러내는것도상당한위험을감수해야했다.현장에서친한기자선배이자형을만나“어,오셨네요?”라고손을흔들었다.선배는손짓으로‘쉿’포즈를하며한쪽구석으로급하게나를끌었다.“여기서서로알은척하면안돼.특히,웃지마.정말일난다.”
오보가연발될수록,자극적보도가나올수록,현장기자를향한분노는더욱거세졌다.한언론은‘선내엉켜있는시신다수확인’이라는제목을달아기사를냈다.“친구가사망했다는걸아느냐”고생방송에서물은앵커도있었다.기자를향해생수병이날아왔다.양복을입고있거나수첩만들고있어도멱살을잡혔다.사고초반‘전원구조’라는대형오보를본세월호가족들은‘언론은구조에방해만된다’며마음을굳게닫았다.기자들은어떻게든취재를진행하기위해몸부림쳤다.옆에서가족들이하는말을엿듣거나,어느한기자가가족인터뷰를시도해조금이라도진행이되면한명,두명씩멘트를따기위해몰려들었다.기자인내가봐도그모습이마치‘하이에나’같았다.하지만어쩔수없었다.어떻게든상황을전파하는게기자다.그러나그만큼회의감도들었다.그회의감과슬픔을이기지못해세월호참사이후기자를그만둔이들도있었다.
기자2년차에맞은세월호참사는‘기자란무엇일까’,‘기자일을어떻게해야하는가’하는고민들을강하게심어줬다.사건의트라우마는상당기간지속됐다.한동안은잠을자면그때의절규가생생히들려왔다.
-“세월호,휘몰아치는정국한복판에서”중에서

『뉴스1』으로이직했을때가2016년6월이다.사건팀배정을받고그해10월박근혜정부‘국정농단’사태가터졌다.이번에도현장은사건팀의몫이었다.10월29일‘박근혜대통령은하야하라’며첫촛불집회가열렸다.주최측추산3만여명의인원이모였다.크고작은집회를취재해봤지만규모와분노면에서심상치않은느낌이들었다.정말시작에불과했다.2차촛불집회는주최측추산20만여명,3차는100만여명을돌파했다.경찰추산과는차이가있었지만12월3일6차에이른촛불집회는주최측추산170만여명(경찰추산약43만명)으로정부수립이래사상최대규모라는점이공식인정됐다.
코로나19가없었던시절,촛불집회는정말폭발적이었다.시민들을인터뷰하며때론뭉클했고,때론분노에공감했다.수능이끝난수험생들도광장으로나왔다.남녀노소누구나예외가없었다.분노는때론축제로승화됐다.아무리기사를써도그에너지를담아내긴역부족이었다.광화문광장바닥에앉아기사를송고하고때론경찰병력에갇혔다가겨우빠져나가는일도비일비재했다.혹한기에손이얼어붙어키보드를제대로치기어려울정도였다.12월,헌법재판소심판직전에는탄핵에반대하는‘태극기집회’도달아올랐다.양진영을오고가는기자입장에선하루하루가살얼음판이었다.특정언론사기자라면폭행하거나욕설하는경우도있었다.누군가는붙잡혀옷이찢어지고상처도났다.
“와아,탄핵이다.”,“이럴줄알았어.모두박수.”
2017년3월10일11시21분.헌법재판소가박근혜대통령탄핵인용선고를내린날,서울역대합실에자리했다.텔레비전에눈과귀를집중하던시민들은일제히환호하며박수를쳤다.현장은축제분위기에접어들었다.전국곳곳누군가는환호하고,누군가는묵묵히바라보고,누군가는분노했다.나는그저마음의큰짐하나가덜어지는기분이었다.이젠주말집회취재도끝이라는얄팍한홀가분함과함께.
-“헌정사상초유의사건을거치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