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듬지

우듬지

$17.00
Description
삶이 떠안아 온 고통을 기리는 당신만의 방식이 있는지.
손상과 회복을 넘나들며 기어코 성장하고 마는 우리의 정신은 우듬지를 닮아있다.
아득히 솟은 오늘만큼 깊어진, 어제의 골로 들어선다.
가장 사적인 주석을 상처에 내걺으로써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의 데뷔곡 ‘Fearless’ 속 일부 구절이 인상 깊다. “내 흉짐도 나의 일부”라는 노랫말엔 약점이자 상처인 자신의 부분을 수용하고 그럼으로써 나아가겠노라는 당찬 포부가 배어있다. 1인 출판사 아키텍스처의 대표이자 작가인 김현중이 첫 에세이 『우듬지』로 풀어 쓰고자 한 메시지는 위 가사에 담긴 욕망과 유사하다. 뒤안길로 사라져 간 과거의 상처들을 더듬어 보며 오늘에 미친 영향을 살피는 것. 이 작업을 작가는 ‘상처에 가장 사적인 주석을 내거는 행위’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되돌아본 상처들의 집합이 밀어 올린 존재가 현재의 자신이라는 점을 인식하니, 나무의 꼭대기 줄기를 뜻하는 ‘우듬지’라는 단어를 작품의 제목으로 삼는 결정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게 작가의 고백이다.
작가에게 상처란 당장 몸에 남아 있는 흉에 그치지 않는다. 육체 위로 그 흔적이 사라졌다 한들 잔존하는 기억이라면 여전한 상처다. 마음에 은유적인 생채기를 남긴 지난날의 사건과 감정 따위도 여전한 상처다.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고통 외에도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 그칠 따름인 순간 역시 여전한 상처다. 그렇게 『우듬지』를 이루는 30편의 단상은, 도저히 보편의 상처라 부를 수 없을 법한 일화까지 망라하며,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나날을 기록한다.
한편 개별 산문이 시작하는 페이지마다 삽입된 일러스트들도 작가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작가는 읽는 재미를 배가하고 글에 대한 깊은 이입을 북돋우기 위해, 각 산문의 마침표에 포개진 머릿속 이미지를 그림의 형태로 가공했다. 작가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지만 『우듬지』는 시간순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어떠한 질서를 갖춘 서사의 흐름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작가는, 마치 룰렛이나 뽑기처럼 한 편 한 편의 글을 취사선택해 읽기를 장려한다. 이런 의도는 작품의 날개 부분에서도 드러나는데, 뒷날개에 그려진 인체도를 둘러싼 숫자들이 저마다 지시하는 대상이 있으니 바로 부위별 글의 페이지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장치들까지 활용한다면 독자들은 작가와는 다른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사유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자신의 본바탕을 일군 상처들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김현중

출판사아키텍스처대표이다.

목차

프롤로그:
온몸으로부친서문

1장무지개를예보하는기상청은없다

1.양파한꺼풀의사랑
2.우연을읽는오늘
3.이따금스위치를내린모형이되고싶어
4.도량형세계가붕괴하기까지는불과2초
5.단장의슬픔으로당신을끊어내어단장해야했던날
6.빨가면사과,사과는사랑하는마음
7.좌석이뒤일뿐이지,서열이뒤인건아니니까
8.당신이밟고선맨땅이라는이름의천장으로,점프
9.언어로인간을사랑하는법,편지에대하여
10.구르거나튕겨이끼가앉지않는다한들상처마저없으랴

2장장렬히실패하는삶

1.올드패션드하트
2.최초의블랙아웃
3.가장인간적이며가장애틋한알고리즘,손금
4.케케묵은면도날은쓰레기통으로
5.여전한신화의탯줄,우리는시시포스로산다
6.어느잔해가빗장을벗긴건
7.동공에드리우는저편의불안
8.인간에대한내성이란어떻게키우는건가요
9.모래시계앞에서
10.그릇을부시며

3장제엄니에꿰뚫리는운명앞에서,나는바비루사처럼

1.생의재난앞에서쇼맨십이웬말입니까
2.콤플렉스로쌓아올린굴뚝에체온계를물리고
3.해진뒤축에영광을돌리는플라뇌르의마음으로
4.비극의비거리를늘리고싶다니오타니쇼헤이의어깨정도라면어떨까
5.변기를붙잡은채창공을경외한어느해양생물에대하여
6.고여흘러내것이자,본류를잊어내것이아니었던눈물
7.우화를시니컬하게옮겨보는것
8.우리의봄은더이상친절하지않으므로
9.만사제로백
10.가끔은배를한대얻어맞아기우는몸의각도로

출판사 서평

표지가어쩐지휑한느낌이다.표지를채우는색상의조합조차단순하니에세이라기에는무심하면서도경건해보이기까지하는이미지가제법독특하다.그흔한부제조차적혀있지않다.저자는책의부제를오랜시간고심했다는데‘자기에게몰입하는렌즈를돋구는법’이라든지‘상처에내거는가장사적인주석’과같은여럿의문구를나열하며가장적절한문장을찾기위해분투했다고.결국저자가내린결정은부제의소거였다.『우듬지』라는제목과황량한표지에서풍기는을씨년스러움,긴호흡의줄글,공중에떠있는듯한정서적위상의그림에서독자스스로자신만의부제를길어올릴수있을거라는여전한도피적고백과함께.

저자의목적은자기고백이다.도피하고,모면하고,회피하려는성향이더이상책임을덜고안위를보장하는수단이될수없음을문득깨닫고는자기를돌아볼필요를느낀것이다.그렇다고뜯겨나가고버려지고훼손된모든과거의달력을한장한장거두기란불가능하니,생애구간마다의바로미터로서또는거울로서최선의지표로삼은게다름아닌‘상처’다.저자의사고에서상처는그외연을넓히니눈에보이는흉과상흔외에도비가시영역의고통과아픔과같은감각작용은물론이거니와슬픔과고독,외로움등의감정까지도망라한다.그렇게총서른편의산문은오늘의저자를조립해온다양한상처와그상처의배경이된어느시공간들을술회한다.지난십여년동안저자가써온글중에서선별을거쳐수록된작품인만큼문장하나하나의깊이가상당하며어느대목에선붙박인듯시선을고정하게된다.

부위마다의상처를고백한각글도글이지만,그러한상처를총체적으로인식하고세가지의미로풀이한서문의표현이인상깊다.한바탕몸과마음일부의훼손과상실이일어난후에남은상처가소나기가쏟아진뒤등장하는무지개와같으나,예보의대상이되지않는무지개처럼우리도드러나기전까지는일찍이상처에감응하기어렵다는것.상처란몸과마음의안전을지키지못한실패와다름없으나,그런실패마저도축적된역사로서자신을형성하기에마땅히자신의부분으로환원해야한다는것.그런환원의과정에서상처를곧이곧대로받아들이는행위는그릇된방향으로자라기어코자기를해치고야마는바비루사의뿔과같으니,높이솟는우듬지를지향하기위해선새로운사유를바탕으로한해석이전제되어야한다는것.이런세갈래의풀이조차길잡이로서만받아들이기를독자들에게바라는,저자의굳세지못한당부엔오히려저자의관점으로완독하고야말겠다는오기마저든다.

한편저자의예술적인감각이글에만한정되어있지않음이놀랍다.개별산문과함께삽입된일러스트들역시저자의작품이라는데,저자에따르면그림들은퇴고를마친글들을다시읽어보며품게된심상을구체화한결과물이라고.하나의형식에만매몰되어있지않은예술성이무대위에선다.저자의말마따나이책이공동체를고칠연고도,곁에머문작은손하나보듬어줄반창고도되지못한다한들어떠랴.독자가겪어온상처의내력을살피는데일조한다면『우듬지』는그야말로자가치유를위한회복력,그자체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