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의 사람 :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

문밖의 사람 : 어느 소설가의 택배일지

$17.00
Description
“택배합니다. 소설도 씁니다.”

낮에는 택배기사로, 저녁에는 소설가로, 두 개의 인생을 살아가는
『침입자들』 정혁용 작가가 기록한 일상에 바람 부는 순간들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일이 잘 안 풀려서, 나이는 먹어 가는데 변변한 집 한 채 마련해둔 게 없어서. 느는 건 불평과 원망뿐이다. 아무래도 인생은 불공평하기만 하다. 마음속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가 쌓인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수억의 빚을 진 정혁용 작가가 마지막으로 택한 직업은 택배였다. 땡전 한 푼 없어 회사에서 가불을 받아 기름을 넣고, 겨우 끼니를 해결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깨달았다. 한겨울 추위보다 더한 건 마음에 부는 바람이란 걸. 남들처럼 돈과 명예를 좇느라 자신의 인생에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진짜 갖고 싶었던 건 아파트가 아니라 글 쓰는 삶이라는 걸 오십에 가까워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낮에는 택배를 배달하고, 저녁에는 꾸벅꾸벅 졸면서 휴대전화에 글을 썼다. 그렇게 2020년 첫 책 『침입자들』을 출간했다. 이듬해에는 두 번째 책 『파괴자들』도 출간했다. 하지만 택배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인세만으로 먹고살기엔 여전히 삶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작가는 이제 한겨울 아파트 화단의 경계석에 앉아 울지 않는다. 내 팔 내가 흔들어 먹고사는 노동자의 삶이, 밤마다 소주 한 잔을 곁에 두고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이 자신에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렇게 노동자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정혁용 작가가 기록한 바람 부는 일상의 순간들이다.

저자

정혁용

2009년계간[미스터리]겨울호,「죽는자를위한기도」로등단했다.[한겨레]HOOK에칼럼과장편,『신들은목마르다』를연재했다.어쩌다보니,2011년문학동네작가상최종심,2019년세계문학상최종심에올랐다.

목차

1부
살아내고있나요?살아가고있나요?
그나이에맞는지성을갖지못하면
하늘에서진상들이비처럼내려
소인배의길을걷겠다
그놈의피리소리
죽지않고눈뜰때①택배기사의하루

2부
남의돈으로예술하지않습니다
정서방,잘다녀와
뼈단지풍경
평소와다를바는없었다
제가더관심없어요
죽지않고눈뜰때②김상용씨의이야기

3부
누군가누군가에게는
라면먹고갈래요?
두려워서그래요
브런치라고?
이거휘발유아니에요?
죽지않고눈뜰때③안상길씨의이야기

4부
이바닥에는예술하는인간들만있어요
얼룩말그친구가성질은좀더럽지만
안데스산맥어디쯤
인생을날로먹고싶어요
과거의나는가장가까운타인
열정이있을뿐이야
죽지않고눈뜰때④김민호씨의이야기

에필로그

출판사 서평

“레이먼드챈들러는쉰한살에첫장편을냈지.
나도아직늦지않았어.”
건설업체사장,술집주인,그리고택배기사…삶의끝에서마주한소설가의마음

정혁용작가는제법큰장편소설공모전에두번도전했다가두번떨어졌다.그뒤다섯군데출판사에투고했다.나는그출판사다섯군데가운데한곳에서책을만드는편집자였다.아직도기억한다.정혁용작가가투고원고를보내면서적은단두줄의문장을.“첫줄,첫장을읽고재미없으면휴지통에버리셔도됩니다.출간관련이아니면회신은주지않으셔도되고요.”

기분이좀상했다.전형적인도발.이래도네가흥미를느끼지않을수있겠냐,하는.혀를내밀고있는얼굴도모르는작가의모습이머릿속에그려졌다.하지만다행히나는제법현명한편에속하는사람이라이런도발에넘어가지않는방법을잘알고있었다.첫장은커녕첫줄도읽지않고바로휴지통에넣는거다.물론답장은하지않는다.나는그날,새벽까지원고를다읽었다.

다음날,지리멸렬한회의몇개를간신히버티고,사장님과함께하는긴점심식사도마친다음작가에게전화를걸었다.신호가두어번가는가싶더니목소리칼칼한아저씨가성의없게전화를받았다.“예,택뱁니다.”주변소음이그대로들리는걸보니질나쁜블루투스이어폰을쓰는게분명했다.그잡다한소리들이전화를끊을때까지계속신경을건드렸지만,그보다도더성의없는작가의대답이자꾸고개를갸웃거리게만들었지만,그래도도중에끊지않고끝까지통화를나눴다.투고하신소설의출간에대해얘기를해보자고.지금까지책을만들면서가장잘했던일열개를꼽으라면그중여덟번째정도는되는일이었다.

택배가일찍끝나는월요일오후에신림에서만난작가는아내를대동하고왔다.경상도남자였다.말이길지않았는데,중간중간자꾸조크같은걸던져서더알아듣기힘들었다.자세를곧추세우고의자를가까이끌어당긴아내가웃으면서말을덧붙였다.작가도나도고개를끄덕였다.그는레이먼드챈들러를좋아한다고했다.언젠가인터넷에서본파이프를문레이먼드챈들러의얼굴을떠올렸다.눈앞에앉아있는작가와는,너무이질적이었다.그래도앙다문입술과흔들리지않는시선에서그가살아온세월을엿볼수있었다.그의과거에대해조금이나마듣게된건책을두권이나함께내고도1년이지난뒤였다.

“여러직업을거쳐좌절의끝에서어쩔수없이만난게택배였다.
육체노동은처음인데다강도도커서매일체력의한계치를넘나들었다.
간혹눈물이흘렀고열린창틈사이로바람이불었다.”
묵묵하게,건조하게,매일반복되는택배노동자의일상에대한가장인간적인기록

그의첫소설『침입자들』은비범한능력을전투능력을지녔으나,어떤상처에때문에과거를숨기고사는택배기사에대한내용이었다.독자들의평이나쁘지않았다.택배기사의일상에대한섬세한묘사가돋보인다고했다.택배기사가이렇게힘들게일하는지몰랐다며감사한마음을가져야겠다는독자도있었다.그럴수밖에.실제로택배기사가자기힘들게일한얘기를소설적으로풀어냈으니.

바닥까지간줄알았는데,더바닥이있더라는얘기를주식쟁이도아니고코인쟁이도아닌택배기사로부터들었다.그래도이제는인이박여서힘들지않게한다고했다.요령이생기니때로는정말쉽다고했다.거짓말같았다.전화를걸면항상숨을헐떡이고있었으니까.블루투스성능도안좋은데,숨까지헐떡이니제대로된통화를하기가힘들었다.통화를하는와중에도계속계단을오르내리고,누군가와얘기를하고,엘리베이터도타는바람에같은얘기를여러번해야했다.간혹짜증이났지만,사무실의자에편히앉아손가락만움직이는나로서는인내하는수밖에없었다(물론발밑으로는항상뱀이돌아다니고있었지만).지금까지책을만들면서가장잘했던일열개를꼽으라면그중일곱번째정도는되는일이었다.

문예계간지《에픽》에정혁용작가가실은택배기사의일상과어려움에대한원고「죽지않고눈뜰때」를약간매만져이책에부록으로실었다.함께일하는동료택배기사들을인터뷰한내용인데,먹고사는일앞에서인간이얼마나무력한지,또소설이현실의고단함을얼마나아름답게미화시키는지에대해생각해볼법하다.정혁용작가는지금도택배일을하고있다.

“올해저는쉰둘,다시뭔가를시작하기엔너무늦은나이일지도모릅니다.
하지만이렇게살기에는너무많이남은나이입니다.”
오늘도노동자로서,작가로서삶을지속하는정혁용작가가기록한웃픈택배일지

전업작가가되겠다고했다.뜯어말렸다.수많은작가를만났지만,진짜전업작가로사는이는드물었다.정혁용작가처럼육체노동까지는아니지만,어쨌든창작이아닌다른정신적일에많은에너지를쏟아야만그나마일반적인생활이가능한게작가의삶이었다.물론듣지않았다.

이해했다.그만큼소설에진심이었으니까.새벽까지택배를돌리면서도틈틈이휴대전화에글을쓰고,자는시간을쪼개원고를정리하는그열정을알고있었으니까.그리고진심으로응원했다.원고작성을마치는대로최대한빨리검토하고출간까지밀어붙이기로했다.그의앞길을응원하는마음으로종종안부를묻고,가끔소주잔도부딪혔다.그러던어느날,그가말했다.

“다시택배시작했습니다.”

먹고사는일에장사없다는게결론이었다.생각보다소설도잘쓰이지않았고.잘됐다싶었다.창작이라는게쥐어짠다고되는일이아니니까.그래서에세이를하나써보면어떻겠냐고제안했다.어떤인생의굴곡을거쳐택배기사가되었는지,택배를하면서어떤사람들을만나는지궁금했다.평소말이많지않은작가라귀로듣는것보다는차라리글로보는게낫겠지싶었다.지금까지책을만들면서가장잘했던일열개를꼽으라면그중여섯번째정도는되는일이었다.

그렇게이책이나왔다.거창한얘기는없다.극적인성공신화도없고,돈잘버는얘기도당연히없다.하루하루삿된꿈과희망을품었다가좌절하기를반복하는,그렇게낮에는노동자로택배를배달하고,밤에는작가로소설을한두편씩써내는소설가의이야기가있을뿐이다.오십이다넘어서야주어진삶이아니라선택하는삶을살게된한국의레이먼드챈들러를꿈꾸는아저씨의이야기가.굳이찾자면에필로그에적은작가의말처럼“다만‘이렇게살면안된다.’까지는아니겠지만‘내가이작자정도는아니잖아?’라는위로는있을지모르겠다.”정도일수는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