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메이지 인물 6인의 삶을 관통한 국가)

근대 일본인의 국가인식 (메이지 인물 6인의 삶을 관통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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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의 충성 대상은 다이묘, 쇼군에서 천황으로 바뀌었다. 충성심이 애국심으로 바뀌는 과정 속에서 근대 일본인들에게 국가란 어떤 것이었는지 읽어본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국가론은 독립된 주체인 개인이 모여 한 나라의 독립으로 이어진다는 발상에 기초한다. 관에 의존하지 않는 민의 존재를 강조했으나 그의 이상론은 국가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현실론에 종종 가려졌다.
오쿠마 시게노부나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같은 정치가·군인에게는 나라가 망할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었고 민권도 중요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들에게 국민은 국가가 이끌고 가야 할 대상이었고 국가는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다카무라 고운·우치무라 간조·쓰다 우메코 등의 문화인에게는 예술·종교·여성교육이라는 주요 과업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시대적 한계로 그들의 과업은 국가라는 대명분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본인들도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저자

박훈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메이지유신과 사대부적 정치문화』,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등을 집필했다.

목차

차 례 . . . . . . . . . . . . . . . . . . . . . . . . . . . 6

총론 : 일본 국가주의의 기원 . . . . . . (박훈) . . 9
‘국가’의식의 형성 . . . . . . . . . . . . . . . . . 9
도쿠가와 시대와 막말기의 ‘국가’ . . . . . . . . . 11
도쿠가와 시대 충성의 중층성 . . . . . . . . . . . 19
제1의 충성대상 : 주군과 오이에 . . . . . . . . . 23
천황으로의 충성의 전회 . . . . . . . . . . . . . . 28
메이지인들의 국가의식 : 본서의 구성 . . . . . . 32

제 1 장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국가 구상. . (이새봄) . . 41
1.1 문명론에 대한 두 가지 접근 . . . . . . . . 41
1.2 국민국가 형성의 전제 조건 . . . . . . . . . 43
1.3 ‘양학자’로서의 정체성과 현실: 막부말기에서 폐번치현까지 . . . 48
1.4 『학문의 권장』: 국민국가론의 시작 . . . . 54
1.5 『문명론의 개략』: 일본의 문명 이론 . . . . 62
1.6 『분권론』이후의 전략 . . . . . . . . . . . 77
1.7 『민정일신』: 1879년의 전환 . . . . . . . . 82
1.8 국회 개설을 앞두고 . . . . . . . . . . . . . 87

제 2 장 오쿠마 시게노부의 국가 인식 (조국) . . 97
2.1 유명하지만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정치가 97
2.2 막말-메이지 초기의 오쿠마 . . . . . . . . . 101
2.3 영국식 의원내각제의 구상과 좌절 . . . . . 111
2.4 여론과 세론의 구별 . . . . . . . . . . . . . 124
2.5 헌정 실시 이후의 오쿠마 시게노부 . . . . . 128
2.6 현실정치가로서의 미덕과 한계 . . . . . . . 142

제 3 장 야마가타 아리토모와 메이지 국가 건설. . . (박완) . . 147
3.1 ‘동지이자 라이벌’ 이토와 야마가타 . . . . . 147
3.2 어친병 편성과 중앙 집권화 추진 . . . . . . 152
3.3 징병령 제정과 국민 국가 건설 . . . . . . . 161
3.4 민권파에의 대항과 입헌제 구상 . . . . . . 173
3.5 국회 개설 대책으로서의 지방 자치 제도 설계 183
3.6 현실주의와 침략주의가 공존하는 외교 ·국방론 193
3.7 끝없는 ‘적’에 맞서서 . . . . . . . . . . . . 215

제 4 장 다카무라 고운과 국가 건설기 일본미술 . . (오윤정) . . 221
4.1 ‘국가를 위한 미술’과 직인의 에토스 . . . . 221
4.2 박람회와 수출공예품 . . . . . . . . . . . . 230
4.3 도쿄미술학교와 ‘일본미술’ . . . . . . . . . 241
4.4 «구스노키마사시게상»과 «사이고다카모리상» . . 256
4.5 메이지 일본의 ‘국가 미술가’ . . . . . . . . 272

제 5 장 우치무라 간조와 근대 일본 (박은영) . . 279
5.1 우치무라 간조라는 인물 . . . . . . . . . . . 279
5.2 사상형성의 계기들 . . . . . . . . . . . . . 285
5.3 일본국의 천직 . . . . . . . . . . . . . . . . 294
5.4 주전론과 비전론 . . . . . . . . . . . . . . . 301
5.5 허위의 애국과 진정한 애국 . . . . . . . . . 317
5.6 근대 일본의 내셔널리스트 . . . . . . . . . 330

제 6 장 쓰다 우메코와 일본의 사이 (이은경) . . 337
6.1 쓰다 우메코와 일본 . . . . . . . . . . . . . 337
6.2 최소한의 전기와 미 ·일 인식의 원점 . . . . 347
6.3 ‘가까운’ 일본: 황실・정부・애국심 . . . . . 354
6.4 ‘아쉬운’ 일본: 이교도・남녀차별・학교 교육 373
6.5 다시, 일본 . . . . . . . . . . . . . . . . . . 391

찾아보기 . . . . . . . . . . . . . . . . . . . . . . . . . 395

출판사 서평

개국 30년만에 어떻게 일본은 강국이 될 수 있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따라가다보면 메이지 시기의 인물들에게 관심가질 수 밖에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개화를 논하고 곧이어 메이지 유신 이후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에게 민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다. 민권과 국권이 충돌할 때 그는 서슴없이 국권의 손을 들기도 했다. 국권과 민권이 어떻게 밀고 당기며 국가를 만들어나가는가는 메이지 시기를 바라보는 핵심 관점이다.

이 점은 오쿠마 시게노부에 있어서도 비슷했는데 민권파의 리더격이었던 그는 의회정치의 지지자이자 선거건 확대를 위해 노력했지만, 정작 수상이 된 이후에는 대중의 인기를 노려 청일전쟁에서 강경노선을 취하는 등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자유민권운동 진영에도 권력지향형 정치가는 많았으며 메이지 정부의 번벌정치에 반발한 인물 상당수가 참여했다. 그 가운데서 오쿠마 역시 안으로는 입현주의, 밖으로는 제국주의라는 현실을 보여주는 정치가였다.

그 점에서 군인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경우는 직관적이었다. 충성의 대상을 명확히 하고 충성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야마가타의 최대 과업이라면 어떻게 번단위로 분산된 병력을 중앙군으로 일원화할 것인가였는데 그 과정에서 제도를 유연하게 활용했을 뿐 아니라 칙유 등을 통해 천황과 군인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주변국가의 세력관계에 대해 주의깊게 분석하는 신중한 타입이어서 군 현대화와 대외정책등에서도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군인의 본분에 충실한 나머지 정치가로서는 의회주의를 거부하고 민권파를 상대로 싸워왔다.

다카무라 고운은 본인의 일이 국가의 이익에 부합하게 된 경우이므로 그가 능동적으로 국가를 인식하진 않았다. 하지만 국가가 요구하는 것에 충실히 따르고 그것을 명예로 여겼다는 점에서 그의 아들이 비판한 것처럼 예술가적인 자의식도 그리 크진 않았다. 근대가 요구하는 예술가상에 부합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가와 위화감없이 공존할 수 있었다. 이후 등장하는 근대적 미술가들 상당수가 국가와 그다지 잘 지내지 못했음을 생각해보면 다카무라는 비자발적으로 국가와 잘 지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치무라 간조는 기독교 민족주의라는 말에 걸맞는 인물이고 그에게 그 두가지 단어는 모순적이지 않았다. 우치무라는 국가라는 권력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중요했다. 그리고 그 일본은 기독교적 정신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을 문명화해야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우치무라에게 공감하는가 여부와는 별개로 그는 자신만의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기억되는 사상가인 것이다. 우치무라는 일본을 과도하게 사랑한 것과 동시에 일본 정부가 행하는 문제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비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쓰다 우메코는 미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성장했다는 이력 때문에 일본에서의 적응이 쉽지 않았고, 여성으로서 경력쌓기와 학교 설립 및 운영과정에서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방인으로 미국에서 살기보다는 생김새가 같고 국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더 편안함을 느껴 일본에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기독교와 애국심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우치무라 간조와도 공통점이 있고 국가로부터 받았으니 국가에 그것을 되돌려야 한다는 발상을 보면 분명 쓰다 우메코는 다른 메이지 인물들과 비슷한 국가관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에 종속된 안정된 길을 마다하고 사립학교를 만드는 길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진취적이었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분명 그 선택은 좀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인물들을 보다보면 다들 애국심이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총론에서 메이지 유신과 이후 충성개념의 변화가 언급되는데 과연 근대 일본인의 애국심이란 것은 강렬하기까지 하다. 제국 일본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결코 달가울 수가 없는 모습이지만 옆 나라에는 이런 사람들이 살고있었고, 그 후예가 지금도 살고있다. 이들의 애국심과 한국의 애국심이라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제대로 공부해두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일본사를 공부하는 한국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