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 : 인호 역사 수상록

대한민국 건국은 혁명이었다 : 인호 역사 수상록

$20.00
Description
해방 · 건국의 기쁨과 6·25전쟁의 고통을 생생히 체험한
러시아 지성사의 대가 이인호 교수가 설파하는
감격의 대한민국 건국론
바야흐로 한국 사회에서 1948년 5월 자유 총선거, 7월 초대 국회의 개원과 헌법 제정, 그리고 정부 수립으로 완료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의 빛나는 역사를 부정하거 나 폄훼하는 세력이 정치계 법조계 언론계 교육계 학계까지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광복회까지 이같은 논란에 가세한 상황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언론이나 대중 강연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성심과 열정을 다해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오도된 사견(邪見)들을 논 박하고 설득하여 교정하는 저자의 건국론을 경청해 왔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 책은 저자가 고려대와 서울대 등에서 역사학 교수로서 봉직하고, 주 핀란드 대사 및 주 러시아 대사 등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쓴 논문, 신문 칼럼, 강연록, 인터넷 방송 등 미간행 발표문 가운데서 간행물로 널리 공개함으로써, 다음 세대가 읽고 바른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글들을 우선 골라 엮었다.

비교사적 관점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혁명’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근간으로 하되, 오늘의 현실을 진단하는 에세이들을 연대별 역순으로, 이어 역사의 의미에 관한 글들을 글이 쓰인 연대순으로 수록했고, 마지막으로 건국 문제와 이승만 대통령에 관련하여 최근 진행 된 VON뉴스 특별 대담을 정리하여 수록했다.

글에 따라서는 수십 년 전에 저술된 것부터 비교적 최근에 정리된 발언록까지, 본서에 수록된 글들은 저자의 전 인생과 사유를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용어(국민학교 등)나, 글을 쓴 연도를 기점으로 계산된 연차(해방 60년 등) 등은 가능한 한 저술 당시의 표현을 변경 없이 원문 그대로 두었음을 일러둔다.
저자

이인호

저자:이인호
서울대서양사학과명예교수는1936년서울에서출생,서울대문리대사학과재학중미국으로유학,웰슬리(Wellesley)대학을졸업하고,1967년하버드대학에서「예카테리나대제시대의러시아프리메이슨운동에관한재해석」으로러시아역사학박사학위를획득했다.
미국컬럼비아대학과럿거스대학조교수를역임하고,1972년귀국,고려대사학과교수에부임했다.1979년부터서울대서양사학과로옮긴후서울대러시아연구소를창립했고,한국슬라브학회와한국서양사학회장을역임했다.러시아사에깊은통찰과명쾌한분석을가하는독보적인학자로서『지식인과역사의식』,『러시아지성사연구』등의저서와『지식인과저항』,『인텔리겐찌야와혁명』등의편역서를낸바있다.
한국최초의여성대사로서주핀란드대사와주러시아대사를지낸바있고,KAIST석좌교수,국제교류재단이사장,KBS이사장등을역임했다.역사학자이면서,또한역사의현장에서진지하고책임있게참여한사상가형지식인으로평가된다.

목차


저자서문006
서장:우리는어디로가고있나?014

대한민국건국은혁명이었다
혁명으로본대한민국건국-거시사적비교를통한우리현대사의재인식030

역사와현실
왜다시이승만인가068
한미군사동맹의역사적의미099
새세대를위한이야기-무지인가반역인가107

역사와역사학
한국의역사학연구에서의방법론의문제122
역사는가르쳐야하나158
역사와정치의상관관계-우리현대사해석의문제를중심으로171
지식인과역사의식-동영상〈백년전쟁〉의폐해194
인문학의중추로서의역사학과오늘의현실201

대담:역사를통해미래를모색하다
1948년건국한대한민국은개인기본권인정한혁명국가240
세계사적대사건,반공자유민주주의대한민국건국260
대한민국건국정통성지키면서좌우가함께가는법285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은국가의이념적토대를세우는것313

출판사 서평

이인호교수님과대담을진행하고,또한새책『이인호수상록-대한민국건국은혁명이었다』를펴내면서내내드는생각은한마디로'거장'이라는것이다.
이인호라는거장의책을내손으로만들게된것이감격스럽다.여행을떠나면서편집자가직접에필로그를붙이는것이좋겠다고하셔서발문을쓰려다접었다.웅혼한담론에티가될것같아두려웠다.발문의초를잡았을때다음세가지명제로아웃라인을정했다.

첫째,러시아사상사의대가이자진보적인지식인이인호교수의반공은다르다.
둘째,해방독립건국의기쁨을,체험을통해기억하는이인호교수의건국론은다르다.
셋째,6·25전쟁의고통을생생히기억하는이인호교수의자유민주주의수호론은다르다.
위의세가지명제는굳이부연설명이없어도독자여러분들의공감을얻을수있을것으로본다.

1936년생이신이인호교수님은지금도젊은이보다빠른걸음으로다니시면서어디서든대한민국건국은위대한혁명이라는사실을후대를위해목소리높여설파하신다.
이분이말하는‘대한민국건국혁명’이란,그분자신의생애의주제인러시아혁명보다,서양사의랜드마크처럼버티고있는프랑스혁명보다더위대한것이다.혁명가이승만과혁명국가대한민국은공산주의와전제국가의적이며모든엘리트정치의적이다.

이인호교수님의건국론은심플하게빛난다.‘한사람한사람에게불가침의기본권을부여한것이진정한혁명이다!’한반도에서하늘이열린후처음있는일이었다.그헌법을만든대통령이어찌혁명가가아니고건국대통령이아닌가?

기념관하나갖지못한이승만대통령에대한온갖폄훼에대해저자이인호교수님은‘역사가의실패’로인식한다.이실패를만회하기위해부족한책의출판을허락했다고하셨지만이책이담고있는저자의깊이있는사유및역사방법론은한국에서익히접하지못한높은수준의역사철학임을독자들은어렵지않게발견할것이다.

책속에서

초등학교시절부터약소민족의설움소리를지겹게들으며자라해방과남북분단,그리고대한민국건국과6·25전쟁을겪은후역사학도로첫걸음을내디뎠을때꿈은세계사를공부하여그지식을배경으로우리나라역사를제대로한번써보겠다는것이었다.하지만어느덧자기자신이역사의격랑속에휘말리면서역사학이라는고지에서는끌어내림을당한셈이다.다만역사와역사인식에대한관심의불꽃만은완전히꺼지지않아서때로는강연이나방송요청도받아들이고신문에기고도하며살았다.
하지만세월이많이흘러지나간세대에속하게되고더욱이이른바‘촛불혁명’이후로는청산당할‘적폐’로분류가되었는지,꼭하고싶은말이있어도주요대중매체들에서는외면당하는처지가되었다.그래도어떤때는민주화라는구실아래자유민주주의기본원칙이나국가체제의토대가파괴당하는것을보면서참기어려운답답함과분노를느껴혼자몇자씩글을써몇몇동지들과나누어보다묻어두거나운이닿으면외국의매체를통해발표하기도했다.
(......)
사실지난몇해사이우리나라에서일고있는역사와관련된논란을보면그것은‘논쟁’이아니라‘전쟁’이고,‘학술회의’가아니라‘정치선전’에지나지않는다.
그직접적원인이야물론구공산주의세력과북한을중심으로한대한민국의적들의집요한선전선동공세에있었지만,이런식의역사전쟁이계속될수있었던것과,대한민국이서있는정신적이념적토대자체가무너지기시작한것은국민전반이역사에대해무관심하고무지하기때문에자기들이몸담고있는나라의토대가파괴되고있음을감지할능력,곧역사의식조차없기때문이라는결론을내리지않을수없다.
오죽하면종북주사파계열의정치인들만이아니라대학교수나주요언론의논설위원이라는사람들까지도대한민국이수립된것이1948년이아니라1919년이며일제식민지시에도우리나라사람들의국적은한국이었다는몰상식한주장이나오겠는가.
더기가막힌것은그런허무맹랑한주장을하는국회의원이라는사람들이그당시는일본법의저촉을받지않고살길이없었다는사실을지적하는장관을청문회밖으로쫓아내는,마치독재자스탈린이라도된듯한행동을해도,주요신문의논설위원이라는사람들이양심의자유를유린하는반헌법적폭거를지탄하기는고사하고도리어제대로알고있는역사적사실에대한소신을굽히지않는장관에‘국민을피로하게만드는고집불통’이라고모욕하는말세적도덕적지적불감증을드러내고있을까.
(......)
세월이많이지나낡은것이된글들을새로보완할시간도없이그대로내보내야하는데대해다시한번독자들께양해를구한다.의식의위기에빠져있는대한민국을구하는데조금이라도도움이되기를바라는마음뿐이다.그리고잘팔리지않을것이훤히보이는이런책이출판되도록물심양면으로온갖힘을다써주신편집진,그리고독지가여러분들께말로다하기어려운깊은심정으로감사드린다.
-저자서문중에서

대한민국의건국이가지는혁명적의미는적어도3중적인것이었다.
첫번째는,우리가일제와미군정에서벗어나독립국가로재생하여국제사회의인정을받는주권국가가되었다는사실이었다.독립을향한온겨레의소원이이루어진것이었다.
두번째는,우리가왕조시대의백성이나일제하의차별받는식민지‘신민(臣民)’,미군정치하‘패배한적국의전식민지시민(市民)’의처지에서나라의주인인‘국민(國民)’으로승격했으며바로그국민을자유롭고평등한주인으로인정하는민주공화국을수립했다는사실이다.
세번째는,그러한공화국이채택한국가이상과이념이공산주의나군국주의식집산주의가아니라개인의자유와존엄성을최고가치로하고재산권을존중하는자유민주주의였다는점이었다.
이세가지가다바로그직전까지있어왔던정치,사회,문화적현실을완전히뛰어넘는획기적인변혁이었으며여러가지우여곡절이있었지만그이전으로회귀하기는결코불가능한명확한혁명적구분선이그어진것이었다.
-“혁명으로본대한민국”중에서(44쪽)

4·19봉기는원래이승만이주동하여만들었던대한민국의헌법질서를바로잡자고하는동기에서촉발된충정어린의거였지,대한민국을뒤엎자는혁명이결코아니었다.하지만그후속정권들은대한민국헌법의토대위에서이승만정부가미처다하지못한민주국가건설과수호,발전의과업을계승한다는애국정신을발휘하기보다는이승만과자유당정부를정치적으로매도하는것만이마치자기들의존재가치를돋보이게하는일인듯착각했다.그런얄팍한정치적계산에함몰되어대한민국의국가적초석을마련한반공정치지도자로서의이승만뿐아니라독립운동가로서의이승만의역사적업적까지,기리기는고사하고등한시하거나폄훼하기시작했다.
-“왜다시이승만인가”중에서(70~70쪽)

2008년8월15일우리대한민국에서는60주년기념행사에참석하기를야당지도자라는사람들이공공연하게거부하고,건국60주년행사를반대하는헌법소원까지내면서건국회가주동이되어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열리기로기획되었던국민대축제가광복회의방해로무산되는불상사까지일어났다.국가건설을통한자주독립이없이도과연일제로부터의해방만으로광복의의미가제대로살수있는지,임시정부의법통을이어받는대한민국건국을기리는일이어떻게임시정부구성원들이나그밖의독립운동에헌신한분들에대한모독이된다는것인지상식으로는납득가지않는일들이벌어지고있다.
-“역사와정치의상관관계”중에서(187쪽)

대한민국은자유민주주의의기본가치를이념으로하는독립국가로수립되어유엔의공인을받은한반도유일의합법적국가였다.하지만태생에서부터공산권의집요한대내외적파괴공작에직면해있었기때문에정치적자유를무한으로허용할수는없었고그것은바로자유민주주의적기본가치를훼손시키게되는악순환을안고살아야함을의미했다.
-“지식인과역사의식”중에서(195쪽)

역사를정치의도구로악용하려는세력과의싸움은또다른직접적차원,곧정치적차원에서도수행되어야할것이다.자유와전체주의의갈림길에서향방이그싸움의결과로결정될것이기때문이다.그러나지금우리에게는대한민국의새세대에게올바른역사인식을심어줌으로써역사변화의격랑속에서도통합된인격체로살아갈수있는힘을심어주는일이무엇보다시급하다고생각한다.
-“인문학의중추로서의역사학과오늘의현실”중에서(2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