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무니타스 :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

코무니타스 : 공동체의 기원과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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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탈리아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최고의 석학으로 추앙받는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삼부작의 첫 번째 책 「코무니타스」가 한국에 드디어 번역되었다. 공동체에 관한 기존의 해석적 관점들을 모두 해체하고 공동체의 근원적인 의미를 복원한 에스포지토의 혁신적인 탈구축주의 작업에서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공동체가 ‘나’와 ‘우리’의 고국도, 어떤 유형의 소유물도, 무언가로 꽉 채워졌거나 채워야 할 공간도, 지켜야 할 영토나 자산도 아니며 오히려 허무에, 선사의 의무에, ‘타자들’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에스포지토는 홉스, 루소, 칸트, 하이데거, 바타유의 공동체 개념을 해부한 뒤 이들이 나름의 철학적 체계를 구축할 때 놓쳤던, 오해했던, 무시했던 근원적인 영역의 정체를 파헤친다. 언제나 모두의 망각 속에서만 존재했던 이 ‘함께’라는 이름의 공동체 ‘코무니타스’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의무만을 공유하는 이들의 집단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율배반적인 동시에 고귀한 실체다. 이제는 공동체가 우리 삶의 고귀한 터전이며 생명을 보존하는 울타리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실체화하고 면역화하며 비대해질수록 - ‘함께’라는 순수한 의무 관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 얼마든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다.

저자

로베르토에스포지토

로베르토에스포지토는삼부작『코무니타스』,『임무니타스』,『비오스』의출판이후일련의혁신적인정치철학저서들을지속적으로발표하며세계적명성을얻은이탈리아의정치철학자다.1950년나폴리에서태어나나폴리대학에서수학하고교수를역임한뒤피사고등사범학교교수로재직중이다.『코무니타스』가기존의공동체개념을완전히전복시키고근원적의미를복원함으로써공동체와관련된정치철학의세계적인판도...

목차

서문공통점이라고는조금도없는공동체

1.두려움
2.죄
3.법
4.무아지경
5.경험

부록허무주의와공동체
에스포지토의책
역자해제|코무니타스/임무니타스

출판사 서평

에스포지토가‘커뮤니티’개념을탈-구축하며제시하는전제는문자그대로파격적이다.우리가흔히공동체의특징으로간주하는요소들,예를들어‘민족’공동체,‘문화’공동체같은표현속에함축되어있는요소들은공통점이라기보다는공동체‘고유의’,‘유일한’,‘특이한’특징들이다.저자에따르면공동체는오히려이러한공통점이조금도없을때에만성립된다.정확하게는모든구성원의동일한차이점을기반으로구축되는것이공동체다.동일한의무사항,동일한한계,동일한모순,동일한병을-이에서벗어나기위해,좀더정확하게는이에대한면역을꾀하면서-구심점으로모이는것이공동체다.

「코무니타스」는「임무니타스」와「비오스」를포함하는삼부작의첫번째저서다.공동체에관한기존의해석적관점들을남김없이해체하고공동체의근원적인의미를복원한정치철학자에스포지토의혁신적인탈구축작업에서어느때보다도분명하게드러나는것은공동체가‘나’와‘우리’의고국도,어떤유형의소유물도,무언가로꽉채워졌거나채워야할공간도,지켜야할영토나자산도아니며오히려허무에,선사의의무에,‘타자들’에가깝다는사실이다.에스포지토는홉스,루소,칸트,하이데거,바타유의공동체개념을해부하고공동체를설명하는정치철학적인어휘의허점들을도려내며대대적인수술을감행한뒤어떤수식어로도쉽게설명되지않는순수한역학적원리로서의‘함께’라는인간공동체의심장을근원적인형태로소생시킨다.이고귀한심장은순수한관계의차원을뛰어넘어개개인의참여를조건으로,동시에개개인의생존조건으로박동한다.참여의궁극적인목적이고귀해야하는이유도바로여기에있다.

이러한역동성을에스포지토는공동체의어원적의미에서발견한다.공동체를뜻하는라틴어코무니타스는‘함께’를뜻하는‘쿰cum’과‘선사의의무’를뜻하는‘무누스munus’의합성어다.이는곧공동체가본질적으로는타자에대한근원적인의무혹은갚아야할빚을공유하기때문에모인사람들의모임이라는것을의미한다.하지만이러한조건은근원적일뿐왜곡될수밖에없는상황에놓인다.왜냐하면의무에서벗어나는면역화,고유화,체화라는형태로전개되는임무니타스의원리가코무니타스못지않게중요한요소로기능하기때문이다.이러한상황은왜공동체가공존과상호의존이라는형태로만발전하지않고오히려의무를권리와특혜로바꾸면서결국에는누군가의희생을수반하는형태로발전해왔는지설명해준다.이러한성향은공동체내부의일화로그치지않고-근대를기점으로-공동체자체의본질적인구조로확립되기에이른다.

이것이바로에스포지토가분석의기점으로삼는홉스의관점,즉모두의희생을전제로구축되는홉스의국가체계다.홉스가이처럼전적으로부정적인차원의전제를내세울때,개개인은이러한전제가배가되거나증폭된형태의리바이어던과절대적이고직접적인관계를유지할뿐또다른공동체구성원과의모든관계를,궁극적으로는‘함께’를상실한다.하지만홉스에반대했던루소도이러한측면을절대적인방식으로전복시키기때문에결을달리할뿐여전히문제적인공동체를구축하기에이른다.루소는개인의위상을강조하지만공동체일원으로서고유의특성이모두사라진개인을꿈꾸기때문에‘나’와‘타자’의구분조차불가능해지는,결과적으로는‘함께’의관계성자체가일체화속에서사라지는공동체개념을구축한다.이처럼홉스와루소의비교에서극명하게드러나는코무니타스와임무니타스의이율배반적인관계에주목한에스포지토는낭시의순수한관계로서의‘함께’에동의하면서도관계의추상적인차원에만머물것이아니라‘함께’의내용에주목할필요가있다고말한다.‘함께’의내용은허무다.공동체의구성원들은사실상어떤공통점도지니지않지만이사실만큼은공유한다.왜냐하면‘함께’는‘나’를구축하는원천이자‘나’의생존에필요한터전인동시에개인이면역화,고유화,사유화를시도하며결과적으로‘함께’자체의파괴를시도하는공간이기때문이다.이러한메커니즘은사실상더큰개인으로간주해야할특수공동체와외부세계의관계에서도그대로발견된다.에스포지토가추적하는이러한역학관계는코무니타스와임무니타스의변증관계로귀결된다.

책속에서

p.7공동체의철학만큼오늘날의현실적인과제로다가오는것도드물다.역사적으로모든공동체주의의실패가곧장새로운개인주의의병폐로이어졌다는점을필연으로간주하며,고유의관점을절실하게요구하고주장하며표명하는것이바로공동체의철학이다.하지만공동체의철학만큼눈에띄지않는것도드물다.공동체의사상만큼먼곳으로밀려나거세된상태로남아있거나,저멀리서도래하는미래혹은해독이불가능할만큼까마득한지평으로밀려나있는것도드물다.공동체를구체적으로연구하는철학이부재했거나부재하기때문은아니다.공동체의철학은오히려국제토론의무대를지배하는테마들가운데하나다.그럼에도불구하고공동체의철학은앞서언급한비가시성과사유불가능성의고랑에남아있을뿐아니라이러한현상을가장뚜렷하게보여주는징후의표현이기도하다.바로이지점에서우리가주목해야할것은-현대정치철학이때에따라수용하는공동체적,공통적,소통적차원을뛰어넘어-공동체자체의양태와직결되는한가지특징,즉공동체는20세기의인류가지독히도비극적인방식으로경험했던것과유사한종류의극단적인왜곡과심지어타락을대가로치르지않고서는정치적-철학적담론으로번역되지않는다는사실이다.

p.16코무니타스는고유의특성이나소유물이아니라어떤의무사항이나빚을공통의요소로지녔기때문에모인사람들의공동체를가리킨다.무언가가‘더’있어서가아니라‘덜’있어서,혹은어떤결핍이계기가되어모인것이다.다시말해코무니타스는무언가가결핍된상황에서벗어났거나‘면제된’사람들이아니라결핍에‘시달리는’사람의입장에서어떤책무나심지어는결함의형태로나타나는일종의한계를공통분모로지닌사람들의집단이다.[...]코무니타스의주체들이지닌‘의무’는무언가를‘당신이나에게해야’하는차원이아니라‘내가당신에게해야’하는차원의의무다.

p.19공동체는신체나단체로간주될수없고,다수의개인이뭉쳐형성하는단수의더큰개인으로도간주될수없다.공동체는이들이원래의정체성을확인하기위해서로에게거울역할을하는상호주체적인상호인식의장으로도사유될수없고,원래는뿔뿔이흩어져있던개개인을어느시점에이르러통합하는집단적인결속의장으로도사유될수없다.공동체는개별적인주체가존재하는방식이아닐뿐더러무언가를‘하는’방식은더더욱아니다.공동체는개인의확장이나증식이아니라오히려개인의노출에가깝다.그는그의폐쇄를중단하고외부로끄집어내는것에노출된다.공동체는주체라는존재의연속선상에일어나는일종의현기증,실신,경련이다.

p.66국민들의희생메커니즘을발동시키는것은사람들이흔히생각하는주권자의우월성이나초월성이아니라오히려그의정체성이다.이는애초에희생메커니즘을저지할목적으로도입된정체성의‘인가행위’가희생메커니즘을오히려최대한강화하는결과로이어지기때문이다.국민의입장에서,고유의상실을인가하는것보다더큰희생이어디에있겠는가?그런식으로고유의이질화를내면화하는것보다,자신의잃어버린정체에서정체성을찾는것보다더큰희생이어디에있겠는가?이러한관점은원칙적으로주권자의모든활동에적용될수있지만,주권자가그에게복종하는주체를‘적대적으로’대할때이관점의특별한중요성이부각된다.복종하는‘주체’는이경우에도주권자의행위에맞서항의하지못한다.

p.142정치의역할은바로이러한잠재적인파괴력이적정선을넘지못하도록하는데있다.다시말해정치의역할은이파괴력을제거하는것이아니라제어하는데있다.왜냐하면정치자체가이파괴력의흔적을안고있을뿐아니라어떤의미에서는이파괴력에서유래하기때문이다.따라서정치의기원을밝히려는모든시도는-즉권력이권리로변하고결정이규범으로,힘이논리로변하는그맹점으로거슬러올라가려는모든시도는-애초에무력화하고자했던허무의포로로전락할수밖에없는운명에처한다.

p.154사람들은공동체의불가능성을중심으로,즉‘불가능’이라는공통의책무를중심으로하나가된다.인간들은결코도달할수없는일종의표적처럼자신들을관통하며뛰어넘는어떤‘부정성’에의해하나가된다.이표적은결코실현될수없는형태로전개되는실현시도만이유일하게중요한실현대상과도같다.왜냐하면이것이바로‘모두가공유하는고유의허무’와일치하기때문이다.이것이다름아닌공동체적법의대상이다.이조금도-공통적이지-않은허무는결코파괴될수없고홉스가원했던것처럼단순한허무로도환원되지않는다.왜냐하면모든파괴를선행하는동시에포괄하기때문이다.

p.280무누스munus라는라틴어용어가도눔donum의경우처럼받은선물이아니라오로지준선물만을가리켰다는것은곧이용어에원칙적으로‘보상’의가치가누락되어있다는것을의미한다.그렇다면이는무누스가결정짓는주체적실체의결함이결국에는채워지거나회복되거나봉합될수없고주체의열린상처역시더이상은-실제로‘함께나누기’를원한다면-어떤보상으로도닫히지않는다는것을의미한다.이는‘함께나누기condivisione’에서‘함께con’하는것이사실은‘나누기divisione’이기때문이다.

p.312실체와주체에만주목하는공동체개념에는‘함께’라는요소가빠져있다.그런식으로‘함께’는본연의의미를잃은상태에서항상어떤정체나특성으로만이해된다.「코무니타스」의의미심장한서문제목‘공통점이라고는조금도없는공동체’라는표현이암시하는것도바로이러한의미의상실이다.이말은우리가공동체의공통점으로간주하는요소들이사실은공통점이아니라오히려허무에-명분,이상,추상적가치나목표에-가깝다는것을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