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고 글쓰고 : 일하며 글쓰는 작가들이 일하며 글쓰는 이들에게
Description
그럼에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한 원시인이 있다. 토끼를 잡기 위해 종일 들판을 쏘다녔지만 운이 없었던 탓인지 오늘은 수확이 없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발견한 버섯 조금이 전부다. 주린 배에서 소리가 요란히 울린다. 버섯은 허기를 채우기엔 너무 부실하다. 고기가 먹고 싶다. 말고기, 소고기, 토끼고기. 머릿속으로 말과 소와 토끼를 상상한다.
기원 전 17,000년 경 라스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린 한 원시인에게서 우리는 두 가지 유산을 물려받았다. 하나는 시종일관 계속되는 먹고살 걱정, 다른 하나는 상상한 것을 표현하고픈 욕구. 얄궂게도 이 둘은 양자택일의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먹고살 걱정에 골몰하면 표현하고픈 희망이 한갓진 얘기로 여겨지고, 표현 욕구에 몰두하면 궁핍한 삶이 현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 내용은 ‘생업과 예술 사이의 긴장’이라는 말을 길게 늘여놓은 것에 불과하다. 결국 쓰는 사람은 그 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줄의 단단함은 경제적 풍요가 아닌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벽화를 그린 원시인보다 현 인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풍요롭지만 위태로운 줄타기는 여전하다. 어쩌면 더욱 자주, 더욱 거세게 줄이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책은 그럼에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일하며 글 쓰는 작가 아홉 명의 모습과 생각을 담았다. 이 책을 통해 당신이 ‘그럼에도’ 써야 하는 이유를 다시 떠올릴 수 있길, 당신의 쓰는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길 바란다.

저자

김현진,이서수,송승언,김혜나,정보라,전민식,조영주,김이듬,이원석

“삶이구차하고남루할수록농담은힘이세다고믿는다.줄곧글쓰는삶을살아왔고계속쓸것이다.”

'개인적인것이정치적인것'이라는오래된캐치프레이즈를증명이라도하듯'88만원세대'이자비주류인자신의계급과사회구조적모순과의관계를'특유의삐딱한건강함'으로맛깔스럽게풀어냈다평가받으며이십대에서칠십대까지폭넓은독자들에게사랑받는에세이스트.스스로를도시빈민이라부르는그녀는...

목차

1.김현진우리는한명한명이죄다돈키호테인셈이다9
2.이서수미안하지만쓸게요39
3.송승언사실당신이쓰는글에는별가치가없다,내글이그렇듯이57
4.김혜나나를위한동작79
5.정보라이야기를만드는것에대한이야기97
6.전민식중간쯤에서보낸한철117
7.조영주최저시급으로산다는것139
8.김이듬죽은시계를차고다닌일년159
9.이원석대작가가되는기분183

출판사 서평

사실이기획은편집자의개인적인궁금함에서시작되었다.편집자이자,북디자이너이자,마케터이자,경리부직원이자,영업부직원으로(쉽게말해1인출판사대표로)일해오며항상소설가를꿈꿨다.출판업을시작한데엔여러동기가있지만그중책을마음껏읽으며일할수있으리란점,그것이창작에도움이되리란기대도있었다.

하지만바람과는달리사업은현실이었다.단순히책이좋아시작한출판사업뒤엔수많은노동자들의이름이들어있었다.나는호기롭게도(또는무모하게도)그모든일을혼자할수있으리라생각했고,그어리석음에대한대가로오랜시간일과스트레스에들들볶여야했다.남들은잠들법한시각에워드프로그램을켜피로를이기며억지로공상을끄적였다.그렇게라도적은날엔차라리다행이었다.창작을위해자리에앉아모니터를보면흥미로운상상보다는낮에미처끝내지못한일이먼저떠올랐다.그러면힘들게마련한창작시간이능력이부족한사업가의핑곗거리,또는허영심의발로쯤으로여겨졌다.나의창작욕망은바람앞의등불처럼위태로웠다.글쓰기가두려워졌고언젠가부터일기도쓰지않았다.

시도하고좌절하고다시시도하는날이반복되었다.좌절과새로운시도사이의간격이점점길어졌고,나는내이야기가낯설어졌다.그럴수록조금더슬퍼졌다.어느날엔가나와같은사람이많을것이란생각이들었다.또한비슷한상황을극복하고작가로서발을디딘사람들역시많지않을까생각했다.그러자내가할수있는일이떠올랐다.그둘을잇는기획,즉생업과창작을병행해온작가들이현재어려움을겪는예비작가들에게도움을주는책이나오면어떨까?도움을주는방식은다양할것이다.현실적인조언일수도있고,자신의경험담을얘기해줄수도있다.출판시장에대한냉철한분석일수도있고일하며글쓰는작가의삶을상상할수있는이야기일수도있다.

독자들은이책을읽고위로와힘을얻을수있을까.적어도나는그랬다.여전히소설쓰기는부진하고재능없음을한탄하는날이많지만.아니,그런날이많을수록오히려이따금작가들의이야기가머릿속에떠오르기때문에더욱만족한다.이책에실린아홉개의이야기에대한공통적인설명은없다.각양각색의내용,다종다양한형식으로구성되어있기때문이다.원고를청탁하며작가들에게요구한것은‘말해주고싶은대로자유롭게’였다.그리고그런방식은아주알맞았다고생각한다.여러색을통과한후어렴풋하게나마스스로의색에대한예감이떠올랐으니말이다.

-책의문을연김현진작가는<네멋대로해라>로작품활동을시작해20여년동안일하며창작활동을했다.베스트셀러작가가아니어도먹고살고글쓰는삶의모습과가능성을보여준다.
-이서수작가는신춘문예등단후오랜기간플랫폼노동자와자영업자로일하며장편소설을준비했다.등단부터처음작품을펴내기까지있었던5년간의시간동안마음을되돌아보며독자들에게소설쓰는마음을잃지말것을당부한다.
-송승언작가는문학출판사의편집자이자시인이다.출판업계종사자로서원고노동자의암울한현실을낱낱이밝힌다.그가도착한결론역시얼핏봐선지독히어두워보인다.하지만아이러니하게도그결론속에서행복한글쓰기에대한가능성이엿보인다.
-김혜나작가는소설을쓰며안좋아진건강을회복하고자요가를시작했고,그걸계기로지금까지소설쓰기와요가강의를업으로삼게되었다.이책에선창작하며자신의몸을바로세우는것을,돌보는것을결코소홀히해선안됨을이야기한다.
-정보라작가는오랜시간창작활동과러시아문학연구를병행했다.이책에서는소설을쓰기까지그가살아온삶의모습과막시작하는초보작가에게건네는실질적조언을담았다.
-전민식작가는다양한일을하며글을써왔고현재도대학에서강의를한다.이책에서는그가수목장에서일할때의경험을오토픽션형식으로담아냈다.
-조영주작가는시나리오작가로시작해세계문학상수상작가를거치며작품활동을하기까지카페바리스타일을해왔다.그기간동안의일과소회를진솔하게적었다.
-김이듬작가는‘책방이듬’을운영했고산문,소설,시등다양한글을썼다.이책에실린「죽은시계를차고다닌일년」에서세상의시간과달리흐르는시인의시간을느낄수있다.
-이원석작가는시를쓰고주짓수를가르친다.그는「대작가가되는기분」에서현실에굴하지않고,아니현실을긍정하며창작활동을해나갈것을격려한다.그의재치넘치는글에서우리는그가논하는이시대'대작가'의면면을미리학습해볼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