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독백 (서경희 소설집)

밤의 독백 (서경희 소설집)

$16.80
Description
“나는 버섯 같은 사람이고 싶었다
밟히고 또 밟혀도 비 한 번 내리고 나면 다시 자라는”
괴물 같은 세상에 맞서기 위해 괴물이 된 자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는 희망의 노래
2015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에 이어 2023년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자신만의 장르를 구축해온 서경희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 출간됐다. 수록된 등단작 「미루나무 등대」는 심사위원이었던 오정희, 하창수 소설가로부터 “초등학생 소녀를 내세워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눈높이를 낮게 설정해 오히려 어른들의 위악을 부각시킨 점”을 높게 평가받으며 서경희식 사회파 소설의 시작을 알렸다.

서경희 소설은 현실이라는 괴물에게 삶을 위협받는 인물들을 조망한다. 영화를 만들 재능도, 실력도 있지만,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꿈에 도전하지 못하고 자본에 착취당하는 까뜨린느(「달의 마중」), 시골 원전 마을의 부조리를 둘러싸고 어른들이 벌이는 이권 다툼 속에서 점점 소외되어가는 다문화 자녀 선희(「미루나무 등대」), 자신에게 상처만 남긴 부모의 망령을 벗어나지 못하고 남자친구에게 투영된 그들의 분신을 좇다가 결국 비인간이 되기를 택하며 자기 존재를 지키는 윤희(「가시 여인」), 참을 수 없는 권태에 내몰려 모든 것들을 파멸함으로써 해방에 다다르고자 하는 진숙(「아름다운 연기」)은 모두 지역적, 경제적, 심리적으로 끝까지 내몰린 사람들이다. 서경희는 이들 삶의 구체적 고통을 통해 독자들이 안온해 보이는 현실의 외곽에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그곳에선 어떤 괴물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독자들은 곧 그 괴물이 노려보고 있는 자신도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밤의 독백』은 우리의 일상이 어떤 삶의 진실 위에 건설되었는지, 우리가 어떤 부조리에 연루되어 있는지 깨닫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저자

서경희

2015년단편소설「미루나무등대」로김유정신인문학상을수상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지은책으로는『수박맛좋아』『복도식아파트』『꽃들의대화』『옐로우시티』『하리』『김대리가죽었대』가있다.제3회‘넥서스경장편작가상’대상을수상했다.

목차

달의마중
레몬워터
미루나무등대
가시여인
밤의독백
아름다운연기
길가에서서
검은저수지

출판사 서평

넥서스경장편작가상대상,김유정신인문학상수상작가
등단작이후8년만의첫단편소설집

『밤의독백』의무대가되는장소들의성격을한번짚고넘어가야겠다.「달의마중」의까뜨린느아니,진미(본명)의가족은임대아파트에산다.「미루나무등대」의배경은원전재가동으로인해작은사회가완전히분열된시골마을이다.「가시여인」의윤희와연인은재건축확정과동시에집을나가는조건으로사람들이한창빠져나가고있는아파트단지에산다.뒤잇는「밤의독백」의무대가되는시경계의30년된문방구,「검은저수지」의이름모를저수지농촌까지.소설에서이장소들은굳이말하지않아도가난,소수자성,폭력의표지로작동하며배경을뛰어넘어인물들이위치한계급적위치를드러낸다.

그런데서경희소설에서문제가되는점은이부조리가창궐하는장소에탈출구가보이지않는다는점이다.가령「달의마중」의진미는“더러운임대아파트에서들려오는백치같은”가족들의“웃음소리”를혐오한다.이미계급적열등감,계급적정체성에서기인하는불행을깊이체화한진미에게는웃음조차도자기존재와어울리지않는옷이기때문이다.진미는학비를버느라학업을마치지못했고,영화를찍을돈이없어영화제에서상을받을만한시나리오를써내고도남에게팔아야만한다.설상가상알바로일하는편의점의사장은번번이성희롱을일삼고근로계약서도써주지않지만,진미는일자리가없어그만두지못한다.

국가의복지시스템은이시궁창으로내몰린인물들을끝까지발견하지못하고,그들도이시궁창에뒹구는것외의다른가능성은생각하지않는것처럼보인다.혹자는이런설정에개연성이없다고,요즘현실을제대로반영하지못한다고얘기할수도있겠다.하지만서경희소설이시스템이작동하지않는세계를일부러들여다보는실험을하고있다고말하면어떨까?우리가속는셈치고먼저그런세계가어딘가있다는가설을무작정믿고나서다시『밤의독백』을펼친다면?독자들은그때비로소신뢰와연대가무너지고고립과소외가일상화된우리사회의사각지대에어떤일이펼쳐지고있는지마주하게된다.어째서우리는이런이중의사전작업을통해야만서경희소설을넘길수있을까?

오늘날일상에서쉬이발견할수없는부산물의세계로
“명동의뒷골목은필름누아르의한장면같았다.”

극도로진행된도시화와대중소외문화의확산,SNS의발달로인해유무형의모든것이상품가치로환원되는이후기자본주의사회에서대중들은끊임없이매끈하고세련된연출부에노출된다.신상품은맥락을파악하기힘들정도로빠른속도로쏟아져나오고미디어와SNS에등장하는타인들은하나같이모난구석을찾기힘들다.점점우리는사회구성원모두가이런세계에살고있으리라확신하게된다.

하지만탈것들이매연을배출하고부유한사람도오물을배설하듯매끈함은부산물을발생시킨다.그러니강지은의사망사건에연루되어형사앞에서조사를받는「아름다운연기」의진숙은물흐르듯빼어난연기를펼치면서도자기요실금을제어하지못하고오줌을지리는것이다.세상은이런부산물들을우리사회의하류에모두밀어넣어두는방식으로유지되고있다.이상하수도시스템은“상자속의미인을사라지게하는마술”(「미루나무등대」)처럼감쪽같이부산물을삼키기때문에구태여상하수도를따라가보지않으면그종착지에서무슨일이벌어지고있는지알수없다.임대아파트,명동의뒷골목,재건축지역,원전마을,농촌은이런부산물의세계다.

「미루나무등대」는전국대도시에전력을공급하는원전마을의원주민들이무엇을대도시인들대신겪어내고있는지를보여준다.관광업으로지탱되던지역경제는완전히무너졌고주민들은이주대책을둘러싸고서로반목한다.그안에다문화가정의자녀선희가있다.엄마는원전때문에병을얻었고,결국가정을버리고도시로도망쳤다.아빠는일용직노동으로자신이지붕을얹은원전이아내를병들게했음을,이마을이아내가돌아올만한곳이아니라는사실을인정할수없어이주대책위원회와척진다.어른들의이해관계사이에서고통받는것은선희다.게다가선희는동네사람들이다문화가정인가족의일을속속들이알고자신을배척하는것이고통스럽다.또유일하게어울려준친구철진이함께접근이금지된해변에서수영한뒤갑상선암에걸린탓에괴로워하기도한다.끝내철진은항암치료를받으러마을을떠나고아빠도엄마를찾아선희곁을떠난다.그순간에도원전의전기는끊임없이도시로공급되고있다.

타인의죄를대속하고
세상의부조리를온몸으로받아내는사람들

이런부조리는저주를만들어낸다.「레몬워터」의아빠는과거에주인공한빈이어렸을때“상상도못할큰돈을날”려현금을쓸때액수를계산하지못하게됐다.엄마말에따르면“한사람은평생쓸수있는돈이정해져있는데,아빠는젊어서모조리써버렸기때문에쓸돈이남아있지않”고“죽을때까지돈쓰지말고벌기만하라는신의계시”를받게된것이다.아빠는돈을아무리벌어도주머니가차지않고주머니가차더라도돈을제대로셀수없는현대판프로메테우스저주를받은것이다.

그런데『밤의독백』에서이런부조리들이만들어내는가장큰저주는‘죄책감’이다.「미루나무등대」의선희의엄마는선희가학교에서따돌림받고집에와서엄마에게“와날낳았노?”라고말한날집을나간다.친구인철진은자기때문에피폭되어암에걸렸다.어린주인공을찾아온모든불행이자신으로부터기인한것만같다.「밤의독백」에서루의엄마는아빠에게맞고살다가도망친다.하지만결국루를데리러돌아오게되는데,그때횡단보도를사이에두고아빠가루를쫓아오는중에신호가바뀌지않자엄마는서둘러길을건너다가교통사고를당해죽는다.루는평생자신이대신길을건넜어야한다고후회한다.「길가에서서」의은수는10년이넘게이어진복직투쟁으로인해연인부터가족까지주변관계를모조리파탄낸다.엄마는딸의청춘이투쟁으로저무는모습을보며마음을썩이다가유방암에걸려죽는다.

하지만이들을이런상황으로내몬범인은따로있다.선희의엄마와철진이가병에걸린이유는원전때문이다.루의엄마가사고를당한이유는근본적으로엄마를가출에이르게한아빠의폭력에있다.은수의엄마가유방암에걸린일도복직투쟁에투신한은수가아니라은수가투쟁에나설수밖에없도록만든사측에책임소지를물어야한다.이들은우리사회의매끈함이발생시키는부산물을받아내는하류의사람들처럼타인의죄를대속하고있는것이다.이토록폐쇄되고불공정하고세계를통해『밤의독백』은무엇을말하려는걸까?

“누구도돌아보지않았던외진자리에
자신만의문법으로건설한대성당”
서경희라는장르!

그곳이높든낮든밝든어둡든삶이모여있다면사회가생긴다.그리고사회는삶을연결하고서로의존하게함으로써세계의가능성을열어젖히고새로운삶의모델을제시한다.상부구조의갈등조율시스템이한사회를감싸지못하는곳에서도마찬가지다.이런사회는결국구성원들이연대를통해인간다움의보전을모색한다.

「레몬워터」에서수전노인엄마는베란다에널어놓은빨래가헬스트레이너인남자가사는윗집에서떨어진물로젖은일때문에한빈에게남자로부터이불값을받아오라는무리한요구를한다.한빈은울며겨자먹기로윗집에올라갔다가우연히남자의알몸을보게되고이불값을요구하기는커녕남자를피해다니게된다.그러면서도한빈은병원에서킬레이션이라는혈액정화치료를받으라는권유를지속해서받는다.하지만실비보험을들돈도없는한빈이다.그러던어느날한빈은우연히밖에서마주친남자로부터집에혼자계신거동이불편한어머니를돌봐달라는뜻밖의부탁을받는다.남자에게빚을진한빈은부탁을들어주러윗집으로가서깜짝놀라고만다.할머니가오물로오염되고부패한것들이집에가득한열악한상태에서지내고있었기때문이다.이때한빈은고개를돌리기보다윗집을열심히청소하고할머니에게필요한의료조치를한다.꼭피를정화하는것처럼윗집에서일어나고있는부조리를잠시나마걷어낸다.할머니가그순간생을놓은것은그녀가생각해온존엄한죽음의최소조건이한번의작은연대로인해갖춰졌기때문일것이다.

이런연대의가능성은「밤의독백」에서도엿볼수있다.앞서얘기했듯루는어린시절아버지로부터학대를당했고,엄마를안타깝게잃었다.또집에하숙하던체육선생님케이와의사이에서별을낳고동네사람들로부터부적절한관계를맺었다며손가락질받는다.케이는루가별을키운30년이넘는오랜세월동안모녀를떠나있었다.별이이런루를곁에서지키며루와연대하는방식은재연놀이다.루가겪은부조리한일들을역할을나눠되살리는것이다.그러면루는습관처럼울음을쏟아내며안정을찾는것으로보인다.그런데특이한점은별이루가없을때도혼자다역을소화하며루의과거를재연한다는점이다.별은그런방식으로루의아픔을대신감당하고루를더깊이이해하고루의곁을더잘지킬방법을모색한다.그것이별이루삶의부조리를벗겨내고자스스로에게부여한역할이다.“눈물을흘리는사람은루지별이아니”다.

확실한사실은『밤의독백』이독자들에게꽤오랫동안간지러운상처를만들어낸다는것이다.서경희소설의역할은단순히이부조리의자리를되비추는거울에그치지않는다.거울은한지점에빛을모으기도한다.그리고빛이충분히발화점까지온도를끌어올렸을때그곳은타오르기시작한다.재는소복하게쌓여다음에자라날생의양분이된다.마치새살이돋듯이삶은끊임없이솟아날것이다.그러므로지금『밤의독백』은삶의가장척박한자리에서타오르는중이다.이화염으로부터고개를돌릴지,화염속으로손을집어넣을지는독자들이선택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