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승의 삶: 수묵그림이야기 (양장본 Hardcover)

유희승의 삶: 수묵그림이야기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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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옛 미술은 전통성이 돋보이는 회화 중심이었고, 수묵화와 채색화, 수묵담채가 주(主)였으나, 작금(昨今)에, 특히 미술 분야에 설치·영상·추상 등이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회화와 조우(遭遇)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리는’ 그림이 잊혀지는 가운데, 한국화가들의 사유(思惟)와 표현방법에 대한 정체성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서구 문명의 선호와 지방대학에서의 한국화과의 폐지와 통폐합 등을 통해 불확실성의 깊은 늪에 빠져있는 오늘의 한국화는 급변하는 자극적인 현대 매체들의 홍수 속에서 불확실성의 속도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은 전통적인 기초 작업에 동양화의 전통적인 선과 먹, 여백이나 오방색을 절충함으로써, 동시대(同時代) 우리가 현실에서 부딪치고 있는 문제의식의 돌파구를 찾고자 노력하면서, 전통 한국화의 현대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한편, 특히 중국의 미술대학 커리큘럼에는 아직도 건재하나 한국에서는 사라진, 전통 회화의 삼대맥(三大脈), 즉 인물화·산수화·화조화 중에서 인물화·화훼화(花卉畵)를 주로 작업하고 있다. 삶의 주체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원한 주제는 인간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현대라는 복잡한 사회 속에 살면서 그 모든 조건에 구속될 수 밖에 없다. 어떤 형태이든 ‘나’ 라는 주체에서 보면,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 존재를 자연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탐구하면서 무엇보다 절실히 깨달은 것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방법보다는 20세기 이후 사회의 서구화에 따라 서양화적인 방법에 의존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본인은 서양화적인 인물 표현방법과 동양화의 역설적인 표현법을 고구(考究)하면서 색과 필·묵 표현상 동·서양의 방법을 비교함으로써 나의 그림에의 적용 여부를 가늠해 보고자 하였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여성은, 본인이 즐겨 다루었던 ‘고독’ 과 ‘우수’ 의 그림자를 안고 사는 존재요, 희·비극의 세계를 가슴 속에 안고 있는 인간인 동시에 세상의 환호와 갈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삐에로, 마임, 탈춤, 승무의 인물은 그러한 이중성을 표현한 것으로, 아마도 우리 시대 모든 사람들의 내면세계인 동시에 우리들의 자화상이요,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우리, 그리고 한국의 여성의 모습일 것이다. 작품의 주제나 사색하는 모습은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처럼 여성적이고 조심스럽지만, 수묵의 사용과 색, 인물의 표현은 다분히 현대적이다. 주목할 점은 작품의 주제요, 그 표현 방식일 것이다. 적극적인 현대 여성과 달리 숨겨진 현대인의 복잡성이나 이중성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다. 본인의 작품들은 현대인으로서, 본인이 사는 모습의 반영이고, 그것에 대한 해답이 아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꽃과 나비의 표현은 강한 생명력과 우리를 유혹하는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꽃은 현대를 살아가는 외롭고 고독한 현실에서 위안과 기쁨을 안겨주는 안식처의 역할과 신비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안내해 주는 이중적 존재이다. 흑백 사진이나 영화가 컬러 사진보다 우리에게 무한한 이야기를 하듯이, 그림 역시 흑백에서 오히려 사유를 더 집중시키고 극대화할 수 있다. 본인이 수묵과 화선지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그만큼 수묵은 지각적으로나 화학적으로 깊은 포용력과 이중성을 갖고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정신적으로 몰입하게 하고, 감각적으로는 마음의 안정을 주는 점이 있다. 수묵의 다양한 먹빛을 나만의 운필법을 사용함으로써 작품 감상자들로 하여금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울림을 통해 궁극적으로 안정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또한 본인의 작품 세계에서 역사를 통해 전수되는 한국만의 깊고 풍부한 감성을 통해 무한한 세계 혹은 이상향도 상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저자

미술과비평편집부

목차

91986▶1999용필과용묵의조화AHarmonyofUsingBrushAndUsingInk
232000▶2010나타냄과숨김RevealingandConcealing
472011▶2023먹과색InkAndColors
88프로필

출판사 서평

먹으로피운꽃
유희승은자신의논문에서도직접밝히듯이인간을주제로작업을해왔다.인간은자연스럽게인물화로이어진다.하지만수묵이라는동양의고전적예술형식을추구함과동시에금욕적인수행성을중시해온작가에게인간,특히현대인의모습은그리자연스럽지않다.그가주로그렸던삐에로가대표적이다.그가그려왔던탈춤시리즈도피에로에상응하는소재이자주제이다.삐에로분장이든탈이든원래의얼굴은감춰지고전형적인모습만남는다.물론전형성은문자보다는구술이지배했던전통사회에서용이한전승을위해중요한역할을했지만,삶과축제가분리된이후그것은피상성이나장식성으로추락했다.삐에로시리즈에서작가는가면같은분장에겉으로는웃고있지만속으로는울고있는분열적인간상에서현대인의모습을본다.물론그가면뒤에본질이있는지는확인되지않는다.가면뒤에또다른가면이있을뿐이고,이러한조건은실제로부터분리된기표의연쇄가지배하는현대의조건과관련된다.기표의분열적조건은언어에의해주체를구축하는데영향을주는결정적요소다.단순한소리가아닌말은인간만의소통방식이다.
언어가아니더라도노동과일,예술과일상등이분리되어있는삶자체가분열적이다.지나치게분업화되어있는현대자본주의의조건자체가분열적이라고하면서,분열증을병이아닌시대의증후로해석한문화비평가도있을정도다.작가는‘인간은독립된개체로파악되기보다는사회나문명안의존재로파악되어야’한다고믿는다.인간자체가동물과다른오랜사회화기간이필요한만큼자연과문명은차이를보이기도한다.하지만차이는차별이되고문명의한계가되는것이문제다.유희승의사고에는개체와문명과의대조항이있다.있는그자체가아니라뭔가숨기고있는인간의모습이요즘그가주로그리고있는꽃에적용되면어떤모습일까.작품[내마음의꽃](2019)을보면화병의꽃무늬와위치상병에꽃혀있을것이라생각되는꽃에큰차이가없다.
먹의농담이나외곽선의표현에있어서,하나(꽃)는흐트러져있고다른하나(도자기의꽃무늬)는정확하다는차이가있지만,보기에따라서는둘다꽃무늬일수있다.다만작가는나비가위쪽을꽃형상을찾아날아가는모습을통해이미지(물건에그려진무늬)와실제(살아있는꽃)의차이를암시한다.그림속의형상은모두이미지이긴하지만,그안에서도이미지간의위상의차이는있게마련이다.요즘그리고있는[내마음의꽃]시리즈의한작품에서화병의경계를거의지우다시피함으로서,차이를모호하게만든다.또한작가는그려진이미지의애매함을화면의형식으로도관철시켰다.가령화면에등장하는대상들을충분히관조하기에부족한좁은폭의작품들이그것이다.족자나병풍등,위아래로긴동양화고유의형식이있기는하지만,유희승의작품에서긴띠같은화면들은마치잠깐열린문틈으로바라본대상같은느낌이다.작가는이에대해‘대사회적인커뮤니케이션을이루기위해현실사회에나타난위선,허위성등의비판을통해현대인의내면세계를은유적으로표출하고자하였으므로,화면의폭도전통적인화폭이아니라폭을나누어잇거나세로로길다란폭으로그에맞게수정되었다.’고밝히고있다.좁은폭의작품들은화병에꽂힌꽃의모습이공통적인데,한장면을잘게자른것이아니라같은비율로시리즈로제작된작품군들이다.여러방식의꽃병이각기다른모습으로포착되어있지만모두부분으로나타난다.꽃의상징적짝인나비들도빠지지않는다.나비는꽃보다작고자유롭게움직이는동물이라그런지잘려있지는않다.꽃은아름다운여성을대변해왔고장인의솜씨로완성된부드럽게흐르는선으로연결된잘빠진도자기또한여성적이다.그러한시점은특유의엿보기시각과더불어여성을대상화하는것일까?그것은유희승의작품전반과연결되어해석되어야할문제라고보여진다.작가는특히여성에게서전통과현대사이에서분열될수밖에없는그들의상황에공감하고있기때문이다.인간자체가분열적조건에있지만,상황이악화되면약자가더나쁜영향을받기마련이다.작가는현대의‘여성과꽃은현대여성의현실과이상,자아의인식과개발을욕구하는여성의욕구의이중성을말한다’고밝힌다.대부분의전통적역사속에서남성이주체였고.바로그인간주체가모두현대인으로‘진보’했을때,출산과육아를비롯한자연의역할을떠맡았던여성은온전히현대인이될수없었기때문이다.대개자연의질곡에문명의질곡이더해지는양상이다.[내마음의꽃](2019)시리즈에서화병에꽃힌꽃들은물을너무많이머금은나머지확번져있는모습이다.꽃의명확한형태가아니라얼룩으로표현된형상은활짝피어나다못해흐드러진모습을상상하게한다.‘흑백’이지만다양한농담을가진먹의흔적들은그것이다채로운색을가진꽃임을알수있다.작가는이에대해‘컬러사진보다흑백사진이나영화가감상자에게무한한이야기를하듯이’표현한것이라고말한다.[내마음의꽃-‘또다른꿈’](2020)시리즈에서피어난꽃은꿈과비유된다.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말처럼,짧은화려함을뒤로하고사라지는꽃과꿈의비슷함에주목한다.하지만꽃이든꿈이든세세한기억은사라져도느낌은남는다.화면을한가득차지하는먹의흔적은강렬하게남은기억에대한인상이다.한지에먹,금니등이사용된[내마음의꽃]시리즈는수묵화에속한다.한국에서는수묵비엔날레가창설되어주기적으로열리기도하지만,한분야에비엔날레급행사가열리는것은그만큼위기의식의발로이기도하다.작년에관련세미나도들었는데,발제자중의한명이수묵화만의고유한특징으로‘얼룩’을제시했던기억이있다.유희승의[내마음의꽃]시리즈는한지에서번지는먹의특성을최대한살린다는점에서수묵화의‘본질적’특징을보여준다.늘상위기와함께하는예술이지만수묵이포함되는한국화의위기는오랫동안이야기되어왔다.예술의정체성인전통과현대의문제를홀로걸머지고있는분야이기도하다.수묵이아닌유화를하면서구=현대성의도식에따라자동적으로현대적이라고볼수없음에도불구하고말이다.유희승은색을현대적속성이라고간주하지만[내마음의꽃]시리즈에서는화병이놓이는기저면을표시하는노란선만보인다.하지만그가활용하는‘검정’색은매우많다.마가레테브룬스가[색의수수께끼]에서검정색은‘모든파장을받아들여자신속에머물게하는유일한색으로서상당한정도의빛으로가득차있다’고말했듯이,검정에는이미모든색이들어가있다.또한‘먹을다루는자는다섯가지색을지배한다’는동양의사고가있듯이,먹또한하나의색이아니라고간주되어왔다.유희승의[내마음의꽃]시리즈는모든색을포함하는먹의특징을아름다운색들의상징인꽃과비유하고있다.이선영(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