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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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만문노당(滿文老檔)』 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인조와 병자호란에 대한 완전한 재인식!
어리석은 군주의 권력욕이 불러온 병자호란의 참화와 소현세자의 죽음을 낱낱이 파헤친 역사 평설
『인조仁祖 1636』은 병자호란에 대해 완전히 다른 문제 인식을 제공하는 책이다. 먼저 저자는 1636년을 중심으로 조선의 내외 정세 및 대응 그리고 전쟁의 실질적 피해자인 백성들의 참상을 사료를 근거로 상세히 서술한다.
저자에 의하면 병자호란은 불가피한 전쟁이 아니었다. 이 책은 인조반정→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무능한 지도자의 그릇된 인식과 판단이 엄청난 전쟁의 원인이며, 그것의 최종 피해자는 백성임을 밝힌다.
『인조仁祖 1636』은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주전파와 주화파의 허망한 논쟁보다, 인조의 삼전도의 굴욕보다 남한산성에 숨은 왕을 구하기 위해 근왕군으로 동원된 병사와 의병 그리고 백성들의 죽음, 청으로 끌려간 수십만 명의 억울한 백성들이 왜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원인을 추적한다.
이제 독자들은 막연히 조선의 3대 혼군으로 알려진 인조의 시간을 여행하며, 오욕의 역사에서 현재를 생각하는 ‘역사의 눈’을 키우게 될 것이다.

저자

유근표

20여년간성곽과병자호란을연구했다.2000년초수풀속에방치된서울성곽에충격을받고6년에걸쳐답사한끝에‘서울성곽탐방안내도’를완성하여언론에알리기시작했다.그후10여년간문화재관련단체를비롯하여곳곳에서서울성곽안내와역사를강의했다.

남한산성답사중,병자호란때임시수도로서45일간항전한남한산성의역사성에주목하여,병자호란에관한책을쓰기로마음먹었다.그후10여년넘게,『인조실록』『승정원일기』『만문노당(滿文老?)』등1차사료와인조와병자호란과관련된수많은저작을연구했다.그결과를바탕으로인조와병자호란을다룬이책을집필했다.현재는역사를주제로한저술활동에매진하고있다.

저서로는『이강산이조국』『성곽답사와국토기행』『서울성곽육백년』『이야기수동사』등이있다.이밖에논저로는「조선왕조의왕위에오르지못한세자」「고려와조선왕들의수명」「이회영일가」「독립군최고의무장홍범도」「의사강우규」「임시정부와김구」「박열과가네코후미코」「김원봉과의열단」「석주이상룡」「남한산성과병자호란」「북한산성」「서울성곽의어제와오늘」「고개이야기」등이있다.

목차

서문|자신들만의권력을지키고대국을섬기기만하면백성은어떻게되는가?

제1부병자호란전인조

1.광해군
임진왜란과광해군/광해군의술취한밤/광해군일가의최후
2.이괄
1624,이괄의분노/2일천하/안전하게도망갈곳,남한산성
3.조선국왕,인조
“그대를봉하여조선국왕으로삼노라”/돌아보건대,너희들과그들이무엇이다른가/가도를깔고앉은모문룡
4.누르하치
누르하치의맹세/1616,누르하치의후금(後金)건국/강홍립,명과후금의사이에서/영원성패배와누르하치의죽음
5.홍타이지
홍타이지의조선정벌/정묘년(1627),다국적국3만조선을침략하다/평안감사윤훤참수당하다
6.혼군
인조는또다시강화도로도망치고/“후금이형이되고조선이아우가되다”/정묘호란최대의승리,용골산성전투/소현세자의분조/정묘약조의후폭풍/멸망의길로들어선명나라/황제가된홍타이지/파국으로치닫는양국관계

2부병자호란중인조

1.남한산성
병자호란,“죽여야할자는죽이고,노획할자는노획하라”/최명길홀로적진으로들어가다/섣달열나흗날밤,인조남한산성에도착하다/소두마리,돼지세마리,술열통
2.갇혀있는왕
“나를구하라”/쌍령전투:왕을구하려다죽어간군사들/김준룡부대,적장양구리전사시키다/병자호란최대승첩,김화전투/“조선국왕이종(李倧)은삼가대청국황제께글월을올립니다”
3.강화도에서일어난일
강화검찰사김경징/강화도함락/강화도는지휘부의무능으로무너졌다/스스로목숨을끊는부녀자들/김경징사사당하다
4.삼전도의굴욕
“신이안심하고귀순할수있는길을열어주소서”/세번절하고아홉번머리를조아리다/삼학사/김상헌,최명길심양으로압송되다/비극!청으로잡혀간피로인들

3부병자호란후인조

1.의혹의두인물
미원산골짜기로숨어든도원수김자점/임경업은명장(名將)인가,명장(明將)인가?
2.미약한희망
조청연합군/소현세자의심양길/역관정명수의패악/소현세자의고국방문/1,000일갈이의밭
3.착오와정세
청태종,홍타이지죽다/여섯살황제와섭정왕도르곤/명의운명을걸머진오삼계/소현세자,명나라의최후를목격하다/청의북경천도/도르곤의죽음과의순공주의비극
4.무능의광기
소현세자와아담샬/소현세자의죽음/검은빛/강빈의사사/비극의끝

부록남한산성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병자호란,홍타이지의침략인가,인조의오판과무능이불러온전쟁인가?
명청교체기국제관계속에서바라보는인조의외교정책과병자호란

병자호란,어떻게볼것인가?

인조반정은병자호란의원인에해당하는사건이었다.인조는광해군의‘폐모살제와명나라에은혜를갚는다는재조지은을명분으로반정에성공한다.따라서인조에게전정권세력척결과광해군의외교정책폐기는당연한수순이었다.왜그랬을까?인조는떠오르는강자후금을.한낱오랑캐로규정할뿐이었다.더구나인조는명을부모의나라로떠받드는정책으로일관해,당시의국제정세를이해하려고도수용하려고도하지않았다.그구체적인첫번째사건이정묘호란이다.1618년명과후금은사르후에서전투를벌인다.조선은강홍립을필두로1만3,000의지원군을파견하는데,중원진출을노리는후금은명을치기전에조선을먼저정벌해야할군사적필요성을확신한다.게다가후금은눈엣가시처럼여기는명나라장수모문룡의가도주둔을조선이불러들인것으로여겼다.따라서어리석은군주인조의시간은정묘호란으로그서막을올리게된다.

그렇다면저자는병자호란을어떻게보고있을까?저자는다음과같이지적한다.“병자호란은갑자기닥친전쟁이아니다.이전쟁에앞서40여년전에는임진왜란을겪었고,불과10여년전에도정묘호란을겪었다.정묘호란이후,청나라는각종경제적요구는물론,명나라를치는데협조하라며수시로조선을압박했다.이런와중에도인조정권은시종일관국방이나백성들의곤궁한삶을외면하고오직자신들의권력팽창에만열을올렸다.그뿐만아니라,임진왜란당시원군을보내재조지은(再造之恩)을행한명나라의은공을갚아야한다며대명의리를위해정권의명운을걸다시피했다”

정묘호란후,조선은대명의리에빠져국제관계에대한인식도,국가의안위를지키기위한군사력증강등전쟁에대한대비가없었다.10년후홍타이지가즉위하고명나라정복이본격화하면서또다시전쟁의참화에휩쓸려야했다.병자호란은유례없는굴욕의상징으로역사에기록되었다.과연인조는삼전도에서세번절하고아홉번머리를조아린비겁한왕으로만역사의시간에멈춰있어야하는가?

“나를구하라”근왕령발동으로인조를구하려다죽어간수많은병사,의병,그리고지휘관들
절대군주가불러일으킨전쟁의최대피해자는결국백성이었다.

최고권력자인조

인조는반정에성공한조선의전제군주였다.그리고반정의실질적인책임자이기도하다.광해군이무리한궁궐공사로백성의삶을도탄에빠트렸다며반정의기치를높이들었으나그는전쟁이발발할때마다백성과도성을버리고몽진을떠났다.정묘호란때는강화도로,병자호란때는남한산성으로숨어들었던것이다.백성을버리고자기살길만찾는군주를백성들은어떻게바라보았을까?청나라가기마병을앞세우고순식간에서울인근에당도하자인조는강화로의피난을포기하고남한산성으로향했다.반란이무서워군사훈련을금지했던인조정권의정책으로인해전력이약화된조선군은홍타이지와백전노장장수들이이끄는청군에게상대가되지못했다.

남한산성에갇혀청군의홍이포공격에속수무책이던인조는도성이남의군지휘관들에게납서를보내근왕군을동원하여자신을구하라고명령했다.병자년12월,삼남에서몰려온군사들,의병들,지휘관들은혹독한추위와군수물자의부족속에서왕을위해혈전을벌였다.남한산성에스스로를가두고주전파와주화파놀이를주관한것도인조였고,거듭되는패전에스스로의목숨을구걸한당사자도인조였다.

병자호란을홍타이지의조선침략에서만원인을찾는다면왕을지키기위해죽어간수많은병사,의병,장수들그리고억울하게청으로끌려간수십만명의백성들의역사적한(恨)은여전히방기되고,역사를통해배우는교훈은남지않을것이다.

인조의권력욕이불러온소현세자일가의비극
오만과무능으로조선최악의비극을불러온군주,인조

소현세자의죽음

영조는아들사도세자를뒤주에가두어죽게했다.하지만인조가소현세자의죽음에직접적으로관여한기록은없다,그럼에도소현세자의죽음이후며느리강빈을사사하고손자들을제주도로귀양보내어죽게내버려둔것은무엇을의미할까?

병자호란후청나라에볼모로잡혀갔던소현세자는8년만에고국으로돌아왔다.그는포로였지만,명의멸망을직접경험했고청제국의복잡한정세와아담샬을통해발전한서양의과학문명을학습했다.그는혼군의시선으로정권안위에급급했던아버지인조를넘어설수있는유일한인물일수있었다.소현세자에대한기록과사실은그가능성을증명하고있다.그죽음이안타까운이유가여기에있다.

소현세자가아버지인조의냉대속에서귀국2달만에세상을떠난이유가그의건강에있든,소현세자가친청파로돌아섰다는오해와청나라에서자신을끌어내리고소현세자를왕으로삼을지도모른다는불안감속에서저지른독살이든소현세자의죽음은조선이서양문물을수입해발전할기회를잃어버린안타까운일이다.

하지만역사는멈추지않고해석되고해석된다.소현세자의죽음어떻게볼것인가?그것은어리석은왕이자아버지인조의비정함의결과이지만궁극적으로는혼군,즉어리석은왕의광기로밖에설명되지않는다.